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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꿈[3권] / 이원호 77

작성자黎明 김형수|작성시간10.11.11|조회수185 목록 댓글 0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 새어나온 소문은 없습니까?"
   "많습니다. 전쟁이 터진다는 소문도‥‥‥‥
   고명곤이 김한을 바라보며 웃었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는 미국과 일본 정보원들이 공조 체제를
형성하고 있지요. 가끔 중국이 그들에게 협조해줄 때도 있습니다. "
   김한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북한은 아직 서로를 확실하
게 믿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시내로 진입한 차는 속력을 줄이더니
무수한 자전거 행렬을 따라 천천히 달려나갔다.
   "처음 보는 자입니다. "
   겐지가 탁자 위에 놓은 사진을 손끝으로 짚으며 말했다.
   "아마 본부에서 새로 부임한 자 같은데요"
   그는 손끝으로 공항에서 고명곤과 같이 나오는 김한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다. 다케다가 가는 눈을 더
욱 좁히더니 사진을 보았다.
   "요즘 한국 정보원이 배나 늘어났어. 미국측도 경계하고 있다. "
   "북한도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어제는 잉종진이 단동에 다녀왔
습니다. "
   "감시를 강화하는 수밖에."
   허리를 편 다케다가 벽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반이었다. 김한
이 도착한 지 3시간 만이다.
"이쪽으로"
숙소의 됫문을 나온 고명곤이 어둠에 덮인 골목길을 앞장섰다.
밤 10시 반이다. 골목길은 보안등도 켜있지 않아서 어두운데다 지
린내와 썩는 냄새까지 났다. 그런데도 고명곤은 익숙하게 샛길로
이리저리 빠져나가더니 마침내 찻소리가 들리는 지점에서 섰다.
   "우리 숙소는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지요 일본과 미국, 그리고
중국측 정보원들이 숙소 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
    그가 어둠 속에서 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이 차라리 편합니다. 이렇게 빠져 나오면 오히려 개운해지
니까요"
   도로를 나온 그들은 곧 택시를 잡아 시내를 달렸다. 그들이 시
내의 허름한 빌딩 앞에 도착했을 때는 1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행을 염려한 고명곤이 두 번이나 택시를 갈아타고는 멀찍이 내
려 골목길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빌딩의 됫문은 열려 있었는데 그
들이 들어서자 사내 하나가 어둠 속에서 나오더니 아무 말 없이
앞장을 섰다. 사내는 불도 켜있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 복도 끝쪽
의 방을 가리켰다.
   "저 방이요.
   한국말이었다. 조선족이나 북한인일 것이다. 방으로 다가선 고
명곤이 마악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었을 때 문이 열리면서 불
이 쏟아졌다.
   "들어오시오.
   임종진이었다. 그는 힐끗 김한을 보았지만 아는 체도 하지 않
았다. 방은 테이블 하나에 철제 의자가 여러 개 둘러 놓여진 것이
회사의 회의실같이 보였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임종진이 가라앉
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 단동을 거쳐 김성용이 보낸 대남 담당 부장 한동규가 옵
니다. 김성용의 심복이고 대남 사업의 실무자지."
   그의 시선이 김한에게로 옮겨졌다.
   "현역 소장이고 내 직속상관이야. 그자는 네 얼굴을 알고 있으
니 정보원 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
   "그럼 우리도 실무자가 내일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명곤이 말했다. 그는 상황이 급진전되자 홍분한 듯 상기되어
있었다. 머리를 』1덕인 임종진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대공실장 윤재성 씨가 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
   "내일 아침에 북한대사관의 강 참사관한테 연락하면 실무자 회
담을 하자고 할 겁니다. "
   "북쪽에서 어떤 제안을 할지를 알고 있습니까? 대책을 세우려
고 하는데."
   "그건 나도 모릅니다. "
    머리를 저은 임종진이 길게 숨을 뱉었다.
   "나는 한동규의 밀입국을 도우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이오」 그래
서 어제 단동에 가서 준비를 하고 왔습니다. "
    임종진의 시선이 김한에게로 돌려졌다.
    "네가 나흘 전인 3월 8일에 도착했다는 소문은 일본 정보원으
로부터 나왔다. 한국 국정원 요원 하나가 입국했다고"
    "잘 맞췄군."
    "내가 감찰을 받고있어."
