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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현대소설

[문제]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작성자구렛나루|작성시간16.11.15|조회수2,101 목록 댓글 0

[01~0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어린 시절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는 가난으로 부끄러움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가난 때문에 마지못해 한 결혼이었는데, 첫 번째 남편은 돈밖에 모르는 속물이었고, 두 번째 남편은 고상한 척하지만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두 번의 이혼 끝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이십여 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다. 우연히 여학교 동창들과 연락이 닿게 된다.

정말 보고 싶어 죽겠다는 듯이 안달을 떠는 전화가 예서 제서 걸려 오더니, 몇몇이 모여서 나를 만나기로 약속이 된 모양이다. 저희들 멋대로 정한 시일과 장소가 나에게 통고됐다. 나는 옛 동창을 만나는 일이 좀 뜨악하고 좀 귀찮았지만, 만나기가 아주 싫을 것도 없어서 그냥 찧고 까부는 대로 당하고 있을밖에 없었다.

나는 보고 싶다는 느낌, 특히 여자 친구끼리의 보고 싶다는 느낌을 암만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되레 남편이 적극적이었다.

거 참 잘됐구려. 오래간만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와요. 사람은 그저 사람을 많이 알아 놔야 되는 거야. 다 써먹을 데가 있다구. 있구말구. 줄이나 빽이 별건가. 그렇구 그런 거지. 당신 동창 중에라도 재벌이나 고관 사모님 없으란 법 없잖아. 하다못해 세리(稅吏) 마누라라도 있어 봐. 그게 어디게.”

공연히 흥분해서 눈을 번쩍이고 삿대질까지 했다. 그리곤 엄숙하게 덧붙였다.

어떡허든 우리도 한밑천 잡아 한번 잘 살아봅시다.”

나는 울컥 징그러운 생각이 났다. 그리곤 아아,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편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나쁜 징조였다. 더 나쁜 것은 숨가쁘게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첫 남편과 헤어질 때도 그랬었고,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질 때도 그랬었다. 남들이 알기로는, 내가 첫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애를 못 낳아서 쫓겨난 것으로,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진 것은 그까짓 일부종사 못 한 팔자 두 번 고치나 세 번 고치나지 하는 팔자 사나운 헌 계집이면 으레 그렇게 하는 빤한 소행쯤으로 되어 있을 터였다. 내가 겪은 아아 징그럽다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 나는 이번 남편과도 헤어지게 되려나 싶어 다시 콤팩트를 꺼내 얼굴을 비춰 본다. 또 한번 시집을 가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확인으로 스스로를 겁주기 위해서다. 눈가의 뚜렷한 늙음보다 차라리 더 짙은 온몸의 피로, 그냥저냥 안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새삼 간절하다.

<중략>

나는 집에 와서 남편에게 비교적 소상히 그날의 얘기를 했다. 만나 본 동창 중 경희 같은 소위 고위층의 부인이 있다는 소리에 남편은 점괘를 맞힌 박수무당처럼 징그럽게 좋아했다.

거 보라구 내가 뭐랬나. 당신 친구 중에라고 고관의 부인 없으란 법 있겠느냐고 내가 안 그랬어. 잘됐어. 잘됐어. ? 일본어 학원? 다녀야지. 암 다녀야구말구. 그런 여자하고 같이 다닐 기횔 놓치면 안 되지. 그게 다 처세술이라구. 교제술이란 게 다 그렇구 그런 거지 별건가.”

그리고 나선 개화기의 우국지사처럼 자못 엄숙하고 침통해지면서,

아는 것이 힘이라구. 배워야 산다구. 배워서 남 주나.”

하고 악을 썼다.

경희의 권유에서라기보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곧 일어 학원엘 나가게 되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만약 또 이혼을 하게 되면, 일본어로 자립의 밑천을 삼아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요샌 관광 안내원이 괜찮은 직업이라 하지 않나.

