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무(105)
"영감은 어쩌다 도토리를 대장으로 모시게 됐소?"
안 됐다는 얼굴로 유몽을 보던 광치는 만두를 입안으로 가져가며 물
었다. 자신이 보기엔 유몽은 남 밑에 있을 정도로 약한 자가 아니었
다.
"내가 주공을 만났을 때 무공이 없었다면 믿겠는가?"
"설마……."
"맞네. 어검(御劒)을 얻으려다 실패해서 주화입마에 들었거든."
"그랬구려. 하기야 남 내공 풀어주는 데 대장을 따라 갈 사람이 없
지요."
"내가 주공을 따르는 건 그 뿐만이 아닐세……."
유몽은 말끝을 흐렸다. 백산에게 상상도 못할 도움을 받았지만, 단
지 그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적으로 그가 좋아서 따르는 것이다.
"다 그렇지요. 대장 사모도, 구양중도, 나도……. 하여간 대장에게
는 뭔가 있기는 있는가 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은 광치는 자리에서 일어났
다. 점심 준비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만두 속은 형님이 준비하십시오. 가능하면 쌍칼 녀석에게 무공도
좀 가르쳐 주시고요."
"끄응! 이 검이 어떤 검인데……."
물끄러미 철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이라 하였던 광치
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비록 청부업자를 했지만 명검을 보
면 침을 흘리고, 만져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는 검수인 것만은 분명
하다.
그런데 철류는 평생을 들었던 몽류를 잊게 만들 정도로 명검이었다.
그런 검을 얻었는데 고작 한다는 짓이 수박을 자르고 만두 속에 넣을
고기를 다지는 일이라니. 기가 막혔다.
유몽이 자신의 검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그 순간, 각 건물 중앙
에 마련된 비무대에서는 두 사람의 비무가 시작되고 있었다.
중앙에 자리한 원형 비무대는 지름이 삼십 장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비무대 가운데서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하고 있는 자들은 천붕회의
도파룡(刀破龍) 팽진원(彭眞元)과 산동악가 출신인 뇌륜창(雷輪槍) 악
우뢰(岳宇雷)였다.
"산동악가가 북황련 오대가문으로 승격된 모양이군. 하지만 어쩌나,
나를 이겨야 그 자리가 빛날 터인데."
팽진원은 슬쩍 웃었다. 산동악가. 한때 산동성 패자로 군림했던 적
이 있었다. 하지만 절대삼창이라 불렸던 이들이 악가를 배신하면서 만
씨세가에게 그 자리를 빼앗겨 이 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랬던 그들이 만씨세가의 몰락으로 다시 전면으로 나서고 있는 것
이다.
"원래 악가자리였으니까 별반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난 신진십
룡을 상대로 여긴 적도 없다는 사실도 알아두어라, 팽진원!"
뇌륜창을 들고 있는 악우뢰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물밀 듯이 흘러
나오기 시작하였다. 푸른 기운을 머금은 그것은 뇌기(雷氣)였다.
그의 무공인 뇌우벽력심법(雷雨霹靂心法)을 운기하고 있다는 의미였
다.
"그런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악우뢰. 난 그들과 같이 신진십룡
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십정칠사 조차도 눈 아래 두었던 나란 말이
다."
하북팽가 오대신도의 하나인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를 뽑아 가슴
앞에 세우며 팽진원은 차갑게 말했다.
일순 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노을처럼 퍼지며 주변을 잠식해 나갔
다.
"한천팽무도법(恨天彭武刀法)이다!"
비무대를 주시하던 누군가가 나지막이 외쳤다. 일순 중인들의 눈은
일말의 기대감으로 빛났다.
한천팽무도법은 혈우창궁검법이나 금황파천신공 등, 귀마겁 때 등장
했던 몇 가지 무공들과 함께 무공 서열 삼 위에 올라있는 대단한 무공
이기 때문이었다.
"쩝! 한천팽무도법이 이렇게 유명해 질 것 같았으면 좀 그럴싸한 이
름으로 짓는 건데."
중인들 틈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붕회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하던 백산이었다.
사부는 자신이 만든 도법이라며 이름도 없는 책자를 툭 던져 주었었
다. 사부의 이름을 따서 대충 지었던 이름이 한천팽무도법이었는데 사
람들의 입에 이렇게 오르내릴 줄은 생각지 못했다.
"헛! 귀광두(龜狂頭)다!"
백산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무인 한 명이 화들짝 소리를 질렀다.
일순 백산 주변에 있던 이들이 한 걸음씩 물러나며 둥글게 공터를 만
들어놓았다.
"정말, 저 사람이 귀광두 맞아. 십정의 일인이었던 모주앙을 이겼다
고 하드만. 너무 어린 것 같은데?"
귓속말로 속삭이듯 하는 말이었지만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무인들은
그 소리를 들었고, 의문스런 눈으로 백산을 훑어보기 바빴다.
"내가 귀광두 맞아 임마. 그리고 나와 싸움을 해서 깨진 놈은 모주
앙만 있는 게 아냐."
"그럼 다른 사람이 또 있단 말이오?"
"물론이지. 나와 싸움을 했던 놈들은 무수히 많은데, 그중 유명한
놈들은 가만있어라……."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중인들은 백산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
다. 혈마총 사건 때부터 입 소문으로 간간이 오르내리는 귀광두에 대
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맞다, 지저사령계에서는 나철이 있었고, 위하에서는 만우순과 만철
이 있었다. 그 놈들과 싸움을 했는데 말이야, 특히 만철 그놈은……."
