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선우사(膳友辭)–함주시초(咸州詩抄) 4 / 백석
(나) 벼 / 이성부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혜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세괃은: 성질이나 기세가 억센.
(나)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01.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계절적 배경을 통해 애상적 분위기를 환기하고 있다.
②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③ 특정한 상황을 가정하여 화자의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④ 명령적 어조를 통해 대상에 대한 화자의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⑤ 영탄적 표현을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02. <보기>를 바탕으로 (가)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백석의 시에는 음식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음식 서사’의 특징은 음식이란 존재를 차별 없이, 공동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선우사(膳友辭)」에서 ‘선(膳)’은 ‘반찬’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시에서 음식은 ‘친구’로 등장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상식적 차원에서 보면 서로 이질적인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그들과 자신의 유사성을 확인하게 되고, 이를 통해 화자와 그들의 관계는 동류 관계로 나타난다.
① ‘흰밥’, ‘가재미’는 ‘나’와 서로 정다운 공동체로 설정되어, ‘나’와 ‘흰밥’, ‘가재미’의 관계는 ‘우리들’이라는 동류 관계로 나타나는군.
② ‘해정한 모래톱’, ‘바람 좋은 한벌판’, ‘외따른 산골’은, ‘가재미’, ‘흰밥’, ‘나’ 모두 욕심 없이 착하고 정갈하게 자랐음을 보여 주는 공간으로, ‘우리들’이 서로 이질적인 대상임을 부각하는군.
③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낡은 나조반’에서 ‘쓸쓸한 저녁’을 같이 맞이한다는 유사성을 통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되는군.
④ ‘우리들’은 욕심 없는 마음씨와 착한 심성을 지녔다는 유사성이 있는 친구들로, 화자는 이로부터 가난하고 외로운 처지를 이겨 내는 힘을 얻고 있군.
⑤ ‘세상’은 욕심 없고 착하며 너무나 정갈한 ‘우리들’과는 이질적인 대상으로, 화자는 이러한 ‘세상’에서 벗어난 삶을 긍정하고 있군.
03. <보기>를 바탕으로 (나)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은 ‘벼’를 통해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고난과 시련에 맞서 눈물과 땀을 흘리면서도, 삶의 뿌리를 내리고 역사를 전개해 온 민중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① ‘햇살 따가워질수록 / 깊이 익어’는 고난과 시련이 심화될수록 오히려 강화되는 민중의 저력을 드러낸다.
② ‘서로의 몸을 묶어 / 더 튼튼해진 백성’은 개체로 있을 때보다 공동체적 유대감을 갖고 함께 할 때 더욱 강해지는 민중의 힘을 나타낸다.
③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 마음’은 부정적 현실 속에서 심화되는 민중의 절망과 체념을 드러낸다.
④ ‘떠나가며 바치는 / 이 넓디넓은 사랑’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실현하는 민중의 모습을 나타낸다.
⑤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민중의 강한 생명력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