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손님과 어머니 / 주요섭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나는 그 아저씨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몰랐으나 첫날부터 내게는 퍽 고맙게 굴고 나도 그 아저씨가 꼭 마음에 들었어요. 어른들이 저희끼리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그 아저씨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어렸을 적 친구라고요. 어디 먼 데 가서 공부를 하다가 요새 돌아왔는데, 우리 동리 학교 교사로 오게 되었대요. 또 우리 큰외삼촌과도 동무인데, 이 동리에는 하숙도 별로 깨끗한 곳이 없고 해서 우리 사랑으로 와 계시게 되었다고요. 또 우리도 그 아저씨한테서 밥값을 받으면 살림에 보탬도 좀 되고 한다고요.
그 아저씨는 그림책들이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사랑방으로 나가면 그 아저씨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들을 보여 줍니다. 또 가끔 과자도 주고요.
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이내 살그머니 사랑에 나가 보니까 아저씨는 그때에야 점심을 잡수셔요. 그래 가만히 앉아서 점심 잡숫는 걸 구경하고 있노라니까, 아저씨가,
“옥희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누?”
하고 묻겠지요. 그래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마침 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한 알 집어 주면서 나더러 먹으라고 합니다. 나는 그 달걀을 벗겨 먹으면서,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하고 물으니까, 그는 한참이나 빙그레 웃고 있더니,
“나두 삶은 달걀.”
하겠지요. 나는 좋아서 손뼉을 짤깍짤깍 치고,
“아, 나와 같네. 그럼, 가서 어머니한테 알려야지.”
하면서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꼭 붙들면서,
“그러지 말어.”
그러시지요. 그래도 나는 한번 맘을 먹은 다음엔 꼭 그대로 하고야 마는 성미지요. 그래 안마당으로 뛰쳐 들어가면서,
“엄마, 엄마, 사랑 아저씨두 나처럼 삶은 달걀을 제일 좋아한대.”
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떠들지 말어.”
하고 어머니는 눈을 흘기십니다.
그러나 사랑 아저씨가 달걀을 좋아하는 것이 내게는 썩 좋게 되었어요. 그것은 그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달걀을 많이씩 사게 되었으니까요. 달걀 장수 노친네가 오면 한꺼번에 열 알도 사고 스무 알도 사고 그래선 두고두고 삶아서 아저씨 상에도 놓고 또 으레 나도 한 알씩 주고 그래요. 그뿐만 아니라 아저씨한테 놀러 나가면 가끔 아저씨가 책상 서랍 속에서 달걀을 한두 알 꺼내서 먹으라고 주지요. 그래 그담부터는 나는 아주 실컷 달걀을 많이 먹었어요.
나는 아저씨가 아주 좋았어요. 마는 외삼촌은 가끔 툴툴하는 때가 있었어요. 아마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아니, 그것보다도 아저씨 상 심부름을 꼭 외삼촌이 하게 되니까 그것이 싫어서 그러나 봐요. 한번은 어머니와 외삼촌이 말다툼하는 것까지 내가 들었어요. 어머니가,
“야, 또 어디 나가지 말구 사랑에 있다가 선생님 들어오시거든 상 내가야지.”
하고 말씀하시니까, 외삼촌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제길, 남 어디 좀 볼일이 있는 날은 으레 끼니때에 안 들어오고 늦어지니…….”
하고 툴툴하겠지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그러니 어짜갔니? 너밖에 사랑 출입할 사람이 어디 있니?”
“누님이 좀 상 들구 나가구려. 요샛세상에 내외합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이 발개지시고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외삼촌에게 향하여 눈을 흘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외삼촌은 흥흥 웃으면서 사랑으로 나갔지요.
<중략>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내 곁을 안 떠나지.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는 엄마가 늙어서 꼬부랑 할미가 되어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가 유치원 졸업하구 또 소학교 졸업하구, 또 중학교 졸업하구, 또 대학교 졸업하구, 옥희가 조선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돼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응! 옥희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나?”
“이만큼.” / 하고 나는 두 팔을 짝 벌리어 보였습니다.
“응? 얼만큼? 응! 그만큼! 언제나, 언제나, 옥희는 엄마만 사랑하지. 그리구 공부두 잘하구, 그리구 훌륭한 사람이 되구…….”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또 울까 봐 겁이 나서,
“엄마, 이만큼, 이만큼.”
하면서 두 팔을 짝짝 벌리었습니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습니다.
“응, 그래, 옥희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우리 옥희 하나문 그만이야. 그렇지, 옥희야.”
“응!”
어머니는 나를 당기어서 꼭 껴안고 내 가슴이 막혀 들어올 때까지 자꾸만 껴안아 주었습니다.
[A] <그날 밤 저녁밥 먹고 나니까 어머니는 나를 불러 앉히고 머리를 새로 빗겨 주었습니다. 댕기도 새 댕기를 드려 주고, 바지, 저고리, 치마 모두 새것을 꺼내 입혀 주었습니다.
“엄마, 어디 가?” / 하고 물으니까,
“아니.”
하고 웃음을 띠면서 대답합니다. 그러더니 풍금 옆에서 새로 다린 하얀 손수건을 내리어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이 손수건, 저 사랑 아저씨 손수건인데, 이것 아저씨 갖다 드리구 와, 응. 오래 있지 말구 손수건만 갖다 드리구 이내 와, 응.” /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수건을 들고 사랑으로 나가면서 나는 그 손수건 접이 속에 무슨 발각발각하는 종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마는 그것을 펴 보지 않고 그냥 갖다가 아저씨에게 주었습니다.
