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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에스겔 28장1-10절

작성자김두옥|작성시간21.04.12|조회수1,220 목록 댓글 0

2021년 4월 12일 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어제는 4월 둘째주일에 안전하게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 은혜가 넘치며 신령한 복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 이제는 받은 복으로 한주간의 첫날 월요일부터 계속 승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방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기에 조금 더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인내하고 위생관리에 서로가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때로는 고통과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신뢰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겸손하게 말씀 순종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실하게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에스겔 28장1-10절 }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7. 그런즉 내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8.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

9.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

10. 네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다 하라

 

◑◑◑◑ 제 목 ◑◑◑◑

 

◗◗ 두로 왕의 멸망과 시돈에 대한 심판 예언

 

◑◑◑ 본문 이해와 요약 ◑◑◑

 

◗ 28장에서는 두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그 어떤 나라도 부러워할 물질적 풍요를 누렸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는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교만하여 은혜로 받은 풍요를 육신의 쾌락, 곧 죄악을 일삼는데 사용했습니다.

 

- 한편 두로가 그와 같은 죄악의 길을 걷도록 하는 데는 두로 왕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두로 왕을 두로 거민 가운데서도 특별히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 본장은 그 두로 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 이제 28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10절에서 두로왕에 대해 멸망이 선포되고 있는데, 두로 왕은 마음이 교만하여 스스로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고 하여 책망 받았습니다.

 

-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은을 곳간에 저축한 것으로 인해서 교만하여 하나님이 아니면서도 신인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아무리 지혜로워도 연약한 인간임을 알게 하기 위해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 그리고 11-19절에서 두로의 파멸의 원인을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완전한 인’이라는 말씀은 지혜와 아름다운 미가 풍성한 ‘완전한 표지’, 혹은 ‘완전한 전형’을 말씀합니다.

 

- 이와 같이 두로 왕은 지혜와 총명이 뛰어나 국제 무역을 통해서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얻었으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두로 왕은 지혜로 나라를 다스려 국민들로 하여금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통치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한편 20-23절에서 두로에 이어서 시돈의 멸망이 예언되고 있는데, 베니게의 옛 도시인 시돈은 주전 2천 년경에 가장 번창했습니다.

 

- 그러나 이들 역시, 팔레스틴의 작은 나라들의 운명처럼 앗수르의 산헤립의 침략과 바벨론, 바사에 의해 멸망을 당했으며, 이 도시는 희랍 제국 이후 어느 정도의 경제적 부요를 누리는 도시 국가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 24-26절에서 이스라엘의 징계에서 회복이 약속되고 있습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2절에서 자기를 정직하게 바로 아는 자는 결코 교만이란 죄악을 범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자신을 진정 높아지게 하는 비결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뿐입니다.

 

- 한편 3-5절에서 세속적 지혜만을 절대시한다면 결코 신령한 구원의 진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 그리고 진정한 복락을 누리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 한편 6-10절에서 참 지혜는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 그리고 8절에서 무엇이든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은 파멸의 수렁으로 내 모는 것이 됩니다.

 

- 한편 9절에서 장차 닥칠 죽음이란 숙명을 상기할 때 교만이 아닌 겸손을 붙들 수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은혜를 받은 자가 그 은혜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거두어 가시고 처음보다 더 심한 저주의 상태에 빠지도록 징벌하십니다.

 

- 따라서 우리는 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 밖에 있는 자들은 멸망시키시되 약속 안에 있는 자들은 징계하실지라도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굳게 믿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믿음은 겸손을 선호하는 지혜를 얻는다. ( 에스겔 28장 8,9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무엇이든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은 파멸의 수렁으로 내 모는 것이며, 장차 닥칠 죽음이란 숙명을 생각 할 때 교만이 아니라 겸손을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8,9절에서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먼저 8절을 보면 ‘구덩이’는 함정이나 무덤을 가리키고 있으며,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란 바다를 항해하다가 풍랑 등을 만나 배가 파선하는 바람에 죽은 자를 가리킵니다.

 

- 그리고 9절을 보면 두로 왕은 사람이요 신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 왕은 ‘나는 신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보좌에 앉았다고 하였습니다.

