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황만근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 사람 누구든 하루 이틀, 또는 한두 달 집을 비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황만근만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모든 사람이 그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적극 적으로 황만근을 찾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면서 있었고 없어 서는 안 되는 존재이면서 지금처럼 없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했다. 두어 해 전에야 신대 1리로 들어와 황만근의 탄생과 성장, 삶을 처음부터 지켜보지 못한 민 씨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젊은 축에 드는 마흔 다섯 살의 황영석은 황만근이 벽돌을 찍고 구덩이를 파서 지은 ㉡마을 회관 변소에서 분뇨를 퍼내면서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만그이 자석이 있었으마 내가 돈을 백만 원 준다 캐도 이런 일을 안 할 낀데. 아이구, 이 망할 놈의 똥 냄새, 여리가 싸놔 그런지 독하기도 하네. 이기 곡석한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도 모르겠구마.”
황만근이 있었으면 군말 없이 했을 일이었다. 늘 그렇듯이 벙글벙글 웃으면서.
“만그이가 있었으모 저 거름이 우리 밭으로 올 낀데. 만그이가 도대체 어데 갔노.”
마을 회관 곁 조그만 밭에 채소를 심어 먹는 여 씨 노인도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황만근은 마을 공통의 분뇨를, 역시 자신이 판 마을 공통의 분뇨장으로 가져가서 충분히 익힌 뒤에,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황영석처럼 제가 펐다고 바로 제 밭에 가져다가 뿌리지는 않았다. 특히 여 씨 노인처럼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잣몸이 된 노인들에게는,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더 자주 거름을 가져다주었다.
“만그이한테 물어보자.”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다가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공평무사한 것이 황만근의 평생의 처사였다. 그에게는 판단 능력이 없는 듯 했지만 시비를 물으러 가면, 가노라면 언제나 공평무사한 자연의 이법에 대해 깨우치게 되고 분쟁은 종식되었다.
또는 물어보나 마나 명약관화한 일을 두고도 황만근을 들먹였다.
“만그이도 알 끼다.”
또한 동네에 오래도록 내려오는 노래, 구태여 제목을 붙이자면 ‘황만근가’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면서 사람들은 황만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만근가, 황만근의 노래, 아니 황만근에 관한 노래는 이렇게 부른다. 먼저 “황” 하고 단호하고 크게 소리쳐서 주의를 끈 다음, 한 박자를 쉰 뒤에 “마안-그은” 하고 두 박자로 느릿하게 부른다. 이어서 “백 분(번), 찝 원(십 원), 여 끈(열 근), 팔 푼, 두 바리(마리)” 하고 빠르게 센다. 마지막으로 “그래, 바안-그은” 하고 느긋하게 마친다. 이 노래에는 황만근의 일생이 들어 있고 모든 노래가 그렇다시피 노래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대체 경험과 정서가 녹아 있다.
<중략>
일주일 뒤에 황만근은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그를 안고 돌아왔다. ㉢한 항아리밖에 안 되는 그의 뼈를 담고 돌아왔다. 경운기도 돌아왔다. 수레는 떼어 내고 머리 부분만 트럭에 실려 돌아왔다. 황만근 아니면 그 누구도 작동시킬 수 없는 그 머리가, 바보처럼 주인을 태우지 않고 돌아왔다.
황만근, 황 선생은 어리석게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해가 가며 차츰 신지(神智)가 돌아 왔다. 하늘이 착한 사람을 따뜻이 덮어 주고 땅이 은혜롭게 부리를 대어 알껍질을 까 주었다. 그리하여 후년에는 그 누구보다 지혜로웠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듯 그 지혜로 어떤 수고로운 가르침도 함부로 남기지 않았다. 스스로 땅의 자손을 자처하여 늘 부지런하고 근면하였다. 사람들이 빚만 남는 농사에 공연히 뼈를 상한다고 하였으나 개의치 아니하였다.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나 함께하였고 공에는 자신보다 남을 내세워 뒷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평생 어머니 봉양을 극진히 했다. 아들 에게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고 훈육을 할 때는 알아듣기 쉽게 하여 마음으로 감복시켰다.
