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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느헤미야13장 1-9절

작성자김두옥|작성시간19.11.23|조회수1,810 목록 댓글 0


20191123일 토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Hallelujah!

- 오늘은 소설을 지난 주말 초겨울치고 활동하기 좋은 날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국내외 어려운 현실이지만, 느헤미야의 결단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겨듣고 믿음의 결단으로 굳게 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긍휼히 여기사 은혜의 때를 간구하는 오늘 금요 기도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특별히 복된 주일을 앞에 두고 영적 열매가 있기 위해서 나의 주변을 한번 지혜롭게 잘 챙겨 보시고 전도하는 하루가 되어 보시기 축복합니다.

본 문

{느헤미야131-9}

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 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32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안지라.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 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 제 목 ◑◑◑◑

◗◗ 느헤미야가 단행한 개혁의 구체적 내용들

 

◑◑◑ 본문 이해와 요약 ◑◑◑

13장에서는 느헤미야가 바사를 다녀오고 난 후에 모세의 책을 백성 앞에서 낭독하여 들렸는데, 그 책의 내용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이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갈 때에 그들이 그 길을 방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그들은 발람을 돈으로 매수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하려다가 여의치 않자 여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을 미혹하여 이스라엘로 음행과 우상 숭배의 가증한 범죄를 행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만들었습니다.

- 그래서 모압과 암몬 자손은 영원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던 것이기에 느헤미야가 이러한 말씀을 백성에게 들린 것은 이스라엘 중에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함께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그리고 느헤미야가 알아본즉 유다 백성이 성전을 섬기는 레위 사람들에게 줄 것을 주지 아니함으로 레위 사람들이 다 흩어져 도망하였습니다.

- 그래서 느헤미야는 민장들을 꾸짖고 율법에 따라 십일조 헌물을 드리도록 백성에게 명하였습니다.

 

-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워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게 했습니다.

- 십일조 제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회에 종교 제도를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명하신 제도였으나 율법에 무지한 백성은 십일조 헌물을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근본적인 제도를 무너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 느헤미야는 이러한 백성의 무지를 깨치고 다시 십일조 제도를 부활시킴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한 백성의 신앙을 부흥시키려고 힘썼던 것입니다.

- 무엇보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왔을 때 유다인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 유다 백성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여 통혼한 사실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표면화된 것은 그 자녀들의 절반이 이방의 언어를 사용하고 유다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 언어는 민족의 동질성을 지켜주고 생활 관습과 문화를 전수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유다 백성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유다의 말을 모른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 유다 백성의 동질성은 곧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는 백성이라는 신앙을 내포했고, 언어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곧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상실함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유다의 자녀들이 유다 말을 모른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리로 삼고 살아가야 할 유다의 자녀들이 히브리말을 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울 수 없을 때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가져올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 그리고 느헤미야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중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음을 알고는 그를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었습니다.

-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사위가 된 요야다의 아들을 유다 백성 중에서 쫓아내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 것은 그가 산발랏의 딸인 아내와의 이혼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 특히 유다 백성의 지도자인 느헤미야의 입장에서 대적의 지도자인 산발랏과 내통하는 자가 유다 백성 중에 있음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느헤미야는 바사를 다녀와서 유다 사회에 존재하는 반 율법적인 행태들을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규례들을 지키게 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들이었는데,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였기에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 그래서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로 간구하였고, 백성들을 위해 고국에 돌아갈 것을 이방 왕에게 담대하게 간청했으며, 모든 일을 신중하게 준비하였고, 상황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 옳은 일에는 소신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 뿐만 아니라 난관에 부딪혔을 때에는 기도와 아울러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반대 세력에 부딪힐지라도 과감하게 일을 진행하였으며, 사기가 저하된 백성들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었던 것입니다.

- 유다 백성들이 어처구니없는 범죄를 일삼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이기에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써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행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성도에게 내려 주십니다.

 

◗◗◗ 적용한다면 ◖◖◖

오늘의 핵심 (P.S)

거룩한 근심이 개혁을 만든다.(느헤미야138,9)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참된 성도는 거룩한 근심으로 근심하는 자이며, 평소에는 온유하되 불의에는 단호히 맞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8, 9절을 살펴보면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느헤미야가 도비야의 사건으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고 있다가 새로운 일을 추진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느헤미야가 근심하는 내용이 자기 자신의 건강이나 출세,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것 등 세속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안타까움과 염려에서 비롯 된 근심이기 때문입니다.

 

- 지금 느헤미야는 그 어떤 이기적이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근심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힘들게 세운 거룩한 공동체가 점점 영적으로 병이 들어 있는 모습을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비단 여기에서 만의 근심이 아니라, 그는 이미 수산 궁에 있을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를 위해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느헤미야14절에서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느헤미야 22절에서도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느헤미야서는 거룩한 근심으로 시작해서 거룩한 근심으로 끝을 맺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즉 이 거룩한 근심이 파급이 되어서 이스라엘에 거룩한 공동체가 새롭게 들어설 수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그러므로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성도들 역시 지극히 사적인 문제들로 인해 염려하고 근심하기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우는 사명앞에서 거룩한 문제로 근심하는 것이 복이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 오늘날 과연 누가 진정한 믿음의 성도이고 의인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아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자이겠습니까?

