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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현대소설

'신경숙,「외딴 방」'[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B)

작성자구렛나루|작성시간15.02.25|조회수1,088 목록 댓글 0

[01~0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여기는 섬, 제주도.

집을 떠나 글을 써 보기는 처음이다. 누구에게나 글 쓰는 스타일이 있다면 내 스타일은 바깥에 있다가도 글을 쓰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메마른 시간을 달래기 위한 충동적인 여행길에서도 무엇인가 쓰고 싶어지면 나는 그곳이 집이 아님을 안타까워하곤 했다. 집으로 가자, 낯선 곳에서 솟아오르는 문장에 떠밀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글쓰기란 나에겐 집이었을까. 내 속을 뚫고 올라오는 문장들은,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글을 쓸 때만은 손에 맞고 눈에 익은 것, 청결한 귀와 세면대 앞에 꽂혀 있는 칫솔이 있어야만 했다. 설지 않은 냄새와 늘 입는 티셔츠와 바지 같은 것이, 언제나 갈아 신을 수 있는 양말이, 곁에 있어야 했다. 모든 일상이 입속의 혀같이, 수도꼭지 밑의 세숫대야같이 제자리에.

 

때로 어떤 문장은 복병 같아서 이런 가을날, 어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걷는 틈, 갑자기 내 속 수풀을 헤치고 튀어나온다. 단박 현실을 무찌르고 나를 꽉 채우고 마는 빛에 싸여 있는 듯한 흥분. 나는 기꺼이 그 복병에 매료되어 약속을 저버린다. 집으로 간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내 스타일을 버린다. 집을 버린다.

 

집을 버리고 와서 집을 생각한다. 새마을 운동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꿔 놓기 전 초가지붕에서의 어린 시절을, 그 초가에서의 우리 가족을, 그 집 지붕에서 뚜렷하게 순환하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심호흡.

 

이제 열여섯의 나, 노란 장판이 깔린 방바닥에 엎드려 편지를 쓰고 있다. 오빠. 어서 나를 여기에서 데려가 줘요. 그러다가 편지를 박박 찢어 버린다. 벌써 유월이다. 들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두엄자리에선 보릿짚이 썩고 있는 중이다. 목덜미에 내려앉는 햇볕이 따갑다. 대문 옆의 채송화가 벌써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다. 햇살과 채송화가 싫증이 난다. 나는 헛간 벽에 걸려 있는 쇠스랑을 끌어내린다. 처음엔 쇠스랑을 끌고 두엄자리로 가서 썩고 있는 보릿짚을 뒤적거린다. 손길이 사나워진다. 어떻게 된 것인가. 쇠스랑이 햇볕에 번쩍한다 했는데 어설프게 들려 있는 내 발바닥을 찍는다. 열여섯의 나, 멍해진다. 발바닥에 찍혀 있는 쇠스랑을 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놀란 발바닥에선 피도 나지 않는다. 열여섯의 나, 주저앉는다. 아픈 줄도 모르겠고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발바닥에 쇠스랑을 꽂고 썩어 가는 보릿짚 위로 드러누워 본다. 파란 하늘이 얼굴로 쏟아진다. 얼마나 지나 바깥에서 돌아온 엄마가 무슨 일이냐, 소리친다. 엄마. 엄마의 기척을 느끼고서야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그때서야 무섭고 그때서야 아프다. 놀란 엄마의 외침 소리. 눈을 감아라, 꼭 감아. 눈을 감는다, 꼭 감는다. 감은 눈 속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엄마, 쇠스랑에 힘을 주고 다시 한 번 외친다. 쇠스랑을 뺄 때까지 눈을 뜨지 마라. 슬몃 떠진 눈 속으로 엄마의 눈이 잡힌다. 끔찍한지 쇠스랑 끝을 잡고 있는 엄마도 눈을 감고 있다. 엄마, 망설이지 않고 발바닥에 꽂힌 쇠스랑에 힘을 주어 쑥 빼낸다. 신경이 얼마나 놀랐는지 쇠스랑이 빠져도 피가 나지 않는다. 독한 것, 엄마는 쇠스랑을 내던지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래 그걸 꽂고 드러누워 있어? 소리도 안 쳐! 엄마의 큰 손이 열여섯의 내 등짝에 철썩 달라붙는다. 엄마는 열여섯의 나를 마루에 눕혀 놓고 구멍이 뚫린 발바닥에 쇠똥을 대고 비닐로 꽁꽁 묶는다. 열여섯의 나, 쇠똥을 발바닥에 달고 마루에 엎드려 또 편지를 쓴다. 오빠, 나 좀 이곳에서 빨리 데려가 줘.

(중략)

발에 쇠똥을 대고 마루에 엎드려 편지를 쓰던 나, 일어서서 발을 질질 끌며 헛간으로 간다. 발바닥이 찍힌 후로 어디에 있으나 쇠스랑이 쏘아보고 있는 것 같다. 헛간 벽에 걸려 있는 쇠스랑을 끌어내린다. 쏘아보고 있는 듯한 쇠스랑을 끌고서 마당을 가로질러 우물가로 간다. , 망설이지도 않고 깊은 우물 속에 쇠스랑을 빠뜨린다. 물이 첨벙, 소리를 낸다. 한참 후에 우물 속을 들여다본다. 깊고 어두운 우물은 쇠스랑을 삼킨 채 곧 조용해지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하늘을 받아들이고 있다.

