시 창작을 위한 원론강의[6]
시를 왜 쓰는가?
이 시간에는 시를 쓰려는 마음의 자세와 시를 접하는 옳바른 자세를 말하고자 합니다.
[1]시를 왜 쓰는가?
이 질문에 여러분 스스로의 마음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왜 시를 쓰시는 가요? 아님 왜 쓰려 하십니까?
대답이 나왔습니까?
그렇다면 그 대답 중에 -친구가 쓰니까- 라든가.
-어디에 출품한번 해보려고-이러한 대답이 나왔다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시 쓰기의 출발입니다.
이러한 자세로는 좋은 시는 1,000편 10,000편을 써도 꿈일 뿐입니다
[2]시를 쓰는 옳바른 마음
우선 시를 쓰려는 자세를 최소한 자아의 완성에 먼저 두시기 바랍니다.
이 대목이 이루어지다보면 나머지도 자연스레 얻어지지만 출발이 목적성에 의한 출발이 된다면 시 쓰기는 글쓰기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잘못되어 있는 관계로 오늘날의 시문학이 양적인 면에서는 발전하고 포화상태까지 되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형편없는 시문학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사람 자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영도자로서의 자부심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고자하는 지적구성원이 된 것을 자부하십시오.
[3]시를 쓰는 자세
어떠한 예술도 시대를 비껴가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시도 그 범주 안에 있음은 기정사실입니다.
우리가 옛 시를 보면서 아하 그때 그 시절엔 이러한 풍습과 이러한 일들이 있었구나 라고 알게 되듯 시는 그 시대의 모습을 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 성찰해봐야 합니다.
詩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수반하는 현상을 의식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사실이나 그 바탕에는 작가의 현실적 삶이 모태가 되어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시대적 배경이나 그 시인의 삶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알 것이다.
따라서 작품이전에 인간이란 말에 대해 큰 거부감은 없을 줄 안다.
즉 옳바른 사상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는 자세는 좋은 시를 쓰기위한 준비자세 정도라고나 할까?
결국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고 시인은 시대를 사는 일 개체의 인간인 점, 인간은 생활의 모습을 영위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4]시의 그릇은 시인의 마음과 비례한다.
시는 예로부터 다루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어왔다.
가장원초적인 애정문제에서 부터 철학 사상 종교 학문 등 구애 없는 영역을 넘나들었다.
생각해보라 이처럼 무한 영역의 시를 쓰고자 하면서 어떠한 틀에 자신이 맞추어져 있거나 반대로 시를 맞추려 한다면 과연 될 말이겠는가.
시를 쓰고자 한다면 가장먼저 마음에서 판별의 마음을 백지화 하라고 필자는 강력히 권유한다.
시인은 판사가 아니라 의식에 연결하는 도구를 만드는 창조자이다.
[5]시를 쓰는 태도
혹자들은 시를 거꾸로 알고 쓴다.
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말 꾸미기로 써놓고 시라 한다.
내 욕망을 써놓고 이를 시라 한다.
설혹 이러한 내용들이 주가 되어 시를 쓴다하여도 의식의 진행상의 연결고리정도로 쓰여야 마땅한 것이다.
시인은 현상 속으로 창조적 의식을 주입시켜야 한다.
즉 풀잎하나의 떨림 속에 인간 내면의 공포를 담는다든지 하늘의 심판의 망설임을 담는다든지 이 처럼 의식을 형성할 수는 있으나 풀잎이 내면의 공포감이 될 수는 없고 심판의 망설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시인의 자세와 시를 쓰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마음에서 길이 열렸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시를 쓰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마지막 양심의 보루라는 것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시를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