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나는 당시의 긴장이 실제로 되살아나는 듯 온몸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름을 느꼈다. 그때,
“아아, 훈장은 그래서 타게 된 거로구나!”
갑자기 플래시를 들이대는 듯한 나미의 낭랑한 음성에 나는 얼떨떨했다.
“그럼 자긴 베트콩을 한 사람도 못 죽여 봤어?”
하얀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마스카라 칠한 눈으로 나를 말똥말똥 지켜보는 그녀가 그때처럼 낯설어 보인 적은 없었다. 결국 내가 들려준 얘기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그녀에게 하나도 전달되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도, 죽어 넘어진 전우도, 작렬하는 포화 소리도 그녀에겐 모두 활자화된 이야기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지극히 불쾌해서 다탁 위에 놓인 담배 와 성냥을 집어 들었다.
“벌써 가려구? 좀 더 앉았다 가도 되잖아?”
대답 없이 내가 먼저 밖으로 나오자 나미도 곧 뒤따라 나와서 내 팔짱을 끼었다. ㉠나는 와락 솟구치는 역겨움을 참지 못해 그녀의 손을 홱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마구 뛰었다. 이것이 그날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지금 여러 가지 잡동사니 ─ 한 폭의 낡은 풍경화·시계·전기 스탠드·가족 사진·군용 플래시·트랜지스터 등 ─ 가운데 놓여 있는 을지 무공 훈장을 바라보고 있다. 한낱 작은 그 쇠붙이 조각을.
[중략 부분의 줄거리] 무력감에 빠져 있던 나는 어느 날 화실 창밖으로 공터를 내려다보다가 수시로 쓰레기와 물웅덩이 속을 헤치며 뭔가를 찾고 있는 노인을 발견한다. 노인이 그토록 뭔가를 열심히 찾는다는 일 자체가 나의 무기력에 대한 도전인 것처럼 느낀 나는 견디다 못해 노인에게 접근한다. 노인은 월남전 에서 죽은 아들이 받은 을지 무공 훈장을 어떤 꼬마가 여기서 가지고 놀다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노인의 희망과 의지를 꺾어 버리고 싶었던 나는 내가 받은 을지 무공 훈장을 웅덩이에 몰래 숨기고 노인이 찾아내길 기다리지만, 며칠이 걸려도 노인이 발견하지 못하자 나는 도와주겠다며 직접 웅덩이에 들어간다.
“찾으시던 게 바로 이거지요? 네? 맞습니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척 다그치는 나를 노인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내가 기대했던 커다란 실망의 빛도, 그렇다고 기쁨의 자취도 없었다. 오직 노여움과 차가운 경멸로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씹어 뱉듯 뇌까리고 나서 노인은 나를 남겨 둔 채 홱 돌아섰다. 그리고 양산 밑으로 가 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맥이 탁 풀려서 멍청히 서 있었다. 그때 다시 소년이 내게서 훈장을 채뜨려 가며 말했다.
“이거 나 주세요. 할아버진 아무 소용도 없다고 하셨어요.”
이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훈장에 묻은 진흙을 옷에 연방 닦아 내며 또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는 소년의 손목을 나는 아프게 낚아챘다.
“그래, 너 가져라. 그런데 뭐라구? 할아버지가 이걸 소용없다고 하셨어?”
소년은 내가 눈을 부릅뜬 것을 보고 자기로부터 훈장을 빼앗으려는 줄로 알았는지 한 발짝 물러나며 성급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틀림없이 그러셨어요. 그래서 이걸 여기다 버리신 거 아녜요.”
“버리다니? 웬 꼬마가 보자고 해서 줬다가 잃어버렸다는데.”
“아녜요. 할아버지가 버리셨어요.”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으로 여전히 소년의 손목을 잡아끌며 한적한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자, 여기 좀 앉아라. 네게 몇 가지 물어 볼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제서야 소년은 나를 이상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시죠? 저 할아버지랑 무슨 관계가 있죠?”
“임마, 그건 오히려 내가 물어 보려던 참이다. 너야말로 저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니?”