- 아니면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다 맡기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근심 걱정 없이 편히 지내는 자이겠습니까? 하지만 보다 적극적 의미에서 본다면, 그것이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710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은 비록 자신은 염려하고 근심할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염려하고 근심하며 걱정하는 모습이 귀한 것입니다.

-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생각 해 보면, 그가 비록 순간의 선택을 잘못함으로써,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게 되었고, 겨우 거기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얻었지만, 그래도 왜 그가 의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 그가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의 현실을 보면서 그것으로 마음 아파할 줄 알았고, 근심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 베드로후서28절에서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빌립보서228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렇게 자신에게 직접 주어진 나쁜 환경을 바꿀 힘은 없을지라도 그래도 그것으로 인해 심히 마음 아파할 줄 알고, 그것으로 근심하고 걱정할 줄 알 때, 하나님께서도 그를 참 성도로 인정하시고, 그를 구원하십니다.

 

-또한 이런 거룩한 근심에 변화가 되어서 회개하여 간혹 망할 성읍도 개혁되고 구원을 얻는 역사도 니느웨성 백성들처럼 새롭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지금 나 자신의 어떤 사적인 근심 걱정을 잠시 접으시고, 먹고 사는 세상일에 근심이 없을지라도 장차 임하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긴장감으로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염려와 근심을 내 사명임을 알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평소에 느헤미야답지 않고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그것은 바로 도비야의 일로 근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도비야의 세속화에 물들어 있는 그를 하나님의 성전 골방 밖으로 내어던지는 매우 과격한 모습을 보이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확실히 이러한 모습은 느헤미야의 평소 모습이 아닌데, 그는 어디를 보아도 그가 이러한 모습을 보인 사례가 전혀 없던 것입니다.

- 심지어 그는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되고 성문이 허물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 해 분노를 나타내기보다는 그것을 왕 앞에서 기품 있게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또한 힘 있는 자들이 형제들을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매우 진노했지만, 과격하게 처리하기보다는 대회를 열어 설득력 있게 꾸짖어 문제를 해결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이러한 그가 본문에서 보듯 이렇게 과격하고 과감하게 분노를 터뜨린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 아무리 우리가 차분한 성품을 천성적으로 타고났을지라도 기품 있는 분노 정도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상황에서는 과감히 맞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성도라고 해서 늘 온유와 겸손으로 일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 분노를 터뜨려야 할 때에는 분노를 터뜨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보듯이 이 때 공의로운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고칠 수 있는 것을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만일 이 기회를 상실하고 나면, 다시는 고칠 수 없는 불행한 일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간혹 성도들 가운데는 이것을 반대로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평소에는 사소한 일에 자주 화를 내게 되는데, 특히 자기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는 민감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을 쏟아 냅니다.

- 그러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는 당최 어떤 분노를 드러낼 줄 모릅니다.

- 마치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을 할 줄 모르고 있으니 이러한 이들이 어찌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 이런 사람들이 어떤 큰 일나, 혹은 하나님의 일을 해 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하지만 느헤미야와 같이 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낼 줄 모르지만, 특히 자기 개인의 이익과 관련이 있는 일에는 다소 손해를 보아도 넓은 마음으로 넉넉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 사도행전1716절에서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데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과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정의의 세우는 사명과, 예수님의 선한 복음적인 일에 열정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 세상 사람들도 이런 사명자를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의로운 분노와 함께 개혁의 의지로 일어서게 되어 있으니 누구든지 공의와 정의 앞에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의 시각에서 이 나라와 이 사회 그리고 내가 섬기는 주님의 교회를 향해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지금 내가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이 누구 중심인지? 또한 내 가정과 나의 삶을 항하여 어떤 자세로 섬겨 낼 것인지? 과연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참 믿음의 사람은 거룩한 근심으로 근심하는 자이며,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여 겸손과 온유로 예수님과 같이 섬기되 불의와 불법 앞에는 단호히 맞서고 공의와 정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그래서 이런 사람이 선한 일을 담대히 추진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그릇 된 것을 되돌려 놓게 되고, 거룩한 대제사장일지라도 이 개혁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 하였던 것입니다.

-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일에 위대하게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이와 같이 불의와 정의 앞에 당당한 삶이되기를 힘씁시다. 여기에 진정한 가치가 있고, 위로와 축복과 장차 받을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 그러므로 평소의 맡겨진 일과, 사소한 어떤 이해관계에는 사랑으로 관용하되,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바로 세우는 일에 관해서는 민감하면서 단호한 자세로 반응하여 예수님의 피 흘림 같이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굳게 세우는 일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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