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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욥기 31장 1- 8절

작성자김두옥|작성시간20.01.13|조회수1,222 목록 댓글 0


2020113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묵상

 

Hallelujah!

-오늘도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기온이 많이 떨어 졌으니 더욱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새해 들어 둘째 주일 예배에 은혜 많이 받으셨지요? 오늘부터 적용되는 삶의 예배에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여 형통한 복을 누리시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늘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누리는 것이 많으므로 언제나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가 되어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만나는 이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 문

{ 욥기 311- 8}

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3.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 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4.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 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6.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7.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8. 내가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 제 목 ◑◑◑◑

◗◗ 욥이 자신의 순결과 결백을 주장함

 

◑◑◑본문 이해와 요약 ◑◑◑

31장에서는 욥은 자신이 고난 받기 전부터의 경건생활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온전함과 결백을 길게 변호해 나갑니다.

- 그 결백의 초점은 성 문화 법을 위반하지 않은 외적인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악을 짓지 않겠다는 그의 내적 동기와 태도에 있습니다.

- 욥이 하나님의 눈에서 자기 눈과 마음이 고정되어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그가 인간 행위를 주장하고 있는 내적 충동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 지켜보시는데서 조금도 처녀에게 주목할 수 없음을 말하였으며, 여기서의 처녀에 대한 주목은 단순히 쳐다보는 것을 넘어 음욕을 품고 주목함을 의미하는데, 욥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죄를 삼가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욥은 자신의 남종이나 여종이 자신과 더불어 시비걸이가 있을 때에 그들의 사정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욥의 이러한 진술은 욥이 모든 사람에 대해 인자함과 참사랑으로 대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데, 사실 그 당시 종이란 신분은 법 테두리 밖에 있었습니다.

- 정의에 대한 욥의 고차원적인 수준은 모든 인류는 종이든 주인이든 같은 한 창조주를 모시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우리는 욥이 만일 자신이 종의 사정을 멸시하였으면,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국문하실 때에 자신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을 통해서도 종을 사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욥은 자신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겼다고 하였는데, 자신이 재물에 의지하거나 소망을 두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 또한 자연을 숭배하지 않았음과 사단의 유혹에 빠진 일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 이처럼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겼던 것인데, 이러한 욥의 신앙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셨던 것도 사실입니다.

- 욥은 우상 숭배와 재물 사랑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악이라고 주장하였기에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러한 죄악을 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욥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재앙이 임하였을 때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재앙이 임하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자기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까지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선대하며 사랑하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과 동시에 악에 대한 심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친구와 친족은 물론 모든 부류에 속한 낯선 자와 나그네에게도 식탁을 준비하고 불편 없이 대접한 욥은 모든 사람을 향해서 자신의 의를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욥은 만약 자기의 대적이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고소하는 소송 장을 자기에게 제출하면 그것을 자신의 어깨에 메거나 머리에 쓰기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 이처럼 당당한 욥의 자세는 하나님께서 어디에 시선이 가 계시는지를 알았기에 공의 앞에 온전하게 살았으므로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는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랫동안 계속 이어진 욥의 변론이 이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욥은 자신을 향하여 주어지고 던져졌던 온갖 형태의 적대 행위와 조롱과 모함에 대해 엄숙한 변호를 펼치고 있습니다.

- 특히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온전하여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성적으로 정결하였으며 불우한 형편에 있는 이웃의 처지를 살피고 구제와 섬김으로서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고 변론하였습니다.

- 욥은 지금까지 자신이 도덕적으로 정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면서 살아왔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본 받아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가 성도임을 가장 확실하게 증거 할 수 있는 힘 있는 언어는 크리스천인의 생활임을 꼭 명심하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오늘의 핵심 (P.S)

겸손하면 높여주신다. (욥기316~8)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성도에게는 항상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 6-8절을 살펴보면 욥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내가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욥은 자신의 행위가 불꽃같이 살피시는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린다 할지라도 결코 부끄러움이 없다. 라고 위험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 그는 자기 걸음이 길 곧 하나님의 교훈과 계명에서 떠나지 않았고, 자기 마음이 눈에 보이는 안목의 정욕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면서서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자신이 어떤 저주와 형벌을 받는다 해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욥은 당당하게 자신의 삶이 의로웠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데, 욥의 변론은 그의 의로운 삶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과연 욥이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린다고 해도 결코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완벽한 사람일까?

 

-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 전혀 부당할 만큼 욥에게는 아무런 허물도 없었을까?

- 사실 이 말은 보통 사람을 두고 상대적으로 볼 때 욥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할 만합니다.

- 하지만 욥도 부패한 본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욥 역시도 죄에 오염 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 그러므로 그에게 전혀 죄와 허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 그는 비록 하나님으로부터도 정직하고 순전한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의 의로움이란 어디까지나 사람들 사이에서의 상대적인 것이요, 하나님의 의와 견줄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 따라서 욥이라도 하나님의 공평의 저울에 달리게 되면, 자랑할 것 없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그러한 점에서 보면 본문의 욥의 솟아내는 발언은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에 하나님이 낮추시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 물론 욥이 자신의 의를 하나님의 의와 같이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주장하였다고 볼 수 는 없습니다.

- 만일 그가 그와 같이 생각하고 또 주장하였다면, 결코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 사실 그는 욥기92절에서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고 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의를 가질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친구들과의 많은 논쟁 과정에서 자기의 무죄를 강조하기 위하여 자신의 의를 지나치게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덧 한 말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 따라서 오늘 믿는 자녀인 우리는 자기의 의로움을 강하게 변론한 욥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의 발언을 좋게 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높이는 것이지 스스로 나를 높이는 것은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들도 종종 욥과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는데, 특히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경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일수록 자기의 의로움을 지나치게 변론하는 경향이면,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 비록 입으로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마치 자기의 의로 구원을 얻을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의 공평의 저울에 달린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일수록 회개의 기도가 거의 없게 되며, 자기를 의롭게 생각하므로 전혀 회개할 시간적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신앙생활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혹 겸손한 사람 아니면 교만한 사람으로 평가되는지? 영적 눈높이를 확인해 보고 그래서 항상 예수 공로 의지하고 주님의 뒤를 겸손히 따라가고 있는지? 또한 나의 언행에 모순과 문제점이 없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보고, 내 마음이 내 영적 눈높이를 점검 해 봅시다. 겸손하면 하나님이 세워주십니다.

- 잠언 3012절에서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이 존경을 받고 있지만, 예수님 눈 밖에 있었습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과거에 자신이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의 고백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율법적으로는 흠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 빌립보서35,6절에서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하여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자기들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말하자면 그들은 율법적으로 흠 없는 자신들의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영적 교만함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 바리세인들의 기도를 살펴보면 누가복음1811절에서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 그리고 그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향하여 죄인이라고 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 이렇게 자기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지나치게 주장하다보면, 교만하게 되어 치명적인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 예수를 믿는 내가 아무리 의로운 삶을 살아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때에,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게 허리를 동여매면 하나님께서 세워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 그러므로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겸손하게 낮은 자로 의로운 삶을 살되 언제든 나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고 나의 의로움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진리의 말씀 거울 앞에 내 모습을 비추어 모난 부분을 기도로 다듬질 해 나가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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