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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현대시

[2015년 EBS수능완성 실전편 B형][실전 모의고사 2회] - 김소월, 「길」/ 신경림, 「길」

작성자구렛나루|작성시간15.11.01|조회수2,953 목록 댓글 0

[40~4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 김소월, -

() [A][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B][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신경림, -

 

40 ()()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청각적 심상을 통해 화자의 처지를 부각하고 있다.

어조의 전환을 통해 정서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특정한 종결 어미를 반복하여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다.

말을 인용하는 방식을 활용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명을 활용하여 향토적 정서를 환기하고 있다.

 

41 <보기>에서 선생님이 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

<보기>

선생님: ‘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라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자기 탐색의 여정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자기 탐색의 여정이라는 관점에서 ()열십자 복판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면 작품의 주제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 시인이 열십자 복판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떤 길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자기 탐색을 하기가 힘든 화자의 괴로운 처지를 나타낸 것이군요.

공중기러기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화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희망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군요.

바람직한 삶의 방향성을 탐색하면서, 부정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군요.

고향에 돌아갈 방법을 결정하지 못했던 화자가, 자기 탐색을 통해 귀향의 방법을 결정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군요.

인간 본연의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화자가, 다양 한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군요.

 

42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화자의 유랑 생활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② ㉡: 갈 수 있는 곳임에도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부각하고 있다.

③ ㉢: 물이 가로질러 흐르면서 길이 단절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④ ㉣: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길의 역할을 드러내고 있다.

⑤ ㉤: 삶의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때가 있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43 [A][B]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A][B]와 달리 과 관련된 통념을 말하는 사람들을 옹호하고 있다.

[A][B]와 달리 의 속성과 대비되는 세속적 삶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B][A]와 달리 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B][A]와 달리 을 걷기 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A][B]는 모두 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한 세상 사는 이치만을 강조하고 있다.

 

 

40 41 42 43

 

현대시 [40~43]

() 김소월,

해제

이 시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삶과 비애를 드러낸 작품이다. 작품 속 화자는 나그네로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고향이 있지만 찾아갈 수 없는 상황, 고향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차 가고 배 가는 곳’) 그래도 갈 수 없는 괴로운 상황이 깊은 비애감을 자아낸다. ‘가마귀의 울음소리는 화자의 불안한 심리를, 날아가는 기러기는 화자의 안타까운 상황을, ‘갈린 길은 갈 곳 없는 화자의 괴로운 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시 전체에서 3음보 율격이 조금씩 바뀌면서 반복되고 있는데, 3음보가 하나의 연으로 구성된 2연은 더욱 천천히 읽힘으로써 나그네의 망설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주제 나그네의 비애와 한

1: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화자)의 삶

2: 갈 곳 없는 화자의 상황

3: 오라는 곳이 없는 비애

4: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슬픔

5: 기러기에게 하소연하는 화자의 모습

6: 열십자 복판에서 망설이는 화자의 모습

7: 갈 곳 없음을 확인하는 화자의 비애

 

() 신경림,

해제

이 시는 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서 길의 온전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밖으로 난 길만 인식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길에 나섰다가 낭패를 겪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길이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길의 진정한 가르침은 외부적 상황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걸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즉 안으로 난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스스로 겸손함을 지니게 된다. 시인은 사람이 길을 만든다.’라는 일반적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주제 밖으로 난 길과 안으로 난 길에서 얻는 깨달음

1~2: 사람들의 뜻을 순순히 좇지 않는 길

3~6: 사람을 낭패시키는 길

7~9: 낭패를 통해 사람을 가르치는 길

10~12: 사람살이 구경을 통해 사람을 가르치는 길

13~15: 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16~19: 길이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고분고분한 길

20~21: 안으로 난 길의 뜻을 깨달은 사람들

 

40 _ 작품 간의 공통점 파악 답

특정 종결 어미의 반복

()의 경우에는 ‘-’, ‘-와 같은 종결 어미가, ()의 경우에는 ‘-는다’, ‘-와 같은 종결 어미가 반복되고 있다. (), () 모두 특정한 종결 어미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다.

