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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광풍무

광풍무(112)

작성자하얀산|작성시간26.06.20|조회수31 목록 댓글 7

광풍무(112) 

 

소리 없이 다가오다(3) 

 

짐짓 싫은 척 콧잔등을 찡그리던 백산은 이불을 확 걷어내며 호탕하게 소리쳤다.

“싫으면 안 가도 돼요.”

서늘한 기운이 등을 스치자 설련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야말로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린 것이었다.

“뭐해? 내가 저번에 선물 사준다고 했잖아. 이번에 근사한 걸로 하나 장만해 줄……. 예쁘네.”

미끈하게 빠진 허리 아래로 폭발적으로 솟구친 둔부의 모습에 백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단순히 얼굴만 예쁘다고 해서 화봉(花鳳)이라 칭한 것은 아닌 듯했다. 
폭발적인 염기를 뿌려대는 그녀의 몸매는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끄응! 이래서 예쁜 여자하고 사는 놈들이 빨리 죽는 거야. 미인박명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백산은 설련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고 있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너부러진 옷가지를 허공섭물로 끌어당겨 설련 앞으로 내밀었다.

“나 눈감고 있을 테니까 빨리 입어.”

“훗! 눈뜨면 알죠!”

문득 백산의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설련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동작은 빨랐다. 백산의 품에서 떨어져 나온 그녀는 혹여 백산이 눈을 뜰 세라 서둘러 옷을 걸쳤다.

“됐어요.”

“돌아서!”

“알았습니다, 공자님.”

여전히 미소 띤 채 몸을 돌린 설련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줄을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이거, 요대가 아니었나 봐요.”

“그거? 광혈지옥비 대용으로 써먹으려고 새로 만든 거야. 그런 대로 쓸만해.”

옷을 걸친 백산은 마안철겸을 끌어당겨 허리에 감으며 말했다.

잠시 후.
이층 창문을 통해 나온 두 사람은 공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쯧쯧! 도토리 같은 넘. 대장 사모는 눈이 삐었지. 저런 인간이 어디가 좋다고……. 전음을 보내게 냅두지 형님은 왜 말렸소!”

공현으로 떠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차던 광치는 유몽을 돌아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주공 성질을 몰라서 그래? 동네 사람들 보는 데서 나를 줘 팬 사람이야. 다 동생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

“누가 도토리에게 전음을 보낸다고 했습니까. 대장 사모께 보내려고 했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유몽은 황당한 얼굴로 광치를 보았다. 그가 전음을 보낸다고 했을 때 극구 말렸다. 공연히 나서서 좋은 분위기마저 깰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백산이 아닌 설련에게 전음을 보내려고 했다니.

“무슨 말은. 그냥 따먹어도 된다고,  아니 덮쳐서 끝장내버리라고 하려고 했지. 젠장, 말해놓고 보니 이상하네. 안 하길 잘했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광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탁자로 돌아가 앉았다.

“별수 없이 합궁약을 구해와야겠어.”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있던 광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합궁약이란 하낙에서만 통하는 춘약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치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걸레야!”

“왜 그러쇼?”

전전으로 오는 중이었던지 걸레는 바로 대꾸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대장을 뒤따라 간 놈은?”

“남천벌 놈들 열 명 정도요. 따라 갈 거요?”

“뭐 남는 게 있다고 따라가냐. 이 기회에 대장도 대장사모한테 점수 좀 따라고……. 씨팔, 이것도 말이 안 되네.”

광치는 또 욕설을 뱉어냈다. 백산이 설련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설련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 그인 것이다.

“다른 게 아니고 접붙이는 약이나 좀 구해와라.”

“그걸 어디에 쓰려고 그러시오?”

걸레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하낙에 있을 때야 돈을 벌기 위해 종종 팔곤 했지만, 지금 있는 곳은 숭산 준극봉 동굴 속.
쓸려야 쓸 데가 없는 게 춘약이다.

“도토리 접붙일 때 쓰려고 그런다. 네가 알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센 걸로 구해와. 한번 붙으면 안 떨어질 정도로 강한 걸로.”

