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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하늘이여 땅이여 [2권] 29.30. - 끝 -|

작성자黎明 김형수|작성시간11.04.05|조회수145 목록 댓글 0

29.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합수머리의 강물은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오랜만에 낚싯

대를 드리운 사도광탄은 한들거리는 찌를 바라보며 모처럼 평
화를 맛보았다. 이지영은 찌개를 끓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네, 제천에 내려온 지 열흘이나 되도록 연락조차 않다니 섭
섭하네.
기거할 데부터 마련하느라 그랬네.
그래, 과수원 움막이 내 집보다 편하단 말이지.
때로는.
제기랄, 집사람이 끓일 땐 쉬워 보이더니 이것도 품이 많이
드는데.
재미인지 불평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지영을 보자 옛
날의 어느 한때가 떠올랐다.
지영과 선주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한탄강으로 야유회
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모두 즐겁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
들었다. 선주가 끓인 찌개를 지영이 덜어내다 뜨거워 쏟아버렸
던 일, 맨발로 놀다 유리 조각에 찔린 선주를 등에 업고 오던 기
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의 등에 업히면 결혼해야 한대.
이 한마디에 힘든 줄도 모르고 버스 안까지 선주를 업고 갔던
기억이 떠올라 사도광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도
그런 그림 같은 시절이 있었던가.
찌개가 맛있게 끓었다.
한잔해.
이지영은 소주병을 기울여 술을 따랐다. 말없는 가운데 몇 번
잔이 오고 갔다.
선주 말이야
무척 불행했던가 봐.
유학 가서 결혼한 미국인 교수가 좋지 못했던 모양이야 지금
은 이혼하고 혼자 지낸다더군.
그만하게.
사도광탄은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지영은 기어코 한마디
를 더 했다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모양이야. 기댈 데도, 위로받을
사람도 없는 그 낯선 나라에서 가톨릭에 의지해서 살았나
봐. 자살 기도를 했을 때도 신부와 수녀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더
군.
성모 마리 아가 고맙군.
이해할 수 없네. 그토록 기독교를 매도하던 자네가 마리아에
게 고맙다니.
나는 기독교의 그 오만하고 독선적인 해석과 타종교와 문화
에 대한무조건적 부정과 공격성을 탓할 뿐이야.특히 기독교에
기생하여 권력과 부를 누리며 민족 문화를 마구 짓밟는 자들을
경고하는 거지. 올바른 기독교에 대해서는 나도 무척 존경하고
있네. 그래서 나는 교황청에 그 올바른 기독교의 모습을 드러내
라는 의미에서 마리아의 예언을 공개하라고 촉구하는 거네.
이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두 사람은 낚싯대를 거두었다 술병도 비
어 있었다 이지영은 과수원 앞에서 사도광탄을 내려주었다.
식사는 집에 와서 하게.
생각나면 가지 .
자동차가 떠나자 사도광탄은 낚시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사과나무 사이로 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이 흥겨웠
다. 하늘에는 어느새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사람들이 미 친다고:
문득 수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그녀에
게는 저 보름달조차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주어야 받아들이겠지.
'미국의 과학자들이 보름달이 뜨는 밤에 범죄가 발생하는 빈
도를 조사했더니 평일보다 훨씬 많다는 통계를 얻었다더라 '
까다로운 녀석 , 그러나 귀여운 녀석 .
사도광탄은 소리내어 웃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다면 녀
석처럼 밝은 성격일까. 사도광탄은 인서라는 이름을 떠올려보았
다. 갑자기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꼭 지어주고 싶었던 이름이 있었다. 인서(仁恕)였
다 동양 유교 정신의 핵인 인(仁)과 서양 기독교 정신의 핵인
서(恕)의 두 자를 합한 이름. 그럼 사도인서가 되는가? 그는 허
허롭게 웃었다 그 아이에게 어질게 용서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타고 향긋한 내음이 코에 스며들었다
보름달은 등뒤에 떠 있었다. 서늘한 달빛 속에 생겨난 자신의 그
림자를 밟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낭당 고개를 넘
어가던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돌을 하나 주우라 했다.
소원을 빌면서 던지거라.
