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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그리움 그 안온(安溫)한 풍정(風情) / 김송배 시인(인터넷 펌)

작성자仁堂孫興燮|작성시간23.03.30|조회수4 목록 댓글 0

한맥문학 월평0712

겨울의 그리움 그 안온(安溫)한 풍정(風情)

김 송 배

 

지난 11월 1일은 ‘시의 날’이었다. 1908년, 육당 최남선이 신체시「海에게서 少年에게로」를『少年』지에 처음 발표한 날을 1987년 11월 1일 ‘시의 날’로 정하여 해마다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신시 10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시인협회에서는 ‘신시 100년’과 한국시현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과 방언시 낭송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는데 시인들이나 국민들이 너무나 관심 밖인 듯해서 씁쓸하기만 했던 것은 왼일일까.

 

이 ‘시의 날’은 “詩는 삶과 꿈을 가꾸는 言語의 집이다. 우리는 詩로써 저마다의 가슴을 노래로 채워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 하는 슬기를 얻는다. 우리 겨레가 밝고 깨끗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그러한 詩心을 끊임없이 일구어 왔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이에 詩의 無限한 뜻과 그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하여 新詩 80년을 맞는 해, 六堂 崔南善의「海에게서 少年에게」가 1908년『少年』誌에 처음 발표한 날, 십일월 초하루를 ‘詩의 날’로 정한다. 1987년 11월 1일. 한국시인협회 ․ 한국현대시인협회 ’詩의 날‘ 제정모임”에서 “‘詩의 날’을 선언하는 글”을 발표하고 제1회 행사를 범시단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그러나 이처럼 시의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시인들이 많다는 점과 시의 날을 그냥 간단하게 기념식이나 하고 지나가는 문학단체들의 무성의가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문인협회와 시인협회, 펜클럽 등이 공동으로 이날 하루만이라도 시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서 시인들과 시애호가들이 함께 접할 수 있는 행사를 벌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우리의 현대시는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시가 우리의 삶과 인간다운 발전에 기여하느냐는 문제에서부터 우리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고 또 수용하면서 국민들과 공감할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창조의 세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여기 2007년을 보내면서 이렇게 을씨년스러운 독백부터 중얼거리는 것은 아마도 시가 이 땅에서 얼마나 그 효용가치가 있는가하는 서글픔이 엄습해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설하고 지난달에는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인지 많은 시인들이 시집을 상재하고 나누어 읽기 위해 시집을 보내주었다. 우선 ‘한脈’에서 간행한 김보태 시집『풀잎』과 이은별 시집『백목련의 아침』이 눈에 띈다. 김보태의 작품은 대체로 담백한 구성미를 가졌다. 그의 에스프리를 쓴 이창년의 말과 같이 그는 순교자적인 자세로 시를 쓰는가보다. 그 에스프리를 쓰면서 김보태와 이창년은 몇 번 술잔을 기울였다고 했는데 역시 술에 관한 작품이 많이 보인다.

 

도봉산 자락 길섶

한 평 남짓한 포장마차에서

두 노인이

소주 두어 병 놓고

수더분한 주인 아낙의

말주변을 안주삼아

거나하게 대작하는데

산바람에 묻어오는 산더덕 냄새에

아련히 취하누나

 

--「두 노인」전문

 

김보태는 스스로 산곡초부(山谷樵夫)라는 아호(雅號)를 부르며 서울 주변 산행을 하면서 술도 마시는가 보다. 이 작품은 ‘고 박주오 시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라는 주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서 시인들과 대작이 잦은 것 같다. 그는 ‘막걸리 한 잔에 / 서산노을이 벌겋게 취한다(「노을진 동막골」중에서)’거나 ‘임과 함께라면 그 짓 뒤의 혼몽처럼 / 흠뻑 취하도록 마시겠네(「술을 사랑하는 이유」중에서)’ 또는 ‘바다냄새 상큼한 / 소주 한잔 마시니 / 불현듯 / 눈시울이 더워진다(「우렁쉥이 술잔」중에서)’ 등 술 예찬론자이다. 다음 이은별은 어떠한가.

