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엄마의 눈빛은 도저히 거부하거나 비켜 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절박한 열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신여성이 뭐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앞으로도 알게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급체인지 맹장염인지 걸린 남편을 굿해서 고치려다 잃고 층층시하와 봉제사*의 의무와 안질에 거머리가 약인 무지를 떨치고 도시로 나온 엄마의 지식과 자유스러움에 대한 피맺힌 원한과 갈망은 벅차고 뭉클한 느낌이 되어 전해 왔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매동학교 시험을 치고 합격이 됐다. 엄마는 초등학교 합격을 마치 과거 급제처럼 과장해서 시골에다 알렸고 시골에서도 둘밖에 없는 손자 손녀가 서울에다 뿌리를 박은 바에야 며느리한테 너무 인색하게만 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겨우 사는 시골집에서 큰마음 먹고 돈을 마련해 줘봤댔자 서울선 푼돈이었다. 금융 조합에서 집값의 절반은 융자를 받았건만 우리가 살 수 있는 집은 역시 현저동 꼭대기였다. 세 들어 살던 집에서도 오르막길로 더 올라가 동네가 인왕산 마루턱을 치받으면서 끝나는 데 있는 여섯 칸짜리 작은 집이었다. 그러나 어엿한 기와집이었다. 엄마는 땅 넓은 줄 은 모르고 하늘 높은 줄만 알고 기어오르는 이 상상 꼭대기 문밖 동네를 여전히 무시하고 지긋지긋해 했지만 새로 산 여섯 칸짜리 기와집만은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다. 체 장수가 살고 있던 이 집 은 몇 년이 되었는지 본바탕을 알아볼 수 없는 도배지에 ㉡빈대 핏자국만이 끔찍하도록 낭자했다.
“맙소사, 이렇게 뜯기고도 이 집 식구들이 그래도 핏기가 남아 있었던 게 신기하다. 아이고 징그러라.”
엄마는 문짝과 두껍닫이를 모조리 뜯어내서 양잿물로 닦아 내면서 이렇게 자주 진저리를 쳤다. 겨울을 나 껍데기만 남은 잗다란 빈대들이 우수수 무수히 비듬처럼 쏟아져 나왔다.
<중략>
이사 간 날, 첫날 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비록 여섯 칸짜리 집이지만 없는 게 없었다. 안방·마루·건넛방·부엌·아랫방·대문간 이렇게 여섯 개의 방이 공평하게 한 칸 씩이었다. 마당도 있었다. 마당이 네모나지 않고 삼각형인 게 흠 이었다. 엄마는 이런 마당을 ‘우리 괴불 마당’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새 집은 셋집처럼 대문 밖이 낭떠러지가 아니고 보통 골목인 대신 직사각형 마당의 가장 변이 긴 쪽이 남의 집 뒤쪽으로 난 담인데 그 밑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축대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오빠는 자주 잠을 깨서 들락거렸다. 축대가 무너질까 봐 잠이 안 온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녀석도 사내놈이 옹졸하긴……. 여지껏 멀쩡하던 축대가 하필 우리 살 때 무너질까.”하면서 태연한 체했다. 그 밖엔 아무 걱정도 없었다.
나는 괴불 마당에 분꽃씨도 뿌리고 채송화씨도 뿌리고 ㉢봉숭아씨도 뿌렸다. 그리고 이사 가고 나서 나의 외톨이 신세는 좀 더 심해졌다. 땜장이 딸하고도 자연히 멀어졌고 나 혼자 매동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 동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한테는 의식적인 따돌림을 받았다. 엄마는 되레 그걸 바란 것처럼 좋아하는 눈치였다. 문밖에서 살면서 일편단심 ⓑ문안에 연연한 엄마는 내가 그 동네 아이들과는 격이 다른 문안 애가 되길 바랐다. 딸에게 가장 나쁜 거라고 가르친 거짓말까지 시키게 해 가며, 또 친척의 주소를 빌리는 번거로움과 치사함을 참아 가면서 심지어는 ㉣문둥이가 득실댄다는 등성이를 매일 지나다녀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까지 굳이 문안 학교에 보내지 못해 한 엄마의 뜻은 처음부터 그런 데 있었으니까.
엄마는 자기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과 당장 처한 현실과의 갈등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부지불식간에 자식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식이 겪는 갈등에 대해선 무지한 편이었다. 나는 동네에서도 친구가 없었지만 학교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학교 친구들은 모두 그 근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저희들 끼리끼리였다. 그 끼리끼리가 저희들끼리 싸우고 바뀌고 편먹고 할 뿐이지, 처음부터 어떤 끼리끼리에도 안 속한 이질적인 아이에 대해선 배타적이고 냉혹했다. 나는 가끔 혼자서 ㉤거울을 보면서 내가 어디가 어떻게 남과 달라서 여기저기서 따돌림을 받나를 이상하게도 슬프게도 생각했다. 한동네 사는 애들하곤 격이 다르게 만들려고 엄마가 억지로 조성한 나의 우월감이 등성이 하나만 넘어가면 열등감이 된다는 걸 엄마는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우월감과 열등감은 다 같이 이질감이라는 것으로 서로 한통속이었다.
- 박완서,「엄마의 말뚝 1」
*봉제사: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심.
04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공간적 배경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② 대화보다는 서술을 위주로 전개하고 있다.
③ 서술자가 과거에 경험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④ 서술자를 교체하여 새로운 사건을 도입하고 있다.
⑤ 인물의 행위에 대한 서술자의 판단을 제시하고 있다.
05 ⓐ와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엄마가 ⓑ에서 살지 못하는 것은 자식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다.
