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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에스겔 37장1-6절

작성자김두옥|작성시간21.04.22|조회수1,756 목록 댓글 0

2021년 4월 22일 목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자연환경은 참으로 맑고 밝은 정말 아름다운 목요일 아침이 새롭게 시작 되고 있습니다.

 

- 어느덧 한여름 같은 신록의 계절이 한층 다가 왔음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크신 솜씨를 찬양하는 하루가 되어 봅시다.

 

- 그리고 만사에는 때가 있음같이 내 때가 아닌 주님이 원하시는 때가 있으니 슬기로운 신부의 삶으로 늘 깨어 준비하고 인내하는 신앙이 됩시다.

 

-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우리의 간절한 회개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좋은 것을 주실 줄 믿고 조금만 더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여 고난과 역경의 현실을 극복하고 영광 돌리는 하루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에스겔 37장1-6절}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 제 목 ◑◑◑◑

 

◗◗ 이스라엘의 회복을 환상으로 보게 하심

 

◑◑◑ 본문 이해와 요약 ◑◑◑

 

◗ 37장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선포하는 동시에 새 언약의 성취로 이루어질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 37장에서는 동일한 이스라엘의 회복 내용이 두 개의 상징적 내용을 통해 선언됩니다.

 

- 하나는 마른 뼈들이 환생하는 상징적 환상이며, 다른 하나는 두 막대기를 하나로 합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 이제 37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6절에서 마른 뼈에 비유 된 이스라엘의 비젼을 보여줍니다.

 

- 그리고 7-10절에서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한편11-1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국으로 부르시고 있습니다.

 

- 그리고 15-23절에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로 연합되리라고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한편 24-2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2절에서 사람은 마른 뼈와 같은 자기 실존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 그리고 3절에서 인간은 늘 불안전하여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불가능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한편 아무리 우리의 현실이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 그리고 4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만 참된 생명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견지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마른 뼈와 같이 죽은 자들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 인간을 살리시는 축복을 주시고 또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 뿐만 아니라 큰 나라를 이루어 영원히 복된 삶을 구가하도록 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소망하는 가운데 그 말씀대로 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하나님은 모든 일에 완전하시다. (에스겔37장3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인간은 늘 불안전하여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불가능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3절을 살펴보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에스겔이 고백했습니다.

 

-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환상 중에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셔서 그 참상을 보게 하신 후에 그를 향해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뼈들이 수북이 쌓인 마른 뼈의 골짜기 가운데 서게 하신 것은 그 뼈들의 상태로 보든지 무엇으로 보나 그 가운데서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그는 그 가운데 서서 뼈들이 상태를 관찰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그 뼈의 수는 심히 많지만 그 상태는 하얗게 말라버린 상태로서 생명이라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상태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 만일 우리가 이러한 자리에 서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 에스겔은 이 질문에 대하여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에스겔의 이 대답은 참으로 모호하게 여겨집니다.

 

- 하나님의 질문은 ‘예’ 또는 ‘아니오’로 답변해야 할 성격의 질문이었습니다만, 상식적인 선에서 그에 합당한 답변은 ‘아니오’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마른 뼈들이 다시 산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은 심장의 박동이 멈추고 뇌 기능이 정지되어 죽게 되면 아직 살이 부패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시 살 수 없습니다.

 

- 하물며 죽은 지 오래되어 모든 살이 부패되어 사라지고 뼈만 남게 된, 정확히 말해 인간이나 인격이라는 말을 붙일 수도 없는 그러한 대상에 대해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 황당하기까지 한 물음에 당연히 ‘아니오’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 하지만 에스겔이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않고 ‘주께서 아신다.’라고 대답한 것은 그에게 물은 이가 인간이 아닌 전능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 그렇기에 에스겔은 ‘아니오’라는 대답 대신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변한 것입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며 죽은 뼈라도 생기가 넘쳐 나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그런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설령 그것이 마른 뼈라 할지라도 하고자 하신다면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 그러므로 에스겔은 하나님의 생사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로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완전하시지만, 사람은 불안하고 한계를 지닌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 이란 믿음을 가진 자와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있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인생의 문제들은 실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 그런즉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 곧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행하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가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에 가로막혀 있으며 주변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원망과 절망의 탄성을 발하는 순간에도 그는 침착하며 차분하며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도리어 확신에 찬 어조로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 하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길을 여실 수 있으며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능히 물리칠 수 있는 권능을 지니신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이사야 38장 7-8절에서“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 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한편 여호수아가 조금만 해가 길면 적군을 완전히 쳐 없앨 수 있는 상황에서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르는 시점에 이르자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의 목전에서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면 태양과 달도 멈출 것임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사도바울은 빌립보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완전하심을 믿고 있는 신앙인지?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현실을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비전에 순종하는 삶인지? 실수가 없으시고 완전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한계와 어떤 절망의 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살고 있는지? 오늘 성령님께서 나에게 능히 살겠느냐?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인간은 늘 불안전하여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불가능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일에 완전하십니다.

 

-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실수가 없으시고 완전하시기에 행하시는 모든 범사가 놀라운 권능을 믿는 자에게 있어 불가능이란 실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인간은 실상 연약하여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아무리 날고뛰어도 한계라는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사람들에게 불가능이란 그 실존처럼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의 일하심의 여지를 열어두는 자에게 불가능은 언제든 가능으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 어떠한 경우에도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사전에 기도가 있는 한 불가능이란 말을 완전히 지울 수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능력의 하나님 손길을 언제든 잊지 말아야 하며, 어떤 일든지, 어떤 한계, 어떤 절망의 벽 앞에서도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지금 현실의 어려움과 가진 것 없고 건강하지 못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완전한 구원이 있음을 확신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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