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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광풍무

광풍무(114)

작성자하얀산|작성시간26.06.22|조회수38 목록 댓글 8

광풍무(114) 

 

백랑(2) 

 

[내 허리를 붙잡아라. 절대 떨어지지 말고.]

[알았어요.]

백산이 만든 붉은 막을 홀린 듯 쳐다보던 설련은 그의 허리를 껴안으며 몸을 밀착시켰다. 그가 떠나라고 했을 때 전전으로 돌아갈 걸 괜스레 고집을 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방해가 된 것 같아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공격하라!”

비릿한 미소를 짓던 양호상은 수하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놈의 몸이 금강불괴지신이란 말을 들었고, 칠사 정도는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음합파혼진은 자신도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절대의 진이다. 몸뚱이가 아닌 머릿속에 충격을 주는 게 음공이기에.

데엥! 뎅! 뎅뎅뎅!

양호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크기의 범종부터 시작해 각각의 종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대단하군.”

놀란 눈으로 백산은 전면을 쳐다보았다. 마치 파도치는 바다를 보는 듯했다. 열 가지에 달하는 각각의 소리가 서로 공명하여 하나로 합쳐지더니 거대한 파동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이 아니었다. 활짝 개방된 상단전에서 전면 대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반원으로 늘어선 자들의 종에서 흘러나온 음파는 강기처럼 펼쳐진 둥근 막을 향해 무자비하게 돌진해 들어왔다.

[음파가 집중되는 곳을 피해 움직이세요. 우선은 허공으로.]

매미처럼 붙어있던 설련은 백산에게 전음을 보냈다. 음파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전면에서 다가오는 기운은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알았다고.]

“이야합!”

고개를 끄덕인 백산은 낮게 고함을 지르며 허공으로 몸을 뽑았다.

“어림없다 놈! 음파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오 장 거리만 유지된다면 네 놈은 언제나 표적이 된다. 절음(絶音)을 펼쳐라!”

뎅! 뎅뎅! 뎅뎅뎅!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백산을 향한 음파는 더욱 강해졌다. 처음처럼 길다랗게 이어진 모양이 아니었다. 각각의 음파가 끊어진 채 백산의 전면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흑설난무(黑雪亂舞)!”

홍수처럼 밀려드는 음파를 향해 백산의 일갈이 터졌다. 그 순간, 악마의 눈처럼 검은 광채를 뿌리던 마안철겸이 전면 공간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마안철겸이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 검은 광채를 남겼고, 그 면적은 점점 넓어졌다. 마치 허공에 검은 먹물을 뿌려놓은 듯 백산 주변은 검게 변했다.
그리고, 검은 광채는 조금씩 파음살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파음살객 또한 만만치 않았다. 백산이 전면으로 다가선 만큼 뒤로 물러나며 각자의 종을 흔들었다.

천음양씨세가 음공의 삼 초인 사음(死音)이었다.
일순 그들의 주변은 온통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음파에 노출된 여린 풀잎들은 검게 변해 녹아 없어졌고,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순식간에 이파리를 떨궜다.
마치 심검을 이용하여 독공을 펼치는 것 같았다.

“흑무폭풍(黑舞暴風)!”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함께 마안철겸은 더욱 가공할 속도로 움직였다. 백산과 설련의 몸을 감아 돌고 있었으나 잔상만 보일 뿐 마안철겸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마안철겸이 지나갔다는 유일한 흔적은 허공 중에 남아 있는 기다란 선이었다.

“허억!”

음합파혼진 가운데 있던 자가 경악한 얼굴로 신음을 내뱉었다.
열 명의 파음살객이 펼치는 파음은 이미 심검(心劒)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음파에 죽음의 기운을 실었고, 상대는 물러서야 한다.
그런데 놈은 더욱 견고한 막을 구축하며 전면으로 다가오고 있다.
놀란 사람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음합파혼진과 같이 움직이는 양호상 또한 놀란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과거 만우순이 사용했던 은영마삭과 비슷한 무기가 저런 엄청난 광경을 만들어 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저럴 수가…….”

조그마한 장신구가 움직이는 모습을 살피던 양호상은 찢어질 듯 눈을 치떴다. 단순하게 휘두르고 있는 줄 알았던 장신구에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
그것은 글자였다. 허공에 활(活)자를 끊임없이 새기고 있는 것이었다. 수많은 활자들이 모여 거대한 크기의 글자를 형성하는데 그 또한 활(活)자였다.
놈 역시 글자를 이용하여 심검(心劒)을 펼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무공이.”

양호상은 넋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글자를 이용하여 생(生)의 기운을 만들어 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음합파혼진에 의해 생성된 죽음의 기운마저 소멸시키다니.

‘하지만 네 놈도 인간일 터, 열 명의 내공과 음파가 합쳐진 무음엔 어쩔 수 없으리라.’

두 주먹을 불끈 틀어쥔 양호상은 빠르게 물러나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무음(無音)을 펼쳐라!”

무음(無音). 천음양씨세가의 최고 음공이자, 최고 살상력을 지닌 무공. 파혼살객의 능력으로는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지금 상태로 방치하면 결국 파혼살객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호상은 아들인 양천리의 말을 떠올렸어야 했다.
칠사의 일인인 환객(幻客) 자군(紫君)을 비롯한 영향조를 없앤 자가 귀광두라 하였던 말을 기억했어야 했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열 개의 종에선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소리 없이 퍼져나가는 음파에 주변의 나무와 바위들이 가루로 흩어졌다.
활(活)자를 형성하고 있던 검은 기운이 점차 엷어지자 양호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놈! 무음만큼은 막아내지…… 허억!”

띠리링!

