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밑천
‘밑천’, 바탕·근본을 나타내는 ‘밑’과 돈을 뜻하는 ‘전(錢)’이 합쳐진 ‘밑전’에서 나온 말이다. 장사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본, 곧 돈을 뜻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본금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일을 해나가는 데 밑바탕이 되는 재능이나 돈·기술 등을 가리킨다. 그 밑천이 누구나 평등하게 주어진다면 결과는 공정하겠지만 요즘은 갈수록 차이가 심해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대신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더 설득력을 지닌 세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밑천은 생산 활동의 뿌리임과 동시에 열매라 할 수 있다.
‘자본(資本)’,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자금의 근본이다. 일반적인 의미는 ‘장사나 사업 따위의 기본이 되는 돈’으로 다루고 있으며, 경제학에서는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제외한 생산 수단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자본’ 역시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돈, 즉 밑천인 셈이다. 이 때 부채를 밑천으로 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타인자본’이라 하겠다. 자기자본이 없는 경우라면 이윤을 남기기 쉽지 않다. 오로지 노동력으로 감당해야 하니 말이다. 물론 노동력은 ‘갑’이든 ‘을’이든 간에 모두 행사한다지만 질적인 면에서 그 차이는 상상이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사의 자본은 ‘교과지식’, ‘교육관’ ‘인문적 사고’, ‘활동중심’, ‘창의·융합’, ‘과정중심 평가’와 같은 접근 태도라 할 수 있다. 학생을 교육하는 데 들어가는 밑천이 자금도 아니고 육체적인 땀방울이 아닌, 학생을 대하는 마음가짐, 일종의 마인드인 셈이다.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가’하는 것은 학생을 위한 교사의 마음 준비라지만, 사실은 교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행복한 수업은 학생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교사 역시 한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며 수업하는 것이니 함께 누리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교사 제1의 밑천은 뭘까? 타고난 바가 다르고 과목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 답은 다양할 것이다. 순자산이 탁월하다면 소위 ‘선생 깜’인 셈이다. 자산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배움’에 정진한다면 ‘모범교사’이다. 자산은커녕 부채를 안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면 ‘본받을 만한 교사’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것 없이 오로지 ‘지식’만을 앞세워 몰아간다거나 가르침과 배움이 기능적인 면에 치우친다거나 어느 한 방향만을 고수하는 것을 고집하는 인식이 밑천에 강하게 깔려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자본, 시대가 요구하는 밑천이 바닥난 꼴임 셈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에는 꿈을 이루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끝없이 꿈을 펼쳐 나간다고 한다. 교사의 밑천은 한 두 해 쓰고 말 것은 아니다. 긴 호흡을 가지고 준비해야 하고, 성급하게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 교사 일방으로 이끌어서도 안 된다. 밑천이 바닥나기 전에 미리미리 연수를 통해 준비해 두어야 하고, 교육 패러다임을 뒤따르기보다 한 발 앞서 예측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예고 없이 오는 법은 없다. 그에 걸맞은 밑천을 제 각각 준비할 시간은 언제나 주지 않는가.