 

글쓰기, 내가 이토록 글쓰기에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은, 이것으로만이, , 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어느 날인가 덕수궁 앞에서 갑자기 가슴속을 비집고 올라오는 어떤 문장에 매혹되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탄 개인택시 유리창 앞에 세워진 액자 속에서 오늘도 무사히, 란 글씨를 읽는다. 그 글씨 위에서 흰옷을 입은 사무엘이 어디선가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오늘도 무사히, 라고 기도하는 사무엘 옆에, 세워져 있는 택시 기사의 가족사진. 아내와 아이들. 그런 정경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날의 사무엘과 그날의 가족사진은 내 비현실적인 문장을 누르고 아늑한 현실감으로 내 마음속으로 차올랐다. 그제야 나는 내가 덕수궁 앞에 서 있는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고 왜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문장을 잃어버린 나, 택시를 다시 덕수궁 앞으로 돌린다.

 

01. 윗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서술 전략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보기]

. 대화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위주로 서술하자.

. 단정적이고 객관적인 진술로 사건에 사실성을 부여하자.

. 장면에 따라 서술자를 다르게 하여 입체감을 주도록 하자.

. 현재형 문장을 사용하여 과거의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하자.

, , , , ,

 

02.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가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시도하는 공간이다.

② ㉡: 고향에서 벗어나려는 의 욕망을 드러내는 소재이다.

③ ㉢: 고향에 대한 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소재이다.

④ ㉣: ‘에게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기능을 하는 공간이다.

⑤ ㉤: ‘에게 잃었던 현실 감각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는 소재이다.

 

03. [보기]는 윗글을 쓴 작가와의 가상 인터뷰 일부이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질문: 선생님에게외딴 방은 어떤 작품인가요?

대답: 사실도 허구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에요. 이 글을 쓰기 전에 저는 제가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많이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질문: 외딴 방은 그런 고민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나요?

대답: , 맞아요.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글을 쓰는 이유를 대략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선생님에게 글쓰기는 무엇인가요?

각박한 삶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현재보다 과거의 삶이 훨씬 행복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성찰하여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04 에서 로의 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는 더 이상 현실과 괴리된 글쓰기를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있다.

는 앞으로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는 우연히 떠오른 문장은 좋은 문장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

는 자신보다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는 글을 쓸 때 흥분된 상태에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B)

 

신경숙,외딴 방

01 02 03 04

 

해제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이 담긴 소설로, 열여섯 살에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서 공장과 산업체 학교를 다니며 겪은 주인공 의 경험들이 내적·외적 갈등과 함께 묘사되어 있다. 작품에서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풍경이나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담겨 있지만, 실제로 작가가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라는 작품의 소재는 노동 소설과 공통적이지만, 사회성을 부각하기보다는 내적 체험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사소한 개인의 일상을 통해 좀 더 세밀하게 개인의 내면세계를 그리 고 있다는 점에서 1990년대 문학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주제 성장 과정에 대한 자기 고백을 통한 내면의 성숙

전체 줄거리 농촌에서 살고 있던 주인공 1978년 시골에서 상경해 큰오빠와 구로 공단의 작은 단칸방에 살면서 공장에 들어간 뒤 산업체 특별 학급에 입학하여 주경야독의 생활을 한다. 이 생활은 노조의 탈퇴 문제를 비롯해 인간관계의 불편을 감수하고 선택한 것이었다. 문학적 열망을 위해서라도 는 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다음 해 봄에 는 희재 언니를 만나는데, 방 자물쇠를 걸어 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뒤에 희재 언니가 자살하자 큰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소설가가 된 는 공장 시절의 옛 친구로부터 우리 이야기는 왜 소설로 쓰지 않느냐?’는 질책성 전화를 받고 이 소설을 쓴 것이라고 고백한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작품은 와 다른 인물과의 대화보다는 의 내면 심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현재 사건뿐 아니라 과거 사건도 현재형으로 서술하여 과거의 사건을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 이 작품은 서술자 가 객관적인 관점이 아닌 주관적 관점에서 자신이 겪은 일과 그때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 이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이 다른 장면이 나오지만 모든 장면의 서술자는 1인칭 이다.

 

02 소재의 기능 파악

정답이 정답인 이유

우물은 어린 시절 어두웠던 의 내면을 보여 주는 공간으로, ‘를 반성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나는 제주도에서 이전의 글쓰기 방식을 버리려 하고 있다.

과거의 나는 오빠에게 시골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편지를 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쇠스랑에 발바닥을 찍혔던 적이 있었다. 이처럼 쇠스랑은 그곳에서의 삶이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소재이다.

택시에서 본 사진을 통해 나는 비현실적 문장을 누르고 현 실감을 되찾게 된다.

 

03 감상의 적절성 평가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 가의 창작 의도를 추론해 보는 문항이다. ‘의 독백을 바탕으로 가 글을 쓰려는 궁극적인 이유를 파악한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보기]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글을 쓰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서술자 는 작가 자신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글쓰기에 집착하는 것이 , 라는 존재 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 에 글을 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지금까지 의 삶을 성찰하여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할 수 있다.

 

04 인물의 성격, 태도 파악

는 지금까지 의 글쓰기 태도를 보여 주는 것으로, 그동안 가 비현실적 문장에 매달려 현실을 잊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에서 는 비현실적 문장을 버리고 현실의 삶을 살려고 한다. 따라서 이는 현실과 괴리된 글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 태도 변화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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