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A] <이런 땅을 팔기에는, 아무리 수입은 몇 배 더 나은 병원을 늘쿠기 위해서나 아버지께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잡히기나 해 가지고는 삼만 원 돈을 만들 수가 없었고, 서울서 큰 양관(洋館)을 손에 넣기란 돈만 있다고도 아무 때나 될 일이 아니었다.>
[B] <‘아버지께선 내년이 환갑이시다! 어머니께선 겨울이면 해마다 기침이 도지신다. 진작부터 내가 모셔야 했을 거다. 그런데 내가 시굴로 올 순 없고, 천생 부모님이 서울로 가시어야 한다. 한동네서도 땅을 당신만치 못 거둘 사람에겐 소작을 주지 않으셨다. 땅 전부를 소작을 내어맡기고는 서울 가 편안히 계실 날이 하루도 없으실 게다. 아버님의 말년을 편안히 해 드리기 위해서도 땅은 전부 없애 버릴 필요가 있는 거다!’ >
창섭은 샘말에 들어서자 동구에서 이내 아버지를 뵐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가에는 살얼음이 잡힌 찬물에 무릎까지 걷고 들어서서 동네 사람들을 축추겨 돌다리를 고치고 계시었다.
“어떻게 갑재기 오느냐?”
“네, 좀 급히 여쭤 봐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 먼저 들어가 있거라.”
동네 사람 수십 명이 쇠고삐 두 기장은 흘러내려간 다릿돌을 동아줄에 얽어 끌어올리고 있었다. 개울은 동네 복판을 흐르고 있어 아래위로 징검다리는 서너 군데나 놓였으나 하룻밤 비에도 일쑤 넘치어 모두 이 큰 돌다리로 통행하던 것이었다. 창섭은 어려서 아버지께 이 큰 돌다리의 내력을 들은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너이 증조부님 돌아가시어서다. 산소에 상돌을 해 오시는데 징검다리로야 건네올 수가 있니? 그래 너이 조부님께서 다리부터 이렇게 넓구 튼튼한 돌루 노신 거란다.”
그 후 오륙십 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는데 몇 해 전 어느 장마엔 어찌 된 셈인지 가운데 제일 큰 장이 내려앉아 떠내려갔던 것이다. 두께가 한 자는 실하고 폭이 여섯 자, 길이는 열 자가 넘는 자연석 그대로라 여간 몇 사람의 힘으로는 손을 댈 염두부터 나지 못하였다. 더구나 불과 수십 보 이내에 면(面)의 보조를 얻어 난간까지 달린 한다한 나무다리가 놓인 뒤에 일이라 이 돌다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진 채 던져져 있던 것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다리 고치는 사람들 점심을 짓노라고, 역시 여러 명의 동네 여편네들과 허둥거리고 계시었다.
“웬일인데 어째 혼자만 오느냐?”
어머니는 손자 아이들부터 보이지 않음을 물으신다.
“오늘루 가야겠어서 아무두 안 데리구 왔습니다.”
“오늘루 갈걸뭘 허러 오누?”
“인전 어머니서껀 서울로 모셔 갈 채빌 허러 왔다우.”
“서울루! 제발 아이들허구 한데서 살아 봤음 원이 없겠다.”
하고 어머니는 땅보다, 조상님들 산소나 사당보다 손자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끌리시는 눈치였다. 그러나 아버지만은 그처럼 단순히 들떠질 마음이 아니었다. (중략)
시골에 땅을 둔대야 일 년에 고작 삼천 원의 실리가 떨어질지 말지 하지만, 땅을 팔아다 병원만 확장해 놓으면 적어도 일 년에 만 원 하나씩은 이익을 뽑을 자신이 있는 것, 돈만 있으면 땅은 이담에라도, 서울 가까이에 얼마든지 좋은 것으로 살 수 있는 것…… 아버지는 아들의 의견을 끝까지 잠잠히 들었다. 그리고
“점심이나 먹어라. 나두 좀 생각해 봐야 대답허겠다.”
하고는 다시 개울로 나갔고, 떨어졌던 다릿돌을 올려놓고야 들어와 그도 점심상을 받았다. 점심을 자시면서였다.
“원, 요즘 사람들은 힘두 줄었나 봐. 그 다리 첨 놀 제 내가 어려서 봤는데 불과 여남은이서 거들던 돌인데 장정 수십 명이 한나잘을 씨름을 허다니…….”
“나무다리가 있는데 건 왜 고치시나요?”
