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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2. 문턱에서(수업 준비와 수업, 그리고······)
먼저, ‘수업 준비로서의 서비스’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수업 준비란, 교사가 수업 전에 수업 준비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가를 가리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교사는 준비를 통해서 수업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만 수업 자체가 요령이나 단편적 지식의 전달로 흐르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지요. 하지만 어느 직업이나 간에 있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직장 선배가 이를 처음부터 미리 알고 가르쳐 줄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 될지는 모르지만 ‘알아서 해야 한다.’ 시켜서 행할 정도면 이미 늦기 일쑤입니다. 수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마음이 가지 않으면 손이나 머리가 따라 움직이지 않는 이치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준비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역시 교육을 바라보는 자신의 교육관이 어떠하냐 하는 점에 의해서 결정되기 마련입니다. 그 누군들 처음부터 타고나서 행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는 것은 교육을 바라보는 바탕이 되는 지식이나 삶의 환경이 어쩌면 이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러한 준비 영역에서는 학생의 특성, 교사의 특성, 교과 내용의 특성, 지역 사회 특성, 학급 특성을 고려한 수업 준비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런 이유에서 준비 영역은 수업 변인의 각 요소를 적용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중요성에 근거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적절한 자료를 찾거나 창안하는 일이고, 그 자료를 가지고 질 높은 전략을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학생에게 제공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곧 자료가 완비되었다는 전제로 생각할 문제이지요. 준비를 하고 싶어도 준비할 그 어떤 기준, 방향, 목표가 없다면 헛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자료를 새롭게 개발하든지 아니면 변형하는 정도이지만 그것이 단지, 한 시간의 수업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교과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 장기적인 준비가 하나의 흐름을 갖고 있을 때 교사는 언제 어디서나 망설이지 않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사는 일상 활동에서 첫째, 모든 자료를 정리해서 보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둘째, 자료의 정리는 목록화해서 사용하기에 편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셋째, 새로운 학습 이론을 현실에 맞게 정리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대학에서 배웠던 교육학 관련 자료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 합니다. 다섯째, 교육과정에 관한 자료를 완전히 소화해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힘있는 교사, 서비스가 있는 교사를 만드는 주춧돌이 되는 일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교사의 수업이 전반적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지식을 서비스한다고 했을 때, 수업의 준비 정도나, 교과 연구가 수업 내용과 수업 기술에 용해되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 잠재된 준비의 정도라는 능력은 본 수업에서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교직이라는 긴 여정을 놓고 본다면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 부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요즈음 학생에게 쓰는 말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을 요구하듯이, 교사에게도 ‘본 수업의 결과보다는 본 수업을 위한 준비 과정’이 어떠하냐 하는 문제가 교직 생활에서 주요한 가치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는 ‘한 시간 수업’의 문제입니다. 교육 서비스가 가장 최일선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이지요. 수업 영역은 교사가 직접 교실 현장에서 효과적인 수업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으로, 수업의 도입, 전개, 마무리의 단계를 말합니다. 결국 교사의 격을 결정하는 핵심이 되는 영역으로, 수업에서는 학급 분위기, 교사의 수업 행동, 내용 조직, 학습 활동, 학습 과제, 학습 활동의 상호 작용, 평가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동기 유발이 갖는 서비스’의 문제입니다. 우리 교육 현실은 대부분 학생이 교사를 맞이합니다. 학생들이 일정한 공간에서 교사를 기다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사가 사전에 의도된 상황을 연출하여 학생들에게 행할 수 있는 기회는 드뭅니다. 일단, 수업이라는 상황에 돌입하기까지 학생은 얌전함과, 조용한 분위기를 강요당합니다. 이것은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서비스일 것입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학생이 이동을 하여 일정한 장소에 모인다면 교사는 무엇으로 이 상황을 연출할 것인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의 첫 단추는 결국 학생의 몫이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 ‘동기 유발은 잘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다분히 수업 내용의 상징적 의미와 수업 기술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전략적인 시간일 것입니다. ‘무엇으로 동기 유발을 하느냐’ 하는 것은 교사의 경험의 축적일 수 있습니다. 전시 학습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겠고 가벼운 이야기로 분위기를 교사의 의도대로 이끄는 방법이나 학습 목표를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학습 도구의 활용 등, 이 첫 단추는 교사가 해당 단원에 맞게 그때그때 구안하는 경우도 있으나 좀더 적극적인 교사라면 1년 단위로 다양한 동기 유발 거리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서비스는 언제나 지속성을 가질 때에만 그 진정한 가치가 발휘되기 때문에 교사는 수업의 출발점을 항상 애정을 갖고 임하는 자세, 학생들의 전․후의 시간, 전시 수업과의 연관 관계 등을 충분히 숙지하는 것도 습관적으로 해야 할 당연한 서비스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둘째, ‘교사의 설명, 지식 전달, 수업 활동’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들이 어쩌면 이 부분을 위해 달려온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교과 내용과 만나면서 그 의도된 것들이 모두 실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잘 가르치는 교사와 그렇지 못하는 교사를 평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어떠한 태도를 지닌 학생이 교사를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성질의 것이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이 시간의 중요성은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정성이라는 양념이 다른 것들에 비해 좀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 언제나 생방송이라는 상황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번 잘못을 한 경우에는 좀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유의를 해야 합니다. 