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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

경북김천의 산. 황악산.운수봉. 2026년 6월 25일(木) 새마포산악회. 4,667회 산행.

작성자아름다운강산 정병훈하문자|작성시간26.06.23|조회수27 목록 댓글 0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난 날(6,25 전쟁)
백두대간을 간다.

코스 : A조.괘방령-여시골-운수봉-천덕산-백운봉-선유봉-황악산-형제봉-신성봉-망봉-주차장 (13km/5시간)
B조.괘방령-여시골-운수봉-천덕산-668봉하산-운수암-직지사-주차장
(7km/3시간30분)

6.25 전쟁 또는 한국전쟁은 ?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조선인민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표로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한국 역사 내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됨으로 사실상 일단락되기까지 3년 1개월 3일(1129일)간 이어진 이 전쟁은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된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며, 정전 이후 72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북한의 핵개발 등의 영향으로 한반도 남북 간 왕래 불가와 적대적 대치 상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어 종전 협정은 요원한 상황이다.
한편 이 전쟁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때문에 6·25 전쟁은 전후 냉전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도 평가된다. 동시에 대한민국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대한민국과 16개국 국가들이 함께 뭉친 17개국의 UN 연합군과 북한과 중국, 그리고 소련을 중심으로 뭉친 공산군 사이의 벌어진 국제전의 양상을 띠기도 한다.

전쟁이 발발하기 5년 전인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해방 직후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미군과 소련군의 점령이 끝나고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소련과 중국을 설득하여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계획을 수립하며 노골적인 침략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으로부터 협조와 지지를 얻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30분 38도선 이남 대한민국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남침을 시도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6·25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1세계와 제2세계를 중심으로 대립하게 된 냉전 시기 세계 갈등이 전쟁으로 발전된 대표적 사례로, 미국과 소련은 물론 유엔, 중국까지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관여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었다. 실제로 km당 투입된 병력의 수는 넓은 지역에 산개되어 전개된 제2차 세계 대전보다도 밀도가 높았다.

공산 정권이 대체로 우세했고 통일도 이룩한 국공내전이나 베트남 전쟁과 달리 양측이 한 번씩 승리에 다가섰다가 균등해진 상태에서 정전을 이룬 다소 극적인 전개를 거쳤다. 전쟁 초반 북한은 파죽지세로 진격을 거듭해 남한과 유엔군을 낙동강 방어선까지 몰아세우며 적화통일을 눈앞에 두었으나, 이후 남한과 유엔군 또한 인천 상륙 작전으로 극적인 전세 역전을 이뤄내며 이윽고 한반도 전역을 통일하기 직전까지 북진하였다.

그러나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이북 지역에서 후퇴했으며 이후 전쟁은 현재의 군사분계선 근방을 두고 지속적인 소모전이 이어졌다. 1951년 6월 23일 첫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전쟁 포로 송환 등 여러 가지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여 전쟁이 계속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국 6.25 전쟁 지속에 반대하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들어서고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을 통해 한반도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정부가 대립하게 되었다.

각각 통일에 실패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후 한반도의 정통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걸고 대립하게 되었고, 민간의 이주, 통신, 교류가 거의 완전히 불가능해졌으며 상호 적대가 국가 운영과 국민 여론 및 의식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은 이 전쟁의 결과로 남북이 아직도 갈라져 있는 상태이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연속된 한국의 암흑기를 연 사건인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전쟁으로 굳어진 각 체제(體制, Régime)와 상호간 대치 상태는 정전 7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6·25 전쟁의 평화협정(종전 및 강화 조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으며, 남과 북의 군사·적대적 대치 상태는 여전하기에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지만, 현재 남북 양측의 국민들에게는 기껏해야 안보적 차원에서의 명목상 전쟁 중이라는 지식만 있을 뿐, 현재 양국이 전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인식은 드물다. 법적으로 볼 때 대법원의 판례는 지금이 '전시'인지 '평시'인지 명확하게 입장을 내린 적이 없으며 사안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 또한 그러한데,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과 남북 관계의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원인과 배경.
"나는 정전이라는 것이 결코 싸움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게 하며 고난과 파괴를 더하고 전쟁과 파괴적 행동으로 공산 측이 더욱 전진하여 오게 되는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정전의 조인을 반대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전이 조인되었음에 나는 정전의 결과에 대한 나의 그동안 판단이 옳지 않았던 것이 되기를 바란다."
- 이승만-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 더글러스 맥아더-
"포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조그맣게 갈비 조각이 나요. 사람이 분해돼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요. 펑 하고 터지고 나서 가 보면 (손바닥을 반절쯤 붙잡아 보이며) 나무에 창자 조각 요만큼 걸려 있고 살 토막 요만큼 걸려 있고 그래요. 포탄 맞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버린 게 아니라 (시체를) 찾을 수가 있어야 버리죠. (영화 고지전을 보았느냐는 질문에) …그런데 그건 애들 장난이지."
(육군 소령(퇴역), 6사단 7연대 2대대 6중대장, 8사단 16연대 1대대 2중대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