이제는 가고 없는 시절이다. 상실한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풍
습도 없어졌다. 서낭당도, 던지던 돌도 이제는 모두 없어져버렸
다. 서낭당이 마귀라고. 제사 빼고 굿 빼고 산신령 빼고, 마귀란
것들 다 빼고 나면 한국 문화는 뭐가 남는가
사도광탄은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서낭당 대신 사과나무 위
로 돌멩이를 던졌다. 달빛을 받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돌
멩이를 보는 사도광탄의 시선에 외로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30.나는 시간 속 어디에 있는가
사도광탄은 보름달에 비치는 그림자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을
보았다. 긴 그림자였다
사도광탄은 직감적으로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도
괌탄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림자 역시 멈추었다
사도광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짐작대로 창백한 얼굴빛을
한 기디온이 서 있었다.
사도광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차가운 달빛이 얼굴
에 쏟아져내렸다. 사도광탄은 눈에 힘을 모아 별을 찾으려 했다
어린 시절 하늘을 보면 언제나 찾아지던 그 별들이 오늘 밤은 좀
처럼 보이지 않았다.
엄마, 사람은 죽으면 뭐가 돼?
죽으면 별이 되지 .
별?~
그래, 저 어두운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는 거야.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다. 농사는 늘 시원치 않았고 뭐든지 뜻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자연이 있었다.
삶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짓누를 때 사도광탄은 늘 강으로
나갔다 거기엔 바람이 있었고 물결이 있었다. 낚싯대를 던지고
한없이 출렁이는 물결을 보면서 사도광탄은 세상을 생각하곤
했다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도광탄을 기디온
은 두려움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디온은 망설였다. 한 번도 자
신이 행하는 이 일에 회의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엔 달랐다 이건 아니었다. 이 사람은 감히 자신이 심판할 상대
가 아니었다. 그러나
장례식은 초라했다. 상여는 합수머리 강변을 따라 주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지영과 서 원장, 조 교수, 그리고 변 교수만
이 상여 뒤를 따랐다.
사도광탄을 떠나보낸 뒤 쓸쓸한 심정으로 돌아온 이지영은 사
도광탄의 거처였던 움막을 찾았다. 편지 한 통이 남아 있었다.
수아에 게
언젠가 너는 내가 누구인지 물었었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려 한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대학에 들어
가기 전까지는 그냥 평범한 시골 아이에 불과했지 가난했던 아버님
은 그래도 외아들인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대학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여유 있고 길이 있어 보이는
학우들 사이에서 나의 모습은 아마 초라하고 왜소해 보였겠지. 허약
한 촌뜨기. 그러나 나는 자신이 있었어. 내 인생을 내 손으로 개척한
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은 독재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이 대단했
단다 학교는 공부보다는 투쟁의 장소였지. 그러나 나는 데모에 나서
지 않았다. 나는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완전하게 세상을 보는
통일된 시각을 갓고 싶었다. .
학우들이 끌려가는 것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웠고 지금 하고 있는
이 공부가 과연 옳은가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나는 묵묵히 책을 읽
었다
사회과학, 철학,인문학,문학,물리학 수학 생화학 천문학,심지
어는 관상학과 방중술까지도 당시의 내게는 모두가 우선적으로 싸워
야 할 대상이었다. 물론 종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힌두교, 녈교. 조로
아스터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스정진, 유교, 도교 하나하나의 종
교에 나는 사제보다도 더 심취했단다.
그러기를3년. 나는 드디어 책을 던져버렸다 마침내 세상이 보이
기 시작했고, 어느 교수에게서도 더 이상 깊이를 느낄 수 없었다. 수
입한 사상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사색이 없이 일차원에 머무르는
그들이 답답하게 보이기만 했다
나는 그후로 사색을 시작했단다. 이 세상에 운위되고 있는 모든 개
념과 원리를 나는 철저하게 의심하고 덤벼들었다. 가령 모두가 나쁘
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나쁜가. 강도. 절도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살인조차도 내 사색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어떤 살인은 극악이지만 어떤 살인은 찬양받지. 나는 결국 이 세살
에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단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에 의해 한계 지워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소유자라는
결론은 나를 슬프게 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면 도대체 어떤 것을
의미 있다 하고 어떤 것을 무의미하다 할 것인가
나는 파계승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허무주의에 빠져
되는 대로 살다가 군에 입대했다 거기에서 광주사태를 맞은 나는 전
부대원이 집결했을 때 홀로 단상에 올라가 군부 독재를 규탄했지 . 그
것은 사회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보다는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라는 존재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생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그런 혹독한 고문조차 조롱했
다 나는 내 육체를 끝없이 학대함으로써 이 세상에 보복하고 싶었으
니까.