“구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난 뒷감당 할 자신 없소. 파는 곳을 가르쳐줄 테니까 광 두목이 직접 구하시오.”

춘약의 쓰임새를 알아차린 걸레는 한 걸음 물러나며 손사래를 쳤다. 춘약을 은밀하게 사용한다 하더라도 금방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더구나 상대는 감당하기도 힘든 고수.
좋은 일인 건 분명한데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대장 장가보내는 일인데 협조 못하겠다 이 말이지. 넌 대장만 겁나고 대장 사모는 겁나지 않은 모양이지? 어차피 둘은 같이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지. 그리고 미인 친구는 전부 미인이란 말도 있고.”

“가장 강한 거라고 했소?”

광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걸레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미인 친구라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수들. 대장 사모가 친구가 어디 있냐, 자식들아. 혈혈단신 혼잔데.”

콧구멍을 후비며 광치는 빙긋 웃었다.

“근데 정말 안 따라 갈 텐가?”

곁에 있던 유몽이 연신 창 너머를 흘끔대며 말했다.

“따라가고 싶어도 어색해 할까봐 안가는 것 아뇨. 오늘은 그냥 둡시다. 그나저나 대장에게 돈이나 있는지 모르겠네.”

“맞다, 주공은 거진데!”

돈이란 소리에 유몽은 앓는 듯 소리를 질렀다. 지금껏 돈 관리는 자신이 해왔기에 백산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돈 한푼도 없는 거지가 선물을 사주겠다며 호기스럽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걱정 마시오, 형님. 대장 사모에게 돈 좀 있을 거요.”

“어이그, 이러니 장가를 못 갔지. 자네 같으면 돈 꿔달라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광치를 보며 눈을 흘긴 유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은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돈을 가져다 줘야 할 것 같았다.


유몽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공현을 향해 몸을 날리던 백산은 잔득 구겨진 얼굴로 투덜대고 있었다.

‘니미럴, 완전히 거지새끼 아냐 이거.’

전전(錢錢)을 떠난 지 벌써 반 시진, 천천히 왔다고 하지만 절반 이상 왔다.
선물을 사준다며 큰소리치고 데려 왔는데 거지라니. 
슬쩍 시선을 돌려 설련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면사조차 쓰지 않는 설련의 얼굴은 새벽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선물을 사준다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 저기서 조금만 쉬었다 가자.”

백산은 잡고 있는 설련의 손을 끌어당겼다.

“피곤하세요?”

“아니 피곤하기보다는 새벽 공기가 너무 좋아서 그렇지, 뭐.”

웃음으로 얼버무린 백산은 길가 한켠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걸음을 옮겼다.

“맞아요. 매일 마시는 공기가 이렇게 상쾌했는지는 몰랐어요.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단풍도 너무 예쁘고.”

“끄응!”

콧노래까지 부르는 설련의 모습에 백산은 나직하니 신음을 뱉어내고 말았다. 실은 돌아가자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설련의 모습을 보니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몸이 안 좋은가 봐요. 그냥 돌아가요. 시장에 가봐야 볼 것도 없을 텐데.”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백산의 모습에 설련은 놀란 얼굴로 다가오며 말했다. 먹지도 못하는 술을 잔뜩 먹은 사람인데 공연히 끌고 나왔다 싶었다.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하-아!”

“그런데 왜 한 숨을…….”

“아이고, 또 울려고 한다. 내가 한 숨을 쉬는 건……. 미치겠네 이거. 돈, 돈이 없어서 그런다고. 이제 됐냐!”

“네에?”

설련은 뜨악한 얼굴로 백산을 보았다. 그가 그런 사정으로 한숨을 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내 얼굴 표정을 바꾼 설련은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나중에 갚아야 해요.”

“쩝! 이럼 선물을 사줘봐야 의미가 없잖아. 남자는 역시 돈이 많아야 할까 봐.” 

주머니를 받아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바보 같아요.”

“맞아, 돈이 없으면 남자는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아니다, 어쩌면  돈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주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백산은 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이편을 향하는 살기가 느껴졌던 탓이었다.

“돌아가 있을래?”