“우리 옆방에 사는걸요.”
“그래? 그렇다면 넌 정말 저 할아버지가 이 훈장을 소용없다 하시는 걸 네 귀로 똑똑히 들었다 이 말이지?”
내가 한 번 더 다짐을 두자 소년은 기분이 상해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다니까요. 맹세해도 좋아요. 이건 아들이 월남에서 받은 건데 할아버진 이걸 벽에다 걸어 놓고, 늘 이까짓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면서 버릴까부다 그랬거든요. 그러는 걸 내가 듣고 저나 달라고 그래도 안 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게 안 보여서 어쨌느냐고 했더니 저 웅덩이에다 버렸다고 하시잖아요. 내가 아까 웃기는 양반이라 하는 소리 들었죠? 바로 그 소리란 말예요. 글쎄, 소용없어 버렸으면서 뭣 하러 도루 찾느냔 말예요.”
“음…….”
뭣 하러 도루 찾느냐? 이렇게 되면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노인의 그 굳은 의지와 훈장과의 관계는 도시 알 수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소년에게 다시 의문의 눈길을 던졌다.
“저 할아버진 지금 누구랑 사시냐?”
“아무도 없어요. 혼자예요.”
“손녀가 있다던데……?”
“아, 걘 벌써 일 년 전에 죽었어요. 교통사고로요.”
죽었다고? 일 년 전에? 그렇다면 노인은 뭣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저 다 늙은 개는 아들이 키우던 거라며?”
“아저씬 어디서 그런 엉뚱한 소리만 들었어요? 그건 할아버지가 누군가 병들어 버린 것을 주워 온 거란 말예요.”
훈장, 소녀, 개에 대한 것들이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 순간 나의 뇌리에 내리박히듯 꽂히는 생각, 노인은 죄다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냉혹하게 알고 있었다. 이 세계를 덮고 있는 허망과 무의미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저만큼 노인이 짐을 챙겨 공터를 떠나려는 것이 보인다.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 날 며칠을 기도하고 기도한 끝에 불러 모은 보이지 않는 혼으로 집을 짓고, 이제 겨우 문턱을 넘어서려는 순간 난데없이 나타난 나를 증오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어딘가에선 다시 시작하겠지. 나는 정말 바보였었다.
0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내적 독백을 통해 서술자의 깨달음을 드러내고 있다.
② 서술자의 교체를 통해 사건의 숨겨진 내막을 제시하고 있다.
③ 시간의 역전적 구성을 통해 사건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④ 환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사건의 허구성을 강화하고 있다.
⑤ 동시에 벌어진 사건들을 나란히 배치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있다.
02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나미’가 자신을 살인자인 것처럼 취급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기 때문에
② 평화를 지향하는 자신의 성격을 ‘나미’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③ 자신이 전쟁에서 세운 커다란 공을 ‘나미’가 순순히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④ ‘나미’가 외모를 예쁘게 꾸미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⑤ 자신이 극한 상황에서 겪은 생존의 위기를 ‘나미’가 흥밋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03 다음 학습 활동의 [A]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활동 목표 작품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목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⑴ 다음은 이 작품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사막’이 무엇의 비유로 쓰였는지 적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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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란 것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다 그것을 말해서 노인이 알아들을지도 의문이었던 것이다. 그보다 차라리 진흙투성이가 된 보잘것없는 훈장을 노인의 코앞에 들이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노인의 그 끈질긴 힘이 결국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케 하고 싶은 것이다. 노인의 눈 속에서 희망도 의지도 애정도 다 사라지고, 대신 사막처럼 막막하고 황량한 허무의 모습이 비치는 광경을 보아야 나는 비로소 이전의 생활로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 사막은 막막하고 황량한 허무의 비유로 쓰였다. )
⑵ ‘나’와 ‘소년’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밝혀지는 내용은 무엇인지 적어 보자.
(훈장, 손녀, 개에 대한 ‘노인’의 말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
⑶ ⑴과 ⑵를 참고할 때, ‘사막을 건너는 법’이라는 제목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 [A] )
① ‘나’가 삶의 허무를 넘어서기 위해 ‘노인’을 돕는 것을 가리킨다.
