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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현대소설

'이미륵,「압록강은 흐른다」'[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B)

작성자구렛나루|작성시간15.02.25|조회수688 목록 댓글 0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익원의 책꽂이에는 학술 서적 외에도 많은 오락책들이 꽂혀 있었다. 대부분 일본어로 번역된 유럽 소설들이었고, 나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하루는 그 책들 중에서 철학책 몇 권을 발견했다. 나는 존재의 이론이라는 제목의 책을 꺼내 읽었다. 이날은 일요일이어서 익원은 학교 친구를 만나러 가고 없었고, 나 혼자 집에 있었다. 나는 익원이 돌아올 때까지 오후 내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익원은 내가 그 책에 몰두해 있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는 철학에 너무 매달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왜냐하면 철학은 전공 과목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동양 사람들은 너무 이론에만 치우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멀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내가 보기에 철학은 인간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 중에서 가장 심오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손에서 놓고 더 읽지 않으려고 결심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계속해서 읽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익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날부터 다시 계속해서 철학책을 탐독했다.

우리가 유럽 사람들에게 뒤떨어진 현대 학문은…….”

어느 날 저녁, 익원이 말을 꺼냈다.

철학적인 사고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실질적인 자연 지식에서 생겨난 거야. 그것은 자연 과학에 있어서도 그렇고, 의학에 있어서도 그래. 우리의 선조들이 항상 인간의 육체를 고전 철학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서양 연구가들은 그것을 해부하여 내부 기관을 직접 눈으로 관찰했지. 그들은 골똘히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어디에 심장이 있고 어디에 위가 있으며, 어디에서 혈관과 신경선이 달리고 있는가를 직접 보았던 거야. 그들의 그러한 대담한 용기 덕분에 우리는 결국 옛날 것보다 몇 백 배나 더 위대한 현대 의학을 얻게 된 거지.”

우리 옛 전통적인 한방 의학에 관해서는 익원이나 나나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한의학이 비록 우리의 연구 분야에 속해 있었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오랜 전통은 모두 낡고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고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우리는 옛 한의원들이 어떻게 공부하였고, 한의학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구분하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한의원이 되기 위해서 적어도 십 년은 공부해야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밑머리가 세지 않은 한의사는 한 명도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때 다행스럽고 우연하게도 이 희귀한 책이 우리 손에 굴러들어 왔다. 익원이 친척 아저씨가 한의원이었던 한 친구를 방문했을 때, 그 친구가 보여 준 책을 빌려 온 것이다. 그 친구는 아저씨가 책을 모두 불태웠는데, 그중 한 권을 구해 보관해 두었던 귀중한 책이라고 했다. 우리는 해부학의 일부를 묘사하고 있는 이 두툼한 책을 조심스럽게 뒤졌다. 책에는 인간의 육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먹으로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었다. 몸 전체에 많은 선과 점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복잡한 명칭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 선들은 생명선인 것 같았다. 선의 경로는 혈관이나 신경에 일치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에는 먹으로 그린 신체 내부의 해부 그림 몇 장이 딸려 있었다. 내부 기관의 외형적인 형태가 마치 아무렇게나 그린 예술가의 스케치처럼 단순하고 조잡했다. 위나 심장의 모양은 우리 교과서의 그림과 똑같았다. 그런데 간은 아주 놀라웠다. 일곱 개의 작은 엽으로 되어 있고, 그것은 왼쪽 폐에서 우리가 소순환계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심장까지 연속적으로 걸려 있었다.

우리는 이 졸렬한 해부학 그림을 보며 웃었다. 그러나 책의 저자가 직접 보지도 않고 이 정도까지 정확히 내부 기관을 그린 재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의원들은 한 번도 해부를 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신체의 내부를 외부를 더듬어서 추측했을 뿐이었다.

