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우리는 각기 계산하기 위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때 한 사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 곁에서 술잔을 받아 놓고 연탄불에 손을 쬐고 있던 사내였는데, 술을 마시기 위해서 거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이 쬐고 싶어서 잠깐 들렀다는 꼴을 하고 있었다. ㉠제법 깨끗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엔 기름도 얌전하게 발라서 카바이드등의 불꽃이 너풀댈 때마다 머리칼의 하이라이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지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였다. 아마 빈약하게 생긴 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유난히 새빨간 눈시울 때문이었을까. 그 사내가 나나 안 중의 어느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우리 쪽을 향하여 말을 걸어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제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제게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이라고 그 사내는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힘없는 음성으로 봐서는 꼭 끼워 달라는 건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안은 잠깐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
“아저씨 술값만 있다면 ….”이라고 내가 말했다.
“함께 가시죠.”라고 안도 내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그 사내는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면서 우리를 따라왔다.
안은 일이 좀 이상하게 되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 역시 유쾌한 예감이 들지는 않았다. 술좌석에서 알게 된 사람끼리는 의외로 재미있게 놀게 되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이렇게 힘없는 목소리로 끼어드는 양반은 없었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목적지를 잊은 사람들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속에서는 예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 광고 곁에서는 약 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져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은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중략)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
그는 이젠 슬프지도 않다는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에에.” “그거 안되셨군요.”라고 안과 나는 각각 조의를 표했다. “아내와 나는 참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아내가 어린애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은 몽땅 우리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돈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돈이 생기면 우리는 어디든지 같이 다니면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딸기철엔 수원에도 가고, 포도철엔 안양에도 가고, 여름이면 대천에도 가고, 가을엔 경주에도가 보고, 밤엔 함께 영화 구경, 쇼 구경하러 열심히 극장에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
“무슨 병환이셨던가요?” 하고 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무언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안이 손가락으로 내 무릎을 찌르며 우리는 꺼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 역시 동감이었지만 그때 사내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A][“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다.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고 마치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환이 다꾸앙과 파가 담긴 접시를 갖다 놓고 나갔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 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오.”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주십시오.”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낙했다.
“멋있게 한번 써 봅시다.”라고 사내는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40.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빈번한 장면 전환을 통해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② 대화를 통해 인물이 살아온 내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③ 방언과 토속적 어휘를 사용하여 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④ 상반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물 간의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과장된 묘사를 통해 비극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41. ‘사내’와 관련하여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감각적 심상을 통해 사내의 외양을 제시하고 있다.
② ㉡: 진술되는 말과 상반된 분위기의 음성을 통해 사내의 위선적 면모를 표출하고 있다.
③ ㉢: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④ ㉣: 자신의 결정에 대한 사내의 자조적(自嘲的) 변명이 나타나 있다.
⑤ ㉤: ‘우리’와의 동행을 요청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사내의 외로움과 불안한 심리가 제시되고 있다.
42. 보기를 바탕으로 위 작품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우리 사회의 1960년대는 산업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계층이 존재하는 한편 인간성 상실, 개인주의의 만연 등의 병폐가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난 시대였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 속에서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① 사내가 자신의 아내와 수원, 안양, 대천, 경주 등을 여행한 것은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아내에게 숨기기 위한 진실하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어.
② 자신의 아내가 죽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파는 사내의 선택에는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으로 생활하는 경제적 빈곤함이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어.
③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사내를 두고 가려 하는 ‘안’과 ‘나’의 모습에서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④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과 길 위의 거지를 나란히 병치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을 그려 내고 있어.
⑤ ‘즐거움이 넘치고 넘친다는 얼굴로 요란스럽게 끼어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가 즐거움을 좇으며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43. [A]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심정과 가장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① 감탄고토(甘呑苦吐) ② 맥수지탄(麥秀之嘆)
③ 수구초심(首丘初心) ④ 자포자기(自暴自棄)
⑤ 절차탁마(切磋琢磨)
2014년 EBS수능완성국어영역 국어 A형
[수능완성 국어영역 국어 A형 실전편]
실전 모의고사 4회
현대 소설 (40~43)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지문 이해하기
(해제) 이 작품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세 남자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 발생한 일을 그리고 있다. ‘나’와 ‘안’이 아내의 시체를 팔아 번 돈을 오늘 중으로 다 쓰고 싶어 하는 ‘사내’와 함께 도시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사내’의 외로움과 절망을 어느 정도 인식하면서도 그것에 깊게 관여하지 못하는 ‘나’와 ‘안’의 모습을 통해 인간적 유대가 사라진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를 그려 내고 있다.
