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일 수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수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어제 정든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통하여 은혜가 되셨는지요?? 오늘은 삶의 현장으로 가기 전에 가족의 건강을 챙기며, 진정한 복을 위한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형통한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이제는 오미크론 확진 자가 셀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불안케 하고 있으니 간절히 기도합니다.
-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부족한 인간적 생각을 내려놓고, 죄를 떠나 하나님과 동행하여 그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고린도후서 2장1-11절 }
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 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 제 목 ◑◑◑◑
◗◗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받음
◑◑◑ 본문 이해와 요약 ◑◑◑
◗ 2장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상황이 악화되자 바울은 급히 제차 방문하였지만, 그러나 여전히 서로에게 풀리지 않는 근심거리만 더하였을 뿐 서로 이해와 화목을 이루지 못하여서 방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 자신이 두 번 다시 근심 중에 교회를 방문하지 않게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 그러면서 바울은 교회 안에서 죄를 범한 자가 잘 권면이 되어 회개하고, 또 용납하여 치리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몇 가지 교훈하는 편지를 쓴 것입니다.
-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성도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그 형제가 실족하지 않도록 잘 권면하고 죄를 깨달아서 회개하면 잘 받아주고 서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 이러한 바울의 교훈은 교회의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열매를 맺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 그러면서 자신의 징계를 받은 범죄자들이 회개했다면 언제든지 교회가 그들을 너그러이 주 안에서 이해하고 받아주고 화목을 이룰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 이제 2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4절에서 바울이 고린도 방문 계획의 변경 이유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 한편 5-11절에서 바울이 불의를 행하는 자를 용서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12-17절에서 바울의 드로아와 마게도냐 여행 보고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모든 환경에서 승리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자기 절제는 성숙한 신앙의 증거입니다.
- 한편 2절에서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자만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 또한 3절에서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권면이나 충고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4절에서 지금도 주님께서는 애통의 눈물로 우리에게 호소하십니다.
- 한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 그리고 5-6절에서 권징은 교회의 순수성 보존을 위해서 반드시 요청되는 일입니다.
- 또한 죄의 징계가 형제로 실족케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한편 6절에서 교회의 징계는 죄인의 낙인이 아니라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 그리고 7절에서 징계에는 용서와 위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 한편 8-9절에서 성도에게는 주님을 따르는 확실한 삶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 또한 10절에서 우리가 형제를 용서할 이유는 우리 또한 죄인으로 용서 받았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 그리고 11절에서 정죄를 일삼는 것은 사단의 궤계에 속은 일입니다.
◗ 결론적으로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떠나 잘못 행하여 책망 받을 자가 많은 그들에게, 책망 받은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성도들에게 관용으로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
- 이것은 그 사람이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었기에 교회 안에서 죄를 범한 형제에 대하여 책망을 하는 것은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지 그 형제를 미워함으로 말미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성도는 범죄 한 형제에 대하여 책망을 할지라도 회개할 때에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간직해야 하는 이유는 형제가 너무 책망을 심하게 받아 실족하게 될까 염려가 되므로 위로하여 줄 것을 성도들에게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 그러나 성도는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하여 죄를 범한 형제에 대하여는 복음으로 책망하여야 합니다.
- 이러한 형제가 진정으로 회개하였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주고 용서하며 위로함으로, 사단의 궤계로 교회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항상 성도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사단의 계략이 있음을 기억하여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 묵상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사랑의 완성은 용서다. (고린도후서 2장4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항상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기에 첫 번 편지를 통하여 너무 심하게 책망하면서 보낸 편지가 마음에 평안을 얻지 못하여 다시금 용서하며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 고린도 교회에는 종교적인 우상숭배뿐 아니라 우상숭배에서 파생되는 도덕적인 범죄까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 고린도 도시의 퇴폐적인 문화가 교회에까지 들어온 것이고, 그 가운데 더러운 것은 음란한 행위였습니다.
