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을 통해 본 창의적 연극 컨셉
-비유 담론의 유장함과 놀이 기호의 상상력
1. 낭송과 중첩, 융합의 상상력
전주시립예술단의 <심청>(이강백 작, 이수인 연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 24년 7월 5일-6일)은 비유 담론의 유장함과 놀이 기호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심청전 낭송, 서사 언어에 다채로운 선율의 옷이 입혀진다. 서사 풍경 사이로 고백과 서정이 스며든다. 평면적 보고 언어는 현장 연주 선율과 만나면서 입체적 상상 풍경을 빚어간다. 풍경 사물의 언어가 구음과 만나면서 감춰진 내면이 건드려진다. 고수와 음악 연주자들은 연극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지금 이곳의 현존과 그 경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연극은 속도의 미학이다. 차분하고 여린 호흡으로 다가가는 자가 있고 짧고 격렬한 호흡으로 맞받아치는 자가 있다. 달램과 아우름으로 부드럽게 다가가는 자가 있고, 극도의 원망과 애원 행동으로 받아치는 자가 있다. 연극은 호칭의 미학이다. ‘마마’ 호칭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자가 있고 ‘마마’ 호칭을 거부하며 반발하는 자가 있다. 상대를 ‘아가씨’라 부르며 지금 이곳 어그러진 현실로 대하는 자도 있다. ‘마마’ 호칭에 대한 사연은 과연 무얼까.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을까. 문제를 제기하라. 공연 초반 제기된 문제는 강렬한 관심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 연극은 알레고리 이야기의 연속이다. 간난을 제물 삼아 출항하려는 설득 전략, 이를 위해 다채로운 연극 놀이가 펼쳐진다. 이 연극은 정체성 회복을 향한 비유 질문을 담아내고 있다. 왕비 연극 놀이를 통해 왕비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심청 효녀 이야기 낭송을 통해 효녀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인당수 제물로 빠져 죽는 장면 낭송을 통해 희생과 대속자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름 쓰기 퍼포먼스를 통해 내 이름 고유의 현존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담론을 다루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제물로 팔려온 자의 운명, 효녀의 복을 누릴 수 있다니, 죽음 이후 영생을 누릴 수 있다니, 저들의 해석, 환상인가, 꿈인가. 왕비가 된다는 믿음, 정성 다하여 마마라 부르며 다가왔던 선주의 연극 놀이, 그 진심과 진정성은 믿을 만한가. “영생을 누리소서” 외치며 환상을 부추기며 다가오는 차남의 달콤한 회유 언어, 그게 메아리 되고 울림 되어 나의 귀에 맴돈다. 과연 이를 어찌해야 할까. 이를 향한 간난의 고백이 선율로 펼쳐진다.
연꽃 안에서 기다리지/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를/ 연꽃 안에서 /그 안은 거륜 같고 태양 같고/영롱하고 아름다워 /임금님 기다릴까/왕비 되어/평생복락 꿈꾸게 /연꽃 안에서/거친 바다와 깊은 심연과/황홀한 용궁 지나/내 맘 바다 끝/어디 일까 어디일까
연꽃 안으로 들려오는 영롱하고 아름다운 소리, 연꽃 타고 임금님 기다리는 대궐로 갈 수 있다니, 임금님 왕비 되어 평생 복락 누리는 열망, 꿈일까, 실제일까. 거친 바다와 깊은 심연만이 보이는 데 허황된 꿈은 아닐까. 심청 연극 놀이를 마주한 간난, 설렘과 기대, 의심과 머뭇거림을 오가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순결하고 청초한 음색 연출, 발랄함과 경쾌함이 우러나온다. 원망과 불평, 거친 말투의 겉모습과 달리 청순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니,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기대감을 유도한다.
이 작품에선 낭송 언어와 선율 언어가 중첩 교차한다. 중첩은 물리적 충돌을 거쳐 화학적 융합으로 발전한다. 충돌은 거리두기 관극을 유도한다. 융합은 공감 공명을 유도한다. 배우의 연극 놀이, 악사의 음악 놀이, 융합의 지점에서 절묘한 상상 우주가 펼쳐진다. 무대는 거친 파도와 싸우는 뱃사람들의 노래 풍경으로 채워진다.