 

- 참으로 자기 본질과 분수를 모르는 교만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두로 왕도 감히 ‘나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시점이 이를 것입니다.

 

- 그는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님이 만천하에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할 때가 이를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그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그를 쳐서 죽일 때입니다.

 

- 두로에게 있어서 바다는 그들의 무덤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 절은 교만하여 바다 위에 앉았다고 말한 두로 왕을 그 바다 가운데서 죽게 하여 바다를 그의 무덤으로 삼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 이를 감안할 때 본문은 대단히 역설적이면서 명확한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그것은 두로 왕이 교만의 근거로 삼았던 바로 그 바다를 그의 파멸의 장소로 삼겠다는 말씀입니다.

 

- 두로 왕이 교만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지혜와 그로 인해 축적 된 재물은 그가 교만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 이 외에 두로가 바다 한 가운데 있었던 것도 그가 교만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 두로는 육지와 섬으로 구성된 도시 국가이며, 두로의 왕궁은 두로 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 이 두로 섬은 육지로부터 약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따라서 외부에서 이 두로 섬을 공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 두로 왕은 바로 두로가 위치한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하여 외부의 침공을 걱정하지 아니 하고 해상 무역을 통해 마음껏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결국 그로 말미암아 교만하여지게 되었습니다.

 

- 레위기 26장 19절에서 “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 이에 하나님께서는 두로 왕의 교만의 한 근거가 되었던 바로 그 바다를 그의 무덤으로 만들어 파멸의 자리로 삼으시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 다니엘 5장19-20절에서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라고 하였습니다.

 

-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교훈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교만케 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로 하여금 파멸을 당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심판하시되 그들이 교만하게 된 이유를 들어 그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 예를 들면 권력으로 인하여 교만해진 자는 권력으로 망하게 하고, 지혜로 인하여 교만해진 자는 그 지혜로 말미암아 파멸에 이르게 하며, 재물로 인하여 교만해진 자는 그 재물로 인하여 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으로 인하여 교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는 압살롬이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머리카락, 그의 교만의 이유가 된 머리카락으로 인해 전쟁 중 상수리나무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또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 도리어 율법주의와 배타적 선민의식으로 인해 교만에 사로잡히며 하나님께 불순종을 자행하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진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모습은 없는지? 나의 환경적 조건으로 만족하고 말씀의 가르침을 등한시 하는 일은 없는지? 교만함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며 심지어 배타적인 삶은 없는지? 무엇이든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그 결과는 무엇이며, 장차 닥칠 죽음이란 숙명을 생각 할 때 교만이 아니라 겸손 하겠는지? 성령님께서 오늘 하루 어떤 자세로 살아낼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무엇이든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은 파멸의 수렁으로 내 모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닥칠 죽음이란 숙명을 생각 할 때 교만이 아니라 겸손을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즉 믿음은 겸손을 선호하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 실로 우리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 사람들 앞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혹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 역시도 교만에 빠지며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할까 조심해야 합니다.

 

-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더욱 더 겸손으로 우리의 허리를 동이는 수고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그 누구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음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한 교만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금만 높아지거나 강해지면, 부해지거나 무언가 특별한 것을 알고 있다고 판단되면, 교만함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며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대적하는 등 안하무인격으로 행하기 일쑤입니다.

 

- 그러나 그가 누구이든지 사람은 죽음의 문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 만일 인간들이 죽음의 문 앞에 서기 전에 자신이 한 줌 흙으로 지어진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절대 교만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 여기에 인간의 우매함이 있으며, 믿음을 가진 지혜로운 자는 죽음의 문 앞에 서지 않아도 인간의 한계와 무기력함을 압니다.

 

- 시편 103편 15,16절에서 “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교만을 멀리하며 힘을 다해 겸손을 붙듭니다. 우리 성도는 믿음 안에서 겸손한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간의 실상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이사야 40장 6절에서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 인생은 실로 덧없는 존재이기에 시편에서 모세는 이와 관련해서 시편90편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시편90편5,6절에서도 ‘인생은 아침에 돋아 자라다 저녁에 시드는 풀 같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처럼 덧없는 인생의 한계와 실상을 항상 직시하고 언제든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맞이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며,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진정 성도는 교만한 마음에서 벗어나 오직 겸손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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