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설 2 달밤 / 이태준
[01~0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 줄거리] ‘나’는 사대문 안에 살다가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는데 여기에서 신문을 배달하는 황수건을 만난다. 그는 ‘나’를 허물없이 대하면서 가족 이야기, 과거에 급사*로 일하다 쫓겨난 이야기, 정식 배달원이 되고 싶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의 일에도 실속 없이 참견한다. 아내는 우둔한 그와 말을 주고받는다고 핀잔을 주지만 ‘나’는 순박한 성격을 지닌 그가 마음에 든다. 이후 황수건은 정식 배달원이 될 것이라고 자랑하지만 얼마 후 ‘나’는 그가 보조 배달원 자리마저 잃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루는 나는 거의 그를 잊어버리고 있을 때,
“이 선생님 곕쇼?”
하고 수건이가 찾아왔다. 반가웠다.
“선생님, 요즘 신문이 걸르지 않고 잘 옵쇼?”
하고 그는 배달 감독이나 되어 온 듯이 묻는다.
“잘 오, 왜 그류?”
한즉 또,
“늦지도 않굽쇼, 일쯕이 제때마다 꼭꼭 옵쇼?” 한다.
㉠“당신이 돌을 때보다 세 시간은 일쯕이 오고 날마다 꼭꼭 잘 오.”
하니 그는 머리를 벅적벅적 긁으면서,
“하루라도 걸르기만 해라. 신문사에 가서 대뜸 일러바치지…….”
하고 그 빈약한 주먹을 부르댄다.
“그런뎁쇼, 선생님?”
“왜 그류?”
“삼산학교에 말씀예요, 그 제 대신 들어온 급사가 저보다 근력이 세게 생겼습죠?”
“나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소.”
하니 그는 은근한 말소리로 히죽거리며,
“제가 거길 또 들어가 볼랴굽쇼, 운동을 합죠.” / 한다.
“어떻게 운동을 하오?”
㉡“그까짓 거 날마당 사무실로 갑죠. 다시 써 달라고 졸라 댑죠. 아, 그랬더니 새 급사란 녀석이 저보다 크기도 무척 큰뎁쇼, 이 녀석이 막 불근댑니다그려. 그래 한번 쌈을 해야 할 턴뎁쇼, 그 녀석이 근력이 얼마나 센지 알아야 뎀벼들 턴뎁쇼…… 허.”
“그렇지, 멋모르고 대들었다 매만 맞지.”
하니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또 은근한 말을 한다.
“그래섭쇼, 엊저녁엔 큰 돌멩이 하나를 굴려다 삼산학교 대문에다 놨습죠. 그리구 오늘 아침에 가 보니깐 없어졌는뎁쇼. 이 녀석이 나처럼 억지루 굴려다 버렸는지, 뻔쩍 들어다 버렸는지 그만 못 봤거든입쇼, 제—길…….”
하고 머리를 긁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얼 생각한 듯 손뼉을 탁 치더니,
“그런뎁쇼, 제가 온 건입쇼, 댁에선 우두*를 넣지 마시라구 왔습죠.” / 한다.
“우두를 왜 넣지 말란 말이오?” / 한즉,
“요즘 마마가 다닌다구 모두 우두들을 넣는뎁쇼, 우두를 넣으면 사람이 근력이 없어지는 법인뎁쇼.”
하고 자기 팔을 걷어 올려 우두 자리를 보이면서,
“이걸 봅쇼. 저두 우두를 이렇게 넣기 때문에 근력이 줄었습죠.” / 한다.
“우두를 넣으면 근력이 준다고 누가 그립디까?” / 물으니 그는 싱글거리며,
“아, 제가 생각해 냈습죠.” / 한다.
“왜 그렇소?”
하고 캐니,
“뭘…… 저 아래 윤금보라고 있는데 기운이 장산뎁쇼. 아 삼산학교 그 녀석두 우두만 넣었다면 그까짓 것 무서울 것 없는뎁쇼, 그걸 모르겠거든입쇼…….” / 한다. 나는,
㉢“그렇게 용한 생각을 하고 일러 주러 왔으니 아주 고맙소.”
하였다. 그는 좋아서 벙긋거리며 머리를 긁었다.
“그래 삼산학교에 다시 들기만 기다리고 있소?”
물으니 그는,
“돈만 있으면 그까짓 거 누가 고스카이(용인) 노릇을 합쇼. 밑천만 있으면 삼산학교 앞에 가서 뻐젓이 장사를 할 턴뎁쇼.” 한다.
“무슨 장사?”
“아, 방학될 때까지 차미 장사도 하굽쇼, 가을부턴 군밤 장사, 왜떡 장사, 습자지, 도화지 장사 막 합죠. 삼산학교 학생들이 저를 어떻게 좋아하겝쇼. 저를 선생들보다 낫게 치는뎁쇼.” 한다.
나는 그날 그에게 돈 삼 원을 주었다. 그의 말대로 삼산학교 앞에 가서 뻐젓이 참외 장사라도 해 보라고. 그리고 돈은 남지 못하면 돌려오지 않아도 좋다 하였다.
그는 삼 원 돈에 덩실덩실 춤을 추다시피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 이튿날,
“선생님 잡수시라굽쇼.”
하고 나 없는 때 참외 세 개를 갖다 두고 갔다.
㉣그러고는 온 여름 동안 그는 우리 집에 얼른하지 않았다.