② 엄마가 심어 준 ‘나’의 우월감이 ⓑ에서는 열등감으로 바뀐다.
③ 엄마가 ⓑ를 소망하는 이유는 삶의 수준을 높이고 싶기 때문 이다.
④ ⓐ에 사는 사람은 법적으로 ⓑ에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⑤ ‘나’는 ⓐ와 마찬가지로 ⓑ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06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를 보여 준다.
② ㉡: 엄마의 험난했던 과거의 삶을 보여 준다.
③ ㉢: 기와집에 대한‘나’의 애정을 보여 준다.
④ ㉣: ‘나’가 학교에 다니는 일이 수월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⑤ ㉤: ‘나’가 번민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07 <보기>의 밑줄 친 관점에서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보기>
박완서는 1970~1980년대 급성장한 한국의 산업화 시대에 드러난 욕망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선이 굵고 분명한 이야기를 살아 있는 문장으로 그려 많은 독자들과 공감을 나눈 작가는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룬 여성 문학의 대모이기도 했다.
① 엄마가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온 것은 며느리를 억압하는 시어머니 때문이었겠군.
② 엄마가 기와집에 집착하는 것은 시골에서 집 없이 살면서 생긴 한에서 비롯된 것이겠군.
③ 엄마는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하지 않으려고 ‘나’를 신여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겠군.
④ ‘나’가 신여성이 되려고 하는 것은 동네 아이들의 따돌림에 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겠군.
⑤ ‘나’를 신여성으로 만든다는 명분으로 억압하는 것은 엄마의 왜곡된 사고를 보여 주는 것이겠군.
도움자료
[2014 EBS N제]-(B형)
04~07
04 ④ 05 ① 06 ② 07 ③
박완서,「엄마의 말뚝 1」
이 작품은「엄마의 말뚝」이란 제목으로 된 세 개의 연작 소설 중에 가장 먼저 창작된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서울의 현저동 꼭대기에 집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2부는 오빠의 비참한 죽음을 상기하는 어머니의 광기를 그리고 있고, 3부는 어머니의 죽음을 수습하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일제하의 고달픈 삶,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6·25 전쟁의 공포, 분단의 비극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어른이 된 ‘나’의 회상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울에 삶의 터전을 잡기 위한 어머니의 삶
의술에 무지한 시골에서 남편을 여읜 뒤, 오빠를 교육시키러 서울로 떠났던 어머니는 여덟 살 된 ‘나’를 신여성으로 키우기 위해 서울로 데려간다. 현저동 인왕산 근처 산동네에 세들어 살다가 어머니의 억척과 시골집의 도움으로 그보다 더 오르막에 기와집 을 마련하여 드디어 말뚝을 박는다. 세월이 흘러 40년 후, ‘나’는 우연한 기회에 현저동을 지나다가 엄청나게 변한 모습에 놀란다.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엄마의 말뚝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04 서술상의 특징 파악 ④
이 글은 ‘나’가 매동 학교에 입학하고 문밖에 기와집을 산 사건을 ‘나’의 눈으로 전달하고 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의 시각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④의 진술은 적절하지 않다.
① ‘나’의 가족이 살게 된 기와집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② 이 글은 대화보다는 주로 ‘나’의 생각을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③ 세 번째 문단의 ‘그러나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에서 서술자가 과거에 경험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⑤ 이 글은 서술자인 ‘나’가 엄마의 행위에 대해 주관적으로 판단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05 공간의 상징적 의미 파악 ①
엄마는‘나’를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의 학교 에 입학시켰고 엄마가 ⓑ에 살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② 이 글의 마지막 문단에서 엄마가 조성한‘나’ 의 우월감이 ⓑ에 가면 열등감이 된다고 서술하고 있다.
③ ⓑ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교육적, 문화적으로 높은 생활 수준 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엄마는 ⓑ에 살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④ ‘나’는 ⓑ에 있는 매동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친척 집으로 주소를 옮긴다. 이것은 ⓐ에 사는 사람은 법적으로 ⓑ에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없음을 말해 준다.
⑤ ‘나’는 동네에서도 친구가 없었지만 학교에서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했다.
06 소재의 기능 파악 ②
‘빈대 핏자국’은 전에 살던 체 장수가 남기고 간 흔적이다. 그러므로 엄마의 험난했던 과거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① ‘매동학교’는 엄마가 ‘나’를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보낸 ‘문안’의 초등학교로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③ ‘봉숭아’는 새로 산 기와집 마당을 꾸미기 위해 ‘나’가 심은 꽃이므로 기와집에 대한 ‘나’의 애정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④ ‘문둥이’는 ‘나’가 문안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만나야 하는 두려운 존재이므로 ‘나’의 수월치 않은 등하굣길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⑤ ‘나’가 동네와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는 상황에 대해 번민하고 있는 구체적인 모습을 ⓔ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07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③
<보기>에서 밑줄 친 부분은 여성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이 글을 감상한 것은 ③이 다. 이 글에서 엄마가 ‘나’를 신여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무지해서 남편을 잃고 봉건적 가족 제도에 얽매여 살았던 자신의 삶을 자식이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① 엄마가 시골을 떠난 이유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엄마를 억압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지식과 자유로운 삶을 주기 위함이었다.
② ‘나’의 가족은 시골에서 남의 집에 살지 않았다.
④ ‘나’가 신여성이 되려고 하는 의지는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문 안의 매동학교에 다니면서 동네 아이들로부터 소외당하게 되어 내적 갈등이 일어난다.
⑤ 엄마가 ‘나’를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다소 극성스럽기는 하지만 ‘나’를 억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높은 수준의 삶을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는 엄마의 사고를 왜곡되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