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1944년 6월 26일 생.
사정상 두 아들과 큰딸내외.우리부부 6명만의 생일파티.
집에서 케익 축하를 먼저 마치고 가나안 오리식당에서 오리두마리로 저녁식사.
식당 대기실에서.
식당.
인생초로(人生草露) — 부질없음을 아는 자만이 누리는 자유
인생초로(人生草露). 사람의 삶을 풀잎 위에 잠시 맺혔다가 해가 뜨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이슬에 비유한 말이다. 이 짧은 네 글자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가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래 머물 수 있을 것처럼 살고, 모든 것을 붙잡을 수 있을 것처럼 욕망한다. 삶이 본래 덧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며 하루를 보낸다.
인생은 애초에 ‘저장’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통과하도록 주어진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생을 축적의 문제로 착각한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며,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인다. 욕심은 곧 목표가 되고, 목표는 강박으로 변한다. 그렇게 강박에 이끌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은 방향을 잃고 속도만 남는다. 바쁘게 살았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바빴는지는 흐릿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비극을 실패나 가난에서 찾는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비극은 따로 있다.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시간을 스스로 유예해 왔다는 데 있다. 우리는 늘 ‘나중’을 약속한다. 조금만 더 벌고 나서, 조금만 더 안정되면, 이번 고비만 넘기고 나면 그때는 마음 편히 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나중’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대신 몸은 지치고, 마음은 닳아간다.
더 벌기 위해 건강을 잃고, 더 인정받기 위해 관계를 소모하며, 더 성공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밀어낸다.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하나둘 잃고 나서야 문득 묻게 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은 언제였는가.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할 즈음에는 이미 돌아갈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생은 되돌려 보며 이해할 수는 있어도, 되감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초로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차피 오래 남지 않을 것이라면, 무엇에 인생을 쓸 것인가. 더 쌓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더 살아내는 데 쓸 것인가. 삶이 덧없다는 사실은 허무의 근거가 아니라 기준의 전환을 요구한다.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이 중요해지고, 다시 오지 않기에 오늘의 태도가 삶의 전부가 된다. 친절은 미룰 수 없고, 화해는 다음으로 넘길 수 없으며, 사랑은 언젠가 할 일이 아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존중하는 태도에 가깝다. 오늘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이미 주어진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인생을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통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풀잎 위의 이슬은 자신이 빛난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태양이 떠오르면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그 겸손함이야말로 인생초로가 가르치는 삶의 품격이다. 성공을 전부 내 능력으로 착각하지 않고, 실패를 모두 내 무능으로 몰지 않으며, 주어진 조건 속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태도. 그것이 삶을 가볍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힘들어지는 이유는 세상이 점점 가혹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삶을 너무 복잡한 공식으로 풀려 하기 때문이다. 증명해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비교할 대상이 늘어날수록 인생은 무거워진다. 그러나 인생은 시험이 아니라 통과다. 한 번 왔다가 가는 길에서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풀잎의 이슬은 사라지지만, 그 순간의 맑음은 새벽을 완성한다. 인간의 삶도 그렇다. 오래 남지 않아도 좋다. 다만 욕심에 쫓기느라 인간답게 살 시간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초로(人生草露)는 조용히 속삭인다. 마음 편하게, 즐겁게 살아도 이미 충분하다고. 그것을 아는 순간, 인생은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되찾는다.
관 상 (觀 相)
사람은 누구나 좋은 얼굴을 가지기를 원한다.
觀相을 잘 믿지 않는 사람도 누가 "당신 觀相이 좋다"고 하면 금세 입이
헤벌레 벌어진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청년 김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 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당시엔 인맥과 재물이 없으면 출세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밥벌이라도 하려면 觀相이라도 배워보라 고 권했다.
김구는 ‘마의상서’라는 관상책을 구해 독학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연마한 그는 거울을 갖다 놓고 자신의 觀相을 보았다.
가난과 살인, 풍파, 불안, 비명횡사할 액운이 다 끼어 있었다.
최악의 觀相 이었다."내 觀相이 이 모양인데 누구의 觀相을 본단 말인가!"
때마침 탄식하던 김구의 눈에 책의 마지막 구절이 들어 왔다.
얼굴 잘 생긴 觀相은 몸이 튼튼한 身相만 못하고, 몸이 좋은 身相은
마음씨 좋은 心相만 못하다.
얼굴보다 마음 가짐이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옳거니''
김구는 무릎을 쳤다.
용기를 얻은 그는 책을 덮고 어떻게 하면 좋은 心相을 만들지를 생각했다.
그는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위해 헌신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훗날 상해임시정부를 이끄는 민족지도자가 되었다.
이책을 쓴 마의선인이 길을 걷다가 나무하러 가는 머슴을 만났다.
그의 觀相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의선인은 머슴에게
“얼마 안 가서 죽을 運命이니 너무 무리 하게 일하지 말게.” 라고 일렀다.
그 말을 들은 머슴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 때 나무껍질이 계곡물에 떠내려왔다.
머슴은 나무 껍질 위에서 개미떼들이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고는 측은한 생각에 나무껍질을 건져 개미들을 살려 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그 머슴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 서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善行이 그의 관상과 운명까지 바꾼 것이다. 머슴에게서 개미 이야기를 들은 마의선인은 크게 깨닫고는 마의상서에 글을 남겼다.
김구가 읽은 마지막 장의 "心相"이 그 대목이다. 사람들은 턱을 깎고 새 눈썹을 만드는 성형으로 자기 얼굴을 바꿀 수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진면목은 마음에서 나온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얼굴을 가지려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
심성이 착하고 남을 돕고 배려하면 얼굴이 부드럽게 변하기 때문이다.
중국 당나라에
배도라는 사람이 있었다.길에서 유명한 관상가를 만난 그는 자기 관상을 한 번 봐달라고 청했다.
관상가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하기 민망스럽지 만 당신은 빌어먹을 상이오." 관상가의 말을 들은 배도는 타고난 운명을 어쩔 수 없다면 남에게 좋은 일이라도 하고 죽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선행을 베풀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배도는 길에서 그 관상가를 다시 만났다. 관상가는 배도를 찬찬히 살피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오. 당신의 상이 바뀌었소. 당신은 이제 정승이 될상이오
실제로 배도는 훗날 벼슬길에 올라 정승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성대중이 쓴
'청성잡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의 관상을 보는 것보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낫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이 낫고,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것이 낫다.
얼굴보다 말을, 말보다 행동, 행동보다는 마음을 보라는 당부이다.
좋은 마음이 좋은 얼굴을 만든다.
반면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사악한 인상으로 바뀔 것이다 즉 모두 좋은 마음으로 서로서로 돕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좋은 운이 우리에게 온다는 뜻입니다.
한 주 첫날 오늘도
좋은 마음으로 많이 웃고 행복하이소!
https://youtu.be/zBFF3uoU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