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4일 수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어제 기도한 대로 갈급한 이 땅에 은혜의 봄비가 와서 만물이 새로운 힘을 얻는 아침을 주시니 감사함으로 시작하는 수요일입니다.
- 하나님만을 바라는 신앙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말씀하셨으니 연일 계속되는 업무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실천하고 적용 해 나갑시다.
- 하나님께서 좋은 계절을 주실 때에는 언제나 꽃처럼 기뻐하고 즐겁게 살아내며 굳건한 믿음으로 모든 상황을 뛰어 넘어서 평안과 희락을 누리시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사무엘상 14장 1- 7절 }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 하였느니라.
7.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 제 목 ◑◑◑◑
◗◗ 신앙과 승리
◑◑◑본문 이해와 요약 ◑◑◑
◗ 14장에서는 왕으로써 평정심을 잃은 사울이 다시 한번 망령 된 명령을 내림으로써 군대를 위기에 몰아넣고, 아들 요나단의 생명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크나큰 실수를 범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 그래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신앙과 용맹을 엿볼 수 있으며 요나단의 활약을 통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 전쟁의 열세를 모면하기 위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호위병과 더불어 적진에 침투하였습니다.
- 이때 사울은 블레셋 군사들이 두려워서 멀리 후방 지역의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 반면 요나단은 왕자의 존귀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진에 침투하는 용맹성을 아낌없이 발휘하였습니다.
- 왕자 요나단이 적진에 침투하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하였는데,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 숫자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고 분명하게 단언하였습니다.
- 이렇게 왕자 요나단은 참으로 훌륭한 신앙 경지에 이른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바로 이런 요나단의 믿음이 요나단으로 하여금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것입니다.
- 이렇게 믿음의 사람은 위기와 역경 가운데서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담대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게 마련이며, 크나큰 시련들은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얼마나 강인한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 그러나 급한 마음을 가진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속전속결로 치르기 위해 전군에 금식 명령을 선포하였습니다.
- 이유는 블레셋 군사들이 자기들끼리 칼부림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서 순식간에 블레셋을 전멸시키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 그러나 전투에서 잘 먹이고 힘을 얻게 해야 하는 지도자가 군사들의 사기나 전투력을 무시한 금식령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 게다가 사울은 이 모든 작전 계획을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하고 추진하였습니다.
- 그 결과 이스라엘 군사들은 금식령을 선포한 시간이 끝나자마자 허기를 면하기 위해 짐승을 잡아 산 채로 피를 먹고, 또 짐승과 새끼를 한꺼번에 잡아먹는 반 율법적인 죄악을 서슴없이 자행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세상적 가치관으로 왕을 원했던 결과에 따른 인간의 지도자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렇게 하는 것은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계획과 의지는 결코 그 결과가 선하지 못함을 교훈합니다.
◗ 결론적으로 사울왕의 초심으로 임했던 겸손함을 버리고, 자행자지하던 그는 블레셋 믹마스 전투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습니다.
- 사울의 한참 전쟁 중에 금식 명령과 그의 맹세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한 백성들은 지쳐서 좋은 전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사울의 맹세를 듣지 못하여 꿀을 먹은 요나단을 죽일 뻔했습니다.
- 금식 시한을 넘긴 백성들이 허기를 참지 못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짐승을 피 있는 채로 먹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 결국 사울이 내린 금식 명령은 아랫사람의 필요와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지 않고 자신의 명예와 권좌에만 연연하는 공명심과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독선에서 비롯된 것이 었습니다.
- 그러므로 지도자의 공명심과 자기중심적인 삶은 멸망의 선봉이요, 진정한 리드자로서 합당치 못한 처사입니다.
- 그리하여 사울은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고, 또한 폐위 선고를 받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는 잠언의 교훈을 실감케 한다 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믿음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삼상14장 1, 6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성도가 최우선적으로 따라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큰 믿음과 큰 역사는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1절을 살펴보면 “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왕자로서 자기의 병기를 드는 부관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고 하였습니다.
- 일반적인 상식으로 요나단의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그는 마땅히 부왕인 사울에게 보고를 하고 행동을 취해야 했습니다.
- 요나단이 자신의 계획을 보고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나단이 과연 사울의 허락을 받아 적진으로 갈 수 있었겠습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사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이미 하나님의 주권을 멸시하고 거역했던 사람입니다.
-삼상13장9절에서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 이후에 그가 보여준 모습은 더 이상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지 않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15:9; 28:8).
