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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먹물 오징어

작성자시인 정정훈|작성시간26.06.19|조회수5 목록 댓글 0

먹물 오징어 / 정정훈 시인

삶이 지치고 버겁게 어깨를 누르는 날,
낚시꾼은 통통선에 몸을 싣고
넘실대는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은빛 물결 사이로
작은 희망 하나 던져 놓고,
오징어가 좋아할 미끼로
조심스레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그러나 바다의 사냥꾼 또한 만만치 않다.
줄 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저항,
"내 목숨이 이 바늘 하나에 걸려 있구나."

필사의 몸부림 끝에
오징어는 마지막 무기를 꺼내 든다.
검은 먹물을 힘껏 뿜어내며
"내 먹물 맛 좀 보시오!" 하고 외친다.

먹물을 뒤집어쓴 낚시꾼은
웃음 섞인 탄성을 터뜨리고,
결국 승부는 그의 몫이 된다.

하지만 바다가 잠잠해진 뒤,
갑판 위에 홀로 선 사내의 마음엔
이긴 기쁨보다 더 깊은 적막이 남는다.

파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르고,
먹물 자국만 검게 번져 가는 저녁.

한 마리 오징어의 삶이 끝난 자리,
한 사람의 외로움은
끝내 바다에 닿지 못한 채
쓸쓸히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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