일어 학원에서 경희를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녀는 중급반이요 나는 초급반인 탓도 있었고, 그녀는 별로 열심스러운 학생이 못 되어서 결석이 잦았다. 간혹 만나더라도 암만해도 강사를 집으로 초빙해야 할까보다느니, 아무한테도 쟤가 아무개 부인이란 발설을 말라느니, 이를테면 자기 신분에 신경을 쓰는 소리나 해서 거리감만 점점 느끼게 했다.

내 일본말은 늘지 않았다. 일제 때 배운 거라 대강은 알아들으니 쉬 익힐 법도 한데 강사인 일녀의 발음에 따라 오하요사요나라니 소리가 도무지 돼 나오지를 않았다.

일어 학원이 있는 종로 일대에는 일어 학원 말고도 학원이 무수히 많았다. 서울 아이들은 보통 학교를 두 군데 이상이나 다니나 보다. 영수 학관, 대입 학원, 고입 학원, 고시 학원, 예비고사반, 연합고사반, 모의고사반, 종합반, 정통 영어반, 공통 수학반, 서울대반, 연고대반, 이대반……. 이 무수한 학원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든 학생들이 몰려 들어가고 쏟아져 나오고 했다. 자식을 길러 본 경험이 없는 나는 이들이 은근히 탐나기도 했지만 이들의 반항적인 몸짓과 곧 허물어질 듯한 피곤을 이해할 수 없어 겁도 났다.

어느 날 어디로 가는 길인지 일본인 관광객이 한 떼, 여자 안내원의 뒤를 따라 이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어느 촌구석에서 왔는지 야박스럽고, 경망스럽고, 교활하고, 게다가 촌티까지 더덕더덕 나는 일본인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안내원 여자는 너무 멋쟁이라 ( )처럼 민망해 보였다. 그녀는 멋쟁이일 뿐 아니라 경제 제일주의의 나라의 외화 획득의 역군답게 다부지고 발랄하고 긍지에 차 보였다. 마침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관광객과 아무렇게나 뒤섞였다. 그러자 이 안내원 여자는 관광객들 사이를 바느질하듯 부비며 소곤소곤 속삭였다.

아노. 미나사마, 고치라 아타리카라 스리니 고주이 나사이마세(저 여러분, 이 근처부터 소매치기에 주의하십시오).”

처음엔 나는 왜 내가 그 말뜻을 알아들었을까 하고 무척 무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차츰 몸이 더워오면서 어떤 느낌이 왔다. 아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느낌은 고통스럽게 왔다. 전신이 마비됐던 환자가 어떤 신비한 자극에 의해 감각이 되돌아오는 일이 있다면, 필시 이렇게 고통스럽게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렇게 환희롭게. 나는 내 부끄러움의 통증을 감수했고, 자랑을 느꼈다.

나는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붉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내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출렁이고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모자라 ××학원, ○○학관, △△학원 등에서 별의별 지식을 다 배웠을 거다. 그러나 아무도 부끄러움은 안 가르쳤을 거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 위 글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는 남편의 부추김으로 일어 학원에 나가게 되었다.

여자 안내원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있지 않다.

여자 안내원의 외모는 관광객에 비해 훨씬 세련되었다.

의 현재 남편은 이전의 남편과 달리 속물적 근성이 없다.

경희는 자신의 지위와 지위에 따른 체면 유지에 관심이 큰 인물이다.

 

2. <보기>의 화자 [A]와 위 글의 ’ [B]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A : 당신도 이제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었군요. 저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려 노력한답니다.

B : 저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부끄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 부끄러움 때문에 두 번이나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A : 부끄러운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번이나 이혼을 했군요. 이제 또 다시 부끄러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겠군요?

B,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 남편이나 경희는 너무 속물이어서 이 부끄러움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A : 그럴까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도록 살아야 합니다.

