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문구, 「우리 동네 김씨」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부면장이 한바탕 들었다 놓은 뒤에야 겨우 뭘 좀 하는 곳 같아졌다. 부면장이 얼굴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사실은 이 시간이 교육 시간입니다마는, 가만히 앉어서 자리 흐틀지 말구 담배들이나 피서유. 지 자신이 교육에 대비하여 학습해 둔 게 있는 것두 아니구 해서 베랑 헐 말두 웂습니다. 또 솔직히 말해서 지가 예서 뭬라구 떠들어 봤자 머릿속에 담구 기억허실 분 두 웂을 줄로 알구 있습니다. 그냥 앉어서 죄용히 담배나 피시며 시간을 채우시도록 허서유. 그런디 퇴비들을 쌓실 때는 '몇 가지 유의를 해 주시라 이겝니다. 위에서 누가 원제 와서 보자구 헐는지 알 수 웂으닝께, 퇴비장 앞에는 반드시 패찰과 척봉(尺棒)을 꽂으시구, 지붕 개량 허구 남은 썩은새나 그타 여러 가지 찌끄레기루 쌓신 분들은 흔해 터진 풀 좀 벼다가 이쁘구 날씬허게 미장을 해 주서유. 정월 보름날 투가리에 시래기 무쳐 담듯 허지 마시구, 혼인 때 쓸 두붓모처럼 깨끗허게 쌓 주시라 이겝니다. 퇴비는 일 헥타(㏊) 당 '몇 키로(㎏) 이상이라는 것은 잘들 아시구 기실 중 믿습니다마는, 아무쪼록 식전에 두 짐 저녁에 두 짐쓱은 반드시 비시도록 당부허는 것입니다.”
그때 김은, 퇴비는 지저분할수록 거름이 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입 밖으로는 무심히
“모냥 내구 있네. '몇 평이 일 헥타른지 워치기 알어.”
하고 두런거렸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거였지만, 순전히 남의 말에 토 달기를 예사로 해 온 입버릇 탓이었다. 그러나 좌중은 무심히 넘어가지 않았다. 김의 음성이 너무 컸던 것이다.
“뭐여? 이봐유. 뭘 모른다는규? 구식 노인네두 다 아는 상식을 당신 증말 몰러서 헌 소리유?”
하며 부면장이 따져 들기 시작했다. 할 말도 없는데 시간은 남고 처져 심란하던 중 계제에 잘됐다는 눈치가 역연했다. 부면장은 마이크 쥔 손을 뒷짐진 채 육성으로 떠들고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워디를 가 봐두 으레껀 한두 사람씩 있어. 그러나 여기는 그런 농담 헐 디가 아녀.”
김은 남의 눈이 수백이라 구새 먹은 삭정이 부러지듯 싱겁게 들어가기도 우습고, 그렇다고 졸가리 없이 함부로 말대답하기도 그렇겠고 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마음에 없던 말을 엉겁결에 뱉었다.
“알면 지랄헌다구 물으유? 평(坪)두 있구 마지기두 있구 배미두 있는디, 해필이면 알어 듣기 그북허게 헥타르라구 헐 건 뭬냐 이게유.”
[A][“천동면이 이렇게 촌인가…… 저런 딱헌 사람두 다 있으니. 나 보슈. 국가 시책으루, 미터법에 의하야 도량형 명칭 바뀐 지가 원젠디 여태까장 그것두 모르는겨. 당신이 시방 나를 놀려 보겄다― 이게여?”]
부면장은 당장 잡도리할 듯이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곁에 앉은 남병만이가 팔꿈치를 집적거리며 참으라고 했으나 김도 주눅 들지 않고 앉은 채로 응수했다.
[B][“내 말이 그렇게밖에 안 들리유? 저 핵교 교실 벽뙈기 좀 보슈. 뭬라구 써 붙였슈?
나라 사랑 국어 사랑…… 우리말을 쓰자는 것두 국가 시책이래유. 옛날버텀 공무원 말 다르구 농민들 말 다른 게 원칙인 게유. 천동면이 이렇게 촌인가…… 끙―”]
부면장은 무슨 말이 나오는 것을 참는지 한참 동안 입술만 들먹거리더니 겨우 말머리를 찾은 것 같았다.
“도대체 당신 워디 사는 누구여? 뭣 하는 사람여?”
그러자 누군가가 뒤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람두 높어유.”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또 다른 목소리가 곁들여졌다.
“놀미 부락 개발 위원이구, 마을문고 후원 회원이구…….”
그러자 여기저기서 우르르 하고 아무나 한 마디씩 뒵들이를 했다.
“부녀회 회원 남편이여.” / “연료림 조성 대책 위원이유.”
“야산 개발 추진 위원이구.” / “단위 조합 회원이여.”
“이장허구 친구여.”
“죄용해 줘유. 앉어 줘유. 그만해 둬유. 입 다물어 줘유.”
하고 부면장은 다시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질렀다. 약간 수그러들자 부면장은 언성을 낮추어 말했다.
“일 헥타는 천 평입니다. 앞으루는 이백 평이니 말가웃지기니 허구 전근대적인 단위는 사용을 삼가 주셔야 되겄다― 이겝니다.”
말허리를 끊으며 김이 말했다.
“이 바닥에 헥타를 기본 단위루 말헐 만치 땅 너른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이게유.”
부면장은 들은 척도 않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에, 날두 더운디, 지루허시더래두 자리 흐트리지 마시구 담배나 피시며 쉬서유. 저 놀미 사는 높은 양반두 승질 구만 부리시구 편히 쉬서유. 미안헙니다.”
