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1일 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부부의 날 화요일 아침이니 화목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 위에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 5월이지만, 초여름 같이 무더운 날씨 속에 지치는 모습을 봅니다만, 감사의 힘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상황이 힘들지만 나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은혜와 기적의 순간이 펼쳐지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사무엘하 6장 1-11절 }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 제 목 ◑◑◑◑
◗◗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
◑◑◑본문 이해와 요약 ◑◑◑
◗ 6장에서는 하나님의 법궤가 사울 시대부터 백성들에게 잊혀졌던 세월이 지나서 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본장에서 다윗이 가장 최우선 순위로 가까이 모시고 과정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다윗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강력한 신정 국가 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을 보여 왔던 그가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 다윗은 블레셋을 정복하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게 되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 당시 법궤는 바알레유다 즉 기럇여아림의 산 가운데 아비나답의 집에 유치되어 있었습니다.
-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길목 곧 예루살렘 서쪽 15k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은 지는 70년이나 되었으나 이 기간은 아넥 전투 때부터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데 쓰인 도구는 소가 끄는 새 수레였습니다.
- 그래서 법궤가 실린 새 수레를 끄는 사람은 아비나답의 두 아들인 웃사와 아효 이었고, 법궤를 운반하는 방법은 다윗의 명령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과 규례에 비추어 볼 때 상식에 어긋나고 매우 위험한 결과로 하나님의 말씀의 무지가 무서운 진노의 결과가 된 것입니다.
- 하나님의 법궤는 성소의 모든 기구를 운반하고 보관하는 책임을 맡은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만이 다를 수 있는 것인데, 불행하게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가 뛰므로 웃사가 언약궤를 붙들므로 죽임을 당합니다.
- 이로 인하여 법궤가 이동하는 것이 중단되고 자원하여 오벧에돔의 집에 모시게 되므로 큰 축복이 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일시 중지했던 법궤를 다시 이동을 재개하였습니다.
- 다윗은 지난번의 잘못을 깨닫고 이번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운반코자하여 레위인들로 하여금 법궤를 어깨에 메게 하였고, 법궤를 멘 레위인들은 여섯 걸음을 걸은 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 법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었는데, 다윗이 춤추는 모습을 그의 아내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고 업신여겼습니다.
- 그리하여 법궤를 안치한 다윗이 궁으로 돌아오자 미갈은 다윗을 경멸하였으니, 그녀는 다윗의 춤을 왕의 권위와 체면을 손상케 하튼 처사로 보았던 것입니다.
- 이러한 미갈의 태도는 옳지 않은 것으로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레위인들에 의해 법궤는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되었으며, 다윗은 법궤를 안치하기 위해 새로 장막을 만들었고, 먼저 법궤를 모신 장소를 성별하기 위한 일종의 봉헌식을 드렸습니다.
-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였으며, 무리에게 떡과 고기와 건포도 떡을 나누어 주어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 결론적으로 다윗은 유다지파와 이스라엘을 통일 왕국의 왕이 된 후 최우선 과제로 그동안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어 있었던 언약궤를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옴으로써 오직 하나님 중심주의 신앙을 본받게 합니다.
- 다윗은 법궤를 안치하기 위해 새로 장막을 만들었고, 먼저 법궤를 모신 장소를 성별하기 위한 일종의 봉헌식을 드렸습니다.
- 법궤가 수도 예루살렘에 안치되었다는 것은 왕국을 다스리는 진정한 통치자의 보좌에 하나님께서 좌정하셨음을 공포하는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 법궤가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안치됨으로 이스라엘은 이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나라로서 면모를 갖추어 영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분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외견상으로 법궤를 중심부인 예루살렘에 두었듯이 그들의 심령 골수에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새겼다면, 이스라엘의 영화는 그야말로 영원불멸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생각하는 다윗의 섬기는 신앙을 통해 오늘날 성도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많이 깨닫게 됩니다.
-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며,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➊ 섬기면 복을 누리게 하신다.(사무엘하6장 6-11절)
➋ 거룩한 부담을 지고가면 복덩이로 살게 하신다.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말씀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키며,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합니다.
