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김희준이는 동경에서 나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오 년 동안에 고향은 놀랄 만치 변하였다. 정거장 뒤로는 읍내로 연하여서 큰 시가를 이루었다. 전 등, 전화가 가설되었다.
C사철(私鐵)*은 원터 앞들을 가로 뚫고 나갔다. 전선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고 그 좌우로는 기와집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읍내 앞 큰 내에는 굉장하게 제방을 쌓았다. 상리 안골에서 내리지르는 물과 봉화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정거장을 휘돌아서 원터 앞들을 뚫고 흐르다가 읍내 앞 — 정남쪽으로 와서는 한데 합쳐서 큰 내를 이루었다. 세 갈래가 진 물목은 웅덩이처럼 넓게 패었다.
이 물목은 강물의 어귀와 같이 여울이 졌다. 그래서 홍수가 질 때에는 물목이 벅차서 부근의 전답은 물론이요, 읍내 앞 장거리까지 침수가 되었다. 그런데 거기를 굉장하게 방축을 쌓아올리고 양쪽으로는 신작로의 가로수와 같이 사쿠라와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정자를 새로 지었다. 그러나 그동안 변한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상리로 올라가는 넓은 뽕나무밭 — 개울 옆으로는 난데없는 제사 공장이 높은 담을 두르고 굉장히 선 것이었다. 양회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밤낮으로 쏟아져 나왔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이 밭 가운데는 뽕나무가 약간 심기고 한 귀퉁이에는 잠업 전습소(蠶業傳習所)라는 누에 치는 강습소가 빈약한 널판집 십여 칸 속에 붙어 있었다.
희준이도 그때 강습생으로 육 개월 동안을 다녀 보았다.
그때 사용하던 제사기(製絲機)는 지금과 같은 전기 장치가 아니었다. 원시적인 물레와 같은 손으로 두르는 기계인데 왼편에다 화롯불을 피워 놓고 그 위에다 냄비를 올려놓고는 거기다가 고치를 삶아서 손으로 실 끝을 찾아가지고는 자새에 달린 바퀴를 둘러서 감는 것이었다. 그는 그 뒤에 이 근대적 대공장을 견학하러 갔을 때에 자기의 전습생(傳習生) 시대를 생각하고 격세지감이 없지 않았다. 수백 명의 여공(女工)이 큰 공장 안에 일렬로 몇 줄씩 늘어앉아서, 일제히 번갯불 치듯 돌아가는 전기 자새에다 실을 감고 있다. 냄비 속에 있는 고치는 물고기 뛰듯 하였다. 그들은 눈 한번을 팔지 못하고 고스란히 기계를 지키고 있었다. 희준이가 그날 저녁때 정거장에서 차를 내려서 본정통으로 새로 된 시가지를 보고 앞내의 방축을 보고 신설한 제사 공장을 보고 놀란 것은 자기가 어렸을 적만 해도 불과 몇 백 호 되지 않던 시골 읍내가 아주 대도회지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희준이로 하여금 제일 놀라게 한 것은 그동안에 자기 집의 변한 것이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오기 전에도 자기 집이 원터로 이사 간 줄은 알았다. 읍내 집을 팔고 누구라던가 그전의 소작인 집을 사서 줄여 앉았다는 말은 모친의 편지 로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쩐지 예전 집이 보고 싶어서 그날 차에서 내리는 길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희준이가 그 뒤에 이런 말을 하자 모친은 별안간 눈물을 텀벙텀벙 쏟고 비줄비줄 울었다. 읍내 집은 비록 초가일망정 안팎채가 드높은 것이 큰집 살림을 하기에도 무난하였다. 그 집이 바로 장거리에 있었다. 그의 조부가 생존했을 때에는 사랑채에서 큰 객주(客主) 영업을 하였다 한다.