- 그런데 이런 더러운 죄를 짓고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변명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 물론 그리스도 안에는 자유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자유는 죄와 사망에서의 자유요, 양심의 자유이지, 더러운 죄에 몸을 담그는 자유가 아닙니다.
- 그럼에도 고린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자기들의 범죄를 합리화하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는 바울이 떠난 후, 그의 사도적 권위에 끈질기게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바울이 무슨 생활비를 받으면서 고린도에서 그 교회를 세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수고와 고생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진수를 가르쳐 주었는데도, 그 교회 성도 가운데 일부 지도자가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여러 가지로 도전하므로 바울이 자기변호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4절을 살펴보면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바울은 자기 자신이 ‘눈물의 편지’를 쓰는 이유가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바울은 그 역시 고통 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사랑’으로, 공동번역을 따르면 ‘극진히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물의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롭게 하였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넘치도록 사랑한다고 합니다.
- 비록 그들이 하는 행위나 비방은 잘못 된 것이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 마치 간음하던 현장에서 잡혀 예수님 앞에 선 여인을 기억하십니까?
- 그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일이 그 여인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치욕적인 사건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하고자 이 죄를 지은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왔습니다.
- 그런데 흥분되어 죄를 고발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죄 있는 자가 돌로 먼저 치라!”라는 것입니다.
- 그 여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돌에 맞아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이 슬슬 꽁무니를 빼고 돌아갔습니다.
- 그때 예수님과 여인만이 남았을 뿐인데,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8장 11절에서 “나도 너를 정죄하시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 예수님은 간음죄를 지은 여인조차 정죄하고 미워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 물론 분명 우리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죄이지 사람 자체는 아닙니다.
- 죄의 근원은 사탄 마귀로부터 조정되고 있기에 하나님의 뜻과 의를 따르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합니다.
- 그런즉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을 꾸짖고 쫓아내어야 하는 문제이며, 죄의 댓가는 치러야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 악한 감정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던 이유입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 로마서 8장을 보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 그래서 누구도 정죄할 수 없으며, 아무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 성도야말로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 그래서 다른 누가 실수로 죄를 범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높습니까? 더 의롭습니까? 더 지혜롭습니까?
- 그런데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하고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 에스겔 18장 23절에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 죄를 지은 악인이 회개하지 않고 망하는 꼴을 보는 것보다, 죄악에서 돌아서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 그런즉 결코 우리는 예수님께서 덮으신 허물을 파헤쳐 정죄할 수 없습니다.
- 물론 죄는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결단코 아니며, 멀리해야 하며, 미워해야 합니다.
-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하면서 3장 13절에서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는 인간관계에서 혹 마음에 어떤 큰 눌림과 걱정이 있는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필요하겠는지? 사도바울은 어떤 방법을 취했는지?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책망하는 첫 번 편지를 보내고 나서 다시 눈물로 편지를 쓴 이유가 무엇인지? 바울이 근심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였다면, 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겠는지?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이유는 무엇인지? 오늘 성령님은 인간관계에서 어떤 자세로 형제와 이웃에게 다가가길 원하시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항상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으로 주님의 사랑의 완성은 용서입니다.
- 이것이 성도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사람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 설령 죄를 지었어도 미워할 대상으로 전락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 명절에 가족 모임이 반갑고 정감이 있어야 하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로 갈등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설날을 맞이하여 혹 가족 안에서도 형제간에 죄와 허물들이 보일 때에 미움과 시기 질투로 감정의 날을 세우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관용하고 용서와 화목을 이루고 가정과 가족의 천국을 이루는데 힘써 봅시다.
❥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므로 따라서 정죄가 아닌 긍휼로 바라보아야 하며 관용으로 이해하고 용서해야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고, 한편 죄지은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우리가 좇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예수님과 멀어지고 말 것이므로 사람이 아닌 죄를 조작하는 원수 마귀 사탄을 예수의 이름으로 꾸짖고 몰아내고 죄에 조정 당한 그 형제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