(주제) 도시인들의 방황과 연대감의 상실로 인한 절망
전체 줄거리
구청 병사계 직원인 ‘나’는 냉소적인 대학원생 ‘안’을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나눈다. 이들 사이에 낯선 사내가 찾아와 함께하기를 청하는데, 이 사내는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아 얻은 돈을 오늘 다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이들은 소방차를 따라가 불구경을 하고, 사내는 불 속에 돈을 던져 버린다. 세 사람은 여관에 들어가게 되고 ‘나’는 방을 함께 쓰자고 제안하지만 ‘안’의 주장에 따라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사내’가 자살한 것을 발견한 ‘나’와 ‘안’은 황급히 여관을 나와 헤어진다.
40. 서술상 특징 파악(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확인: 대화를 통해
이 글은 ‘나’, ‘안’, ‘사내’의 대화를 통해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인물이 살아온 내력을 요약함
사내의 말을 통해 사내가 다정하게 함께 살아온 아내를 잃었음을, 즉 사내의 삶의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빈번한 장면 전환
이 글에서는 세 인물이 만나 사내의 내력을 듣게 되는 모습이 제시되고 있다. 단, 빈번한 장면 전환으로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③ 확인: 방언과 토속적 어휘의 사용
이 글에서 인물들이 방언 혹은 토속적 어휘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④ 확인: 갈등을 심화
‘나’, ‘안’, ‘사내’가 상반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지도 않다.
⑤ 확인: 과장된 묘사
이 글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과장된 묘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41. 인물의 성격, 태도 파악(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확인 1: 진술되는 말과 상반된 분위기의 음성
사내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고 있다. 진술되는 말과 상반된 분위기의 음성이라 할 수 있다.
확인 2: 사내의 위선적 면모
사내는 아내의 시신을 팔았다는 사실에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다. 그래서 ‘안’과 ‘나’의 동행에 감사를 표하지만 힘없는 음성으로 말한 것이다. 사내가 위선적이기 때문에 힘없는 음성으로 대답한 것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감각적 심상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사내의 외양을 드러내고 있다.
③ 확인: 동일한 행동을 반복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리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내의 시신을 판 죄책감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복잡한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④ 확인: 자조적 변명
아내의 시신을 판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자신은 가난한 월부 판매 외교원에 불과하다며 자조적 변명을 하고 있다.
⑤ 확인: 동행을 요청
함께 있어 주기를 원하는 사내의 모습에서 그의 외로움과 불안한 심리를 확인할 수 있다.
42.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답) ①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① 확인 1: 사내가 자신의 아내와 여행
사내와 아내는 비록 가난하였지만 수원, 안양, 대천, 경주 등을 여행하며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확인 2: 경제적 무능을 아내에게 숨기기 위한 진실하지 못한 행동
사내가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숨기기 위해 여행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② 확인: 자신의 아내가 죽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파는 사내
아내의 시신을 판 사실을 말한 후 자신은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서적 월부 판매 외교원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현실이 아내의 시신을 판 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③ 확인: 사내를 두고 가려 하는 ‘안’과 ‘나’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사내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그에게서 벗어나려 하는 ‘안’과 ‘나’의 모습은 인간성을 상실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④ 확인: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
사람들이 돈을 쓰도록 유혹하는 광고판과 네온사인을 가난한 거지의 모습과 나란히 병치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우울한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⑤ 확인: 피상적인 관계
사내의 초라한 행색을 본 후 사내가 함께하기를 청하자 달가워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서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으려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 인물의 심리 파악(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확인 1: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사내는 아내의 친정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팔았다고 말하고 있다.
확인 2: 자포자기
‘자포자기’는 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버린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되는 대로 취함을 의미한다. 사내는 아내의 시신을 팔았다는 절망감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와 ‘안’에게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감탄고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비위에 따라서 사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② 확인: 맥수지탄
고국의 멸망을 한탄함을 이르는 말로, 기자(箕子)가 은(殷)나라가 망한 뒤에도 보리만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한탄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③ 확인: 수구초심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⑤ 확인: 절차탁마
옥이나 돌 따위를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학문과 덕행을 닦음을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