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5일 수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참 좋은 수요일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사는 자를 귀하게 보시고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채워주심을 믿고 기도하며 힘 있게 나아갑시다.
- 믿음으로 현실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와 구원함을 입었다는 것을 깨달아지므로 감사와 찬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지식 정보가 많은 시대에서 점점 하나님의 말씀이 굳게 닫혀 가는 이 시대를 놓고 우는 자녀로 산다면, 말씀을 통하여 큰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사무엘하 19장 1- 10절 }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 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 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 제 목 ◑◑◑◑
◗◗ 전투의 종결과 다윗의 환궁이야기
◑◑◑본문 이해와 요약 ◑◑◑
◗ 19장에서는 예루살렘으로 환궁하는 다윗 왕의 복위에 관한 이야기가 본장에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 다윗은 환궁하는 길에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를 용서하고 므비보셋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은인 바르실래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러나 다윗의 복위와 환궁에 따른 기쁨을 같이 누리지 못한 이스라엘이 유다 지파와 갈등을 일으켜 국론은 다시 분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 결론적으로 압살롬의 반역 행위를 징계한 것은 온 이스라엘이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다윗은 사사로운 개인적 감정에 얽매여 슬퍼하였는데, 이는 성군 다윗이 왕으로서의 나라의 기쁨을 묻어버린 셈이고, 맡은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리고 다윗의 환궁에 있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지파 간의 갈등을 일으킨 것, 또한 잘못이었습니다.
- 사실 다윗은 지금까지 되어지는 모든 일 중에 그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디까지나 하나님으로부터 이끌리는 삶이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임 받았을 뿐이기에, 자랑할 것 없이 은혜로 쓰임 받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우리는 이해와 수용은 다르기에 다윗의 이런 모습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일을 신중하고 공의와 사랑을 조화롭고 지혜롭게 잘 처리해야 하겠습니다.
-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던 다윗은 요압의 충고를 수용하고 성문에 앉아 집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아랫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러나 신앙인은 어린 아이에게서라도 교훈 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 그는 자기 집안의 수치스런 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근신하였고, 압살롬을 따르던 백성이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따르기를 바라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 따라서 개인적인 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나라의 기쁨을 묻어 버린 다윗의 행위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에, 요압은 다윗에게 왕의 본분에 맞게 처신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충고도 골든타임이 있다. (사무엘하19장5-7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성도는 필요할 때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충고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지혜로 사랑과 공의를 균형 있게 잡아야 평강이 옵니다.
- 5-7절을 살펴보면 다윗을 향한 요압 장군의 충고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요압은 다윗이 아들을 잃은 것에만 마음을 두고 슬픔에 잠겨서 왕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있는 것에 대해 과감하게 필요한 돌직구를 던지며,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해서 요압은 공의와 사랑을 준행하되 공과 사를 잊은 다윗의 행동에 의해 의기소침해진 백성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 그리고 이로 인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스러운 사태에 대하여 정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불안스러운 상황을 무난하게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 그의 말과 행동은 다윗은 물론 이스라엘 공동체 모두를 위해 참으로 시기적절한 골든타임이었습니다.
- 잠언27장 9절에서 “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우리는 이러한 요압의 행동을 통해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직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 물론 요압의 태도에는 신하로서 지켜야 할 자세를 잃어버리고 다윗의 슬픔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오만함과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 그러나 한 국가의 절대권을 잡고 있는 왕에게 신하로서 이러한 돌직구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용기 있는 행동이었고, 성경은 이러한 요압의 행동을 통해 우리 성도들도 필요하다면, 위험과 어려움이 따른다 할지라도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부패하고 어두워져 가는 이 세상, 거짓되고 불의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 야고보5장 19-20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니 불의를 보고도 신변의 안전만을 걱정하고 뒤로 물러나는 비겁한 자로 살지 말았으면 합니다.
- 그리고 오히려 우리의 신분과 직무를 기억하면서 불의한 세상을 향해 당당히 일어서서 용기 있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선포하는 진실한 사명 자가 됩시다.
-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 본문에서 압살롬의 죽음만을 슬퍼하며 시급한 국정 과제를 돌보지 않는 다윗에게 요압이 찾아가 충고하는 장면입니다.
- 요압이 다윗을 향해 한 말은 왕이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신하들의 충성과 수고를 너무나 몰라준다는 것과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지 않고 슬픔에만 빠져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것은 감정에만 얽매여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다윗을 교정해 주는 견책의 말로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요압이 간구하는 말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견책하는 요압의 태도까지 옳다고 수긍할 수는 없습니다.
- 요압의 말대로 다윗이 신하들의 충성과 수고를 몰라준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요압은 다윗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 압살롬은 이스라엘과 거기 모인 신하들 모두에게 있어서는 반역자였지만, 다윗에게 있어서는 다른 모든 것 이전에 사랑하는 아들이었음을 요압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 다윗의 울음 속에는 지난날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임을 깊이 깨닫고 자신이 죽어야 할 것을 아들의 죽음이 아닌가하여 회개의 통곡이 있었을 것입니다.
- 오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압은 아들을 잃어버린 왕의 슬픔에 대해 일말의 동의나 동정도 없이, 다만 합리적이지 못한 다윗의 행동에 대해 비난과 협박성의 충고를 거듭하면서, 자기의 공로와 의를 드러내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 결국 요압은 자신의 무정한 태도로 인해 다윗 왕의 마음에 그에 대한 앙금만 쌓게 하였고, 그 동안 쌓아온 그 많은 업적과 용맹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래서 왕상 2장28-34절에서 이후 요압은 자기가 동정을 구하는 자리에서 용서나 동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이 타인에 대해 무자비하고 무정했던 만큼이나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 우리는 자기 딴에 옳다고 생각하고 타인을 충고하면서도 도리어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대표적인 실례로서 욥의 친구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그들은 자기들의 경험과 생각, 일반적인 이치를 따라서 욥을 평가하고 욥이 이래서 고통을 당하고 저래서 환난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욥에게 무조건 회개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 히브리서13장 3절에서 “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나 이들이 주는 이 모든 충고는 그렇지 않아도 알 수 없는 재앙을 당하여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욥을 더욱 더 고통스럽고 괴롭게 하는 것들뿐이었습니다.
- 욥기16장2절에서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 결국 욥은 그들의 말도, 그들의 인격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 고린도후서2장 7절에서 “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 왜냐하면 욥의 친구들이 욥에 대하여 내 뱉은 말들은 그들의 경험과 지식에 제한되어 있는 것일 뿐이고, 욥의 입장을 이해하고 하는 말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을 뿐입니다.
- 우리 역시 다른 사람에게 충고와 조언을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 요셉은 형님들 앞에서 창세기50장 21절에서 “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 다른 사람을 일깨우고 바른 길로 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현실 앞에서 불합리하게 일어나는 문제 앞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충고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또한 공의를 준수하고 사랑으로 균형 있게 충언하고 있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그래서 내가 그 말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기보다 타인의 입장과 형편을 이해하는 지혜와 진실이 나에게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 데살로니가전서5장 14절에서“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내가 상대의 겉모습만을 보고 나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기보다, 타인의 형편과 그들이 가진 내면적인 마음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어 예수님의 마음을 갖도록 훈련합시다.
- 그러므로 비록 내가 딱딱한 충고라 해도 때에 맞추어 부드러운 자세로, 공의와 사랑과 이해에 근거해 전해지는 말들이 충고다운 충고이므로, 진실하게 이해가 동반 된 조언만이 상대를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진정성으로 도울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다가가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