② ‘소년’이 ‘노인’의 허무를 알리기 위해 진실을 폭로하는 것을 가리킨다.
③ ‘나’가 반복적 일상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했던 것을 가리킨다.
④ ‘노인’이 허무에 빠진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⑤ ‘노인’이 현실의 허무를 견뎌 내기 위해 자신을 허구의 상황 속에 두는 것을 가리킨다.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서영은,「사막을 건너는 법」
01 ① 02 ⑤ 03 ⑤
해제 ㅣ 이 소설은 월남전에 다녀온 후 극도의 허무에 시달리는 주인공 ‘나’와, ‘나’가 우연히 알게 된 한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허무와 그 극복에 관한 주제 의식을 담아 낸 작품이다. 삶의 허무를 노인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나’와, 이 세계가 사막처럼 황량한 곳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거짓말을 허무 극복의 수단으로 삼고 있었던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 삶의 실존적 문제 에 관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주제 ㅣ 삶을 가득 채운 허무의 본질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
전체 줄거리 ㅣ 원래 미술학도였으나 월남전에 참전하여 을지 무공 훈장을 받고 돌아온 ‘나’는 제대 후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이게 된다. 죽음의 고비를 넘던 전장에서의 긴박한 순간에 대한 얘기를 듣던 애인 나미가 그래서 훈장을 타게 됐냐느니 베트콩은 죽여 봤냐느니 하는 것이나 묻자, ‘나’는 불쾌해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극도의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어느 날 화실 창밖으로 공터를 내려다보다가 뽑기 과자를 만들어 파는 한 노인을 발견하는데, 그는 쓰레기와 물웅덩이 속을 헤치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인이 무엇인가를 그토록 열심히 찾는다는 일 자체가 나의 무기력에 대한 도전인 것처럼 느낀 나는 슬그머니 노인에게 접근한다. 노인은 월남전에서 죽은 아들이 받은 을지 무공 훈장을 어떤 꼬마에게 가지고 놀라고 주었는데 그 아이가 훈장을 이 웅덩이에서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나’는 노인의 희망과 의지를 꺾어 버리고 노인에게 삶이란 결국 허무한 것이란 점을 알려 주고 싶어서, ‘나’의 을지 무공 훈장을 웅덩이에 몰래 숨기고 노인이 찾아내길 기다린다. 며칠이 걸려도 노인이 훈장을 발견하지 못하자 조급해진 ‘나’는 도와주겠다며 직접 웅덩이에 들어간다. 웅덩이를 뒤지는 척하다가 훈장을 찾아 들고 노인에게 건네지만, 노인은 노여움과 차가운 경멸 로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곤 돌아서서 가 버린다. 맥이 풀린 ‘나’는 이제껏 노인이 했던 이야기들, 즉 훈장을 실수로 잃어버렸다는 것, 어린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아들의 개를 기르고 있다는 것 등이 모두 거짓말임을, 훈장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소년에게 들어서 알게 된다. 그제야 ‘나’는 자신이 정말 바보였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내용 구조도 ㅣ
노인의 실제 삶↔노인의 가상 속 삶
거짓말, 허구화 = 허무를 극복하는 수단
→ ‘사막을 건너는 법’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①
정답이 정답인 이유
‘그 순간 나의 뇌리에 내리박히듯 꽂히는 생각, 노인은 죄다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냉혹하게 알고 있었다. 이 세계를 덮고 있는 허망과 무의미와 그 밖의 모든 것을.’, ‘~ 난데없이 나타난 나를 증오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어딘가에선 다시 시작하겠지. 나는 정말 바보였었다.’ 와 같은 내적 독백을 통해 서술자 자신이 노인에 대해 깨닫게 된 바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결국 내가 들려준 얘기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그녀에게 하나도 전달되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도, 죽어 넘어진 전우도, 작렬하는 포화 소리도 그녀에겐 모두 활자화된 이야기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같은 부분에서는 서술자인 ‘나’가 나미에 대해 깨닫게 된 바가 드러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② 노인이 했던 말이 거짓이었음이 소년의 말을 통해 밝혀지면서 사건의 숨겨진 내막이 제시되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작품의 서술자가 교체된 것은 아니다.
