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6일 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구주강림절 둘째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매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어제도 코로나 방역 잘하고 안전하게 예배 잘 드리고 은혜 많이 받으셨지요? 이제는 삶이 적용되는 예배에 형통한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오미크론 바이러스 와 돌파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세가 꺾이지 않고 병실 부족 사태의 현실에서 또 다시 활동이 묶여지고 있기에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 이때에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경건의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맡은 사명과 직분 앞에 지혜롭게 선한 영향력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사도행전15장1-11절 }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제 목 ◑◑◑◑
◗◗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
◑◑◑ 본문 이해와 요약 ◑◑◑
◗ 15장에서는 사도행전의 중요한 주제는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것과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 특히 본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라고도 하는데,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종교 회의로서 이방인 신자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도 받고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 그러나 사도들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인 신자가 꺼려하는 제사 음식과 음란한 행위만은 삼가도록 권하기로 결의하였던 것입니다.
- 복음이 전하여지고, 복음으로 이룬 공동체가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지며, 그로 인하여 믿는 자들이 많아지는 매우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관심을 끈 것은 교회에 나타나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교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 이제 15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 5절에서 할례의 문제의 발단과 그에 대한 변론을 위해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 한편 6-29절에서 이방인들의 할례와 율법준수 문제에 대하여 회의하는 예루살렘 총회의 모습을 봅니다.
- 또한 30-35절에서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를 안디옥에 돌아와서 보고 하는 내용입니다.
- 그리고 36-39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선교를 앞에 놓고 조카 마가 동행을 놓고 심한 갈등으로 헤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 한편 40-41절에서 바나바는 마가를 그리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을 나누려는 거짓 형제의 이간을 경계해야 합니다.
- 한편 성도가 완전히 버리지 못한 옛 습성은 복음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2절에서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는 양보와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 한편 문제가 있는 곳에 답도 함께 있습니다.
- 그리고 3절에서 불신자의 회심은 성도가 크게 기뻐할 일입니다.
- 한편 교회의 열렬한 후원이 사역자에게는 커다란 뒷심이 됩니다.
- 그리고 6절에서 교회 안에서는 활발한 의견 개진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 한편 7절에서 성도에게는 자기와 다른 견해도 끝까지 들어 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 또한 믿음은 들음에서 생겨납니다.
- 그리고 9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 한편 10절에서 거짓 종교일수록 사람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웁니다.
- 또한 11절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 결론적으로 교회가 개종자들을 받아들이려 할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을 자세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 총회에서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 우상의 더러운 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뜻하며 음행은 성적 부도덕이나 부정한 결혼을 뜻하고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은 피가 흥건한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것은 구원의 필수 조건은 아니며 단지 유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한 타협책일 뿐입니다
- 그것은 율법에 할례는 마음에 할 것이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 또한 교회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며,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으로 가능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온전한 믿음은 포용력이 말한다. (사도행전15장 7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성도에게는 자기와 다른 견해도 끝까지 들어 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안에 자신들에게 익숙한 습관과 생각, 그리고 그들의 환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인해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자신들을 선교사로 파송한 안디옥 교회로 돌아 왔으나 이방인의 구원과 할례문제를 놓고 많은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내용을 전한다하면서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지만, 율법을 지켜야 하고 특히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전했습니다.
- 이런 구원에 대한 내용으로 안디옥 교회 안에 심각한 갈등이 생겼는데,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라고 말합니다.
-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라고 점잖게 표현했지만, 큰 다툼과 갈등으로 안디옥 교회의 큰 위기가 발생하게 됩니다.
-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예루살렘 교회에 물어보기로 하고 예루살렘 교회 총회에 와서도 이 문제가 커다란 문제가 되었기에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서 많은 변론을 하며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오늘 7절을 살펴보면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 안에서 결정해야 하는 논의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잘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 베드로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였지만, 이번에 제기 된 문제에 대하여 성급하게 자기의 견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 한편 무조건 자기의 견해에 따라오라고 하지도 않았으며, 베드로는 공의회 안에서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 이 때가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들을 말했습니다.
