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합평의 실제-5 (2)
안현심 교수
② 박영애의 ‘엄마가 말했다’
<원작>
엄마가 말했다
박영애
단칸방 신혼 시절,
아무리 가난해도 건강한 몸이니
돈 걱정할 때가 좋은 때라고
제때 끼니도 못 먹고 하루 세 시간 자며
먹고 사느라 힘들다 하니
정신없이 바쁠 때가 제일 좋은 때라고
돈이 모아지며 편안해질 무렵, 사기당해 전 재산을 잃으니
집만 불에 타고 다친 사람 없는 격으로
운이 크게 좋은 거라고
고통이 끝날 줄 알았지만 산 넘어 산,
파도치는 바다일 때 허탈하고 바람 부는 날 많으나
스치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 지우려 한 것들
갇힌 빛 사이로 스며든 얼룩진 흔적과
맑게 고이는 기대로 나를 웃게 한, 당신이었습니다.
<합평작>
엄마가 말했다
박영애
단칸방 신혼 시절,
가난해도 돈 걱정할 때가 좋은 때라고
제때 밥도 못 먹고
하루 세 시간 자며 일하느라 힘들어 하니
정신없이 바쁠 때가 좋은 때라고
돈이 모아지며 편안해질 무렵,
사기당해 전 재산을 잃었다고 하니
집만 불타고 다친 사람 없으니 운이 좋은 거라고
고통이 끝난 줄 알았지만 산 넘어 산,
파도치는 바다일 때 허다하고 바람 부는 날 많으나
나를 끝내 웃게 했습니다.
어머니.
<시작노트>
작년에 지었던 시예요. 짧은 작품에 연을 더해 다시 합평 받고자 제출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삶의 소중함을 긍정을 일깨워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합평노트>
제1연의 “아무리”라는 부사와 “건강한 몸이니”라는 표현은 삭제합니다. “아무리”라고 과도하게 수식할 필요가 없고, 제1연에서는 가난해서 돈이 없다는 것, 한 가지 현상에만 집중하고자 합니다.
제2연에서는 “끼니”라는 어휘를 “밥”이라는 현실적인 어휘로 대체합니다. 애둘러 표현하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느라”라는 표현을 “일하느라”라고 수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5, 6연의 “스치는 것들/ 사라진 것들/ 지우려 한 것들// 갇힌 빛 사이로 스며든 얼룩진 흔적과/ 맑게 고이는 기대로”라고 형상화한 구절을 삭제합니다. 구체성을 잃고 현학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독자의 손에 딱 잡히는 표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부분의 행과 연은 재배열하면서 “나를 끝내 웃게 했습니다,/ 어머니.”라고, 단호한 이미지로 마무리합니다.
시인은 감성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감성이라도 시로 형상화할 때는 보이게 쓰고, 잡히게 써야 합니다.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구름이라도 두루뭉술하게 형상화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합평작을 읽다 보면, 시가 구체성의 옷을 입고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독자도 시를 해독하느라 머리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