“너두 그런 소릴 허는구나. 나무가 돌만 허다든? 넌 그 다리서 고기 잡던 생각두 안 나니? 서울루 공부 갈 때 그 다리 건너서 떠나던 생각 안 나니? 시쳇사람들은 모두 인정이란 게 사람헌테만 쓰는 건 줄 알드라. 내 할아버님 산소에 상돌을 그 다리로 건네다 모셨구, 내가 천잘 끼구 그 다리루 글 읽으러 댕겼다. 네 어미두 그 다리루 가말 타구 내 집에 왔어. 나 죽건 그 다리루 건네다 묻어라. 난 서울 갈 생각 없다.”
“네?”
“천금이 쏟아진대두 난 땅은 못 팔겠다. 내 아버님께서 손수 이룩허시는 걸 내 눈으루 본 밭이구, 내 할아버님께서 손수 피땀을 흘려 버신 돈으루 장만허신 논들이야. 돈 있다고 어디가 느르지논 같은 게 있구, 독시장밭 같은 걸 사? 느르지 논둑에 선 느티나문 할아버님께서 심으신 거구, 저 사랑마당엣 은행나무는 아버님께서 심으신 거다. 그 나무 밑에를 설 때마다 난 그 어룬들 동상(銅像)이나 다름없이 경건한 마음이 솟아 우러러보군 헌다. 땅이란 걸 어떻게 일시 이해를 따져 사구 팔구 허느냐? 땅 없어 봐라, 집이 어딨으며 나라가 어딨는 줄 아니? 땅이란 천지만물의 근거야. 돈 있다구 땅이 뭔지두 모르구 욕심만 내 문서쪽으로 사 모기만 하는 사람들, 돈놀이처럼 변리만 생각허구 제 조상들과 그 땅과 어떤 인연이란 건 도시 생각지 않구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 다 내 눈엔 괴이한 사람들루밖엔 뵈지 않드라.”
“…….”
“네가 뉘 덕으루 오늘 의사가 됐니? 내 덕인 줄만 아느냐? 내가 땅 없이 뭘루? 밭에 가 절하구 논에 가 절해야 쓴다. 자고로 하눌 하눌 허나 하눌의 덕이 땅을 통허지 않군 사람헌테 미치는 줄 아니? 땅을 파는 건 그게 하눌을 파나 다름없는 거다.”
“…….”
01 윗글의 서술상 특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서술자의 회상을 통해 외부 이야기에서 내부 이야기로 이동하고 있다.
② 특정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대상과 인물에 대한 인식을 전달하고 있다.
③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병치하여 서술함으로써 생동감을 조성하고 있다.
④ 작중 인물인 서술자가 자신의 체험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⑤ 하나의 사건을 여러 서술자가 전달하여 사건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02 [보기]를 참조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돌다리」는 1930년대 전후 식민지 근대화가 심화되면서 일어난 조선 사회의 변화를 형상화하고 있다. 당시에는 일제의 주도에 의해 급격하고 파행적으로 진행된 근대화로 인해 전통적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퇴조하고, 근대적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을 지키려던 구세대와 개인의 이익이나 눈앞의 편의만을 중시하는 신세대가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① 수익성이 낮은 ‘땅’을 팔아 수익성이 높은 ‘병원’을 지으려는 창섭은 근대적 사고를 가진 신세대를 대표해.
② ‘땅’을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인식하는 아버지를 통해 ‘땅’에 대한 전통적 사고를 엿볼 수 있어.
③ 살기 힘든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가기를 원하는 어머니는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어.
④ 조상들이 소중히 여겨 온 ‘돌다리’가 무너져 내린 것은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
⑤ 조상들의 애환이 서린 ‘돌다리’를 외면한 채 새로 만든 ‘나무다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전통보다 당장의 편의만 중시하는 생활 방식이 널리 퍼졌음을 짐작할 수 있어.
03 [A]로 미루어 볼 때, [B]의 ‘창섭’에 대한 평가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아버지의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는 행위를 합리화하려 하고 있군.
② 자신보다 부모님의 삶을 더 걱정하는 창섭의 효성이 잘 드러나 있군.
③ 자신도 아버지만큼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함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군.
④ 아버지가 자신을 동정하게 하여 결국 땅을 팔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군.