선생은 천성이 술을 좋아하였는데 사람들은 선생이 가난한 것은 술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은 어느 농사꾼보다 부지런했고 농사일에도 익어 있었다. 문중 땅과 나이가 들어 농사가 힘에 부친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짓되 땅에서 억지로 빼앗지 않고 남으면 술을 빚어 가벼운 기운은 하늘에 바치고 무거운 기운은 땅에 돌려주었다. 그러므로 선생은 술로써 망한 것이 아니라 술의 물감으로 인생을 그려 나간 것이다. 선생이 마시는 막걸 리는 밥이면서 사직(社稷)의 신에게 바치는 헌주였다. 힘의 근원이고 낙천(樂天)의 뼈였다. 전일에, 선생은 경운기를 끌고 면소재지로 갔지만 경운기를 타고 온 사람이 없어 같이 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다시 ㉣경운기를 끌고 백릿길을 달려 약속 장소인 군청까지 갔다. 가는 동안 선생은 여러 번 차에 부딪힐 뻔했다. 마른 봄바람에 섞인 먼지가 눈을 괴롭혔다. 날은 흐렸고 추웠다.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운기에는 비를 피할 만한 덮개가 없어서 선생은 뼛속까지 젖어 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선생이 군청 앞까지 갔을 때 이미 대회는 끝나고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가져다줄 생선을 사고 몸을 녹인 선생은 날이 어두워 오는 줄도 모르고 경운기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경운기에는 빠르게 달리는 차량의 주의를 끌 만한 표지가 없어서 선생은 몇 번이나 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때마다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바람에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어두워지면서 경운기는 길 옆의 논으로 떨어졌고 수레는 부서졌다. 결국 선생은 그 밤 안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선생은 경운기에 실려 있는 땅의 젖에 취하여 ㉤경운기 옆에 앉아 경운기를 지켰다. 그러나 경운기는 선생을 지켜주지 않았다. 추위와 졸음으로부터 선생을 지켜 주지 못했다. 아아, 선생이 좀 더 살았더라면 난세의 혹염에 그늘의 덕을 널리 베푸는 큰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니랴.
단기 사천삼백삼십 년 오월 스무날
본디 묘지에나 쓰일 것〔墓碑銘〕이지만 천지를 대영혼의 집으로 삼은 선생인지라 아무 쓸모도 없는 이 글을, 새터말로 귀농하였다가 이룬 것 없이 다시 도시로 흘러가며, 남해인(南海人) 민순정(閔順晶)이 엎디어 쓰다.
01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서술자를 교체하여 새로운 갈등을 암시하고 있다.
② 회상의 방식을 사용하여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③ 현학적인 대화를 통해 인물의 고고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④ 서술자의 상상을 통해 두 개의 사건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⑤ 주인공의 내적 독백을 삽입하여 인물의 행동에 담긴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02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은 간접 인용의 방식으로 ‘황만근’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가져왔던 인식을 보여 준다.
② ㉡은 마을 사람들에게 ‘황만근’의 부재와 그에 따르는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다.
③ ㉢은 허무하게 죽은 ‘황만근’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해 준다.
④ ㉣은 경운기를 끌고 약속 장소로 간 ‘황만근’의 행동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의 발단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⑤ ㉤은 갑자기 닥친 위기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고고한 자세를 잃지 않는 ‘황만근’의 성격을 보여 준다.
03 윗글은 전(傳)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이 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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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
정의 |
어떤 사람의 ⓐ독특한 행적을 기록하고 여기에 교훈적인 내용이나 비판을 덧붙인 한문 문체의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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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
인물의 행적, ⓑ본받을 만한 덕목, 인물평 등으로 구성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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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
•주로 ⓒ공동체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을 대상으로 삼음. •인물평에 작가의 ⓓ특별한 시각이 담기게 되며, 인물평은 ⓔ앞 부분과 구별되는 진술 방식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음. |
① ‘황만근가’에는 ‘황만근’이 살아온 ⓐ의 일면이 담겨 있다.
② 공평무사함은 ‘황만근’이 지닌 ⓑ의 하나로 볼 수 있다.
③ ‘황만근’이 ⓒ가 된 이유는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인물이었기 때문 이다.
④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황만근’의 진가를 꿰뚫어 보는 인물을 서술자로 내세워 ⓓ가 드러나도록 하였다.