아저씨는 방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손수건을 받는데, 웬일인지 아저씨는 이전처럼 나보고 빙그레 웃지도 않고 얼굴이 몹시 파래졌습니다. 그러고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면서 말 한마디 아니 하고 그 수건을 받더군요.>
나는 어째 이상한 기분이 돌아서 아저씨 방에 들어가 앉지도 못하고 그냥 뒤돌아서 안방으로 들어왔지요. 어머니는 풍금 앞에 앉아서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지 가만히 있더군요. 나는 풍금 옆으로 가서 가만히 그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는 조용조용히 풍금을 타십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야요.
밤이 늦도록 어머니는 풍금을 타셨습니다. 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를 계속하고 또 계속하면서.
여러 밤을 자고 난 어떤 날 오후에 나는 오래간만에 아저씨 방엘 나가 보았더니 아저씨가 짐을 싸느라고 분주하겠지요. 내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린 다음부터는 웬일인지 아저씨가 나를 보아도 언제나 퍽 슬픈 사람,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만 보고 있는 고로 나도 그리 자주 놀러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01.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아저씨는 학교 교사이자 옥희 아버지의 친구이다.
② 아저씨는 낙담한 마음으로 하숙한 집을 떠나려 하고 있다.
③ 옥희는 어머니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강조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④ 옥희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마음에 자신의 달걀을 아저씨와 나눠 먹고 있다.
⑤ 어머니는 옥희가 대신 전한 손수건을 통해 아저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02. <보기>의 관점에 따라 윗글을 감상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정숙한 성격을 지닌 어머니는 사랑손님에 대해 예의를 갖춰 대하다가 점차 호감을 갖는다. 하지만 옥희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정리한다.
㉯: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여성의 재혼 욕망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인습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어머니는 사랑손님에게 호감을 갖지만 자신의 재혼을 용납하지 못하는 공동체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한다. 이러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는 자신의 욕망을 거듭 억누르면서 사회적 인습에 굴복한다.
① ㉮에 따르면, 어머니가 달걀을 많이 사는 것은 사랑손님을 배려하는 어머니의 친절한 행동으로 볼 수 있군.
② ㉮에 따르면,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우리 옥희 하나문 그만이야.’라는 어머니의 말에서 자식의 미래를 자신의 행복보다 우선시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군.
③ ㉮에 따르면, 어머니가 풍금을 타는 것은 아저씨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정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군.
④ ㉯에 따르면, 어머니가 매번 외삼촌에게 상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남편과 사별한 여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인습을 어머니가 의식하기 때문이군.
⑤ ㉯에 따르면, 어머니에게 상을 들고 가라는 외삼촌의 핀잔은 어머니가 사회적 인습을 따르기를 기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하는군.
03. <보기>는 [A]를 각색한 시나리오의 일부이다. <보기>와 [A]를 비교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S# 114.
안방 정숙, 거울 앞에 앉아 어수선한 자신의 모습을 넋 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거울 속에 옥희가 나타난다.
옥희의 소리: 그날 밤 저녁밥을 먹고 나니까 엄마가 나를 불러 앉히더니 머리를 새로 빗겨 주시겠지요.
정숙, 옥희의 머리를 빗겨 주고 새 옷을 입혀 준다.
옥희의 소리: 리본두 달아 주고 새 옷두 꺼내서 입혀 주시구 참 이상하셨어요.
옥희: 엄마! 어디 가?
정숙: 아니. 하고 웃음을 띠면서 피아노 옆에서 새로 다린 하얀 손수건을 내려 쥐어 주면서
정숙: 이 손수건 아저씨 건데 갖다 드리구 와.
옥희, 고개를 까닥인다.
정숙: 오래 있지 말구 갖다 드리군 이내 와. 응?
옥희: 응.
옥희, 손수건을 들고 문으로 나간다.
S# 115.
마당 대청에서 내려와 마당을 횡단하는 옥희, 사랑방 문 앞에 멎으며
옥희: 아저씨!
S# 116.
사랑방 문이 열리며 옥희가 들어온다. 방에 누워 있던 선호, 일어나 앉으며
선호: 야! 웬일이니? 이렇게 곱게 차리구.
옥희: (손수건을 주며) 이거 아저씨 거라구 엄마가 갖다 드리래.
선호: 그래.
하며 손수건을 받더니 이상한 촉감에 손수건을 펴 보니 네모로 접은 편지가 나온다.
선호, 돌아서며 그 편지를 펴 본다. / 그 편지의 사연.
정숙의 소리: 선생님! 메마른 나무에 불을 지르지 마세요. 걷잡을 수 없이 타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제겐 다만 옥희가 있을 뿐입니다.
- 주요섭 원작·임희재 각색,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① [A]에 제시된 대화는 <보기>에서 인물의 대사로 활용되는군.
② [A]에 제시된 손수건 속 종이에 대한 옥희의 짐작은 <보기>에서 옥희와 선호의 대화로 제시 되는군.
③ [A]에서 어머니가 옥희를 꾸미는 행동에 대한 서술은 <보기>에서 행동 지시문과 화면 밖 소리로 제시되는군.
④ <보기>는 [A]와 달리 새 옷을 입혀 주는 어머니의 행동에 대한 옥희의 의아함을 화면 밖 소리로 직접 제시하는군.
⑤ <보기>는 손수건에 담긴 편지의 내용을 화면 밖 소리로 제시함으로써 [A]에서 아저씨의 표정이 심각해진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