 

3. 에 들어갈 속담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삼밭에 쑥대              하품에 딸꾹질

개발에 주석 편자     끈 떨어진 뒤웅박

꿔다 놓은 보릿자루

 

4. <보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의 심리를 추리하는 글을 쓴 것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는 속물적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징그럽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는 이 때문에 두 번이나 이혼한 것을 생각하고는 콤팩트를 꺼낸다. 자신이 오늘따라 너무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일어 학원에 나가는 데에도 남편이 모르는 다른 속셈이 있다. 혹시 남편과 헤어진다면 의 힘만으로 인생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본인 관광객에게 소매치기에 주의하라고 속삭이는 안내원을 보고 나서는 그동안 잊었던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ls12&logNo=220513984958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D9T1&fldid=BtFi&datanum=56&openArticle=true&docid=1D9T1BtFi5620111006185643

 

주제 : 속물 근성과 허위 의식에 대한 비판

해제 : 한국 전쟁과 근대화의 과정을 겪으며 그동안 잃어버리고 살아갔을 법한 부끄러움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줄거리 : 동창회 모임에 참석한는 그간의 생활을 되돌아 본다. ‘는 그동안 분주함으로 위장된 허구의 삶으로 가득찬 서울 생활에서 마음의 피로를 느낀다. 동창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많이 변했다는 친구들의 말에 는 부끄러움과 같은 감수성을 잃어버리게 된 과거의 경험, 즉 한국 전쟁 당시 피란 간 마을이 기지촌으로 변하면서 어머니가 생계 유지를 위해 에게 몸을 팔기를 강요했던 상황과 두 번씩이나 이혼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동창들과 함께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경희네 집을 방문했는데, 그녀의 가식적인 언행 속에서 속물적인 근성을 발견하고 실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낀다. 일본어 학원을 다니던 는 일본인 관광객이 모인 서울 한복판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관광 안내원의 말을 우연히 엿듣고 그동안 잊어버렸던 부끄러움의 정서를 다시 느끼게 된다. ‘는 모처럼 돌아온 부끄러움의 감정이 자신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1 ④   2 3   ③   4

 

1 등장인물의 성격 파악 답.

의 현재 남편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남편과 마찬가지로 속물적인 근성을 갖고 있다. 다만 두 번째 남편과는 달리 자신이 속물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남편의 성격은 동창, 특히 경희와 같은 인물을 만나라고 권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다른 상황에의 적용 답.

제시문 마지막을 보면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내걸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라고 하여 이러한 깨달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화자는 자신의 남편과 경희를 먼저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로 만들고 싶어 함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남편이나 경희가 너무 속물이어서 부끄러움을 깨닫게 할 수 없다는 진술은 적절하지 않다.

 

3 문맥에 어울리는 관용어의 파악 답.

일본인 관광객은 야박스럽고, 경망스럽고, 교활하고, 촌티까지 나는데, 우리나라 안내원은 너무 멋쟁이다. 따라서 일본인 관광객과 관광 안내원은 잘 어울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격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나타내는 속담으로는 개발에 주석 편자, 거적문에 돌쩌귀, 돼지발에 진주, 사모에 갓끈등이 있다.

오답 피하기

삼밭에 쑥대 :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그 환경의 영향을 받아 품행이 단정해진다는 뜻.

하품에 딸꾹질 : 공교롭게도 일이 잘 안 된다는 뜻.

끈 떨어진 뒤웅박 : 의지할 데가 없어진 처지를 이르는 말.

꿔다 놓은 보릿자루 :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듣고만 있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

 

4 창의적 이해 답.

서술자가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물적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술자가 콤팩트를 꺼내 든 것은 자신의 나이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즉 서술자 자신은 다시 결혼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이제는 비굴함도 참으며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 대하여

자신의 행위가 옳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이 오로지 남의 잘잘못만을 따지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절차가 아무리 완벽하고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절차를 진행함에 오로지 자신의 목적이 앞섰다면 진정한 의미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췄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친구를 방패삼아 자신의 억울함을 강변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하고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잘못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다. 참으로 실망스럽다. 겉으로는 사과를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억울해하는 마음이 변함이 없다면, 겉으로는 화해를 얘기하지만 비판을 수용하는 대신에 가슴에 원망을 쌓거나 서운한 앙금을 쌓는다면 어찌 진정한 화해를 찾을 것인가.