- 6, 7절을 살펴보면 다윗 일행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던 도중 언약궤 운반 책임자였던 웃사가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 웃사가 동생 아효와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나르던 중 수레가 흔들려 언약궤가 떨어질 위험에 처하자 그만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댐으로 인해 하나님께 진노를 사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 이 사건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된 것과 다르게 법궤를 사람의 어깨가 아닌 짐승들과 기계적인 수레로 운반한 데서 발생한 결정적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 사실 다윗의 주변에서 그를 수행하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고 있어서 법궤 운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경사스런 일에 웃사가 죽는 일도 없었을 뿐더러 다윗이 수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윗은 이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탈취했다가 재앙을 당해 두려움에 떨며 언약궤를 돌려보냈던 방법을 따라서 언약궤를 나르려 하였던 것이 문제입니다(삼상 6:1-7:2).
- 이사야5장 13절에서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사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뜻인 말씀 즉 율법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취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였어도 그대로 묵인하셨던 것입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는 달라야 했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했고, 그 말씀에 따라 준행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 따라서 다윗이 선한 목적으로 언약궤를 운반하고자 한 것이었고, 또 온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고자 한 일이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세밀히 살펴서 그에 따라 법궤를 운반했어야 마땅했습니다.
- 다윗과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채로 이방인들이 사용했던 방법을 좇아 법궤를 운반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말았으니 말씀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발생한 결과였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뜻을 온전히 알고 그 말씀대로 행 할 때라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으며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 말씀 순종에 따르지 않고 인간적인 쉬운 방식을 예배드리고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는지? 묻고 있으니 자문자답해 봅시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영접하고 섬기는 자에게는 복덩이로 살게 하십니다.
- 특히 10절을 살펴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가기를 즐겨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 다윗의 법궤 운반 시도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만, 법궤 운반 시도는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하고 도리어 웃사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만을 낳고 말았습니다.
- 그러므로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 사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이유를 알지 못하였던 당시로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습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이 법궤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무슨 재앙을 내릴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법궤 운반은 여기서 중단하고 어딘가에 보관하고 원인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 하지만 법궤를 보관하겠다고 선뜻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법궤는 가드의 오벧에돔의 집에 보관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 이것이 오벧에돔의 스스로 자원에 의한 것이었는지 다윗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그러나 다윗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오벧에돔이 그 일에 동의하지 않고는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오벧에돔은 비록 레위인이기는 하였으나 언약궤를 운반해야 할 고라 자손이나 언약궤를 실질적으로 관리해야 할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대상 26:1-8).
- 아무튼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운반되어 그곳에 보관되게 되었는데, 이것은 오벧에돔으로서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무릅쓴 것이었습니다.
-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또한 자기 가족의 위험도 감수한 채 하나님을 섬기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벧에돔의 집에는 재앙 대신에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11-12절).
-누가복음14장 26,27절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원리를 기억하면서 우리 하나님은 전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마가복음10장 29,30절에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 이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헌신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충만한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 본문을 볼 때 오벧에돔의 집에 어떤 복이 임하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그 축복의 내용을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오벧에돔의 집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불과 석 달만 있었을 뿐이었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알 만큼 축복이 임하였다는 것은 그 집에 눈에 보일만한 큰 축복의 역사가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 마태복음16장 24절에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실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넝쿨 채로 부어주십니다.
-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다시금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아무도 감당하기 싫은 거룩한 부담인 시간이나 물질을 자원하여 섬길 수 있는 마음으로 섬김과 헌신을 할 수 있겠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 복덩이로 살게 하십니다.
-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위하여 내가 나를 부인하고 섬길 수 있는 마음과 믿음을 가집시다.
- 물론 자기를 부인하고 무언가를 희생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것은 자칫 큰 위기와 아픔과 고난을 동반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그러한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달게 받으며 인내하는 자녀들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결국은 그 소망하는 것을 이룰 뿐만 아니라 상상치 못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됨을 믿고 겸손히 순종하고 섬기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