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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욥기 22장 1-11절

작성자김두옥|작성시간20.01.02|조회수1,074 목록 댓글 0


202012일 목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Hallelujah! New 2020 Year

- 경자년 새해가 밝았으니 올 해는 더 강건하시고 가정과 교회 위에도 주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 밝아온 새 아침을 새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출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힘차게 출발 해 봅시다.

-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작정하여 읽으시고 듣고 순종으로 행하여 기적을 경험하는 한 해를 열어 가시길 기대 해 봅니다.

본 문

{ 욥기 221-11}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 제 목 ◑◑◑◑

◗◗ 욥의 죄를 비난하는 엘리바스

 

◑◑◑본문 이해와 요약 ◑◑◑

22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선행이나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께 대해서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나서 그는 욥이 극심한 고난 속에 있는 것은 분명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 계속해서 그는 욥의 범죄가 다른 일반적인 죄보다도 극악한 것이라고 비난하였으며, 그는 욥이 당한 고난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욥을 율법의 잦대를 가지고 죄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엘리바스는 욥이 자기의 권세로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으며,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였다고 추정하고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 그러나 이러한 비난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의롭고 순전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 엘리바스는 욥에 대한 판단은 그가 자업자득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나온 것입니다.

-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고 자신이 숨긴 그물에 그의 발이 걸렸다는 식의 논리로서 죄인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욥에게 임한 재난과 고난은 죄악에서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 엘리바스는 지극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언급한 후 율법 앞에 숨겨둔 죄를 고백하라고 재촉하여 욥의 말을 비난하였는데, 그는 욥이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며, 빽빽한 구름이 하나님을 가렸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지 못하시고 궁창으로 걸어 다니실 뿐이라고 했습니다.

- 욥이 이런 말을 했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은 맞지 않는 말인데, 자기의 논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과장하는 것, 또한 악인의 술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제까지 욥의 회의주의 및 불신앙의 소치를 비판하던 엘리바스는 위로자의 자세로 돌아가 연이어 하나님과의 화목과 화해를 해야 복이 있다고 권합니다.

 

- 또한 그는 만약 욥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더 이상 두려운 분이 되지 않고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 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욥의 기도가 응답 될 것이며, 장래가 형통할 것이며 하나님의 빛이 그의 길을 비추어 줄 것과 경영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 여기서 엘리바스가 실수하는 것은 공의의 하나님을 강조하다보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빠지는 엄격하신분으로 평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22장에서부터 31장까지는 욥과 그의 친구들 간의 세번째 변론이 펼쳐지고 있는데, 특히 22장에서는 엘리바스의 세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엘리바스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어조로 욥의 맹목적이고 오만한 독선에 대해 비난하고 있습니다.

- 그는 욥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말을 듣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 엘리바스는 욥이 범하지도 아니한 가상적인 죄들을 열거하면서 욥을 정죄하였는데,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것들 즉 인격이나 신앙, 교양, 도덕성 가치관 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 그러므로 성경은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입술을 잘못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은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을 멀리 해야 합니다.

 

◗◗◗ 적용한다면 ◖◖◖

오늘의 핵심 (P.S)

하나님은 추정이 아니라 실상을 원하신다. (욥기226-9)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살아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 6-9절에서 엘리바스가 욥의 죄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를 제시하는 내용인데, 본문을 살펴보면 마치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인의 죄를 논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 여기서 엘리바스가 구체적으로 제시한 욥의 범죄는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자가 저지르기 쉬운 비열한 것이었습니다.

- 가난한 자로부터의 재물 착취, 굶주린 자와 나그네에 대한 외면, 부정한 방법에 의한 토지 획득, 고아와 과부 등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 등이 그것입니다.

- 욥이 정말 이러한 죄를 범하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 그의 주장은 실로 가증한 것으로서 자기의 사악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사실 엘리바스가 욥이 범하였다고 제시한 악행들은 욥이 실제로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것은 단지 부유하고 높은 신분에 있던 욥이 범하였을 것으로 여겨진 악행들을 추정하며, 과장하여 제시한 말들 뿐이었습니다.

- 말하자면 엘리바스는 욥이 짓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 그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엘리바스는 왜 이렇게 욥을 악인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그가 짓지도 않은 죄까지도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것입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 그것은 현세적 인과응보론에 근거한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 엘리바스는 현세적 인과응보론에 근거하여 욥이 죄인이라고 단정 짓고 욥을 책망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 그러나 욥은 그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하며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친구들의 현세적이고도 기계적인 인과 응보론이 그릇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였습니다.

- 이쯤 되면 엘리바스나 다른 친구들은 자기들의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 그러나 당대 최고의 현자들이었던 친구들은 자기들의 오류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엘리바스는 자기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있지도 않은 욥의 죄를 만들어내는 자충수를 두었던 것입니다.

- 말하자면 엘리바스는 자기를 위하여 욥을 쓰러뜨리고 짓밟는 악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는 자기의 번영을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짓밟지는 않았는지 모르지만, 자기주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하여 욥을 짓밟았던 것이니 참으로 악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 그런데 이러한 악독 곧 자기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고 짓밟는 행위는 인간 사회에서 흔히 목도되는 일입니다 .

- 자기가 살기 위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고 또한 자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비난하며 심지어는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것인 인간 사회의 비열함입니다.

- 이것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동물들의 생존 원리가 인간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는 비단 세속화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엘리바스는 비 신앙인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스스로 자기를 의인으로 여기는 소위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 그런데 그러한 그도 궁지에 몰리게 되자 자기를 위하여 욥을 극악한 죄인으로 몰아세운 것입니다.

- 그처럼 교회 안에서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형제를 짓밟고 모함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 자기 자신의 나쁜 치부를 숨기고 자기 의로움을 과장하여 드러내기 위해 거짓 된 가면을 쓰고 거짓의 웅덩이와 함정을 파고 많은 사람들을 그 속으로 밀어 넣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 지금도 교회 공동체에서 이와 같은 악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갈등과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는 사단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애매히 원인 모르게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은 없는지? 그리고 없는 말에 나도 모르는 한마디 거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회 공동체가 뜬소리로 흔들릴 때에 내가 취해야 할 자세와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기도하는 일과 화평케 하는 일을 그리고 이때에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합시다. 그래서 나주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이타주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 우리 모두는 이러한 일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각별하게 조심해야 하며, 교회 공동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피를 흘려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 로마서151절에서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당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죽어 마땅한 죄인들의 유익을 위해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033절에서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러한 교회 공동체에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 성도 개개인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입니다.

- 따라서 우리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성도를 짓밟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 우리는 고린도 전서1024절에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라는 말씀에 따라 우리 주님과 같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내 자신의 성공과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고 모함하고 회복할 수 없는 절망으로 밀어 넣는 세상 사람들의 사악함을 열거하고 우리를 위해 스스로 억울한 누명을 쓰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로 나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처럼 오히려 형제와 이웃의 약점조차 가려주고 품어주고 용서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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