- 그런 그가 자기를 이어 왕이 되어야 할 요나단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홀로 블레셋으로 건너가려는 것을 허락했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 그러므로 요나단은 블레셋으로 건너가려는 계획을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 요나단이 단신으로라도 적진으로 들어가려 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충실히 따르기 위함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과는 무관한 이방인에게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분연히 일어선 것입니다.
- 따라서 만일 그가 자신의 계획을 사울에게 알려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면 그것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 그러므로 요나단은 인간적으로 보면 불효요 불충이 되는 일이었지만 자신의 계획을 아비에게 보고하지 않고 행동에 옮긴 것입니다.
- 요나단은 아버지이자 이스라엘의 최고 사령관인 사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도 공경하고 사랑했지만 그보다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믿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하였으므로 육신의 아버지보다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보고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특히 우리는 이 말을 보면서 요나단이 상당히 무모한 행동과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이것은 한 편으로 보면 만용이라 할 수 있지만, 단 둘이서 적진에 뛰어들겠다니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요나단의 이 말은 만용도 아니요, 제 정신이 아니어서 한 말도 아니라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 그의 이 말은 6절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는데 그는 거기서 병기 든 자에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요나단은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초월적인 믿음에 근거하여 적진으로 뛰어 들고자 한 것입니다.
- 비록 자기 홀로 적진으로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에서 취한 행동이기에 요나단의 믿음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진취적인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 당시 사울은 군사들이 겨우 600명 남짓 남은 일로 인해 대단히 의기소침 해 있었습니다.
- 2절에 보면 그는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머물러 있었기에 사울은 얼마나 의기소침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사울은 마지못해 나와서 방어는 하지만,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절대적 위기를 맞은 것이며,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 그러나 3절을 보면 그의 곁에는 제사장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있었지만, 그도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기에 한 마디로 사울은 싸움에서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도움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 사울왕의 신앙은 형식적인 것이 되었고 이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그 아비와 같지 않았으니 요나단의 신앙은 살아 있는 진실한 믿음이었으며, 그래서 요나단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군사의 수나 싸우는 병기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 그러므로 그는 감히 자신과 병기 든 자 단 둘이서 적진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니 요나단의 신앙은 모든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 요나단의 신앙은 환경에 눌려서 꼼짝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전진하는 진취적인 신앙이었습니다.
- 또한 우리는 정탐꾼으로 발탁 된 진취적인 신앙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접경지대인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는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에 파견하였습니다.
- 그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두루 탐지하였는데, 그들은 가나안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할 때 10명의 정탐꾼들이 최종적으로 보고한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민수기13장31절에서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는 것이었습니다.
- 이러한 그들의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키기에 분명하였으며, 그들은 오직 가나안만 바라보고 애굽을 나와 험난한 광야를 지나온 자들이므로 이 보고를 듣고 어찌 낙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너무 낙심한 나머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고까지 하였습니다.
-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은 달랐는데, 그들은 다른 정탐꾼들과는 달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민수기13장 20절에서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 또한 민수기14장 9절에서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정탐꾼들과 동일한 상황을 목격하였지만, 그것을 보는 눈이 달랐던 것입니다.
- 다른 정탐꾼들은 육신의 안목으로 본 까닭에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눈으로 즉 믿음의 시각으로 본 까닭에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그리하여 그 결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가나안 거민을 과대평가하고 두려워하던 이들은 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그들은 다 광야에서 스러져갔습니다.
- 이에 반해 진취적인 믿음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가 기업을 차지하였습니다.
- 진취적인 믿음의 사람만이 ‘가나안’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11장 2절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초월적인 믿음, 진취적인 믿음의 확신을 가진 자만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며, 주변 모든 환경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지거나 의기소침하지 맙시다.
- 그렇다면 오늘도 이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 앞에 넘어야 하고 극복해야 할 큰 산이 무엇인지? 그리고 극복하고 넘어야 할 큰 산 앞에 어떤 각오로 설 것인가? 가만히 서서 하나님만을 바라는 믿음이 있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보고 새롭게 결단합시다.
- 그래서 현실위에 계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그 큰 권능의 손이 구원하시리라 확신합시다.
- 사도바울도 빌립보4장 13장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 특별한 능력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초월적이고 진취적인 믿음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주저함 없이 힘 있게 전진해 가면 하나님께서 의와 평강과 기쁨으로 문제를 가능케 하심을 확신합시다.
- 그래서 앞으로 내가 어떤 주변 환경에서도 눌리지 말고 철저히 요나단과 다윗처럼 신약에 베드로와 바울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하여 질병을 이기고, 물질을 극복하고,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사단과의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로 간증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