백산의 말이 계속될수록 의아한 표정을 짓던 무인들이 그럼 그렇지 하
는 얼굴로 일제히 몸을 돌렸다.
"내 말 안 듣는 거냐? 야, 새끼들아……!"
냅다 고함을 질렀으나 몸을 돌려버린 무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
다. 오히려 비무 구경에 방해된다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나철은 소림의 요정대사를 공격하다가 당했다고 알고 있소이다. 그
리고 산동만씨세가 인물들은 남천벌에 의해 죽었다고 하드만. 쯧! 이
름을 날려보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오늘 비무를 할 테니까 실력이 드러나겠지 뭐."
"니미럴 자식들, 그러니까 평생 이런 데서 남들 싸우는 것 구경이나
하고 자빠졌는 거야 새끼들아!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자네가 소림사 속가제자만 아니었다면 벌써 한두 군데는 부러졌을
거네.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가게."
누군가가 낮게 으르렁댔다.
"알았어 새끼들아."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변하자 백산은 재빨리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
다.
"추접스런 놈들,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할 거 아
냐.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건데……."
연신 투덜거리며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한 백산은 거칠게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 서서 평생을 구경해봐라. 그런다고 무공이 늘 것 같아? 에라
병신들아. 몸으로 익히는 게 무공이지 눈으로 익히는 거라면 고수 아
닌 놈이 어딨냐? 눈으론 뭘 못하냐. 심검도 펼칠 수 있는 게 눈이다
병신들아……."
저 멀리 비무장을 쳐다보며 연신 투덜거리던 백산은 문득 뒤통수가
따끔대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안에 있던 모든 사람
들이 기이한 얼굴로 이편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제?"
의아한 얼굴로 무광은 물었다. 비무 시작 전 찾을 때는 코빼기도 보
이지 않던 사람이 이제야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라니.
"아 글쎄, 저기 있는 무림인 놈들 말입니다. 내가 만철이 놈을
……."
침을 튀기며 백산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만철과 만우
순을 자신이 없앴다는 말을 최대한 강조하며.
그러나,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백산을 빤히
쳐다보더니 비무장을 향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젠장, 정말 미치겠네. 누님 말 좀 해주시오! 그 마른 장작처럼 생
긴 장마란 놈을 없앨 때는 누님도 보지 않았습니까?"
"지금 중요한 건 비무일세. 자네의 무용담이 아니란 말이네."
보다못한 팽월은 잔뜩 굳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중요는 개뿔이……. 한 오일 정도 누워있으면 되는데."
"그건 무슨 소리냐?"
느닷없는 백산의 말에 남궁미령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실력 면으로 보면 팽진원의 상
대인 악우뢰가 조금 앞섰다. 그는 창(槍)의 마지막 경지라는 환영창의
경지에 근접해 있었던 것이었다.
한천팽무도법이 아니었다면 팽진원은 벌써 당했을 것임에 분명했다.
"발자국이 깊잖아요. 힘이 딸린다는 거지 뭐. 어이구 마지막이네.
어이, 무검 너 이리 와 봐!"
흘끗 비무대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던 백산은 고개를 돌려 무검을 불
렀다. 그러자 한쪽에서 비무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무검이 흠칫 고개
를 돌렸다.
과앙!
"이런!"
순간 거친 폭음과 소리와 함께 팽월의 입에서 안타까운 소리가 터졌
다. 악우뢰와 팽진원의 신형이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알고 있었으면서 놀라긴. 뭐해 임마! 이리 와보라니까."
"왜!"
엉거주춤 무검은 백산 곁으로 다가왔다.
휙!
무검을 향해 씨익 웃은 백산은 느닷없이 그의 손목으로 손을 뻗었
다.
"헉!"
나직한 신음도 한순간, 무검은 얼굴을 굳히며 재빨리 손목을 틀어
피했다. 날카로운 기운이 그의 맥문을 스쳐지나가고 백산의 손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흥!"
백산의 의도를 눈치챈 무검은 나직하니 코웃음을 치며, 수세에서 공
세로 전환했다. 일순 그의 손이 기이한 변화를 보이고, 푸른 광채의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팔소금나수(十八小擒拿手)!"
무검의 손에서 발생하는 푸른 기운을 쳐다보던 남궁미령이 낮게 소
리쳤다. 금나수란 상대의 맥문을 움켜쥐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무
공을 말한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견해일 뿐 무당의 십팔소금나수는
맥문을 움켜쥐는 단순한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십팔소금나수는 부드러움의 극의(極意)라 통칭되는 무당면장(武當綿
掌)과 금나수를 합쳐진 무공이기 때문이다.
즉 무검이 펼치는 십팔소금나수는 자칫 잘못하면 상대의 내부를 파
괴시킬 수 있는 잔인한 무공인 것이다.
손자를 보러 나간 팽월을 제외한 일행은 밖의 상황조차 잊고 두 사
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십팔소금나수를 펼치는 무
검의 손이 백산의 손을 온통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검은 백산을 제압하지 못했다.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백산의 손은 무검의 공격을 피하는 것
이었다.
"아-!"
수십 번을 오가던 두 사람의 손놀림은 무검의 신음으로 끝이 났다.
푸른 잔상을 남기던 광채가 사라지자 맥문을 제압 당한 무검의 손이
일행의 눈앞에 드러났다.
씨익!
"허미, 뭔 남자가 피부가 이리 곱냐. 한번 더!"
무검의 눈을 주시하며 미소를 흘린 백산은 그의 손을 놓아줌과 동시
에 공격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