⑤ 앞부분의 서술과 다른 ‘묘비명’의 형식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는 데서 ⓔ와 유사한 특징 을 찾을 수 있다.
도움자료
[2015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15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01 ② 02 ⑤ 03 ③
이 소설은 반편이로 취급받는 가난하고 어리석은 농부 ‘황만근’의 일대기를 통해 농촌의 메말라 가는 인정을 풍자한 작품이 다. 남의 비웃음과 놀림에도 개의치 않고 평생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웃을 위해 살았던 황만근이 어느 날 갑작스런 사고로 죽게 된다. 황만근은 언제나 있어도 있으나 마나였지만 갑작스런 황만 근의 부재는 마을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빈자리로 느껴지게 된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그의 진면목을 알아본 인물인 ‘민 씨’에 의해 전달되는 그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진정성과 순수성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황만근의 인품에 대한 예찬과 인정이 메말라 가는 농촌 사회에 대한 풍자
전체 줄거리
신대리에 사는 가난한 농부인 황만근은 전쟁 때 아버지가 죽고 유복자로 태어나 편모 밑에서 자라났다. 지능이 모자라 아이들에게까지 반편이라는 놀림의 대상이 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늘 넘어지며, 혀도 짧아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어느 날 자살 하려는 처녀를 구해 아들 하나를 얻지만, 여인은 곧 떠나 버린다. 이후 그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아들을 부양하면서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염습과 산역, 마을의 똥구덩이를 파는 울력, 가축도살 등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렇다고 공치사를 늘어놓을 재간도 없다. 그는 마을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면서도 없기도 한 사람으로 모두들 그를 바보라 하지만, 두어 해 전에야 마을로 들어와 황만근의 탄생과 성장을 알지 못하는 민순정만은 그의 진면목을 안다. 그러던 황만근이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졌다.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던 날 외에는 단 하루도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는 황만근이 사라진 것이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지던 마을 사람들에게 반편이 황만근의 부재는 곧 자신들의 불편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농가 부채 탕감 촉구를 위한 전국 농민 총궐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두들 버스나 트럭, 승용차를 타고 대회에 나가지만, 황만근만은 이장 의 지시대로 백 리 길을 경운기를 끌고 갔다가 궐기 대회에는 참가 하지도 못하고 돌아오던 길에 그만 경운기가 논바닥에 처박혀 그 옆 에서 동사(凍死)하고 만 것이다. 결국, 황만근은 없어진 지 일주일만에 뼈로 돌아온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②
이 글은 황만근의 과거 행적을 회상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황만근이란 인물의 삶을 일정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① 서술자가 교체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그것으로 새로운 갈등이 암시되고 있지는 않다.
③ 학식이 있음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대화는 나타나 있지 않다.
④ 서술자의 상상을 통해 두 개의 사건이 연결된 부분은 나타 나 있지 않다.
⑤ 주인공의 내적 독백은 나타나 있지 않다.
02 구절의 의미 파악 ⑤
㉤은 인물의 의연하고 고고한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우둔하면서도 고지식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① 마을 사람들이 평소 황만근을 바보로 여겨 왔음을 알 수 있다.
② 마을 회관 변소에서 분뇨를 퍼내는 일은 평소에 황만근이 해 왔던 일이므로, 이 일은 그의 부재와 그에 따르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③ ‘한 항아리밖에 안 되는 그의 뼈’는 허무한 그의 죽음을 실감 할 수 있게 한다.
④ 경운기를 끌고 혼자 약속 장소로 간 그의 행동이 죽음의 발단이 되었다.
03 서사 구조에 대한 이해 ③
황만근이 ⓒ가 된 이유는 마을 일을 위해 항상 앞장서서 헌신하는 인물이었고, 늘 공평무사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
① ‘황만근가’에는 황만근의 일생이 들어 있다고 했으므로, 황만근의 독특한 행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② ‘공평무사’함은 황만근이 지닌 본받을 만한 덕목의 하나로 볼 수 있다.
④ 황만근의 진가를 꿰뚫어 보는 민순정을 서술자로 내세워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에서 그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⑤ 일반적인 사건의 서술로 되어 있는 앞부분과 달리 뒷부분 은 ‘묘비명’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