③ 이 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시간의 역전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④ 이 글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들, 즉 ‘나’와 나미가 이야기를 나누던 다방, 노인과 ‘나’가 대화를 나누는 웅덩이 주변 공 터, 그 공터를 내려다보는 ‘나’의 화실 등은 환상적인 성격의 장소라고 볼 수 없다.
⑤ 이 글은 ‘나’가 겪는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시되고 있으며, 그 흐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동시에 벌어진 사건들을 나란히 배치한 부분은 찾을 수 없다.
02 인물의 심리 파악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전쟁터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나’는 온몸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였던 극한 상황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미’는 그런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그럼 자긴 베트콩을 한 사람도 못 죽여 봤어?’같은 철없는 질문만 던진다. 이를 보며 ‘나’는 결국 자신이 들려준 얘기의 진정한 의미는 ‘나미’에게 하나도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도, 죽어 넘어진 전우도, 작렬하는 포화 소리도 그녀에겐 모두 활자화된 이야기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한 부분을 볼 때, ‘나’는 인간 실존의 최대 위기인 전쟁의 절박함을 소설 속 일화나 전해들은 얘기처럼 흥밋거리 정도로 받아들이는 ‘나미’에 대해 불쾌함과 역겨움을 느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나미’가 ‘그럼 자긴 베트콩을 한 사람도 못 죽여 봤어?’라 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나’를 살인자로 취급한다는 진술은 적절하지 않다.
② ‘나’가 ‘나미’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참전 당시 긴박했던 순 간의 경험에 관한 것이지 평화를 추구하는 자신의 성격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③ ‘나’는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는 사실을 ‘나미’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나미’가 ‘아아, 훈장은 그래서 타게 된 거로구나!’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나미’가 ‘나’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④ ‘나미’가 예쁜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외모를 꾸미는 데만 관심이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며, ‘나’가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나미’가 외모를 치장하는 것 때문도 아니다.
03 인물의 성격, 태도 파악 ⑤
학습 활동의 형식을 통해 작품의 제목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이해해 보는 문제이다. ‘나’와 ‘노인’의 상황과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막’의 의미를 파악해 본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학습 활동의 (1)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나’는 노인이 진실에 무지하기 때문에 희망, 의지, 애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토록 찾아 헤매는 훈장이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 쇳덩이에 불과한지 깨닫게 해 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나’가 생각한 ‘진실’이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듯, 세상이 허망과 무의미로 덮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인이 했던 말들이 거짓말임을 알게 된 후, ‘나’는 노인이 그 ‘진실’ 을 이미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노인이 훈장을 찾아 헤매는 일이란, 아끼던 아들과 손녀의 죽음으로 느끼게 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허무를, 자신이 바라던 삶을 허구적으로 구성하여 그 상황 속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극복하고자 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사막을 건너는 법’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 즉 ‘몇 날 며칠을 기도하고 기도한 끝에 불러 모은 보이지 않는 혼으로 집을 짓고, 이제 겨우 문턱을 넘어서려는 순간’에 갑자기 ‘나’가 불쑥 뛰어든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노여움과 차가운 경멸로 흉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보 같으니라구!’라는 말을 하고 돌아서며, ‘나’는 나중에서야 ‘나는 정말 바보였었다.’라는 뼈아픈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나’는 허무를 넘어서기 위해 ‘노인’을 도운 것이 아니라, ‘노인’에게 허무를 가르치기 위해 ‘노인’을 돕는 척한 것에 가깝다.
② ‘소년’은 ‘노인’의 허무를 알리려는 목적을 갖고 ‘노인’에 관한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물음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답하고 있을 뿐이다.
③ ‘나’는 반복적 일상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한 게 아니라 전쟁에 다녀온 이후 극도의 허무에 빠지게 됐다. 이는 ‘훈장’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노인’에 대한 태도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④ ‘노인’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