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7월3일 금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황금 같은 금요일 아침을 맞이하면서 주와 함께 힘 있는 출발을 기대 해 봅니다.
- 성도의 신앙생활은 항상 역경 속에 찬송으로 시작하면 범사에 형통한 복을 예약 받을 것입니다.
-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선과 의를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칭찬과 상급을 받는 생애를 만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점점 더운 날씨에 분주한 일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날수 있고, 불쾌지수가 높은 만큼 힘든 과정을 걸어갈 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여 감사와 찬송으로 이겨내면 모든 환경을 이기는 능력이 경험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시편137편 1-9절}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 제 목 ◑◑◑◑
◗◗ 바벨론 포로의 노래
◑◑◑ 본문 이해와 요약 ◑◑◑
◗137편에서는 어떤 한 시인이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슬프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 시인은 옛 예루살렘을 기억하면서 바벨론 강가에서 부르는 시온의 노래인데,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나라 잃은 백성의 한과 슬픔을 대변하여 줍니다.
-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향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큰 구원의 은혜와 영광에 대한 갈급함입니다.
- 그래서 구조면에서 1-3절까지는 시온을 그리워하고 슬픔으로 가슴 아파 우는 장면입니다.
- 그리고 4-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기억 해 달라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7-9절에서 포로 생활의 비통함과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으로 에돔과 바벨론에 대한 저주와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 이제 각 절에 대한 의미와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절에서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그리고 2절에서 죄는 모든 인생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모욕을 가져다줍니다.
- 또한 3,4절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성도가 모든 것을 얻습니다.
- 그리고 5,6절에서 순수한 신앙의 보존을 위해서는 확고한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 마지막 7-9절에서 원한에 찬 감정마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굳게 의뢰함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 결국 하나님의 뜻은 메데 바사 제국의 왕으로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새 통치자가 된 고래스에 의해 성취되었으며, 그는 바벨론을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포로 된 유다 백성들을 본국으로 귀환시켰으며,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을 재건하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시인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서 모진 고난과 수치를 당하면서도 지난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찬양대원으로 은혜를 누리고 악기를 불며,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습니다.
- 현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핍박하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조롱의 눈과 입으로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불러 보라고 강요당하는 것은 하나님 없는 그들 앞에 무시당하는 입장이라서 차라리 입과 손이 굳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 그럴지라도 자신의 상한 감정으로 노래하지만, 이 노래 소리에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역사하사 압제하는 바벨론을 멸망시킬 대적들이 반드시 일어나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것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 본시를 통하여 고난 중에 있는 형제들을 서로 이해하고 때가 되면 그들이 구원 될 것과 대적들이 파멸 될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우리는 모든 개인적인 원한이나 저주를 피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대한 소망과 승리의 확신을 잃지 말고 믿음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감사를 모르면 불행오고, 은혜를 은혜로 알면 복이 온다. (시편137편1-3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고 순종하면 복이 되지만, 감사를 모르고 불순종의 죄는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모욕의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 1절을 살펴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이스라엘 자손들 특히 찬양대가 여러 강변에 앉아서 옛날을 생각하며 애달프고 구슬프게 울었던 모습을 발견합니다.
- 여기서 그들이 시온을 기억하며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예루살렘과 성전의 처참한 파괴의 기억과 그 이전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은혜 속에 예배하던 기억이 서로 대비되면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비참한 치욕과 모욕의 처지에 대한 한이 섞인 슬픔과 애통함이 들어있습니다.
-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에서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여러 선지자가 그토록 목 놓아 외쳤건만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여 일이 이와 같은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자책과 자괴감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 2절을 보면 시인은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라고 하였고, 3절에서 바벨론 인들이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고 청한 것에 대한 강한 거절의 표현이었습니다.
- 여기서 수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사용하던 악기이며, 또한 시온의 노래란 레위 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지어서 불렀던 성가 대원들의 성가를 의미합니다.
- 이들이 이처럼 강한 노래 거부의 의사를 표현한 것은 하나님이 없는 바벨론 사람들이 조롱하면서 그들에게 요구했던 것이 매우 부끄러운 수치며, 크나큰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시인과 이스라엘 특히 레위인들이 왜 이런 모욕 가운데 놓이게 된 것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불순종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경책에도 불구하고 강퍅해져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여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들을 처참하게 징계하여 짓밟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었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정착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 또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벨론 전역으로 흩어져 거하게 되는 사상초유의 비극적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으니 그들의 완악함이 결국 이러한 치욕과 모욕적인 일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한 불순종의 죄는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모욕으로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 사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모든 역사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혜인지 깨달았던 적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오히려 그들은 주신 은혜를 짐으로 여기고 심지어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 그러나 정작 그 은혜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내어쫓기게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으며 그것을 소홀히 했고 경시했던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 이스라엘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통곡하는 처지에 놓이고서야 예루살렘의 가치, 그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온 민족이 모여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그 은혜의 가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 펜데믹 시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수많은 박해와 탄압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기쁨을 얻었으며, 그것을 은혜로 생각했습니다.
- 그러면서 늘 자유롭게 말씀을 듣고 가르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사모하였습니다.
- 그런데 불과 13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그토록 사모하고 소망했던 자유로운 신앙의 환경을 부여받았음에도 오히려 예배를 부담스러운 것으로, 의무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 그래서 조금만 예배가 길어지거나 찬양이 길어지면, 그마저도 참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신앙으로 전락 해 버렸던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나봅니다.
- 얼마나 비참한 일이며, 얼마나 비참한 신앙입니까? 그야말로 우리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고귀한 신앙을 소유했던 신앙 선배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축복 된 환경 속에서 오히려 가장 초라하고 형편없는 신앙을 연명하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지난날 자유롭게 교회에 출석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감은 아니었는지?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은 아니었는지?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몇 개월 지나면서 교회 출석해서 예배드림에 대한 은혜와 감사가 되고 나의 몸과 마음이 새롭게 와 닫고 있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고난 중에 찬양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무엇보다 감사를 모르면 불행이 오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면 축복이 옵니다.
- 지난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하여 교회 공적 모임을 금하고 영상 예배를 대처했던 어려운 현실을 경험한 우리가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이 은혜가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총인지 깨닫고 감사함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예배와 찬양 드리기에 힘씁시다.
-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서 빛과 소금의 선한 영향력 있는 교회 공동체를 섬겨나갑시다.
- 하박국3장2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베푸신 이러한 축복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치 못한 예배자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강변에서 울고 통곡했던 비참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다시금 성령과 진리의 예배, 온전하며 합당한 예배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지금은 신종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개인위생 관리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매 순간마다 성령님의 지키고 보호하심을 믿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거룩한 산예배자 되도록 힘쓰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