 

유리창에 별빛이 희고

사흘째 오던 비 이미 멎었네

귀밑머리 가지런히 쓸어내리고

다소곳이 禪定에 들자니

北固寺에 내려앉은 바람

내 생가슴에 푸근하여

살아생전 어머님의 초하루

오직 혼자 헤아리는데

손끝에서 연꽃이 벙그네

 

--「合掌」전문

 

이은별은 대체로 불심(佛心)에 깊은 사유(思惟)를 할애하고 있다. 「禪詩 二首」나 「보리암에서 하루는」,「法雨가 내리면 좋겠네」,「초록햇살이 내리면」등 제2부 ‘연꽃처럼’의 장에서는 그의 정신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영혼과의 교감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너처럼 살고 싶다 / 내 淨土를 찾으면 / 榮辱의 짐 다 내려놓고(「연꽃처럼」중에서)’라거나 ‘조계사에서 합장하고 나서다가 문득 / 걸음이 멈춰졌다(「꿈이 크는 만큼이나」중에서)’, ‘소요산엘 갔었네 / 山門에 들어 합장하는데 / 섬광이 번쩍였다 / 원효대사의 淨慧인 듯(「逍遙山」중에서)’ 등 그가 평소에 깊은 신심(信心)이 형상화하는 작품을 통해서 진실로 승화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달『맥문학』에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에는 그리움이 진하게 향기로 날리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어서 이 겨울에 느껴보는 안온한 풍정으로 다가오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이 되면

 

나는 가끔 그곳을 찾는다. 해피와 함께 살던

과수원 자리엔 외지인처럼 낯선 아파트가 하늘을 가리고

길 어귀 상점엔 알록달록한 풍선만이 주렁주렁 열려 있지만

뒷산을 향해 열린 길에는 지금도

꽃무늬 발자국이 남아 있기에

--이보경의「꽃무늬 발자국이 나를 부른다」중에서

내 임이

간절히도 바랐건만

노오랗고 불그레

물감 뿌려놓은 듯

머언 산에 안기었던 가을이

저기만치

그리움 밀쳐놓고선

하늘로 돌아간다

--이경재의「만추」중에서

한 떨기 그리움 별

잔잔한 호수

돛단배 되어

제멋대로 간다

 

--呂賢玉의「이별의 경고장」중에서

 

이 그리움의 형상화는 과거라는 시간성에서 출발한다. 이보경은 ‘겨울’이라는 시간과 ‘그곳’이라는 공간을 설정하여 지금도 그의 가슴속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꽃무늬 발자국’을 찾아가는 그리움이 시적 원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경재와 여현옥의 그리움은 구체성을 띄고 있다. 이경재가 만추(晩秋)라는 계절적 감각에서 생성된 시간의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여현옥의 ‘그리움 별’도 그가 공간개념으로 열거한 ‘아쉬운 마음자리 / 열정의 몸짓 / 머무름 있는 곳 / 오롯이 정든 곳’에서의 ‘이별’은 화자의 어조가 사뭇 격앙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어차피 떠난다면’이라는 어조와 ‘작별 인사를 고한다’는 어조가 이별이나 작별을 예감하는 심리적 변화가 시적정황을 동일한 유형으로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유봉규의 「별은」에서도 ‘어릴 적 / 동심 / 총총 자극하며 / 기억이 가물거리도 / 너무 / 선명한 / 그리움 / 밤새 그려내는 / 별은 / 시간 여행을 갔나’라는 시간성에 그의 ‘그리움’을 반추하고 있어서 시인의 체험 속에서 여과된 순정적 이미지가 그리움으로 형상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또한 윤항중의 「그리움」은 ‘그리운 손자손녀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적 인 ‘보고 싶’음에 대한 대칭적 사유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그리워질 때면

마음은 빨간 장미꽃으로 물들어

뚝뚝 태평양으로 떨어져

시드니 앞바다까지 와서 울고 있어요

 

--윤항중의「그리움 . 1」중에서

 

기쁨아!

택한아!

살가죽이 마르고 뼈에서 수분들이 증발되어

눈을 감을 때까지 너희들은

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며 생명이며

이 집안의 보배들이다.

 

--윤항중의「그리움 . 2」중에서

 

그렇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그리움 . 1」이 손자나 손녀가 ‘할머니(혹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으나 반대로「그리움 . 2」에서는 할머니(혹은 할아버지)가 손자손녀인 ‘기쁨’과 ‘택한’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 그리움의 시적원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전제를 묵시적으로 현현하는 경우에 성립된다. 일찍이 유치환도「그리움」에서 ‘오늘은 바람이 불고 /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안마는 /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기빨처럼 울고만 있나니 /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라는 애절하거나 비통한 심정이 흐르는 것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밖에도 강정식의「진실 여부」, 국승윤의「오색 단풍」,「가녀린 인생」,홍주희의「빙상 경기장에서」, 박혜숙의「우산」과 손희자의 연재시「외딴집 자녁 풍경」외 4편이 시인의 진실을 탐색하는 심도있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면관계로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한다.

아무튼 이 겨울에 어떤 형태로든 안온한 그리움을 간직한 시인은 행복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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