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6일 토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어제는 12월 구주 강림절 세번째 주일도 특별히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많았으리라 믿습니다.
- 지금 양대 분열 속에 깊은 안개속 같은 현실에 처해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때에 큰 기쁨의 성탄절을 소망하고 한 주간을 기도로 시작합시다.
- 어제는 "귀가 열리면 인생이 열린다." 라는 주제로 말씀으로 설교하면서 우리 민족이 예수님의 치료의 손길로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고 민족의 앞날이 열리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였는데, 이 한주간 에바다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동일하게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욥기 9장 1- 11절 }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7.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 측량할 수 없는 큰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 제 목 ◑◑◑◑
◗◗ 빌닷의 대한 욥의 답변
◑◑◑본문 이해와 요약 ◑◑◑
◗ 9장에서는 욥의 친구 빌닷은 인과응보론적인 고난관을 주장하며 욥에게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므로 의로운 삶을 살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 이에 대해 욥은 빌닷의 전통적 교리에 대하여 일단은 긍정을 합니다만, 욥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이 절대적 의를 소유할 수 없음을 말하며 빌닷이 펼친 논리의 허점을 반격합니다.
-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라는 욥의 말의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의 의의 수준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성을 시편의 기자처럼 장엄한 시적 문체로 표현하던 욥은 이제 자신 스스로 의롭지 못하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펼치신 대자연 앞에서조차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임을 고백합니다.
- 인간은 육신의 질병과 죽음 앞에 무력한 존재인데, 욥은 이렇게 자기 존재에 대한 연약함을 말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였던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욥의 신앙 고백을 기쁘게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셨듯, 모든 죄인인 인간들에게 의인의 자리로 옮길 기회를 허락 해 주시고 계십니다.
- 그리고 인생이 덧없이 빠르게 흘러가기에 욥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친구들의 질책이 가져다 준 정신적 혼란에서부터 원망도 하지만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 그러나 자신의 원통함을 잊고자 결심하여 얼굴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할지라도 고통은 가중 될 뿐임을 욥은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받아주고 계십니다.
- 사실 마음 깊숙이 새겨진 고통은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심화되게 마련이므로 이 또한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그러므로 인간은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인간이 고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간구하는 자세는 진실한 믿음의 태도요, 바른자세입니다.
- 이는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가며 자신의 신앙적 한계를 깨우쳐 가는 신앙인의 영적 성숙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빌닷의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이 전개하고 있는데, 빌닷은 욥을 공격하고 정죄하는 변론으로 일관하지만, 욥은 빌닷의 공격에 일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 다만 빌닷은 논리 중 하나님이 결코 심판을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 하였고, 자신에 대한 정죄를 스스로 하였습니다.
-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은 너무나도 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존재인데 반하여 인간은 미약하고 불완전하며, 무지하며 꾀 많은 존재라고 고백하면서 중재자를 구합니다.
- 욥이 교만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교훈은 인간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을 가르쳐 주며,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를 향해 간구하는 자세는 진실한 믿음의 태도입니다.
- 이는 고통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가며 자신의 신앙적 한계를 깨우쳐가는 신앙인의 영적 성숙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또한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길을 따로 찾아야 하는데,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게 마련이며, 이 길로 가야만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함을 분명히 인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하나님의 의만이 완전하시다. ( 욥기9장 1-3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세상에 완전한 의인이 없다는 것을 욥이 인정하고, 하나님의 하실 일에 항변 할 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 1-3절을 살펴보면 “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욥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 그리고 3절에서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 이는 욥이 자기의 삶이 옳다함을 인정해서 한 말은 아니었으며, 다만 인생이 하나님과 논쟁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었습니다.
- 그래서 욥이 자기가 완전하게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고 중요한 사실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어떤 항변의 생각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 욥이 어떤 사람입니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1장1절).
- 이것은 비단 성경 기록자의 증거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두 차례에 걸쳐 천거 하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 욥기1장 8절에서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욥기2장 3절에서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이러한 욥조차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다고 인정하는데 우리 가운데 과연 자신을 죄 없는 의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양심이 화인 맞은 실로 뻔뻔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말 양심이 바른 사람이라면, 자신을 죄 없는 의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 사실 욥과 같은 사람이 왜 아들들의 생일이 지나면 일일이 불러다가 번제를 드렸겠습니까?
- 그는 이미 인간의 허약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고백하고 있는 대로 마음으로는 선을 원하고 악을 의도하지 않으면서도 실제 행실로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 히브리서 기자가 고백하고 있는 바대로 인간이란 죄에 대하여 피 흘리기까지 대항할 마음도 없고, 그런 능력도 없는 존재입니다
- 히브리서12장 4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 죄에 관한 한 이렇게 나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시편14편 2-3절에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겸손히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 시편39편 9절에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실 수밖에 없으셨는가,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 그런즉 십자가 아래 우리의 모든 무거운 죄 짐을 내려놓고 그의 피로 사유함을 받아야 합니다.
-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느끼고 감사해야 합니다.
- 아울러 아직도 자신의 죄인 됨조차 깨닫지 못하고 죄악의 짐 아래서 허덕이는 이들을 향해서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음과,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음을 널리 증거 해야 합니다.
- 이것은 아무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확실히 느끼고 체험하고 감격한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자신이 얼마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는가를 깨달은 자만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크기를 깨닫고 감사하며, 세상에 나아가서도 주어진 사명과 주님의 명령인 복음을 힘 있게 전하는 것입니다.
- 욥처럼 할 말이 많은 의인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 그러므로 아무리 할 말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을지라도 참으시고,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앞에 의인이란 그리고 완벽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까?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면서 원치 않는 어려운 일에 봉착하게 되면서 주변으로부터 비난과 질책을 받고 의롭지 못하다. 라고 가정한다면, 무엇을 먼저 말할 수 있을는지?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입장은 아닐지?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그리고 의롭지 못함에 대한 시인과 자신의 미천함을 고백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하나님의 의만이 완전하십니다.
- 이 세상에서 행위 완전한 의인이 없다는 것을 욥이 인정하고, 하나님의 하실 일에 항변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 전도서7장 20절에서“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 기가 막히게 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서 말을 아끼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 귀한 것입니다.
-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온전하며, 의인이요, 지혜자로 인정 해 주시고 귀하게 보십니다.
- 시편39편 9절에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때로는 십자가와 같은 부담스러운 중차대한 일을 하면서 생각지도 않는 일에 원망과 비난의 화살을 받을 때가 있지만, 반드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 믿음을 가지고 인내로서 잘 마무리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