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4일 목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한 낮이 덥고 가끔 소낙비가 온다는 목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진정한 소망은 이 땅에 있는 소망이 전부가 아니라 하늘에 영원한 소망이 있음을 알고 복음과 함께 힘 있게 살아냅시다.
- 영원한 소망을 가졌기에 신종 변이 바이러스에도 두려움과 공포의 모든 어두운 환경을 뛰어 넘고 이기며 승리의 찬송을 부르는 사명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상황이 매우 힘들지만, 조급한 마음을 비우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놀라운 은혜와 능력이 경험되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요나 4장 5- 11절 }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재배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 제 목 ◑◑◑◑
◗◗ 요나의 불평과 박 넝쿨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
◑◑◑ 본문 이해와 요약 ◑◑◑
◗ 4장에서는 요나의 무성의한 짧은 말씀 선포였지만, 결과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이방인 앗수르의 니느웨 도성이 대각성 운동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받고 재앙에서 벗어났습니다.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러나 요나의 반응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 미움과 저주로 가득 차 있었던 적대국인 앗수르 제국의 발전은 이스라엘에게 위험이 된다는 생각이 요나를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 큰 도성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오히려 불평하고 분을 내는 것은 편협한 인간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넓으신 사랑의 표현을 요나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 이제 4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4절에서 요나가 니느웨에 재앙이 내리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불편하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조용히 꾸짖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니느웨의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심판을 유보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요나는 하나님의 초월적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배타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닌 만민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 그리고 5-9절에서 요나가 박 넝쿨이 시들자 화를 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한편 10-11절에서 박 넝쿨을 비유로 요나를 깨닫게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신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요나에게 박 넝쿨로 중요한 교훈을 하십니다.
- 이는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귀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합당함을 가르쳐 줍니다.
- 하나님의 주권은 전 우주에 미치며, 하나님의 구원 대상은 오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교훈을 통해 만민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구원 의지를 계시하시고, 인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 자세를 꾸짖고 계십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5절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그에 합한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이며 어째서 은혜 베푸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 한편 7-8절에서 성도는 타인의 아픔을 외면치 않으며 그것을 자기 자신의 아픔과 동일시합니다.
- 특히 8절에서 입술에서 내뱉어지는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들을 절제해야 합니다.
- 그리고 9-11절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결론적으로 요나의 분노는 그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은 그의 생각은 너무나 좁은 생각이며, 하나님의 깊고 넓은 마음은 편협 되지 않습니다.
- 인간들의 죄악 된 모습을 발견하시면서도 그들에게 계속해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재앙을 선포하시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는 언제나 용납하고 용서하시는 것을 보아 절실히 알 수 있습니다.
- 인간들의 좁은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기에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 또한 인간의 속 좁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과 계획을 속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나아가서는 이방인들도 회개하고 돌아오는 모든 자들을 자비와 사랑으로 품으신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영혼 사랑하면 존귀케 하신다. (요나4장9-11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9-11절을 살펴보면 여기서는 시든 박 넝쿨로 인하여 자신이 당하는 극심한 고통에 대해 원망과 불평의 말을 쏟아내는 요나에게 그 박 넝쿨이 소중한 것, 그리고 시든 것을 역 이용하여 니느웨 백성을 용서하고 구원하심의 정당성을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 이러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과 요나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선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씀하시는 대상은 바로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만도 십이 만에 달하는 니느웨 도성입니다.
- 이에 반하여 요나가 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루아침에 자라 그 머리를 시원케 하였지만, 벌레가 갉아먹자 이내 시들고 말라버린 박 넝쿨입니다.
- 이 둘 중 무엇이 더 소중한 것입니까?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만도 십이 만에 달하는 니느웨 성입니다.
- 그런데 당시 요나는 수십만의 니느웨 사람들의 목숨이 파멸에 떨어지는 것은 큰 관심을 가지고 옆집 불구경하듯 지켜보았으면서 사소한 넝쿨에 대해서는 자기 목숨이라도 달린 것인 양 반응했던 것입니다.
- 이러한 요나의 태도는 앞선 1장12-13에서 제시된바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자기들이 처한 거친 풍랑 속에서도 그 원인을 제공한 요나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자 사력을 다한 이방 선원들의 그것만도 못한 지극히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 그런데 사실 오늘 말씀에서 볼 수 있는 요나의 그릇된 태도는 타인의 생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도리어 자기 자신의 현실적 편리에만 관심을 갖는 이기적인 면모는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을 참으로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 사람들을 보면, 자기와 관련 된 이권 문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 하지만 자기와 동떨어진 곳에서 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제 아무리 큰 위기에 직면해 엄청난 고통을 당한다 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기에 군부대 성추행 자살을 통하여 억울함을 밝혀달라고 호소함을 봅니다.
- 그런데 이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성도들과 하나님의 사명자라 자처하는 분들의 삶의 자리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 자신의 작은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아우성치면서 이웃의 극한 고난과 고통은 애써 외면하며 오로지 자신의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온갖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는 아닐까요?
- 어떤 분들은 주일에는 버젓이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며 자신이 크리스천인임을 내세우며 살면서 세상에서 즐기고 때로는 일터에서 온갖 부정과 불의를 일삼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대단히 잘 못 가고 있습니다.
- 알고 보면 부정과 불의는 모두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악행으로 남들에게 절망과 실망감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자기 손에 쥐어질 얼마 안 되는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타인의 삶이 망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 간혹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받은 사명자라 자처하는 이들 중에도 자기의 현실적 이익이나 교권 등을 위해 타인의 영적 생활을 망가뜨리며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케 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 영혼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직임을 부여받았음에도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특권과 구하지 말아야 할 탐욕을 위해 도리어 주변 사람들의 심령에 깊은 상처를 주고 결국 사람들을 파멸의 자리까지 몰아가는 악행을 저지르는 옹졸한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생각 해 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받은 사역자들이라 자처하는 분들 중에도 자기의 현실적 이익이나 교권 등을 위해 타인의 영적 생활을 망가뜨리며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케 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섬기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스스로를 성도라 자처하며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극과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는 애써 태연하고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 아침에 성령님은 내가 세상에 대하여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겠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영혼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혼 사랑하면 존귀케 하십니다.
- 그런즉 오늘 우리가 요나를 통해 얼마나 어리석게 옹고집을 내세웠는지를 밝히 알게 됨 같이 과연 나는 영혼 사랑을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자가진단을 해 봅시다.
- 혹시 나도 요나와 같은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 속에서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만을 강조하는 이 세대 가운데서 지금 나 역시도 타인의 생명을 소홀히 여기고 오직 나의 이해관계에만 마음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반드시 회개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 이런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하고 받아들이면 나 또한 요나처럼 자기 머리 위의 넝쿨이 시든 것으로 분노하며 다른 한편으로 니느웨 성의 파멸을 구하는 이기적이고 무정한 요나의 전철을 밟을 수 있음을 명심하여 항상 깨어 근신합시다.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13-14절에서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명자로 살길 원한다면 “한 생명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여기시고 잃은 생명 하나를 얻고자 목자가 잃은 양을 애타게 찾듯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읍시다.
- 나의 목숨과 생명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의 영혼과 생명 또한 소중한 것을 알고 인정하고 사랑합시다.
- 진실로 이웃의 생명과 이웃의 삶과 이웃의 생명 존엄성 하나까지도 소중하게 여기며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웃의 형통과 행복을 위해 중보기도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집시다.
- 그러므로 이와 같이 실천하는 우리 성도들이 오늘 아침에 마음과 뜻을 다하여 진정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바로 헤아리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사명자로 거듭나기로 결단하시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