이 신통한 한의원들은 환자의 신체를 만지는 일조차 없었다. 그들은 환자의 등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내부 기관을 청진하지도 않았다. 다만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환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듣고서 진맥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처방을 쓰면 이 처방에 따라 조수가 약을 지었다. 조제실에는 필요한 모든 약초와 뿌리가 보관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의원의 감시 하에 탕약과 환약, 고약 등이 제조되었다. 그 외의 다른 치료는 없었다. 한의원은 수술도 주사도 방사선도 알지 못했다. 다만 병에 따라 여러 곳에 침을 놓았다. 침은 생명선이 지나는 곳에 놓았다. 생명선이 방해를 받으면 병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단순한 기술을 배우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그들도 인간 존재의 의의에 대해서 오랫동안 철학적으로 생각했을까? 그들이 약초 연구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우리는 한의학에 관한 책을 본 일이 없었고, 인간 신체의 구조에 관한 책도 구경한 일이 없었다. 그러한 책은 책방에서도 살 수 없었는데, 의원 개개인은 자기 책을 비밀문서처럼 감추고 보았다.

인간의 육체는, 특히 영혼이 몸에서 떠난 다음에는,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시체를 땅에 묻어서 완벽하게 자연에 복귀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위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불행이 오지 않도록 했다. 그러한 까닭에 비록 의사가 시체를 해부할지라도, 그것은 자연 법칙과 영혼에 대한 죄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만이 다녔던 우리 대학의 초창기엔 학생들이 해부 실습을 거부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마 현대 의학이 한의학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고 생각하여 강의를 받았으나, 여전히 시체를 해부하는 것은 큰 죄악으로 여겼을 것이다.

서구 문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던 수십 년 전에는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 낡은 견해를 오래 전부터 벗어 버린 우리 자신도 어느 겨울 오후, 처음으로 잿빛 해부실로 들어갔을 때에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와 익원은 다른 여섯 명과 함께 해부 실습 대상인 청년의 시체가 놓인 책상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얼마쯤 떨어져서 우리는 창백한 시체를 응시했다. 이 죽은 자는 대지의 그늘 속에 묻혀서 쉬는 대신, 차가운 철제 테이블 위에 누워서 겨울 햇볕에 알몸을 쬐고 있었다. 익원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 손을 잡았다.

향조차 안 피우고!”

그는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

 

0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인물 간의 대립을 통해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제시하여 평가를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빈번한 장면 전환을 통해 작중 상황의 긴박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서술자의 경험을 제시하여 대상에 대한 관찰과 판단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반복적으로 교차하여 사건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02.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의견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은 이미륵이 독일어로 써서 독일에서 발표한 자전 소설이다.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역사적인 변혁기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한문 공부, 서양 학문에 눈떠 가는 과정, 서울 유학을 하던 당시 느낀 식민지 현실의 비애, 3·1운동 참여, 중국 망명과 독일 유학, 이국에서 느낀 향수 등이 서정적으로 펼쳐져 있다. 한 개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만남을 그려 낸 점, 한국의 풍습과 사상을 서구에 매력적으로 소개한 점 등 때문에, 발표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독일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간결하고 유려한 문체 덕에 최우수 독문 소설로 선정되기까지 하였다.

익원과의 교유는 가 서양 학문에 눈떠 가는 과정에 해당하겠군

한의학의 치료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독일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겠군.

육체에 관한 동서양의 이질적 문화가 의 성장 중인 내면에 공존하고 있군.

익원이 가진 책이 대부분 외국 서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애감을 느끼고 있군.

해부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설명한 부분을 통해 독일 독자들은 인체에 대한 한국인의 사상을 접했겠군.

 

03. 에 담긴 인물의 심리로 가장 적절한 것은?

죽음을 철학적으로만 사유하려는 전통에 대한 부정

해부 실습을 미리 알려 주지 않은 학교 당국에 대한 반감

인간의 육체를 무례하게 대하는 해부 실습에 대한 불쾌감

현대적인 유럽 학문을 거부하는 동양적 사고에 대한 비판

청년이 대지의 그늘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에 대한 동경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B)

 

이미륵,압록강은 흐른다

01 02 03

 