    상반신을 테이블 위로 굽힌 임종진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널 보자고 한 거야."
    긴장한 김한과 고명곤의 시선을 받은 그가 말을 이었다.
   "국가안전보위부의 비밀 감찰반이야. 그자들은 당 조직 지도부
의 특명을 받고 왔는데 배후에는 김성용이 있어."
   "이유는 뭐야?"
   "첫째는 내가 숙청당한 이봉남의 직계라는 것이고"
   시선을 든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뉴욕의 최연철이가 제놈이 살려고 나를 모략했어. 그놈도 나와
같은 이봉남의 직계였거든."
   "내가 해줄 일이 있나?"
   "감찰반장 배태성은 나와 같은 현역 대좌다. 치밀하고 독한 놈
이어서 놈의 표적이 되고 나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그 놈을 사
고사로 처리해줘.
   "역시 살인이군."
   김한이 쓴웃음을 지었으나 임종진은 정색했다.
   "절박하다. 놈은 조복성에게 바짝 접근해 있어. 언제 조복성의
약점이 드러날지 모른다. "
   다음날 밤 10시가 되었을 때 베이징 번화가의 한 곳인 시단의
8층 빌딩 안에서 남북간 비밀 회담이 열렸다. 5층 사무실 안의 원
탁에는 네 사내가 둘러앉아 있었는데 한국측은 윤재성과 안병선
이었고 북한측은 한동규와 그의 보좌관인 오기문이다. 대남 담당
부장 한동규는 이제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인물이었다. 임종진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한국측에서 그런 인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현역 인민군 소장인 한동규는 김성용과는 대조적으로 체격이
육중한데다 다부진 인상이었다. 나이는 50대 후반쯤으로 보여졌
다. 한동규가 넥타이를 당겨 느슨하게 풀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갑세다. 윤 선생."
   테이블 위에 서류를 편 그가 둥근 얼굴을 더 넓히며 웃었다.
   "미국놈들이 평양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걸 보자니 밥맛이 안
납네다. "
   그 시간에 비밀감찰반의 배태성 대좌는 외성의 천단 공원 근처에
있는 자은 3층 건물 지하실에서 조복성과 마주앉아 있었다. 넓은 지
하실에 켜져 있는 전구는 한 개뿐이어서 구석 쪽은 어두웠다. 그러
나 전구 바로 밑에 앉은 조복성의 전신은 환하게 드러났다.
   "조 소좌, 정직하게 대면 용서한다. 내가 그딴한 권한은 있다. "
   배태성이 조복성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40대 중반쯤의 그는 비
밀 감찰반에서만 10년 가람게 근무해오면서 직접 체포한 대좌급
이상 간부만 해도 20명이 넘는다고 자랑해왔다. 그래서 한때 몰락
했던 김성용의 추종 세력을 잡아넣기도 했다가 지금은 이봉남의
세력이 잡혀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시에만 충실하고 빈틈
없는 그는 실세들이 바뀌어도 계속 활용되는 것이다. 배태성이 검
은 얼굴을 조복성에게 바짝 붙였다. 늘어진 눈시울 사이로 눈이
번들거렸다.
   "네 동생 조만성 대위는 너한테서 2만 불을 받았다고 자백했어,
자, 그 돈을 누구한테서 받았는지만 대면 내가 네 책임은 묻지 않
겠다. "
   "활동비를 모은 겁니다. "
   눈을 치켜 뜬 조복성이 잇새로 말했지만 곧 얼굴의 근육이 풀
려졌다. 벌써 세 시간째였고 배태성의 부하들로부터 무수하게 주
먹과 발길질을 당한 몸은 허물어지는 중이었다.
   "조장한테 물어보십시요. 미국에서 귀국할 적에 남은 활동비를
조원들이 모두 나눠가졌습니다. "
   "네 조원들한테 확인했다. 1인당 2천 불 정도였다던데 너는 2만
불이나 되었어. 그 돈은 모두 임 대좌가 주었단 말이"
   "2천 불은 나눠가졌고 나머지는 외국 생활 동안 모은 겁니다. "
   그 순간 배태성의 주먹이 날아 조복성의 턱을 쳤다. 뼈가 부딪
치는 소리와 함께 조복성이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네놈이 2만 불을 쥐고 있었다면 임종진이는 그 몇 배를 갖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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