나는 죽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 결국 나는 정신
병 자로 석 방되 었지
아. 참으로 인간은 이상한 존재이다. 그때 나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인간의 길 위에 있는 또 하나의 길 고문과 패락이 전혀 다를
게 없는 경지 어쩌면 그 경지에 다다를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광
석화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후 나는 산으로 들어갔단다. 혼자 산속에서 끝없는 정신의 경지
를 구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정신적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란 진정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무 위에는
성실한 인간의 조화로운 평화가 있었고. 그 위에는 자연과 통하는 길
이 있었다
어느 늦은 봄날. 개나리 꽃잎이 떨어지면서 내게 '내년에 또 올게
요. 세상은 아름다웠어요' 하는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나는 혼
신의 기를 모아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명상에 들어갔다. 시 간
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나는 온갖 단계를 겪으며 결국은 마지
막 경 지에 올라섰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최고의 깨달음 직전에는 반드시 머리에 마
(畿)가 침입한다는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단다. 깨달음의 막바지에서
모든 기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허할 대로 허해져 있을
때. 마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형 태로 침입하는 법인 것을
이미 모든 정신력이 진리의 피안에 가 있던 나였기에 정신의 어느
한 편을 타고 들어오는 마를 방어할 수 없었다. 필경에 최고의 경지
에 도달했다는 기억만을 가진 채 나는 미 쳐버리고 말았지 .
당시 나는 최고의 희열과 최고의 공포 속을 헤치고 지나가다 어느
순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일단 그
단계에 올라서면 뒤돌아설 수가 없다. 그래서 절반의 절대자란 없고
오직 광인이 있을 따름이란다.
마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기운
이란다. 흔히 십마(漣)라고 하는데 평소에 이것은 본능에 가려 있
기도 하고. 수많은 종류의 관념들이 머리에 존재하고 있는 탓에 별로
느껴지지 않지. 그러나 어떤 생각에 깊이 몰두하여 기가 몹시 허해졌
을 때 인간의 육체적 힘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에 침입하는 것이 곧 마
란다
아무튼 이후 나를 보호한 것은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였다. 인간
은 기가 뭉쳐진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난 땅과 일체이다 그
가파른 구도의 길에서 절대자로 나아가기 직전 실패한 나를 이 땅은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마침내 어머니인 이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제야 이 땅과
이 땅의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구나 애정을 갖고 바라본 이 땅
의 역사와 문화는 참으로 가슴 아팠단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후 한반도를 살피니 기는 꽉 막혀 있고 민
족 문화는 피폐해져 있었다. 다행히 21세기에는 천기가 되돌아오는
형세라 나는 그 단초를 기다렸다.
중앙청 석주가 드러나고 일본에 있는 토우가 힘을 발하면서 겨레
의 운명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으나, 하늘은 우리에게 숙제를 내주
었다 지금 우리 겨레에게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단다.
수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역사를 찻는 일이다. 인간
은 결코 혼자의 힘만으로는 완전해지지 않아. 개인의 행복이란 것도
결국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 찾아진다는 것을 잘 알겠지 . 그래서 나는
단군을 찾아나선 것이다.
이제 그 일이 너에 게로, 아니 이 땅의 모든 젊은이에 게로 넘어갔구
나. 비운의 세기를 당하여 잃어버렸던 겨레의 시조 단군을 되 찻는 날
천기는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수아야, 놀라지 마라
네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때쯤이면 나는 이 세상사람이 아닐 것이
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민족, 이 땅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깊은 사색 끝에 나는 이 길을 택하기로 했다
피해갈 수도 있는 길이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작정이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라
내 죽음은 이 겨레의 앞날에 음넉이 될 것이다
잘 있거라 비록 몸은 헤어지 지만 정신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이제 나는 이 땅을 살다 간 모든 혼백들과 함께 영개에서 너희 젊
은이들을 지켜보고 있을 작정이 란다
안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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