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5일 토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경자년 구정 설날 새 아침이 밝았으니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귀한 믿음의 가정에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 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며 부모님과 형제분들이 서로 화목하시고 행복함으로 좋은 덕담도 나누시고 함께 축복하는 시간들이 되시고 즐겁고 기쁨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은 올해는 어느 해 보다 정치 이야기 그만하고 우리 가정 안에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고 화목과 행복이 넘치며 강건하시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복을 많이 나누는 설날이 되시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욥기 42 장 1-9절 }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7.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 제 목 ◑◑◑◑
◗◗ 욥의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
◑◑◑본문 이해와 요약 ◑◑◑
◗ 42장에서는 욥이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할 수 있게 된 원인은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친히 말씀하시므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 그리고 재난과 고난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심히 답답하고 고통스러워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를 말씀으로 새롭게 깨닫게 되므로 회복 된 욥처럼 성도들은 무지함과 교만함에서 회개할 수 있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들에게 분노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가리켜 말한 모든 것이 욥에게 지적한 말들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과 말에 실수를 범한 것을 지적합니다.
- 특별히 친구들 각자 그들의 편협한 신앙관과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생관을 가지고 형제를 몰아세웠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인간의 한계성에서 나오는 것은 절대적 진리일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만이 분별력의 참 진리입니다.
- 욥의 죄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필요성을 깊이 깨달음으로써 겸손을 통하여 승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 또한 인간의 구원과 승리는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신뢰하고 믿을 때에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 본문 7절에서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들에게 한사람씩 노하시는데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잘 못 적용했던 것을 용서의 방법으로 짐승을 취하여 욥에게 가서 번제를 드리고 용서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욥은 중보자이신 하나님의 복된 사역을 친히 감당하였던 것이고, 중보자로서의 욥은 대 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 하나님께서 욥을 통하여 본받을 점은 그의 겸손함과 그의 순종함과 그가 죄에서 용서를 구할 때 취하는 적당한 태도입니다.
- 욥은 새로이 얻은 딸들을 아들과 같이 동일하게 대우하였고, 환난을 겪은 후 4대의 후손을 보며 형통의 복을 누렸습니다.
◗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욥이 회개한 내용과 하나님이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신 기사입니다.
- 욥의 친구들을 꾸짖으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면에서 오늘날 종교를 번영과 기복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을 질책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 예수님을 믿어 부자가 되고 모든 삶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잘못된, 정성이 부족한 신앙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을 미신 화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만일 하나님의 축복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으로만 나타난다면, 고난당하신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그분의 뒤를 따르며, 고난과 가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이 모두 그릇 된 신앙의 소유자로 판단 될 것입니다.
-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은혜와 회복의 은총을 받게 되었고, 그가 처음 소유한 것보다 두 배나 많은 분량의 재산을 그리고 새로운 7아들과 3딸을 얻었는데, 이는 믿음으로 신앙의 인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잃은 자들은 종국에 가서는 잃은 것을 더 좋고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화목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된다. (욥기42장8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영적 교만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중대한 죄이며, 성도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신분을 잘 소화해 내야 함과 동시에 성도에게 있어서 사랑과 화해는 미덕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입니다.
➩ 8절을 살펴보면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 이러한 제물로 속죄를 위한 번제를 드릴 것을 지시하신 것입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중대한 범죄로 보셨음을 의미하는데, 레위기의 기록에 의하면 제사장이나 온 회중이 범죄 하였을 경우 수송아지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 일반 평민이 죄를 범하면 암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 무려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요구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영적 교만에 대한 잘못을 매우 중대하게 여기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으로 ‘내 종 욥’이라는 표현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이미 7절에서도 한 차례 나왔고, 8절에서만도 두 차례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 여기서 하나님이 욥을 가리켜 ‘내 종’이라고 하신 것은 비하의 의도에서 말씀한 것은 아니라 ‘종’이란 표현에는 그가 하나님께 예속되어 있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은 사실입니다.
- 종이란 노예를 가리키므로 자기 권리나 인격이 없고 비참한 존재인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가 주인이신 하나님께 예속 된 존재를 가리킵니다.
- 따라서 욥을 가리켜 당신의 종이라고 하심은 욥이 비천한 존재인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가 하나님께 철저하게 예속 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을 가진 존재임을 일깨워 주면서 맡긴 신분을 잘 감당해야 될 말씀입니다.
-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들로 하여금 제물을 가지고 욥에게 가게 하시고 욥으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번제를 드리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 욥과 세 친구들이 앞에서 얼마나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까?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향해 아주 무례한 말로 정죄하고 낙담시켰던 것입니다.
- 이에 욥은 너무 서운한 나머지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번뇌케 하고 열 번이나 학대했다고 대놓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 이 정도면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렇게까지 해놓고 욥을 찾아간다는 것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쉽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러한 경우를 당하면 무언가 자기가 당한 만큼 상처를 입히든지, 혹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합니다. 실로 놀랍지 않습니까? 존경스럽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러한 이들의 본을 받아 오늘 우리 역시 용서를 구하는 일이나 용서를 해주는 일에서 결코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 마치 그것을 안 해도 되는데, 미덕으로 ‘해주는 것’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사죄의 요청과 사죄, 그것을 통한 서로 간의 화해는 성도의 의무입니다.
- 혹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미적미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도의 경우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잘못했을 때 흔쾌히 가서 잘못을 빌어야 합니다.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 다소 뻔뻔한 느낌이 들고, 많이 부끄러울지라도 이 일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 그리고 용서하는 입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당장 힘들다고, 당장 얼굴 보기 싫다고,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고 해서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을 기쁘게 받겠다고 하셨으며, 앞에서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욥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었습니다.
- 그런데 이렇게 이들이 가서 욥에게 용서를 구하고 욥 역시 이들의 사죄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번제를 올릴 때 하나님께서는 욥도 수납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또 욥의 친구들에 대해 그들의 우매한 대로 갚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는데, 말하자면 친구들도 기쁘게 받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 마태복음6장 12절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마태복음18장 21-22절에서“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즉 이제 어떤 실수와 잘못을 했든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녀들이 됩시다.
- 그러므로 오늘 구정 설날 아침에 감사 예배드리고 좋은 덕담을 나누어 보시고 지난날 감정의 골이 있어서 허물과 죄로 인한 것이 있었다면 이제 형제가 심지어 이웃과 원수가 그 어떤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용서를 구할지라도 용서를 구한다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용서하고 용납하여 사랑과 화목을 이루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