2. 뒤집기 연극성, 대속의 아우라
연극의 매력은 뒤집기에 있다. 설득하는 자와 설득당하는 자의 관계가 뒤바뀐다. 제물을 죽여 바치려는 자가 제물을 보호하고 피신시키려는 자로 돌변한다. 제물을 회유하려는 자가 제물에게 용서를 비는 자로 돌변한다. 인당수 장면 낭송은 선주의 심경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다. 으르렁거리는 인당수 파도 장면 낭송, 죽음이 두려워 몸부림치는 자, 낭송이 끊기고 흐느낌은 울부짖음으로 이어진다. 선주의 마음이 흔들린다. 제물로 바쳐질 간난이 가엾게 보인다. 제물로 보이지 않고 나의 분신으로 보인다. 선주, 경리와 짝을 맺어 도망치길 권한다. 날이 밝기 전 도망칠 것을 촉구하는 자, 삶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하는가. 줄다리기 양상이 새롭게 펼쳐진다. 야반도주를 제안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 안타까움과 애절함, 스릴과 긴박 정서가 밀려온다.
인당수 낭송은 동시에 간난의 인물 변신, 간난의 새로운 깨달음을 유도한다. 간난은 이미 죽음의 공포를 초월한 상태다. 누군가를 향한 대속 제물의 삶이 바로 나의 선택, 나의 실존이다. 간난의 노래와 선율 연주가 진한 호소력을 발한다.
심청이 제물 되어 죽은 곳에서/나도 제물 되어 죽을 테요/심청이 두려워 떨던 곳에서/나도 두려워 떨고...... /심청이 웃으며 뛰어 내린 곳에서....../나도 웃으며 뛰어 내리겠소.
뱃사람들의 구원을 향해 거룩한 산 제물의 길로 나아가려는 자, 큰 우주를 품는 자, 왕비의 삶을 살게 한 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한 고수에게 감사 인사를 나누는 자, 거룩과 여유, 넉넉함이 밀려온다. 관객은 대속과 거룩의 아우라에 젖는다.
3. 본질 바라보기, 거리두기에서 깨닫기로
연극은 본질을 보는 자와 본질을 보지 못하는 자, 그 대조와 교차를 통해 다채로운 심미성과 상상 파장을 유도한다. 새벽닭 알리는 보고 언어, 약속된 디데이 시점, 간난을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며 기세등등하게 등장하는 자들(고조영, 이병옥, 이건일 분)의 어그러짐이 과장되어 연출된다. 선주 자리 물려받기, 자기 성취에 도취된 자들의 천박함이 흰옷으로 갈아입은 간난의 의연함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구원을 모르는 자들의 눈빛과 구원을 터득한 자의 시선이 교차한다.
작품은 죽음에 대한 담론 안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죽어가는 선주의 모습으로 공연은 끝을 맺는다. 평정을 잃은 자, 불안 초조를 감추지 못한 자, 선주 스스로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거리두기 관극, 객관적 바라보기와 인식하기가 시작된다. 나도 죽음 앞에서 저처럼 허우적거릴까. 아니면 간난처럼 의연해 할까. 나의 마지막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언어를 모르는 자에서 제 이름 문자를 쓸 줄 아는 자로의 거듭남, 당당히 자신만의 의미 깊은 죽음을 선택하는 자의 의연함이 연출된다. 이에 반해 선주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회유 전략에 몰두하는 자들, 과연 어떤 게 본질일까. 공연장 문을 열고 나오는 관객, 외로운 산책자에서 진지한 철학적 자기 탐색의 여정을 걷기 시작한다.
이 연극에선 감출 것을 드러내고 드러낼 것은 감춘다. 무대 풍경과 음악 화성의 조합 과정에서 음악적 요소가 충격과 위기 상황을 주도적으로 일깨워낸다. 무대 풍경과 스토리텔러의 메시지는 김은정 작곡의 참신한 현장 음악 선율과 뒤섞인다. 배우의 발성과 음악 선율은 동등한 비중과 무게로 만나고 충돌하면서 예측불허의 긴장과 상상을 유도한다. 뱃사람들의 소요 사태, 위기가 조성되는 급박한 포구 상황, 선율과 타악이 보고 언어보다 반 박자 앞서가면서 방해물 상황 창출을 주도해나간다. 무대 뒤편에 시립교향악단, 합창단, 국악단의 연주와 지휘자의 지휘 풍경이 선주와 자식들의 뱃노래 퍼포먼스를 입체화시켜 나간다. 연희자와 듣는 자의 경계가 무너진다. 빈 무대가 배우들의 춤과 노래, 악사들의 연희로 꽉 채워진다. 악사와 배우의 신명난 기호 놀이가 심란해진 선주의 마음을 위로한다. 축 쳐질 뻔한 무대는 또 다시 역동의 활력을 되찾는다.
