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8]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 (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 조지훈, 「봉황수」
*추석: 지면에 까는 데 쓰는 직사각형의 돌.
*품석: 조선 시대에, 품계를 새겨서 대궐 안의 정전 앞뜰에 세운 돌.
(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 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 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 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26.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대조적인 상황을 활용하여 화자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② 화자의 삶에 대한 회상을 활용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③ 공간의 이동에 따라 변화하는 화자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④ 대상을 부르는 방식을 사용하여 시적 상황을 마무리하고 있다.
⑤ 외부 대상을 먼저 보여 주고 화자의 내면을 나중에 드러내고 있다.
27. (가)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화자는 ‘벌레 먹은 두리기둥’이나 ‘빛 낡은 단청’과 같은 쇠락한 모습을 활용하여 망국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② 화자는 ‘거미줄 친 옥좌’의 이미지를 통해서 망국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③ 화자는 ‘쌍룡’과 ‘봉황새’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지난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④ 화자는 ‘추석’과 ‘품석’ 등의 소재를 활용하여 시적 공간이 고궁임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⑤ 화자는 ‘구천에 호곡하리라.’에서 ‘봉황새’를 통해 새로운 역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28. <보기>를 고려하여 (나)를 감상한 학생들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독자는 문학 작품을 읽는 동안 작품 속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생각을 파악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먼저 그 인물들이 어떤 시각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들의 시각에서 독자는 자신을 성찰하고 그들의 삶과 관련하여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풍부한 내면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① 영수: 화자가 ‘설렁탕집’ 주인이나 ‘야경꾼’에게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에서 작은 일에만 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
② 서진: 이 작품은 나도 혹시나 화자처럼 옹졸한 생각을 하며 살지 않았나, 그동안의 생활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어.
③ 세인: ‘소설가’와 ‘정보원’ 등과 같은 소재를 사용하여 화자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줌을 알 수 있었어.
④ 정민: ‘우습지 않으냐’에서 화자는 부정적인 현실 상황에 맞서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자조적인 태도를 보임을 알 수 있었어.
⑤ 진수: ‘얼마큼 작으냐’를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화자는 사소한 일에만 연연하는 소시민적 삶을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