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6]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중공군의 남하 소식에 무작정 배를 탄 ‘나’는 한 동네 먼 친척뻘인 두찬, 광석, 하원을 만나 부산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피란 생활에 지쳐 갈 무렵 광석이 화차에서 뛰어내리다 사고를 당한다. ‘나’와 하원은 광석에게 달려가지만 남한에서의 광석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두찬은 이를 외면하고 가 버린다. 이튿날 광석은 화차 안에서 숨을 거둔다.
일판에선 여전히 우리를 사촌끼리처럼이나 여겼다.
“사촌끼링교? 비슷하네.”
처음 우리 넷이 부두 앞에 나타났을 때 가지런히 훑어보며 지껄였듯 지금도 저희들끼리 키들거리며 지껄이곤 했다. 그러고는 북쪽 얘기를 하라고 자꾸 졸랐다. 두찬이는 해사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모로 젓기만 했다. 얘기할 줄 모른다는 뜻이리라. 풀이 죽은 낯색이었다. 일이 끝나면 셋이 가지런히 돌아왔다. 어두운 화찻간. 내가 가운데 눕고 두찬이와 하원이가 양 가장자리에 누웠다. 하원이더러 가운데 누우라니까 두찬이 모르게 아얏 소리를 지를 만큼 내 허벅다리를 꼬집어 뜯었다.
어느새 봄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초량 뒷산 마루에는 제법 아른아른한 기운이 어리었다.
밤이 어지간히 늦었는데도 두찬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원이는 기쁜 듯이 지껄였다. 여느 때의 하원이 같지 않게 활발스럽기까지 했다.
“두찬이 형 아주 간가 부다, 잉잉.”
“…”
“야하!”
“…”
“넌 왜 늘 아무 말도 안헌?”
“…”
“벌써 여긴 봄이다 야. 이북은 아직도 굉장히 추울 끼다.”
“…”
“…?”
되잖은 청으로 타령 같은 것을 부르는 두찬이의 취한 목소리가 또 가까워 왔다. 하원이는 흠칫 놀라 또 내 허벅다리를 조심스럽게 찔렀다.
“문 열어라.”
드르르 문을 열었을 땐, 싸느다란 부두 불빛이 푸르무레하게 또 화찻간에 찼다. 막걸리 병이 들려 있었다. 문간에 막아서서 비트적거리며 한참을 허허허 웃어 댔다.
(중략)
두찬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화차 문은 열어젖힌 채였다. 어수선한 바람이 몰아들었다. 두찬이는 머리칼을 앞으로 흩뜨린 채 내 곁으로 다가왔다. 구석에서 하원이가 다시 소리 내어 흑흑 흐느꼈다.
“야, 너 오늘 죽여 버린다. 어잉 이 새끼야, 넌 왜 그때 혼자만 간. 왜 날 붙들지 않안. 부르지도 않안. 그리고 이제 와선 괄세야, 이 새끼야. 그땐 암말두 안 허군 이제 와서. 너 잘핸 것 같니, 잘핸 것 같애? 하늘이 내려다본다, 이 뻔뻔헌 새끼야.”
다시 하원이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두찬이는 내 무릎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다시 그냥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어잉, 이 쥑일 새끼, 개새끼, 취핸 줄 아니? 취할 탁이 있니? 이 개새끼야, 요렇게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말똥말똥해. 왜 넌 암말두 안 헌. 뛰디래 잡든지 칼침을 주든지 하잖구. 어허허허, 내, 이제 무신 낯짝으로 동네 가간, 어허허허 … 광석아아 … 광석아하아.”
두찬이는 벌렁 자빠져서 화차 안이 쩌렁쩌렁하도록 그냥 어이어이 울어 댔다.
이튿날 아침 두찬이는 보이지 않았다. 부두 일판에 나가도 없었다.
사흘쯤 지난 뒤, 어두운 화찻간 속에서 하원이는 지껄였다.
“야하, 우리 이젠 꼽대가리(1) 자꾸 해서 돈 좀 쥐자. 그러구 저기 영주동 산꼭대기에다 집 하나 짓자. 거기 집 제두 일 없닝기더라야. 잉야 조카야, 흐흐흐 우습다. 진짜 우스워. 난 너두 두찬이 형처럼 그렇게 될까 봐 얼마나 떨언 줄 안. 광석이 아재비두 맘은 좋은 폭은 못 됐시야, 잉. 우린 동네 갈 젠 꼭 같이 가자. 돈 벌어서, 돈 벌문 말야, 시계부터 사자, 어부러서. 그까즌 거, 꼽대가리 대구 하지 머. 광석이 아저씨까 두찬이 형은 못 봤다구 글자마, 알 거이 머야, 너까 나만 암말두 안헌 담에야. 그저 대구 못 봤다구만 글자마. 낼부터 나 진짜 꼽대가리 할란다. 잉, 조카야 우습다. 잉? 이케 잠이 안 온다야. 우리 오늘 밤, 그냥 밤새자. 술 마시까, 술?”
