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11
포즈가 곧 생각이다
너 어디 아파?
왜 오늘 뭔 일이 있어?
얼굴 표정을 보며 그 사람의 상황을 묻는다.
포즈가 곧 의미, 생각이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날의 풀과 햇살 눈부신 날의 풀의 표정이 다르고, 아침의 표정과 저녁의 표정이 다르다. 이처럼 대상은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포즈가 다르다.
같은 대상도 아침과 저녁에 달리 보이고, 비 오는 날과 햇볕 창창한 날이 다르게 보인다.
시 창작은 이러한 대상의 포즈에 담겨있는 삶의 내용을 읽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 포즈 속에 어떤 삶의 모습이 담겨있을까 하고 대상의 비밀을 훔쳐보는 것이고, 훔쳐낸 내용을 소문내는 일이다.
훔쳐보는 것이 재미있고 훔쳐본다는 것은 호기심과 궁금증의 동의어다.
이 호기심과 궁금증이 문예창작의 매력이다. 그 속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야말로 생산자와 수요자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역사는 알고 보면 호기심의 역사이고, 소문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시인은 분명 대상objet이 지닌 삶의 비밀을 캐어 소문내는 불량한(?) 사람이 아닌가?
포즈에 대한 통찰을 위해서는 나타리 골드버그처럼 뼈 속까지 내려가서 써야 하고, 쌩땍쥐베리처럼 사물을 바라볼 때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제대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겉모습보다는 본질을 바라보는 통찰과 의미있는 관계 맺기, 고정적인 관념을 해체하며 새로운 상상력으로 안내하는 눈이 있을 때 비로소 믿을 수 있는 소문이 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정직한 상상력이 시작된다.
개연꽃 개두릅 개살구 개복숭아 개별꽃 개머루 개부처손...
참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닌 질이 떨어지는 보잘 것 없거나 변변치 못한 '개' 라는 접두사
참꽃과 개꽃은 진달래와 철쭉의 속명, 식용의 꽃을 중시했던 조상님 지혜라 치더라도, 나름으로 손색없이 한 인물 하는데도 부당하게 디스 당하는 개싸리 개쓴풀 개여뀌꽃 개쑥부쟁이처럼, 아름답기가 주객전도 되어 수모를 겪는 개별꽃 개연꽃처럼, 아침마당 휴먼다큐 방송 후 산속의 귀하신 몸 개두릅 개살구 개복숭아처럼 '개'도 도리를 다하면 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개부처손처럼, 잠자리 사나워 꿈 뒤숭숭해 울적한 아침, ‘개꿈인 걸’ 위안하면 하루가 만사형통처럼 .......이름 때문에 자존감 떨어지는 시대, 접두사 '개'를 깨끗이 떼어 주리? 가장 너이면서 가장 네가 아닌 것처럼. - 박효숙 <접두사 ‘개’>
개빡쳐, 개쩔어, 개삐짐, 개바빠, 개짱나, 개무시, 개웃겨, 개울컥, 개꿀잼, 개신나, 개시원, 개간지, 개구라, 개관대, 개절규, 개깜짝, 개피곤, 개슬퍼, 개우울, 개드립, 개이득, 개싫어, 개부럽, 개고생, 개여신, 개쪽......
무릇 접두사 ‘개’의 본분은 원형보다 못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해왔거늘 요즘 세태에 들어 그 ‘개’의 역할이 무한도전이다. 대략 부정이나 미완성의 임무를 고수하더니만 돌연, 변이를 일으켜 긍정을 넘어 강조의 의미까지 가뿐하게 국어 영역을 개편 했으렷다. 또한 기존의 명사류에 붙어 기식하던 습성에 이어 동사 형용사 까지 아우르며 우후죽순 신조어를 방출하고 있으니 아마 학자들도 국어사전에 등재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가늠하는 사이 개좋아! 또 하나 뚝딱 입에 걸린다
이만하면 ‘만능 접두사 개’ 라고 칭하면 딱 제격이겠다.
완죤, 개판이다. - 주명숙 <신개념 접두사 ‘개’>전문
포즈는 겉모습이면서 겉모습이 아니고, 가시적이면서 불가시적이고 외연이면서 내포가 된다.
이 두 편의 시는 ‘개’라는 접두사 갖는 포즈 즉, 시간성과 공간성에 주목하여 새태에 대한 의미읽기를 하고 있다. 박효숙 시인은 이전의 접두사 ‘개’에 대한 의미탐색으로, 주명숙 시인은 신개념 접두사 ‘개’에 대한 의미읽기로 세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있는 접두사 ‘개’에 담겨있는 호기심, 궁금증을 훔쳐 보여주고 있어 재미도 있다. 소통은 서로 다른 구성원이 서로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서로에게 녹아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포즈의 의미읽기를 잘 하라
일상성에 주목하는 시, 생활에 밀착하면서도 소통과 공감에 주력하는 시,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을 내면화하여 구체적인 실감을 전달하는 시, 타인의 삶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도 함께 곁들여진 시
완성도와 새로움, 진지하면서도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을 써기 위해서는 포즈에 안겨있는 삶의 의미를 해독하는 힘이 있어야한다.
포즈에 안겨있는 의미를 훔쳐보되 누구도 그렇게는 보지 않았던 내용을 훔쳐 보여줘야 한다.
화가 뒤샹은 변기를 미술관으로 옮겨두고 <샘>이라고 했다. 이는 그 당시로는 파격적이지만 그것은 이성과 권위를 중시했던 모더니즘의 가치를 부정하는 새로운 행위미술을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뒤샹의 생각을 훔쳐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본다’는 개념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는 만큼 본다’는 뜻이다. 그냥 육체적인 눈으로 보이는 일차적인 의미보다는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뭘 본다는 걸까? 그것은 대상이나 현상 속에 안겨있는 삶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복어탕을 먹는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복어는 독 있는 고기다. 그래서 복어탕을 먹는다는 것은 결국 독는 먹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수들은 적당히 독맛을 즐길 줄을 안다. 복어탕의 고수들이 적당히 복어의 독을 즐기듯이 진정한 삶의 고수들은 삶의 고통과 비애를 즐길 수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대상과 현상의 의미를 풀어헤쳐 새롭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어둠’과 ‘빈집’이라는 말의 포즈에 담긴 의미를 훔쳐 새롭게 보여주는 다음의 시들은 어떤가.
어둠 /이상국 - 나무를 베어내면 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
빈집 /정일근 - 비어있는 집이 아니라, 집에 사람이 혼자일 때 빈집이 된다
세상을 훔쳐보자
훔쳐서 보여주자
그러면 시인도 독자도 다 같이 훔쳐보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