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에고를 측정하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 우리의 에고에 상처를 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에고’이다. 누군가 우리의 에고에 상처를 주면 그는 에고이스트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에고를 만족시키면 그는 성자이고 겸손한 사람이다. 언제나 우리의 에고가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이 에고이스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에고이다.
우리가 진정한 무아無我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우리는 오직 정도나 등급의 개념을 통해 이해한다. 에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등급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이해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무아를 아는 것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삭티파트에서 매개체는 에고가 없어야egoless 한다. 사실, 이 ‘egoless’라는 단어는 옳지 않다. 매개체는 무아no-ego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명심하라, 그런 사람에게는 하루 24시간 내내 은총이 쏟아져 내린다. 그는 그대 또한 그 은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그 자신에게는 끊임없이 은총의 감로수가 쏟아져 내린다.
- 오쇼의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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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나라 작성시간 26.06.11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자아는 사라지고 어떤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없이 몰입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일에 빠져들어 완전히 몰입하여 만족한 상태가 되면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무아지경은 만족이 따라야 성립되는 것이기에.에고가 끼여든다면 그것은 무아지경이 성립될 조건부터 되지 않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무아지경의 희열을 느끼고자 한다면 먼저 나를 내려놓는 일이 우선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