- 사실 따지자고 들면 할례주의자들의 주장이란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 그것은 오히려 위험스런 주장이었으며,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자는 주장이었습니다.
- 이미 복음은 이방인에게 전파되었는데, 할례 없이도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이들의 구원을 인치셨습니다.
- 사도행전10장 45절에서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라고 하였습니다.
- 누가 과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되돌리자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11장 17절에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 인간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큰 어리석음입니까? 들을 가치가 없는 말입니다.
-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무우 자르듯이 자르지 않았습니다.
- 자기들의 의견을 충분히 다 말 할 때까지 참았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 아마 성도들 가운데는 공의회에서 어떻게 베드로의 말이 그렇게 쉽게 먹혀 들어갔나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대화의 묘미가 여기 있으며, 들어주는 힘이 여기 있습니다.
- 사람이란 늘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잘 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올바른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 그러나 충분히 자기 의견을 말하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스스로 정리가 됩니다.
- 그래서 자기 논리의 모순을 스스로 발견하게 됩니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자기모순을 발견하게 하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그래서 들어주는 일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이며, 들어주는 사람의 말에 무게가 있는 것이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 교회에서는 이러한 대화를 해야 할 것이며,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 비록 자기와 다른 견해라 할지라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 그래서 신앙은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잘 못 된 것은 고쳐 나가야 합니다.
- 진리를 거스르는 말이나 주장은 올바르게 시정되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과정입니다.
- 아무리 옳은 일도 우격다짐으로 하려 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 그래서 옳은 말도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하게 되면 반발을 사게 됩니다.
- 그러므로 틀린 주장이라도 끝까지 들어 줄 인내력과 포용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 대화를 말없이 듣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도에도 끝까지 귀를 기울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못 듣는 것이 무엇입니까?
- 잠언18장13절에서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상대방이 옳아서만 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만해서도 들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 억울한 일로 인하여 상대방을 놓고 기도하다가 보면, 미운 감정이 불쌍한 영혼으로 이해되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 잠언15장 28절에서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는 인간관계에서 말을 듣는 사람인지? 아니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시겠는지? 혹시 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내가 아는 상식에서 무조건 설득시키려고 밀어 붙이는 경우는 없는지? 오늘 베드로의 설득력 있는 말은 무엇을 근거하여 묻고 있는지? 바울이 왜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였는지? 말에 대한 포용력과 수용력을 누구에게 배워야 하겠는지? 말에 대한 설득력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오늘 성령님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이루어 갈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성도에게는 자기와 다른 견해도 끝까지 들어 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은 포용력으로 말합니다.
-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세금 문제로 율법과 세상법이 상충되는 문제를 들고 왔을 때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돌을 들고 치려하지만, 본질적은 문제를 그들에게 던지게 되므로 돌은 버리고 모두 다 떠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본질적이고 사실적인 문제에서 해결되는 것입니다.
- 잠언29장20절에서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앞으로 삶의 대책에 대하여 서로의 견해가 있고 의견의 충돌이 있을 때에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을 원하시며 어떻게 더불어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지혜를 모우고 한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고 협력해 나갑시다.
- 베드로는 그들의 충분한 말을 다 듣고 난후에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 된 진실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거역할 수 없음과 동시에 바울의 주장함이 옳은 것으로 인정하고 순종하여 따를 때 믿음의 역사는 계속 일어날 것을 말씀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므로 시편에 다윗의 많은 기도들을 보면 너무나 많은 대적들로 인하여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결국 하나님께 맡기고 보니 어느 사이에 그 대적이 이해되고, 용서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들어주다 보면 반드시 해결되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에게 이러한 포용력과 인내력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며, 믿음으로 이기고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이므로 충분한 토론 문화를 통하여 본질적인 문제에서 해결하도록 기도하고 설득력이 있도록 지혜를 구하며 풀어가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