- 김달육-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평화 시에 한국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I cannot in good conscience return to Korea as a Christian missionary in peacetime if I am not first willing to be there to help the Koreans defend their freedom in time of war,”
(미국 해병대 제1사단 5연대 본부중대 정보장교로 6.25 전쟁 당시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녹번리에서 전사)

- 미국 해군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
"모두들 앉아 내 말을 들어라. 그동안 잘 싸워주어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장소가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 백선엽-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Stand or die." 고수 혹은 죽음뿐.
- 월튼 워커-
"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서 전사하거라![110]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저들의 손에 꼭 안겨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모른 척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 하일레 셀라시에-
"한국은 걱정마세요. 한국은 걱정마세요. 여기 영웅들이 모인 군대가 가고 있습니다."
"ስለ ኮሪያ አትጨነቅ... ስለ ኮሪያ አትጨነቅ... የጀግኖች ሰራዊት እዚህ አለ።"

- 에티오피아 제국 황실근위대 메할 세파 -
배멀미로 인한 구토와 곧 닥칠 피바다의 두려움을 이기는 자기암시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저는 육군 중령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언제나 전쟁터에서 살아 왔습니다. 저는 곧 태어날 자식에게 제가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 라울 마그랭베르느레 프랑스 육군 중장-
"국군은 대통령으로부터 명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명령만 있으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다."
- 신성모-
"조국통일이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소련에 가서 스탈린 동지를 만나 조선인민군의 공격허가를 받아오라."
- 김일성, 스탈린의 남침 허가를 설득하면서-
"인민군이 서울만 점령하면 남로당원이 들고 일어나 남조선 전 지역을 해방시킬 것이다. 인민군의 진격은 해방된 지역을 향한 승리의 행진이 될 것."
- 박헌영-
"특히 작년에 중국혁명이 승리함으로써 세계의 정치적 역량관계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중국혁명의 승리로 국제민주역량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국제반동세력은 심히 약화되었습니다. 중국혁명의 승리는 이승만 괴뢰도당에게도 심대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지금 장개석 도당은 이승만 괴뢰도당을 도와줄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나라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습니다."
- 김일성의 북한 내각비상회의에서 한 개전 당일의 연설-
"이 전쟁은 내전이므로, 남조선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무방하나, 유엔군이 38선을 넘는다면, 이는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
- 저우언라이-
"인천 상륙 작전은 5,000 대 1의 도박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확률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고, 나는 그들을 격멸할 것입니다."
"...Inchon is a 5000 to 1 gamble, but I am used to taking such odds... We shall land at Inchon and I shall crush them."

- 더글러스 맥아더-
"우리는 지금 인천 앞바다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오늘 상륙 작전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전이야말로 불법 남침한 북괴군을 분쇄하고 위기에 처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정의와 자유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손원일,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USS Pikaway (APA-222)함 함교에서 상륙 개시를 기다리는 해병대 장병들에게 한 훈시.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 손원일-
"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서 전사하거라!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저들의 손에 꼭 안겨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모른 척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 하일레 셀라시에-
"저는 육군 중령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언제나 전쟁터에서 살아 왔습니다. 저는 곧 태어날 자식에게 제가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 라울 마그랭베르느레 프랑스 육군 중장-
"조선 통일은 무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미국이 대한민국 같은 작은 나라 때문에 3차 대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미국의 개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마오쩌둥-
"인천 상륙 작전은 5,000 대 1의 도박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확률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고, 나는 그들을 격멸할 것입니다."
"...Inchon is a 5000 to 1 gamble, but I am used to taking such odds... We shall land at Inchon and I shall crush them."

- 더글러스 맥아더-
"친애하는 동포 형제자매들,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과 남녀 빨치산들, 용감한 중국인민지원군 장병들, 친애하는 동지들, 지난 7월 27일 10시에 판문점에서는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들을 일방으로 하고 미 제국주의자들을 위수로 한 무력침공군 대표들을 타방으로 하여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조선에서 정전의 달성은 외래 제국주의 련합 세력을 타승하고 미 제국주의 리승만 매국도당들을 반대하여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여 우리 조국 인민이 3년간에 걸친 영웅적 투쟁의 결과이며 우리나라와 우리 인민이 쟁취한 위대한 력사적 승리입니다."
- 김일성-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조선 문제는 동양의 발칸 문제다. 조선은 세계 평화와 혼란을 좌우하는 열쇠다. 전 세계의 문제이자 전 인류의 문제다."
- 후세 다쓰지-
"6.25 당시에 만주를 폭격했으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1996년 6월 24일 중부전선 시찰 당시 발언).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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