교사로 사는 동안 마르지 않아야 하는 ‘밑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교사의 밑천은 물질이라기보다 정신적 영역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마음가짐이나 의지, 나아가서는 배움을 통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밑천이 무엇인지, 또 밑천이 떨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첫째는 ‘공감’ 능력이다. 학생을 성장하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꾸지람도 공감을 통해서, 가르침도 공감을 통해야만 효과를 발휘한다. 이 능력은 교사로 사는 동안 밑천이 바닥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생활지도가 그 어느 영역보다 힘겨운 현실에서 공감 능력은 교육의 시작이면서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감은 긍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용적 태도이면서 동시에 반응하는 것이다. 끝내는 열림에 이르게 하는 동력이다. 교사 간의 담론에서도 공감은 ‘윈윈’의 밑거름이 된다. 부탁을 자연스럽게 하게 하는 힘이고 가벼운 실수쯤은 눈감아 주게 되는 배려이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달릴 수 있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이렇듯 공감은 ‘소통’, ‘나눔’, ‘배려’ ‘협동’ 같은 개념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사적인 수준의 공감을 넘어 공적 공감으로 확대될 때 비로소 교육에 대한 담론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전문성(정체성, 얼)’이다. 교육사회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 ‘전문성’에 대한 시선이다. 전문성이란, ‘특정 분야만 연구하거나 맡아, 해당 분야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성질’이다. 농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을 소위, ‘농사 박사’라 칭한다. 어떤 위대한 성과를 올려 이름 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분야에 심혈을 기울여 얻은 바를 개인 성공에 머물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물론 교사로서 전문성을 갖추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는 있다. 기본 없이 쌓여진 결과는 끝내는 어긋나거나 외곬으로 빠진다거나 미래지향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크게 봐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육과정’이고 또 하나는 ‘생활지도’이다. 교육과정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교육에 대한 ‘성격’, ‘방향’, ‘내용 체계 및 성취기준’, 그리고 ‘교수·학습 및 평가의 방향’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생활지도는 학생을 대하는 관점을 ‘지도’에서 ‘관여’하는 것으로 옮아가야 한다. 다가서는 마음을 갖자는 것이다. 단순히,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눈독’을 들이면 안 된다. ‘인정’하고 꾸준히 받아들인 다음, 마음이 열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전문성이 ‘교육친화적 사고’이다. 달리 말하면 교사도 하나의 ‘교육환경’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임한다는 것이다. 전문성이라는 것이 지식의 양이나 깊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나’, ‘학생과 나’의 관계에서 얻은 바(경험)를 구조화하여 더 나은 치료과정을 구안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구조화’하는 일이다. 구조화는 ‘통일된 조직을 갖춘 체계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험을 되살리는 자세라고도 할 수 있으며, 교사 자신을 힘들지 않게 하려는 체계적인 정리이다. 공감을 통해 길러진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단순반복을 최대한 줄이고 그 대신 ‘나아갈 바’를 갖는 데 있다. 머리나 가슴으로 일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30대의 열정으로 끝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상적 삶(패턴)이 ‘시스템’으로 작동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 구조화이다. 자신을 작동하게 하는 힘을 외부에 두지 않고 ‘내 안’에 두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의 의사가 환자의 제반 상태(검사와 면담,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록해 두었다가 다음번에 만날 때 그 기록에 의존하여 진료해주는 이치와 비슷하다. 각기 고유 교과를 지닌 교사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전문의 의사와 비슷하다. 수업에 따른 교수-학습과정안을 구조화된 틀에 놓고 꾸준히 기록해가는 일, 주 단위로 반복되는 일이나 정기적으로 치루는 각종 평가 자료를 시스템화 하여 정리하는 일, 생활지도에 따른 각종 양식이나 형식을 매뉴얼 화 해 놓는 일도 전문가다운 자세라 할 수 있다.
마지막은 ‘보람’이다. 만족감이나 자부심을 갖고 사는 태도이다. 다른 그 어떤 직업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다. 학생을 귀히 여기는 자세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단언하면 ‘주인답게 하는 삶’이다. 굳이 군말이 필요 없는, 밑천 중의 밑천이다.
기업가에게 필요한 밑천을 학교 안에서 버젓이, 즉 눈치를 보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보란 듯이 들춰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목회자의 설교에게 요구되는 밑천을 교수-학습 활동에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땅의 어머니가 보여준 최고의 순자산이 희생이었다고 하여 이를 학교 현장에서 강요하는 것도 권장할 바는 아니다. 농사꾼의 밑천은 부지런함이다. 연예인의 밑천은 끼라고 할 수 있다. 운동선수의 밑천은 뭐니 해도 기술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것은 대게 비슷할 것이다. 자신과 자신과의 관계,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자신과 일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자본, 자산, 밑천은 넉넉할수록 좋다. 써도써도 닳아지지 않는 것이면 더 좋을 것이다. 쓰면 쓸수록 이익이 늘어나 그것이 다시 자본이 되어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면 더 좋을 것이다. 남은 것은 나누어 주고 그것이 그 누군가의 밑천이 되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교육은 ‘같은 길’을 걷는 집단으로 거듭나 지역사회로부터 긍정의 시선을 받을 것이다.
건강의 밑천이 운동이듯, 가르침의 밑천은 배움이다. 깨진 독이라 물을 담을 수 없다면 그 대신 모래를 담으면 되듯, 자신의 그릇에 맞는 내용을 채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밑천은 얼마든지 튼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변형을 거듭하여 원래 의도하는 바와 다르게 될지라도 근본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원고지 23장. 2019. 11. 14 수능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