죽음 담론은 무거움과 지루함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루하지 않다. 늘 쉼이 있고 즐거움과 활력이 넘친다. 재치 넘치는 익살과 능청 놀이 덕분이다. 제물 회유 전략으로 다채로운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펼쳐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삶의 담론이 시작된다. 고조영, 이병옥, 이건일의 판소리 연주 연희가 유장함과 질펀함을 자아낸다. 미운 자식들을 낭패케 한 선주와 고수의 공모 전략 역시 고소함과 우월적 해방 쾌감을 선사한다. 안세형과 안대원의 시선과 호흡 플레이가 빛을 발한다.
4. 낭송의 유장함, 소리의 선율의 아우라
안세형의 정제된 몸말 언어와 노련한 공간 장악력이 공연 전체를 안정되게 끌고 간다. 망원 시선과 현미경 시선의 넘나들기, 부분을 전체로 조망하고 전체를 부분으로 반응하기를 통해 선주라는 직업적 가슴앓이에서 본질적 공감자로의 변신 여정이 펼쳐진다. 특별히 인당수 낭송 장면을 통해 제물을 바치는 자로서의 바라보기와 반응하기, 제물인 상대의 마음과 하나 되기 여정, 영의 호흡과 혼의 떨림이 몸의 호흡과 떨림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안세형의 창의적인 낭송 화법을 통해 인생 본질을 관조하는 새 모습을 발견한다.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는 자, 제물 여인의 아픔을 느끼기 시작한다. 극도의 고뇌와 아픔이 무감정 언어 음색으로 펼쳐진다. 낭송 호흡의 중단과 끊김, 흐느낌이 끼어들어 관객 역시 숨을 멈추며 그 지순한 합일 여정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한 인간의 현존을 볼 줄 아는 자로의 변신 여정, 간난을 살리려는 인간적 몸부림, 다급함의 정서가 터져 나온다. 불규칙 호흡, 눈빛이 달라진다.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자로의 변신 여정이 펼쳐진다. 선주의 죽음 장면은 고난도의 연기를 요구한다. 죽음, 자신의 또 다른 분신, 그 죽음이 자신을 허공으로 떠밀어낸다는 이강백 특유의 기발한 발상, 비틀거림을 묘사하는 자에서 비틀거림 연기를 수행하는 자로의 넘나들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놀라운 배우의 힘, 그 농밀한 게스투스 우주를 만끽하게 했음은 안세형의 걸출한 몸말 언어 연출력에 기인한다.
간난 역을 담당한 조민지의 소리와 선율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수많은 비밀 영역을 건드려내고 들추어낸다. 공연 초반, 냉소와 앙칼진 몸말 언어가 강렬한 반동 에너지를 발한다. 억울하게 제물로 팔려온 자, 원망과 증오의 솟구침이 강렬한 연극성을 자아낸다. 극중 마당을 통해 모두를 아우르는 국모의 품격을 터득한 자, 자기 이름을 쓰고 말할 줄 알면서 천진한 어린애처럼 기뻐 뛰는 자, 인당수 죽음의 공포를 넘는 자, 이웃을,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 고유의 죽음을 선택하는 자, 닫힘에서 열림으로, 반발에서 부드러운 수용자로의 변신 여정이 펼쳐진다.
심청의 구원 정신을 알아가는 자, 인당수 심청의 영과 온전히 하나 되는 자, 꺾임과 발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조민지 선율 연기의 유장함, 그 심미적 아우라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구곡간장 아랫배의 공명과 떨림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자의 기쁨과 어린애 같은 천진함, 위로 받는 자에서 위로하는 자로의 변신, 이를 섬세하게 일깨워낸 조민지의 치열한 육체 언어 탐색 작업은 이 연극의 심미성과 품격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무대 우측 전면에 자리한 고수 역의 안대원, 그는 시종일관 인물의 등퇴장을 조율하고 간섭한다. 간난의 이름 쓰기 장면에선 무대 중앙으로 나와 소도구 배치 등 퍼포먼스 입체성을 유도한다. “마마, 퇴장이요!”, 애절함을 유도하는 노련하고 찰진 음색이 연출된다. “선주, 죽음이요!”, 선주에 의한 마마 연극 놀이가 종결된다. 제물 업무에 얽매인 옛사람의 여정은 끝났다. 본질 발견을 향한 새사람의 여정이 빈 공간과 정적을 통해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다.
재치와 익살이 넘쳐흐르는 심청전 낭송 놀이, 이를 통해 제물 담론을 삶의 본질 담론으로 전환, 조망케 했음은 이 작품의 기본 미덕에 속한다. ‘나는 누군가의 희생을 외면한 적은 없는가’.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한 적은 없는가’. ‘나는 누구인가’, 창의적 비유 기호와 선율의 통섭을 통해 사유의 밀도와 상상 아우라를 다채롭게 확장시켜 나갔음은 <심청> 연극의 최대 품격이자 매력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