청각적 심상

()에는 가마귀 가왁가왁과 같이 청각적 심상을 통해 화자의 처지를 부각하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는 화자가 전면에 나타나지 않으며, 청각적 심상을 통해 화자의 처지를 부각하고 있지 않다.

어조의 전환

어조의 전환이란 작품이 진행되면서 종결 어미 등의 변화를 통해 화자의 말투나 태도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의 경우 화자가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독백적 어조가, ()의 경우 깨달음을 전달하는 차분한 어조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어조가 전환되면서 정서의 변화를 강조하는 장면은 (), () 모두에 보이지 않는다.

말을 인용하는 방식

()의 화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의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오거나 가져오지는 않고 있다. ()의 경우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와 같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명 활용

()의 경우 정주 곽산과 같이 구체적인 지명을 활용하여 고향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의 경우 구체적 지명이 언급되지 않았으며, 향토적 정서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41 _ 소재의 기능 파악 답

어떤 길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어제도 하룻밤 / 나그네 집에서 머문 화자는 자기 탐색의 과정을 통해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화자가 마주하는 열십자 복판은 어떤 길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그로 인해 자기 탐색을 이어 나가기가 힘든 화자의 괴로운 처지를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희망

()의 화자는 기러기를 부르면서 자신의 이런저런 상황을 하소연하고 있다. ‘기러기는 공중에 난 길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화자와는 다르다. 또한 열십자 복판에 서서 괴로워하는 화자의 모습을 볼 때, ‘마음속에 품고 있는 희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부정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

()의 화자는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토로하지만,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 나은 삶을 바라면서도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을 뿐, 현실 극복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귀향의 방법

()의 화자는 자신의 고향인 정주 곽산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 밝히고 있다. 이는 그곳에 갈 수 있는 수단은 있어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열십자 복판을 통해 귀향의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가능성 탐색

()의 화자는 열십자 복판에 서 있지만, 어떤 길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열십자 복판의 어떤 길을 걸어도 나그네로 사는 화자의 괴로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십자 복판을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회로 볼 수는 없다.

 

42 _ 구절의 의미 파악 답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길의 역할

()에서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사람들에게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는 존재로 그려진다. ‘세상 사는 이치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살이가 소외된 사람들만의 삶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길의 역할을 드러내려는 것도 아니다.

유랑 생활의 반복

나그네 집은 나그네로 살면서 떠돌아다니는 화자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시어이다. 이때 어제도라는 시구에서 보조사 는 그러한 삶이 반복적으로 계속되었음을 드러낸다. 어제도그리고 오늘도 이러한 삶이 반복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갈 수 있는 곳,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

화자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정주 곽산이라 명시하고, 그곳 또한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 고향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도 못 가는 것은 화자의 개인적 상황이나 처지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은 갈 수 있는 곳임에도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부각한다.

길이 단절된 상태

의 주체는 이다. 화자는 길이 사람을 끌고 가다가’,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길을 가던 사람이 큰물을 만나 더 이상 가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물이 가로질러 흐르면서 길이 끊겨 있는 상태를 형상화한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 아는 사람에게 길이 취하는 태도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길을 걸으며 도 만나고 향기도 느낀다. 결국 길의 뜻을 깨달은 사람들이 삶의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43 _ 작품의 내용 파악 답

의 진정한 의미

[A]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알지만, [B]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B]와 같은 모습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이다. 인생의 을 걸으며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B]의 사람들은 [A]의 사람들과 다르다.

과 관련된 통념

[A]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아는 말하는 사람들이다. 길을 사람이 만든다는 생각은 평범한 사람들의 통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행에서 길은 순순히 사람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통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을 옹호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의 속성과 대비되는 세속적 삶

()에서 은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이 세속적 삶과 완전히 대비되는 속성을 지닌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A]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담고 있을 뿐, 길의 속성과 대비되는 세속적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B]에서도 세속적 삶의 가치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을 걷기 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

[B]에 제시된 사람들은 진정한 길의 뜻을 파악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B]에 나타나는 태도는 을 걷고 나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 사는 이치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친다는 것은 이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A]에 대한 통념을 비판하면서 길의 뜻을 드러내고 있고, [B]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의 태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둘 다 세상 사는 이치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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