해제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독일어로 창작되고 독일 에서 발표되었다. 한국의 풍습과 자연, 사상과 인정을 서정적으로 그려 독일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했으며, 유려한 독일어 문체를 구사한 점으로 인해 발표 직후부터 큰 호응을 얻고 독일의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모두 24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각 장에는 제목이 붙어 있다.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의 내면에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상황을 그려 냈다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주제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양상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전체 줄거리 구한말에 태어난 는 어릴 때 사촌인 수암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우고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한다. 수암이 시골로 가게 되면서 그와 이별하게 된 는 신식 중학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게 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학교를 그만둔다. 다시 혼자 공부하여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한 3학년 되던 해에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일본군에 쫓겨 압록강을 건넌다. 상해로 망명한 는 우여곡절 끝에 유럽으로 향하게 되고, 봉운과 함께 독일에 도착하여 한 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만리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는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맏누님의 편지를 받는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글은 를 서술자로 삼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채택하고 있는데, 한의학 서적에서 본 해부도, 그리고 익원과 함께 들어섰던 실습실의 풍경 같은 것들에 대한 관찰이 드러나 있으며, 해부 실습을 거부했던 대학 초창기의 일화, 철학·한 의학 서적 등등에 관한 판단도 담겨 있다. 이는 모두 서술자 의 직·간접 경험을 통해 제시된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이 대목에 등장하는 인물은 와 익원인데, 두 사람은 대립하거나 갈등을 빚지 않고 있다.

대상과 사건에 관한 서술자 의 주관적 판단이나 평가가 빈번하게 노출되어 있다.

장면을 빈번하게 전환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작중 상황 역시 그다지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므로, 과거와 현 재가 반복적으로 교차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02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작품 해설에 해당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제시된 대목을 이해해 보는 문제이다. [보기]에서 설명한 항목들과 작품의 요소를 적절히 연결해 가며 감상해 본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익원이 가진 오락책의 대부분은 유럽 소설들이라고 했으므로 외국 서적이 많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애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는 익원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으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쌓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익원의 책꽂이에는 학술 서적, 유럽의 소설 등 많은 책이 꽂혀 있었고, ‘는 그중에서 철학책을 탐독한다. 이를 본 익원은 유럽 사람들이 현대 학문에서 추구해 온 실질적인 자연 지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므로 익원과의 교유는 곧 [보기]에서 말한 서양 학문에 눈떠 가는 과정중 일부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 소설이 한국의 풍습을 서구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소개했다는 [보기]의 설명에 의하면, 한의학의 치료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독일 독자들에게 낯선 한국의 문화를 매력적으로 소개한 것에 해당할 것이고, 바로 이런 점이 이 작품이 선풍적 인기를 끈 요인 중 하나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보기]는 이 작품이 한 개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만남을 그려 냈다고 하였다. 지금 이 대목에는 인간의 육체에 대한 동서양의 서로 다른 관점이 설명되어 있고, ‘의 내면에는 그 두 가지의 지향이나 속성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기에 는 한의학 서적의 졸렬한 해부학 그림을 비웃을 만큼 낡은 견해를 오래 전부터 벗어 버린사람이 지만, ‘처음으로 잿빛 해부실로 들어갔을 때에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보기]에 의하면 이 작품은 독일 독자들에게 한국의 사상을 매력적으로 소개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글과 관련하여 이를 이해해 보자면, 육체를, 특히 사후의 육체를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하여 해부를 죄악으로 여기는 한국인의 태도에 대한 설명은 그것을 해부하여 내부 기관을 직접 눈으로 관찰대담한 용기의 문화에 익숙한 독일 독자들이 한국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03 인물의 심리 파악

정답이 정답인 이유

서구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를 지닌 익원은 해부를 통해 실제적인 의학 지식을 축적한 서양의 연구가들의 대담한 용기를 예찬한다. 그러나 낡은 견해를 오래 전부터 벗어 버린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자신을 기른 문화적 토양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해부실에 가야 했을 때 기분이 별로 좋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다가 얼마쯤 떨어져서 시체를 응시하고 있으며, 슬픈 표정으로 를 바라보면서 손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실습을 준비한 사람들이 시신 앞에 향조차 피우지 않았다는 말을 못마땅한 듯중얼거린다. 익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화적 전통, 즉 인간의 육체, 특히 영혼이 떠난 육체를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한국의 전통을 고려할 때, 향조차 피우지 않았다는 말을 한 까닭은 서구식 해부 실습이 사자(死者)의 육체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마저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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