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6]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앉은뱅이는 콩밭으로 들어갔다. 아직 날이 저물기 전이어서 잘 여문 콩대를 몇 개 골라 꺾을 수 있었다. 콩밭에 잡초가 너무 많았다. 앉은뱅이는 꺾은 콩대를 가슴에 끼고 밭고랑 사이를 기었다. 조용해서 잡초의 씨앗 떨어지는 소리까지 그는 들을 수 있었다. 말이 콩밭이지 잡초 밭이나 마찬가지였다. 앉은뱅이는 황톳길을 나와 콩대를 빼었다. 나무 타는 냄새가 좋았다.
날은 금방 저물기 시작했다. 그가 콩밭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을 붙여놓은 나무들이 빨갛게 타들어갔다. 그는 깨어진 철판을 불 위에 놓고 콩을 까 넣었다. 바짝 마른 나무는 연기 한 줄기 내지 않고 잘 탔다. 그 나무는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꼽추네 마루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꼽추네 집을 무너뜨렸다.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이 한쪽 벽을 부수고 뒤로 물러서자 북쪽 지붕이 거짓말처럼 내려앉았다. 그들은 더 이상 꼽추네 집에 손을 대지 않았고, 미루나무 옆 털여뀌풀 위에 앉아 있던 꼽추는 일어서면서
하늘만 보았다. 그의 부인은 네 아이와 함께 종자로 남겨두었던 옥수수를 떴다.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은 다음 집으로 건너가기 전에 꼽추네 식구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도 덤벼들지 않았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에게 무서움을 주었다.
주위가 어두워왔다. 앉은뱅이는 먹이를 찾아 나선 몇 마리의 쏙독새가 들판에 낮게 날으는 날개 소리를 들었다. 그는 철판 위에 계속 콩을 까넣었다. 나무 타는 냄새와 콩 익는 냄새가 좋았다. 호수 건너편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파트 공사장 인부들이었다. 앉은뱅이는 호숫가 들판을 가로지른 그들의 실루엣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꼽추의 발짝 소리를 기다리면서 철판을 불 위에서 끌어내렸다. 꼽추의 발짝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꼽추의 부인, 큰아이, 작은 아이 모두 잘 참았다. 그는 익은 콩을 입 안에 넣고 씹었다. 꼽추네 마루는 아주 잘 탔다. 동네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쇠망치를 든 한 사나이들에게 울면서 달라붙었다. 사람들은 집단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들은 쇠망치를 든 한 사나이를 끌어내어 치고받았다. 그는 몇 분 뒤에 피를 흘리며 일어나 한쪽 팔을 흔들더니 입에 물고 있던 피를 확 뱉아 냈다. 부러진 앞니들이 피에 섞여 나왔다. 앉은뱅이는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이 다가오자 코스모스가 한창인 길옆으로 비켜 앉으며 집을 가리켰다. 앉은뱅이네 식구들은 꼽추네 식구들보다 대가 약했다. 부인은 펌프대 뒤쪽에 쪼그리고 앉더니 때 묻은 치마를 올려 얼굴을 감쌌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연신 두 눈을 쓸어내렸다. 지붕과 벽은 순식간에 내려앉고 먼지만 올랐다.
<중략>
앉은뱅이의 몸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났다. 꼽추가 펌프를 찧어 앉은뱅이의 얼굴을 씻어주었다. 앉은뱅이는 얼굴이 쓰라려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런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돈과 내일 할 일들을 생각했다. 그가 기어온 황톳길 저쪽 끝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는 일어서려는 친구를 잡아 앉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왔을 때 꼽추네 식구들은 정말 잘 참았다. 앉은뱅이네 식구는 꼽추네 식구들보다 대가 약했다. 앉은뱅이는 갑자기 일어서려고 한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폭발 소리가 들려 왔을 때는 앉은뱅이도 놀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불길도 자고 폭발 소리도 자버렸다. 어둠과 침묵이 두 사람을 싸고 있었다. 꼽추가 앞서 걸었다. 앉은뱅이가 그 뒤를 따랐다.
“살 게 많아.” 그가 말했다.
“모터가 달린 자전거와 리어카를 사야 돼. 그 다음에 강냉이 기계를 사야지. 자네는 운전만 하면 돼. 내가 기어 다니는 꼴을 보지 않게 될 거야.”
앉은뱅이는 친구의 반응을 기다렸다. 꼽추는 말이 없었다.
“왜 그래?”
앉은뱅이는 급히 따라가 꼽추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이봐, 왜 그래?” / “아무것도 아냐.”
꼽추가 말했다.
“겁이 나서 그래?” / 앉은뱅이가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 꼽추가 말했다.
“묘해. 이런 기분은 처음야.” / “그럼 잘됐어.”
“잘된 게 아냐.”
앉은뱅이는 이렇게 차분한 친구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나는 자네와 가지 않겠어.” / “뭐!”
“자네와 가지 않겠다구.”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일 삼양동이나 거여동으로 가자구. 그곳엔 방이 많아. 식구들을 안정시켜놓고 우린 강냉이 기계를 끌고 나오면 되는 거야.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사면 못 갈 곳이 없어. 갈현동에 갔었던 일 생각나? 몇 방을 튀겼었는지 벌써 잊었어? 밤 아홉시까지 계속 돌려댔었잖아. 그들은 강냉이를 먹기 위해 튀기러 오는 게 아냐. 옛날 생각이 나서 아이들을 앞세우고 올뿐야. 그런 델 찾아다니면 돼. 우린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돌아가 여편네가 입을 벌릴 정도의 돈을 쏟아 놓아줄 수가 있다구. 그런데 자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사범을 따라갈 생각야.”
“그 약장수?” / “응.”
“미쳤어? 그 나이에 무슨 약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완전한 사람은 얼마 없어. 그는 완전한 사람야.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그 무서운 대가로 먹고 살아. 그가 파는 기생충 약은 가짜가 아냐. 그는 자기의 일을 훌륭히 도와줄 수 있는 내 몸의 특징을 인정해 줄 거야.”
꼽추는 이렇게 말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자네의 마음야.”
“그러니까, 알겠네.”
앉은뱅이가 말했다.
“가. 막지 않겠어.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어쨌든.”
꼽추가 돌아서면서 말했다.
“무슨 해결이 나야 말이지.”
어둠이 친구를 감싸 앉은뱅이는 발짝 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조금 있자 발작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잠든 천막을 찾아 기어가기 시작했다. 울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 밤이 또 얼마나 길까 생각했다.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14. 위 글에서 <보기>의 안과 밖의 교차점에 해당하는 사건은?
<보기>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역시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 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여기서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생각해 보자
15. ㉠에 나타난 ‘앉은뱅이’의 심정과 가장 유사한 것은?
① 우리가 저와 같아서 /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②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③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 신경림 <목계장터>
④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 말없이 삭이고 /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 한 세상을 누리자. - 김남조 <설일>
16. ‘보기’는 위 글의 형식상의 특징을 설명한 것이다. 위 글에서 이러한 문체가 지니는 효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조세희의 작품들은 우리 소설사에 유례없는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스타카토 문체’라고 한다. 접속사와 수식어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주관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제거한 객관 묘사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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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앉은뱅이와 꼽추가 자가용 사나이를 죽인 사건
15. ➀
16.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