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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욥기 6장 1- 7절

작성자김두옥|작성시간19.12.12|조회수1,059 목록 댓글 0


20191212일 목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Hallelujah!

- 오늘은 다시금 날씨가 차갑고 미세먼지가 사라지는 아침음 맞이하면서, 참으로 복되고 행복한 목요일이 될 것입니다.

- 지금은 어느 때 보다 양분 되어 갈등 속에 막혀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며 맡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하겠습니다.

- 인간이 쉽게 변화되기 어렵지만, 성령님이 일하시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므로 이런 일을 기도의 사람에게 맡겨두었음 확신하고 모든 환경과 위기 극복에 강한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 문

{ 욥기 61- 7}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5. 들 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 제 목 ◑◑◑◑

◗◗ 욥이 엘리바스에 대한 답변

 

◑◑◑본문 이해와 요약 ◑◑◑

6장에서는 욥은 자기의 고난과 모든 재앙을 저울에 달 수 있다면 바다 모래보다도 더 무거울 것이라고 말 하였습니다.

- 여기서 '바다 모래'는 무수하고 측량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따라서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운 고난이란 어떠한 아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을 가리킵니다.

- 자신의 고난이 매우 큼을 고백한 욥은 이어서 자신의 말이 경솔했음을 표현합니다.

-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경우를 당하게 될 때이고, 욥이 표현한 소금 없는 싱거운 음식과 닭의 알 흰자위는 모두 이러한 것을 말합니다.

- 욥이 표현한 대로 인간은 항상 입에 단 음식을 즐겨 할 뿐 싱겁고 맛없는 음식 먹기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 그러나 욥은 현재 인생 중 가장 쓰고 맛없는 음식을 입에 넣고 있는 중인데, 또한 그 이유가 자신의 병 때문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연고 없이 맛없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데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 자신을 변호하고 또 그 과정에서 친구들을 비난했으며, 나아가 자신의 도덕적 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한 점 등입니다. 이는 신약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범한 과오와 비슷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 나타나는 이러한 교만의 결과로 후에 하나님께 질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의 사람됨은 그가 고난을 당할 때 나타 욥은 사면초가의 고난과 친구들의 배반 속에서도 그가 가져야 될 신앙적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 참 신앙은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질책성 변론이 끝나자, 욥은 입을 열어 자신의 순수함을 변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욥은 비록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받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엘리바스의 비난은 합당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 욥은 죄가 있기 때문에 재난을 당한다는 친구의 말을 수용할 수가 없었고, 자신이 이런 가혹한 재난을 받을 만한 범죄를 하나님께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하고 친구의 오해를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입니다.

- 게다가 자신을 정죄하고 비방하는 친구들의 냉정함에 대해 책망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 그러므로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1차 답변을 통해 대인 관계에 있어 우리가 취할 태도가 어떠 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비록 자신의 비위를 거스리는 말들을 다른 사람들이 할지라도 쉽게 분을 발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미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오늘의 핵심 (P.S)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욥기64)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4절을 살펴보면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이 보다 섬세하지 못한 영적 분별력의 한 단면을 발견합니다.

- 그것은 그가 자기가 당한 고난을 전능자의 화살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됩니다.

- 이 표현은 하나님이 그의 대적자로 돌변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 하나님께서 대적자로 돌변하셔서 자신을 죽일 듯이 공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 확실히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원수가 되셔서 거의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으시며 몰아붙이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나 봅니다.

 

- 욥기 718-19절에서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 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 극심한 고난을 당하여 모든 혐의를 하나님께 두는 생각은 잘 못이며, 하나님만을 유일한 통치자로 인정하는 사람으로서 취할 태도는 아닙니다.

- 사실 우리가 극심한 위기와 고난을 당할 때 이런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 마치 전능자의 화살이 내 몸에 박히고, 마셔서는 안 될 독을 마셔버린 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가중될 때 우리의 생각은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를 원수와 대적자로 여기시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과 회의, 원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이것은 옳지 못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 우리가 아주 특별하고도 극심한 죄를 짓지 않는 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해 원수로 돌변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 물론 그러한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점에서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그의 변치 않는 믿음, 신실한 믿음을 믿고 사단에게 허락하신 것일 뿐입니다.

- 사랑의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도 자녀들을 대적자로 돌리지 않으십니다.

 

- 결코 사랑하는 자녀들을 원수 대하듯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획책하지 않으십니다.

- 그런 일을 하는 이는 오직 우리의 영원한 원수인 사단 마귀 밖에 없으며, 대적 자 사단의 하는 일이란 늘 이렇습니다.

- 끝까지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요, 유일하신 주재라고 믿는 이들에게 이유 없는 고난이나 지나친 환난을 줌으로써 마치 하나님께서 그러한 불의한 일을 하신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사단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 하나님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끝까지 믿고 의뢰하는 자에게 소망과 참 기쁨의 열매와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 하박국317-18절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믿음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감사하며 찬양 드리게 될 것입니다.

- 그러나 기도의 힘을 잃는다면, 대적 사단 마귀는 언제나 극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모든 혐의를 하나님께 두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떠나 현실에 집착하다보면, 영적 감각이 섬세하지 못함으로 인하여서 욥이 범한 실수와 비슷한 실수를 범하곤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 따라서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에 절규하는 기도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과 뜻을 믿었기에 영혼을 맡긴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사망권세를 이기게 하시고 부활승리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했던 사도바울이 선교 사역을 감당하면서 당하는 많은 고난과 환난을 참아내면서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믿었고, 확신이 있었기에 고난과 환난을 각오하고 복음과 함께 살아 내는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 사도행전1422절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선하심으로, 악한 마귀가 하는 일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분별하여 앎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모든 혐의와 원망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결코 악한 대적들을 박해하듯이 고난 속으로 밀어 넣지 않으십니다.

- 오히려 사단이 우리를 극한 고난 속으로 몰아넣을 때에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잘 이기고 견뎌주길 원하십니다.

-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를 고난으로 밀어 넣은 혐의를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집시다.

-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 다른 사도와 같이 성도들이 주는 것을 받아먹을 권리를 포기하고 자비량으로 선교하고 다녔습니다.

- 그리고 만일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과 고통에 집착한 너머지 욥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났다고 낙심하는 모습은 아닌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지금의 역경 속에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는지? 또한 나 아닌 다른 형제와 이웃 중에서 위기와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전할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 바로 이 사랑을 알았기에 삭개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어놓았고, 마리아는 나드 옥합을 깨뜨렸으며, 바나바가 전 재산을 헌납한 것이라고 봅니다.

- 그런즉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바로 알게 되면,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사랑에서 흔들림 없이 자기 권리를 포기하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자기 몸을 아낌없이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는 삶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바나바와 같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참 사랑의 사람들이 되어 인내하며 승리의 확신으로 복음으로 헌신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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