안고 있던 쇄혼마금(鎖魂魔琴)을 떨어뜨리며 양호상은 비명을 내질렀다. 허공에 새겨졌던 활자가 사라짐과 동시에 귀광두의 모습도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놈의 흔적은 남았다. 활자를 새기던 자그마한 낫이 끌려가듯 뒤따라가는 모습은 선명하게 보였다.
순간적으로 눈을 감고 말았는데 귓전으로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악!”

“아악!”

단 일수, 길게 호선을 그린 마안철겸은 열 명에 달하는 파음살객의 허리를 잘라 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나도 궁금해, 저 무공이 무엇인지 말이야.”

“웬……. 커억!”

귓전에 흘러드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던 양호상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뚝뚝 핏물을 흘리고 있는 검 끝이 눈에 잡혔다.

“염라대왕께서 묻거든 살황(殺皇)이 보냈다고 해라.”

속삭이듯 말한 유몽은 철류(鐵流)를 사정없이 당겨버렸다.

털썩!

“개시군!”

검면을 타고 또르르 흘러가는 핏방울을 보며 유몽은 낮게 중얼거렸다.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파음살객의 죽음만 아니었다면, 월영은둔술을 극성으로 익힌 유몽이라지만 단 일 초만에 양호상을 없애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천벌 이인자인 양호상은 무공조차 펼쳐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살수, 네가 웬일이냐?”

“저야 주공이 계신 곳에는 어디든지 있지 않습니까.”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철류를 보며 유몽은 뿌듯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보면 볼수록 명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간밤에도 있었겠네?”

“당연하지 않습니까. 종복의 임무가 뭡니까. 주공의 근처에 적이 얼씬하지 못하도록 해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봤을 땐 분명 주공께서 주모를 덮쳤습니다. 반항하는, 아니 싫다는 주모를 덮친 건 분명……, 허걱!”

유몽은 화들짝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내가 어린애냐? 네가 나보다 무공이 강해?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임마. 날 지킬 시간 있으면 무공이나 더 익혀, 새캬!”

퍽! 퍼억! 퍽퍽퍽!

백산의 주먹이 유몽의 전신으로 무차별하게 떨어졌다. 유몽은 반항하지 않았다. 이미 맞을 걸 각오하고 꺼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심 터지는 욕설은 어쩌지 못했다.

‘광치 이 나쁜 놈. 내 이래서 안 한다고 했는데.’

조금 전 꺼낸 말은 순전히 광치와 걸레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백산에게 알려서 이 기회에 확실하게 두 사람을 엮어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참혹했다.
타혈법을 가장한 백산의 구타는 설련이 말리고 나서서야 겨우 끝이 났다.

“주공 여기 돈 가져왔습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유몽은 백산 앞으로 주머니를 내밀었다.

“돈? 내가 돈 필요한 건 또 어떻게 알았냐?”

“남자가 목에 힘을 주려면 잘생긴 세숫대야보다는 돈이 필요한 법이지요. 가셔서 주모 맛있는 것 많이 사주고 오십시오. 전 그만.”

또 주먹이 날아올까 봐 유몽은 재빨리 몸을 뺐다. 그러나 기우였을까. 백산의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주먹 대신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는 놈들 전부 땅속에 묻어. 흔적도 전부 지우고.”

“그냥 독천비로 전부 녹여버리면.”

[독천비도 내공으로 써야하는 거야 임마. 그리고 사람은 있을 때 아껴야 하는 거고.]

멀리서 들려오는 전음에 유몽은 확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이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몸 이곳저곳에서 고통을 호소했지만 점점 시원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타혈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뚫리지 않았던 세맥들이 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깨달음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였던 세맥타동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젠 주공도 방법이 없소이다. 처녀를 건들이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거요. 했던 안 했던 그건 문제가 아니라오. 어쩔 수 없이 주모를 데리고 살아야 한단 말이오. 그런데 보는 놈은 없겠지?”

혼잣말을 하던 유몽은 슬며시 주변을 살폈다.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장력을 발출해 구덩이를 파고 사방에 널린 시체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혼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유몽이 있는 곳에서 이백 여장 떨어진 봉우리 위, 흑의를 걸친 인물이 멀어지는 백산을 주시하고 있었다.

“갈수록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진 친구군. 귀광두라는 허울 속에 심검(心劒)을 숨겨 두고 있었다니.”

검붉은 기운을 뿌려대는 인물, 그는 고악상이 가주라 불렀던 뇌우(雷雨)였다.
놀라움을 웃음으로 대신하는 걸까. 심검을 터득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뇌우는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좌우간 재밌게 됐군. 무극계와 사령계 무인을 능가하는 무인을 보게 되다니. 천붕회의 승자는 그대로 결정되었군. 하지만 고생을 많이 해야 할 걸세. 남천벌이나 북황련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 그들에게서 살아 남아야만 날 만날 수 있네. 사령계의 지존이자 마신가(魔神家)의 가주인 이 뇌우를 말이네.”

나지막이 중얼거린 뇌우는 유몽이 시체를 묻고 주변 흔적을 지우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그마저 소림사 쪽으로 떠나가자 조용히 몸을 날려 싸움이 있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더니 유몽이 쇄혼마금을 묻었던 장소를 향해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이 금(琴)은 잘 쓰도록 하겠네. 아마 천붕회와 남천벌을 엮는 매개체로 사용될 걸세.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겠다, 귀광두여!”

금(琴)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짓던 뇌우는 공현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잠시 후, 뇌우의 신형은 소림사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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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적송 | 작성시간 26.06.22 new 즐독.. 감사
  • 작성자어른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히 잘 봅니다
  • 작성자둥굴둥굴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장백 | 작성시간 07:17 new 감사합니다.
  • 작성자요랑대로 | 작성시간 1시간 38분 전 new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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