백산은 짐짓 태연스레 말을 던졌다. 조금 전 콧노래까지 불렀던 그녀에게 피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설련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를 어찌할 수 없는 무림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혼자 두기 싫었다. 짐이 되지만 않는다면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일단 얼굴부터 가려라. 혹시 북황련 패거리를 만나면 안되니까.”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설련은 면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설련이 얼굴을 가리자 그녀의 손을 잡은 백산은 살기가 풍겨 나오는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킬!”

살기를 근원지에 도착한 백산은 비릿하게 웃었다. 금(琴)을 안고 있는 사내를 중심으로 십여 명의 무인들이 이편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칠지금마(七指琴魔) 양호상(梁湖上)과 파음살객(破音殺客)이에요. 양호상은 양천리의 아버지고요.]

설련은 조용히 전음을 보냈다. 칠지금마(七指琴魔) 양호상(梁湖上). 남벌황(南伐皇) 남효운(南孝雲)과 비무에서 반 초 차이로 져 남천벌 이인자로 머물러 있지만, 그건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얼마나 발전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열 명으로 구성된 파음살객(破音殺客). 그들은 전부가 종(鐘)을 무기로 사용한다. 세 자 크기에 달하는 범종부터 시작하여, 손바닥만한 작은 종을 무기로 사용하는 그들은 삼현마금과 함께 천음양씨세가의 이대병기라 불리고 있다.
그들이 백산을 노리고 따라온 것이었다.

“비무라고 해서 목숨을 살려 주었더니 잘못했군. 아예 목을 따버리는 건데.”

“그래야 했다, 단전을 파괴시켜 무공을 파훼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여주는 게 나았단 말이다, 놈.”

양호상의 얼굴에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 무인에게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 있다면 무공이 파훼된 상태로 살아 남는 것이다.
마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환자처럼 무공을 잃은 무인은 평생을 절망 속에 살아야 한다.
천음양씨세가의 최고 기재인 큰아들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남천벌 차기 벌주로 만들어, 이루지 못했던 꿈을 녀석을 통해 실현하고 싶었다.
그랬던 자식이 폐인이 되고 말았다.
눈앞에서.

“남천벌이라고 해서 다를지 알았더니……. 비무 결과에 대해선 승복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이걸 알아야 한다. 결과에 대한 승복은 정당한 비무라는 단서가 붙는다. 네 놈은 마지막 일장(一掌)을 날리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비명을 지르며 비무대 밖으로 날아가는 아들을 향해 놈은 마지막 일장을 뻗어냈다.
이긴 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단전을 파괴시켜버린 것이다.

“웃긴 놈이군. 그럼 한가지만 묻자. 그때 내가 양천리를 죽였다면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냐? 아니겠지, 이번엔 양씨세가의 대를 끊어 놓은 놈이라며 복수하려 들었겠지. 어쩌고저쩌고 해봐야 네 놈들이 하는 짓은 같아.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 했을 거란 말이야. 다만 그 핑계가 다를 뿐이지.”

백산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가진 놈들의 특성이다. 머리위로 올라서는 꼴을 보지 못한다. 
겉으로는 정당함과 명예를 부르짖으며, 보이지 않는 데서는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만철이 놈이 그러더구나. 그게 힘이라고, 그게 세력이라고. 하지만 네 놈들은 알아야한다. 너희들이 말하는 그 힘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그리고 나를 건들면 반드시 지불해야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너희들 목 위에 달고 있는 거다. 이 귀광두의 목숨을 노리는 놈들은 목을 반드시 지불해야 한단 말이다!”

“건방진 놈! 목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 목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말이다. 죽여라!”

양호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에 시립해 있던 파음살객들이 몸을 날려 반원을 그렸다.

그리고.
찰칵!

백산의 허리춤에서는 나직한 소리와 함께 마안철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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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덕산 | 작성시간 26.06.20 잘 보고 갑니다.
  • 작성자둘리둘리 | 작성시간 26.06.20 잘 보고 갑니다 ㅎㅎ
  • 작성자장백 | 작성시간 26.06.21 감사합니다.
  • 작성자천고마비 | 작성시간 26.06.21 감사합니다!!!
  • 작성자어른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히 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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