학생이 없을 때, 손님이 없을 때,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했을지라도 실전에서 소용이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사의 의도된 질문’의 문제입니다.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하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사만이 수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수업의 전면에 나서도록 놀이 마당을 제공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학생이 할 수 있는 서비스는 답변을 하는 것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알면 아는 범주 내에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린 자만이 걷을 수 있다는 성경 구절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질문이라는 씨를 뿌리는 것은 그로 인해 수확이라는 답변을 얻기 위한 의도된 흐름입니다. 아울러 학생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관심의 표명이고, 이는 교사와 관계를 맺겠다고 하는 관심의 표현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질문은 바로 서비스의 상호 작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넷째, ‘시범’을 보이는 문제입니다. 교사가 알고 있는 지식을 학생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일련의 수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학생의 서비스는 열심히 들어주는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혹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들어주면 교사는 그 반응들을 살피면서 자신의 시범이 유효하게 쓰이고 있는지 감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최선의 시범은 철저한 학습 목표의 분석과 교사의 의욕에 의해서 포장되고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야만 줄기와 가지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줄기만이 가득하다거나 가지만 치렁치렁 달려 있다면 학생들은 메말라 하거나 혼란스러워 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겠다는 과분한 친절 때문에 때론 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한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하는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생각해 본다면, 가히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때론 필요하다고 봅니다. 작은 것을 깊게 가르치는 것이 때론 필요하지요.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충분하게 가르치면 될 것입니다. 이런 발상을 갖는 것도 또한 시범을 보이는 문제에서 생각해 볼 것인데, 그것은 ‘교사는 제 3의 학생’이라는 발상 말입니다. 학생이 학생에게 가르치고 대화를 한다고 여긴다면 수업 그 자체가 얼마나 화기애애하고 재미가 있을 지 모릅니다. 다섯째, ‘시간의 안배’입니다. 어차피 한 시간이라는 단위를 임으로 줄이고 늘릴 수는 없지 않을까요? 주어진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 또한 서비스의 항목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단지 그 시간이라는 것이 출발점과 도착점(시작종과 끝종)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고, 1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속도를 조정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즉 학생이건 그 누구든 간에 사람은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역량에 맞게 시간을 조절하면서, 때론 허송 세월로, 때론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몫을 달성해 가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집중해야 할 시간, 이완시켜야 할 시간, 교사 활동의 시간, 학생 활동의 시간들이 서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 말입니다. 10분 정도로 설명할 것이 있는가 하면, 20분 이상을 소비해야 할 것도 있으리라. 이러한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여담 시간, 정도에 맞는 학생의 꾸지람, 과제를 냈을 경우에도 물론 적절한 기간을 주는 것까지 포함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너무나 많이 소비된다거나 지루할 정도로 끈질기게 달려드는 것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음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 듯 합니다. 여섯째, ‘마무리’ 문제입니다. 교사의 입장에서든 학생의 입장에서든 마무리는 1시간 속에서 가장 기분이 좋을 수 있는 시간대입니다. 교사로서는 그 다음 학습 내용을 의식한 준비임과 동시에 본 수업에 대한 정리 단계이지만 학생은 그 다음 시간은 다른 교과목이 이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언제나 곧바로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사보다 학생이 언제나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 끝이 좋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수업에서도 유효한 이치일 것인데, 그것은 이미 전달한 지식이든지 아니면 어떤 가치이든지 간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잘 포장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마무리는 잘 여며야 할 것입니다. 흘리거나 풀리지 않도록 해야 하고 함부로 다루더라도 혼란스럽지 않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무리를 하는 시간에 유념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도 학생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도록 주지시키는 것도 일종의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교사는 혹 다음 시간이 강의가 없어 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음 시간이 바로 이어진다고 보았을 때, 그에 따른 학생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도 또한 배려해야 할 것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