들으니 참외 장사를 해 보긴 했는데 이내 장마가 들어 밑천만 까먹었고, 또 그까짓 것보다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은 그의 아내가 달아났단 것이다. 저희끼리 금실은 괜찮았건만 동서가 못 견디게 굴어 달아난 것이라 한다. ㉤남편만 남 같으면 따로 살림 나는 날이나 기다리고 살 것이나 평생 동서 밑에 살아야 할 신세를 생 각하고 달아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요 며칠 전이었다. 밤인데 달포 만에 수건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웬 포도를 큰 것으로 대여섯 송이를 종이에 싸지도 않고 맨손에 들고 들어왔다. 그는 벙긋거리며,
“선생님 잡수라고 사 왔습죠.”
하는 때였다. 웬 사람 하나가 날쌔게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수건이의 멱살을 움켜쥐고 끌고 나갔다. 수건이는 그 우둔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꼼짝 못 하고 끌려 나갔다.
나는 수건이가 포도원에서 포도를 훔쳐 온 것을 직각하였다. 쫓아 나가 매를 말리고 포돗값을 물어 주었다. 포돗값을 물어 주고 보니 수건이는 어느 틈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다섯 송이의 포도를 탁자 위에 얹어 놓고 오래 바라보며 아껴 먹었다. 그의 은근한 순정의 열매를 먹듯 한 알을 가지고도 오래 입안에 굴려 보며 먹었다.
[A] <어제다. 문안에 들어갔다 늦어서 나오는데 불빛 없는 성북동 길 위에는 밝은 달빛이 깁*을 깐 듯하였 다. / 그런데 포도원께를 올라오노라니까 누가 맑지도 못한 목청으로,
“사…… 케…… 와 나…… 미다카 다메이…… 키…… 카…….*”
를 부르며 큰길이 좁다는 듯이 휘적거리며 내려왔다. 보니까 수건이 같았다. 나는,
“수건인가?” / 하고 아는 체하려다 그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휙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은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그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 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급사: 관청이나 회사, 가게 따위에서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하여 부리는 사람.
*우두: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소에서 뽑은 면역 물질.
*깁: 명주실로 바탕을 조금 거칠게 짠 비단.
*사케와 나미다카 다메이키카: 일본 가요의 가사로, 우리말로는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임.
01. 윗글에서 ‘나’의 대화 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바탕으로 질문하며 듣는다.
② 상대방의 이야기와 유사한 경험을 언급하며 듣는다.
③ 상대방의 이야기에 비춰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듣는다.
④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하며 듣는다.
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비판적으로 듣는다.
02. ‘참외 세 개’와 ‘포도’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참외 세 개’와 달리 ‘포도’는 수건이 곤경에 처하는 계기가 된다.
② ‘참외 세 개’는 ‘포도’와 달리 ‘나’에게 부탁하기 위해 선물한 것이다.
③ ‘참외 세 개’와 ‘포도’는 모두 수건이 돈을 주고 사 온 것이다.
④ ‘참외 세 개’와 ‘포도’는 모두 수건이 장사할 밑천에 해당한다.
⑤ ‘참외 세 개’와 ‘포도’는 모두 수건이 ‘나’에게 직접 건네주었다.
03. ㉠~㉤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현재의 신문 배달원과 수건이 비교되는 내용을 보니 수건의 일솜씨가 야무지지 못했군.
② ㉡: 급사가 다시 되기 위해 수건이 계획한 내용을 보니 수건은 어리석은 인물이군.
③ ㉢: 수건의 우둔한 말에도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에서 수건에 대한 ‘나’의 태도를 엿볼 수 있군.
④ ㉣: 장사 밑천을 대 준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수건은 이해타산적인 인물이군.
⑤ ㉤: 금실이 괜찮았던 아내마저 도망간 수건의 불행한 삶을 보니 연민이 느껴지는군.
04. 윗글의 [A]와 <보기>를 비교하여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아비가 받았던 아이를 구덩이 둔덕에 털썩 놓아 버린다.
비는 한결같다. 산골짜기에는 물소리뿐 아니라, 개구리, 맹꽁이 그러고도 무슨 날짐승 소리 같은 것도 난다.
아이는 세 번째 들여다볼 적에는 틀림없이 죽은 것 같았다. 다시 구덩이 바닥에 물을 쳐내었다. 가마니를 한끝을 깔고 아이를 놓고 남은 한끝으로 덮고 흙을 덮었다.
황 서방은 아이를 묻고,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리고 쩔름거리며 권 서방의 뒤를 따라 한길로 내려왔다.
아직 하늘은 트이려 하지 않는다.
“섰음 뭘 허나?”
황 서방은 아이 무덤 쪽을 쳐다보고 멍청히 섰다.
“돌아서세, 어서.”
“예가 어디쯤이지.”
“그까짓 건…… 고무신 한 짝이 아깝네만…….”
“…….”
“가세 어서.”
황 서방은 아이 무덤 쪽에서 돌아서기는 했으나 권 서방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권 서방이 쫓아와 붙든다.
- 이태준, 「밤길」
① [A]에서 ‘나’는 말을 걸지 않음으로써, <보기>에서 권 서방은 말을 건넴으로써 상대방에게 마음을 쓰는군.
② [A]는 ‘불빛 없는’ 길을 통해, <보기>는 ‘쩔름거리며’ 걷는 길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는군.
③ [A]는 ‘노래’를 부르고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통해, <보기>는 ‘무덤 쪽’을 보고 위치를 묻는 행위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군.
④ [A]는 ‘달빛’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서정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보기>는 ‘소리’들의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사건의 비극성을 부각하는군.
⑤ [A]와 <보기>는 모두 시간적 배경을 밤으로 설정하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