⑤ 남에게 소작을 주어서라도 아버지를 서울로 모시려는 마음이 나타나 있군.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이태준,「돌다리」
01 ② 02 ③ 03 ①
해제 ㅣ 이 작품은 땅에 대한 애착을 지닌 한 늙은 농부와 근대 문명을 습득한 아들의 갈등을 통해 일제에 의해 급격하게 유입되는 근 대 문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아들은 땅을 오로지 금전적 가치로만 여겨,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는 자산이라고 본다. 반면에 아버지는 자기의 추억과 노력, 피땀이 담겨 있는 땅을 모든 가치의 원천이 되는 살아 있는 생명처럼 여긴다. 이러한 아들과 아버지의 대립은 ‘나무다리’와 ‘돌다리’라는 소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결국 이 작품은 근대화로 인한 농촌의 해체라는 현상이 유발하는 인물 간의 갈등을 다루면서, 지역이나 세대 차이에 따른 사회 구성원 간의 세계관적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주제 ㅣ 물질 중심의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
전체 줄거리 ㅣ 창섭은 누이동생 창옥이 의사의 오진으로 죽자 아버지가 권하는 농업 학교에 가지 않고 의사가 된다. 맹장 수술 분야에서 권위자가 된 창섭은 병원을 확장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창섭은 농토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병원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농토를 팔아야 한다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아버지는 창섭의 제안을 거절하고 땅을 돈으로만 여기는 창섭의 태도를 비판한다. 땅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을 깨달은 창섭은 아버지가 놓은 돌다리를 건너 서울로 돌아간다. 다음 날 아버지는 고쳐 놓은 돌다리에 나가 세수를 하면서 땅을 지키는 삶이 천리(天理)임을 되새긴다.
내용 구조도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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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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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사고팔 수 있는 자 산으로 여김. •나무다리가 있음에도 수리하기 어려운 돌다리를 고치려는 아버지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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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사고방식의 소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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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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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천지 만물의 근거로 여김. •과거의 추억이 얽혀 있는 돌다리를 수리하려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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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사고방식의 소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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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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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사고팔 수 있는 자 산으로 여김. •나무다리가 있음에도 수리하기 어려운 돌다리를 고치려는 아버지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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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사고방식의 소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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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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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천지 만물의 근거로 여김. •과거의 추억이 얽혀 있는 돌다리를 수리하려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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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사고방식의 소유자 |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작품에는 창섭의 시각을 빌려 서술한 부분이 나타나 있다. ‘이런 땅을 팔기에는 ~ 될 일이 아니었다.’는 창섭의 땅에 대한 인식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위에 ‘~ 계시었다.’, ‘자시다’라는 높임 표현을 사용한 점은 창섭의 시각으로 인물의 행위를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이 작품은 내부 이야기와 외부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식 구 성을 띠고 있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사건이 전개된다.
③ 인물의 회상을 통해 과거의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현재의 장면과 같은 비중으로 나란히 제시되지는 않는다.
④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전지적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으며, 서술자는 사건뿐 아니라 인물의 심리까지 제시하고 있다.
⑤ ‘땅’에 대한 인물의 다양한 반응이 나오지만, 다양한 서술자 가 나오지는 않는다.
02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③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지 묻는 문항이다. 인물들이 핵심 소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한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어머니가 시골을 떠나 서울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전통을 멀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손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인간적인 욕망 때문이다. 따라서 어머니는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라 할 수 없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땅’을 사고팔 수 있는 금전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창섭은 개인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신세대를 대표한다.
② 아버지는 ‘땅’을 하늘의 덕이 통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는 데, 이는 ‘땅’에 대한 전통적 사고방식과 일치한다.
④ 조상들이 소중히 여겨 온 ‘돌다리’는 전통적 가치관을 상징 하는 소재이다. 따라서 ‘돌다리’가 무너져 내렸다는 것은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되었음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⑤ ‘돌다리’는 과거의 추억이 어려 있는 산물로, 이를 잊고 새로 만든 ‘나무다리’만 사용하는 것은 전통보다 당장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근대적 생활 태도가 널리 퍼졌음을 의미한다.
03 인물의 심리 파악 ①
정답이 정답인 이유
[A]에는 창섭이 자신의 병원을 늘리기 위해 아버지의 땅을 팔려고 하고 있음이 드러나 있다. [B]에는 아버지의 나이와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땅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타나지만, [A]로 미루어 볼 때, 창섭이 [B]처럼 생각한 것은 아버지의 땅을 팔려는 미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② 창섭이 자신보다 부모님을 더 걱정했다면 자신이 시골로 내려갔을 것이다.
③ 땅을 팔아 병원을 늘리려는 창섭에게 땅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④ 창섭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밝히겠다는 내용 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⑤ 창섭은 아버지가 땅을 남에게 빌려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