나는 그저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이 내리는 눈송이여, 아, 눈송이여.”
무엇인가 못 견디게 그리운 것처럼 애탔다. 그러나 누가 알랴! 지금 내 마음 밑 속에서 일어나는 돌개바람 같은 것을 … 아, 어머니! 이미 내 마음은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와락 하원이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두 볼에 흘러내렸다. 하원이는 흐흐흐 웃었다. 지껄였다.
“이 새끼 술도 안 먹구 취핸. 참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눈두. 이북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광석이 아재비네 움물 말이다. 야하, 굉장헌데. 새벽엔 까치가 울구, 그 상나무 있잖니. 장자골 집 형수 원래 잘 웃잖니. 하하하 하구.그 형수 꽤나 부지런했다. 가마이 보문, 언제나 새벽에 젤 먼저 물 푸러 오군 하는 게 그 형수더라, 잉. 야하, 눈 보구 싶다, 눈이.”
-이호철, ‘탈향’
(주) (1) 꼽대가리: 곱대거리. 잇따라 곱절로 하는 교대 일.
34. 윗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하원은 두찬에 대해 저항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
② 두찬은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
③ 하원은 평소 광석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④ 두찬은 자신을 멀리하는 하원을 원망하고 있다.
⑤ ‘나’는 두찬 때문에 광석이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35. 윗글에 나타난 공간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사촌처럼 함께 행동하던 ‘부두’와 달리 ‘화찻간’은 하원과 ‘나’, 두찬의 갈등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② ‘부두’가 부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열린 공간이라면 ‘집’은 실향민들의 고립된 공간을 의미한다.
③ 눈이 오지 않는 ‘부산’은 눈이 많이 오는 ‘이북’과 대비되어 두 공간의 이질성이 드러난다.
④ ‘집’이 하원에게 물질적으로 안정된 삶을 의미한다면 고향의 ‘움물’은 하원의 내면적 지향과 관련된다.
⑤ 잘 웃는 장자골 집 형수가 있는 ‘움물’은 과거의 행복한 삶을, 어두운 ‘화찻간’은 현재의 불안정한 삶을 상징한다.
36.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이 작품은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남한에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의 삶을 지탱해 온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감상적 그리움은 점차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즉 고향 상실을 임시적 상황이 아닌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인식함으로써 인물은 새로운 결단에 직면하고 고뇌하게 된다. 이는 모성적 공동체와의 결별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향한 결단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을 성장 소설로 이해하게 한다.
① ‘무엇인가 못 견디게 그리운 것처럼 애’타는 것은 ‘나’의 삶을 지탱해 왔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군.
② ‘마음 밑 속에서 일어나는 돌개바람 같은 것’은 ‘나’에게 현실에 대한 새로운 결단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군.
③ 하원을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와락 하원이를 끌어안’으며 우는 것은 결단을 요구받는 인물의 고뇌를 보여 주는군.
④ 하원이 ‘나’에게 ‘우린 동네 갈 젠 꼭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은 고향에 곧 돌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 자각에 바탕을 둔 것이군.
⑤ 같은 동네에서 ‘조카’, ‘아재비’ 관계로 지냈던 인물들이 결국 헤어짐에 이르는 것은 공동체적 세계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군.
2014년 EBS수능완성국어영역 국어 B형
[수능완성 국어영역 국어 B형 실전편]
실전 모의고사 3회
현대 소설 34~36.
이호철, ‘탈향’
지문 이해하기
(해제) 이 작품은 전후 실향민들이 겪었던 불안한 삶과 남한 적응 과정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6·25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고향 친구 네 사람은 타향(부산)에서 각기 다른 대응 양상을 보여 준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화찻간은 인물들의 불안정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며 현실의 비참함을 암시한다. 서술자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고향으로부터의 벗어남(탈향)을 통해 현실의 삶을 직시하고 고통스러운 홀로서기를 결단하고 있다.
(주제) 전후 실향민들의 고통과 각성
전체 줄거리
먼 친척 관계로 북한의 한 동네에서 살아온 두찬, 광석, 하원, ‘나’는 피란하는 배에서 우연히 만나 부산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의기투합하며 고향에 돌아갈 희망을 가졌던 처음과 달리 이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사교성이 있는 광석은 남한에서 빠르게 적응해 가는데, 자존심 강하고 무뚝뚝한 편인 두찬은 그런 광석을 경멸하면서도 부러움을 느낀다. 어느 날 화차가 갑자기 움직이자, 이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는데 광석이 팔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두찬은 이 상황을 모른 체하고 가 버렸고, 하원과 ‘나’가 광석을 화차로 옮기지만 결국 광석은 숨을 거둔다. 이후 두찬은 이들을 떠나고, 남은 하원은 고향에 돌아갈 꿈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하원을 떠날 생각을 한다.