그러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김은 그 박수의 임자가 자기라고 믿으며 속으로 웃었다.
0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등장인물의 독백을 직접 인용하여 내면을 보여 주고 있다.
② 과거와 현재를 대비하여 사건을 입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③ 인물의 외양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인물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
④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과거 사건의 경과를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⑤ 토속적 방언을 사용하여 인물 간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02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은 1970년대 말의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작가는 농민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농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보여 주기 식의 점검, 서구적인 것에 대한 맹목적 수용 등의 문제점을 행정 기관을 대표하는 부면장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을 통해 제기하고 있다.
①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농민들을 한곳에 모이게 하여 교육을 하는 모습을 통해 행정 기관의 일방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군.
② 교육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이 김 씨를 두둔하며 말하는 모습을 통해 면사무소로 대표되는 행정 기관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을 엿볼 수 있어.
③ 농민으로 하여금 풀을 베도록 하는 것은 농민이 처한 삶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조치로 행정 기관의 정책이 농민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군.
④ 농민들의 현실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서구의 도량형을 따르도록 지침을 내린 것은 서구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어.
⑤ 퇴비를 보기 좋게 꾸며서 쌓으라는 부면장의 말을 통해 행정 기관의 정책이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03 [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A]의 화자는 [B]의 화자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② [A]의 화자는 상대방의 발화에 표면적 의미와는 다른 의도가 감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③ [B]의 화자는 상대방이 쓴 표현을 사용하여 상대방에 대해 비꼬고 있다.
④ [B]의 화자는 [A]의 화자가 부면장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한다.
⑤ [A]와 [B]의 화자는 모두 ‘국가 시책’을 근거로 자신이 말하는 바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도움자료
[2015 EBS 인터넷 수능] 문학(B)
09 이문구, 「우리 동네 김씨」
01 ⑤ 02 ③ 03 ④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농민들의 삶의 현실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급격한 근대화,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농촌은 점점 소외되어 농민들이 겪는 궁핍함의 정도도 심해지게 된다. 가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흘러가는 물을 쓰는 것조차 너그럽게 봐주지 못할 정도로 이미 농촌의 인심은 메말라 있었고, 또 민방위 교육장에서 보이는 행정 기관의 편의주의적 발상과 농민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탁상행정에 농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조롱이 익살스러운 문체와 해학적 표현으로 잘 드러나 있다.
농민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 기관에 대한 비판과 풍자
전체 줄거리
‘놀미’에 사는 김승두는 가뭄이 심해 논바닥이 말라가는 것을 보다 못해 윗마을 천북면에서 관리권을 갖고 있는 장승골 저수지 물이 도랑에 흘러가는 날, 전깃줄에 전선을 잇고 양수기를 가동해 흘러가는 물의 일부를 자기 논으로 퍼 올린다. 그런데 물길을 둘러보려고 나온 윗마을 사람들에게 발각된 데다가 한국전력 출장소 직원에게도 전기를 몰래 쓴 것이 발각돼 곤란을 겪는다. 김승두와 윗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은 윗마을 사람들과 한전 출장소 직원 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민방위 교육 참여로 인해 갈등이 흐지부지해지게 된다. 민방위 교육장에서 부면장은 농민들에게 퇴비로 쓸 풀을 베어 보기 좋게 쌓아 놓을 것을 요구하고, 면적의 단위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부면장과 김승두는 대립하게 된다. 민방위 교육에 참여한 농민들은 헥타르라는 단위 대신 농민들에게 익숙한 단위를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 김승두의 반발에 동조하고, 농민들의 노골적인 반감 표시에 부면장은 머쓱해하며 물러나게 된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⑤
이 작품에는 충청도 지방의 토속적 방언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민방위 교육이 실시되는 특정한 공간에서 면적 단위를 두고 부면장과 김 씨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 서술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① 등장인물의 독백을 직접 인용한 부분을 이 글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② 과거와 현재의 대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 서술되고 있다.
③ 인물의 외양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확인할 수 없다.
④ 인물 간의 대화의 양상은 확인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과거 사건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02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③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드는 것은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 농민이 처한 삶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벤 풀을 보기 좋게 쌓아 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농민들의 삶과 유리된 행정 기관의 정책으로 볼 수 있다.
① 특별하게 할 말도 없으면서 농사를 지어야 할 농민들을 동원하여 교육 현장에 모이게 하는 것은 행정 기관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② 김 씨와 부면장의 말다툼을 지켜본 농민들이 부면장이 아니라 김 씨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행정 기관에 대해 반발하는 마음을 농민들이 표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④ 농민들이 실제 보유한 토지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 들어온 헥타르라는 단위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서구를 지향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⑤ 퇴비를 보기 좋게 꾸미라는 것은 실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보여 주기 식의 정책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03 대화의 특징 파악 ④
김 씨가 상대방이 부면장의 권위에 기대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를 제시된 대화 장면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① 부면장은 김 씨가 도량형 명칭이 바뀐 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② 부면장은 김 씨가 자신을 놀리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자신의 말에 딴죽을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
③ 김 씨는 부면장이 한 말인 ‘천동면이 이렇게 촌인가’라는 말을 그대로 반복하여 부면장을 비판하고 있다.
⑤ 부면장은 도량형 명칭의 개정이 국가 정책임을 근거로 들고 있고, 김 씨 역시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것이 국가에 의해 장려되는 것임을 근거로 들어 주장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