부끄러움을 모르기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을 위해 단체의 목표가 흔들려서도 안 되지만 단체를 위해 한 사람의 억울한 희생도 안 된다. 하지만 만일 잘못된 길을 가는 친구가 있다면 그 잘못을 지적하고 잡아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다. 감싸고 귀에 좋은 말만 한다하여 그 친구에게 무슨 유익이 될 것인가. 그 친구뿐만 아니라 결국 모두가 상처를 입고 우리 모두가 와해의 위기에 빠지게 되어 너무 늦으면 돌이킬 수가 없는 법이다.

또한 비판이 지나쳐 비판의 선의를 해치는 것도 문제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일시에 허물어지는 마음이 앞서다보면 옳고 그름을 혼돈하기 쉽다. 그러니 잘못을 인정하고 비판을 수용하는 것은 용기도 필요하지만 숲에서 나와 멀리 보는 여유를 회복해야 한다. 느림의 지혜와 기다려줌의 인내가 필요하다. 너무 내몰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다만 친숙한 얼굴이기에, 자주 만났다는 이유로 감싸고도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복잡한 절차는 우리를 결국 옭아매는 덫이 될 것이다. 사람의 관계에서는 단순함이 좋고 때로 상식적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엄청난 조직을 꾸리거나 국가를 새로 세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까지 절차에 담아 그것을 지키는 것만이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믿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탓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등장 인물의 성격

: 작품의 화자. 유난히 부끄러움을 타던 소녀였으나 가난한 기지촌 생활과 세 번의 결혼 등의 편력을 통해 현실적 감각을 갖게 된 중년 여인

남편들 : 첫 번째 남편은 교만한 중농, 두 번째 남편은 위선적인 지방대 강사, 세 번째 남편은 철저한 배금주의자로 각각 설정되어 있다.

동창들 : 고생고생하다 한 밑천 잡은 희숙, 직업 여성 영미, 고위층 남편을 가진 경희 등 모두 세속적인 중년여성들로 그려져 있다.

 

작품의 구성 단계

발단 : 분주한 서울 생활에서 화자는 마음의 피로를 느낀다.

전개 : 동창들과의 만남. 어린 시절 각박한 삶에 대한 고백적 서술, 세 번에 걸친 결혼 생활의 내력이 소개된다.

위기 : 동창의 집을 찾은 화자는 화려한 살림살이와 세련된 동창의 포즈에 담겨 있는 가식과 속물성을 발견한다.

절정 : 우연히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관광객 안애인의 말을 듣고 화자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되찾는다.

결말 : 화자는 모처럼 돌아온 부끄러움의 감정이 자신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감상의 길잡이

중년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물질적 가치에 전도된 형식적 근대화의 부정적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고, 그 과정 속에서 삶의 진정성이 상실되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사의 내력 및 결혼 생활에 대한 고백적 서술과 동창들의 피상적 삶에 대한 관찰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다가, 화자가 우연히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던 여자의 속삭임을 듣는 것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을 맞기에 이른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그 여자의 말로 인해 화자는 부끄러움의 감각을 불현듯 느끼게 되는 바, 그것은 물질적인 가치에 경도된 채 형식적인 근대화에 치중하는 현실적 상황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공백에 대한 뼈저린 자각을 의미한다. 마지막 장면은 세속적인 출세욕을 상징하는 각종 학원 간판의 밀림 속에서 돌연 부끄러움을 가르치자고 외치는 화자의 반어적 태도가 나타난다. 형식적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상실된 삶의 진정성을 환기하고자 하는 계몽적 의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한편 '굳이 깃발이 아니더라도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날려야 할 것 같다'는 표현에서는 그 절실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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