34. 작품의 내용 파악
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확인: 두찬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
두찬은 자신을 붙잡지 않은 ‘나’를 원망하고 있지만, 이는 광석을 외면하고 가 버린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 이제 무신 낯짝으로 동네 가간, 어허허허 … 광석아아 … 광석아하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하원은 두찬에게 저항
하원은 두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구석에서 하원이가 다시 소리 내어 흑흑 흐느꼈다.’에서 볼 수 있듯이 저항하고 있지는 않다.
③ 확인: 하원이 광석을 존경
‘광석이 아재비두 맘은 좋은 폭은 못 됐시야, 잉.’이라는 하원의 말에서 하원이 광석을 평소 존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④ 확인: 두찬은 자신을 멀리하는 하원을 원망
하원이 가운데 눕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원은 두찬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두찬이 이것에 대해 하원을 원망하는 내용은 나타나 있지 않다.
⑤ 확인: 두찬 때문에 광석이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
‘넌 왜 그때 혼자만 간. 왜 날 붙들지 않안. 부르지도 않안. 그리고 이제 와선 괄세야, 이 새끼야.’에서 볼 수 있듯이, 두찬은 광석을 외면하고 간 것이지 두찬 때문에 광석이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다. 또한 ‘나’가 두찬 때문에 광석이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35. 작품 배경의 의미, 역할 파악
답: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확인 1: ‘부두’, 어울림의 공간
‘지금도 저희들끼리 키들거리며 지껄이곤 했다. 그러고는 북쪽 얘기를 하라고 자꾸 졸랐다. 두찬이는 해사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모로 젓기만 했다. 얘기할 줄 모른다는 뜻이리라. 풀이 죽은 낯색이었다.’에서 ‘부두’는 부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확인 2: ‘집’, 고립된 공간
하원이 꿈꾸는 ‘집’은 불안정한 화찻간과 대비되는 안식처이지만 고립된 공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1: 사촌처럼 함께 행동하던 ‘부두’
‘일이 끝나면 셋이 가지런히 돌아왔다.’를 통해 부두에서 이들이 함께 행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확인 2: ‘화찻간’은 갈등이 드러나는 공간
‘하원이더러 가운데 누우라니까 두찬이 모르게 아얏 소리를 지를 만큼 내 허벅다리를 꼬집어 뜯었다.’나 ‘두찬이는 머리칼을 앞으로 흩뜨린 채 내 곁으로 다가왔다. 구석에서 하원이가 다시 소리 내어 흑흑 흐느꼈다.’ 등에서 하원과 ‘나’, 두찬의 갈등을 읽을 수 있다.
③ 확인: 눈이 오지 않는 ‘부산’
‘눈’은 ‘이북’의 공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눈’이 많이 내리는 ‘이북’과 ‘눈도 내리지 않는’ ‘부산’이 대비되어 두 공간의 이질성이 드러나고 있다.
④ 확인 1: ‘집’이 하원에게 물질적으로 안정된 삶을 의미
‘산꼭대기 집’은 ‘우리 이젠 꼽대가리 자꾸 해서 돈 좀 쥐자. 그러구 저기 영주동 산꼭대기에다 집 하나 짓자.’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는데, 화찻간에서의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나 부산에서 물질적으로 안정된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을 의미한다.
확인 2: ‘움물’은 하원의 내면적 지향
‘우린 동네 갈 젠 꼭 같이 가자.’, ‘야하, 눈 보구 싶다, 눈이.’ 등에서 하원이 내면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⑤ 확인 1: ‘움물’은 과거의 행복한 삶
‘눈 오문 말이다. 광석이 아재비네 움물 말이다. 야하, 굉장헌데. 새벽엔 까치가 울구, 그 상나무 있잖니. 장자골 집 형수 원래 잘 웃잖니. 하하하 하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물(움물)로 상징되는 과거의 세계는 평화로운 세계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하원이 회귀하고자 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확인 2: ‘화찻간’은 현재의 불안정한 삶
화찻간은 안정적인 정착의 공간이 아니라, 언제 화차가 이동할지 몰라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곳이며 이들이 잠시 몸을 깃들인 곳이다.
36.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확인: 하원의 현실적 자각
하원은 고향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힌 인물로, 하원의 말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표출이다. ‘나’와 달리 하원은 현실적 자각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
‘바람도 없이 내리는 눈송이여, 아, 눈송이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고향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
② 확인: 현실에 대한 새로운 결단
‘이미 내 마음은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에서 인물에게 새로운 결단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③ 확인: 결단을 요구받는 인물의 고뇌
‘순간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눈물이 두 볼에 흘러내렸다.’에서 ‘나’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⑤ 확인: 공동체적 세계로부터의 이탈
일판에서 이들이 ‘사촌’처럼 인식된다든가, 서로 조카, 아재비로 부른다든가 하는 것에서 이북에서 이들이 공동체적 삶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헤어짐은 이러한 세계로부터의 이탈이자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