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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욥기 5장 1- 7절

작성자김두옥|작성시간19.12.11|조회수1,813 목록 댓글 0
20191211일 수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Hallelujah!!

- 오늘도 가랑비가 내리고 미세 먼지가 환경을 어둡게 하지만, 임마누엘하신 성령 하나님의 뜨거운 불이 임하시는 복된 수요일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 이 시대의 진정한 희망은 고난을 이기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명의 능력을 믿는 성도들의 말씀묵상과 기도의 힘으로 하나님 뜻을 잘 이루어 가는데 있습니다.

- 어려운 고난을 성령의 충만함과 복음으로 정면 돌파하여 선포하면, 그 결과는 놀랍게 회복하게 되고 고난과 역경을 잘 이기는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 문

{ 욥기 51- 7}

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 제 목 ◑◑◑◑

◗◗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

 

◑◑◑본문 이해와 요약 ◑◑◑

5장에서 엘리바스는 특히 미련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멸망시키는 것은 분노와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 본문에서 말하는 분노는 잔인하고, 과격하며, 다툼을 일으키고 원한을 품는 기질을 가리키며, 또한 분노는 절제되지 아니한 감정으로서 충동적이고 사려 깊지 못하며 불안정합니다.

- 그리고 시기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훌륭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악한 감정입니다.

- 그러므로 분노와 시기는 잔인성을 유발시키고 평화와 온유를 파괴하며, 분노와 시기의 근본 동기는 하나님 의식의 결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또한 이것은 교만에서 기인되므로 하나님의 응징을 초래케 하여 멸망하게 됩니다.

- 계속되는 고난은 사람들에게 죄인이 당하는 형벌로 인식 되고, 고난이 크면 가족마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 욥의 경우 자식들은 다 죽고 아내는 욕을 하는 자리에 있으며, 그리고 고난당하는 자의 아픔은 그의 재산의 축소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 재산을 지키려고 해도 올무가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면 순식간에 가난한 자가 됩니다.

- 우리가 어리석은 자가 되어 살아간다면, 우리의 고난의 때에 우리를 건질 사람이 없습니다.

- 엘리바스는 욥에게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는 전능자입니다.

-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시므로 말씀으로 천지를 만드셨고,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 하나님은 세상사를 주관하시는 능력자이며, 그분은 비를 땅에 내리시고,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일으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십니다,

- 또한 궤휼한 자를 파하시고 낮과 밤을 주관하시므로, 비가 내리지 않아서 말라 가는 논밭의 현상을 우리는 가끔 보게 됩니다.

- 과학이 발달하여도 비가 오게 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역사는 좌절에 빠진 자를 일으키셔서 큰일을 이루게 하시는 독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 낮과 밤은 자연의 법칙으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대원칙이지만,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마음대로 조정하시는 것입니다.

 

- 엘리바스는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그의 경책의 대상이므로 징계는 목적을 가지고 오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징계하시는 자의 크고 전능한 인격 앞에서, 겸손히 순종하며 회개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 연단의 손길이 우리에게 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려는 의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 또한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분이시므로, 징계를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참고 순종하는 자에게, 이상과 같은 전화위복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을 엘리바스는 욥에게 권고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4장에 이어서 욥에 대한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이론이 계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자들을 증인으로 들어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죄로 인해 멸망 당한다고 증거합니다.

- 그의 견해는 하나님이 재난을 죄인에게 내리시는 징계의 측면에서만 생각하여 숨은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 엘리바스는 만일 욥이 솔직하게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면,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손을 거두게 될 것이고 욥의 고통을 제거하실 뿐만 아니라 번영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견해는 죄인의 고난과 의인의 축복이라는 지나친 일방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고난이 죄의 결과라면 욥 뿐 만 아니라 예레미야, 스데반, 바울 같은 인물들의 고난까지도 죄의 결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단정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 엘리바스의 권고 목적은 욥의 회개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에로의 회복에 있었는데, 그러나 아무리 선한 동기에서 나온 권고라도 잘 못하면 고난당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조소하는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엘리바스의 경우처럼 고난의 원인을 잘못 이해하여 그릇 된 관점에서 권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도는 곤경에 처한 이웃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며, 사랑과 위로의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해야 옳은 심방이 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오늘의 핵심 (P.S)

고난을 이기면 상을 준비하신다. (욥기57)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아담의 후손이기에 하나님께서 시련과 고난을 주시는 고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시다.

7절을 살펴보면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엘리바스는 인생은 고통을 위하여 났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 인생에게 있어 고통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유별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 인생에게 고난이나 고통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유별스럽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세상에 고통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죄인 인 DNA가 흐르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재벌가는 고통이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염려와 두려움과 고민으로 고통을 호소합니다.

-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유독 나 만 고통당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특히 욥과 같이 매우 성실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이와 같은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 자기처럼 성실하게 살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생각도 본문의 엘리바스의 지적을 통해서 일대 전환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 그는 고난에 대한 불평은 하나님 앞에 죄악임을 말하고, 고난은 이유 없이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욥이 범죄 한 결과임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성도들이 많이 범하는 실수입니다.

- 성도는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소망 중에 하나님의 섭리를 찾는 것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 그래서 인생의 고난과 고통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비록 엘리바스가 이 말을 욥에게 한 의도는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인생이 고통을 위해 났다는 그의 말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 예를 들어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 받으신 것을 생각 해 봅시다.

- 우리 인생 가운데 어느 누가 예수님처럼 고생하였습니까? 그런데도 과연 나는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 고통과 고난은 우리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그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묵묵히 받아들입시다.

- 잠언311-12절에서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마치 고난을 빌려 입은 옷처럼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지 마시고 자신의 몸에 잘 맞추어 입으십시다.

- 그리할 때 그 고난을 당해 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고, 알 수 없는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 그 고통을 통해 보다 강해지고, 새로워지고, 성숙되어 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거기로부터 고통을 잘 감내 해 내는 힘도 지혜도 생기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게 주어진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서 맡은 역할과 사명 앞에 당하는 어려운 역경과 고난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이 역경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십자가 사명 후에 영광의 면류관이 있고 위로와 평강이 있다고 믿어지는지? 이런 크고 작은 고난과 역경을 잘 지고 갈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성도의 고난과 역경을 잘 지고 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 그런즉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시험밖에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10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대부분 고난이 힘들어지는 것은 내가 받아서는 안 될 것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거부부터 하기 때문입니다.

- 히브리서128절에서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고난이나 고통 그 자체의 무게보다 그 원망하거나 불만의 마음이 사실은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 그것을 억지로 인위적으로 피하려다 보니 더 큰 매와 아픔을 맞게도 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바로 이 점을 생각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그 어떤 매와, 채찍과, 연단도 달게 받고 말씀과 기도로 찬송의 능력으로 역풍을 타고 즐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능력과 기적의 강을 건너가게 될 것을 확신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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