희준이가 중학을 마치기 수년 전까지 땅마지기나 남았던 것도 그의 조부가 모은 재산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집을 찾아가서 보니 옛날의 집 모양은 간곳없고 그 터전에 신작로만 넓혀졌다. 장거리를 넓히는 바람에 바깥채는 헐렸다. 안채는 새로 짓고 전방을 꾸민 모양이었다. 그때 희준이는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와 같이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자기 집의 옛터를 바라보았다.
희준이가 동경에서 나오던 그날 저녁때 원터 동리는 별안간 발칵 뒤집혔다. 동리 개는 있는 대로 다 나와 짖고 닭이 풍기고 돼지가 꿀꿀거리고 송아지가 네굽을 놓고 뛰며 어미 소를 불렀다. 그것은 인성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희준이를 만나 보고 인사를 하자 한달음에 뛰어와서 선통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준이 집은 물론 인성이 집 안팎식구와 업동이네 김 선달네 수동이네 막동이네 — 그 외에도 누구누구. 거의 온 동리 사람이 옹기옹기 나와서 동구 앞을 내다보았다. 젊은 각시들은 울 밑과 삽짝문 옆에 붙어 서고 졸망구니들은 달음박질을 해서 골목 길거리로 뛰어나왔다. 이 바람에 닭이 풍기고 개가 짖고 송아지가 뛰고 돼지가 꿀꿀거린 것이다. 그런데 웬일이냐? 그들은 희준의 행장이 너무나 초라한 데 그만 놀랐다. 그들의 생각에는 그도 좋은 양복에 금테 안경을 쓰고 금시계 줄을 늘이고 그리고 짐꾼에게는 부담을 잔뜩 지워 가지고 호기 있게 들어올 줄 알았다. 그것은 그들뿐 아니라 희준의 모친과 그의 아내까지도. 한데 그는 시꺼먼 학생 양복에 테두리가 오글쪼글한 모자를 쓰고 행장이라고는 모서리가 해어진 손가방 한 개를 들었을 뿐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지 오륙 년 만에 나오지 않는가. 서울 가서 중학을 마치고 다시 일본까지 건너가서 유학을 하고 나올 적에는 그는 무엇이든지 장한 일을 하고 온 줄 알았다.(그들의 장한 일이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었거나 무슨 월급 자리를 얻었거나 그런 것인데 그는 아무것도 못한 것 같기 때문에.)
“공연히 미친년같이 뛰어나왔지. 난 무슨 장한 행차나 들어온다구. 허허허 참! 우리 아들(역부)이 서울 갔다 오는 길도 이보다는 낫겠구먼!”
변덕쟁이로 유명한 김 소사는 작은아들이 역부를 다녀서 그전보다 살기가 좀 낫다고 변덕도 그만큼 더 늘었다. 그는 지금도 체머리를 흔들며, 희준의 흉을 보느라고 입에서 게거품을 꺼내었다.
“글쎄유 아마 돈도 좀 못 벌어 온 게지유?”
“돈이 무슨 돈이야. 돈을 벌었으면 저렇게 초라한 꼬락서니로 들어오겠나. 비 맞은 장닭같이 후줄 근하게.”
“그 집도 아들 공부를 잘못 시켰지. 그러기에 공부도 너무 시키면 못쓰는 게니. 식자가 우환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게야.”
“참 그런가 봐요. 그래도 그전보다는 것기가 훌떡 벗었는데유.”
“그거야 딴 곳 박람을 많이 했으니까 그렇지.”
김 소사는 쇠득이 처에게 말대꾸를 하고 나서 또 한 번 하하 웃었다.
- 이기영, ‘고향’
*사철: 사유 철도. 즉 개인 또는 사기업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철도를 줄여 이르는 말.
0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인물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② 빠른 장면 전환으로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③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인물들의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④ 서술자의 직접적인 서술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드러내고 있다.
⑤ 인물의 행동 묘사로 상황의 변화에 대한 인물의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
02 윗글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한 것은?
① 주인공의 집안이 전통적인 학자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어.
② 여전히 원시적인 공업에 주인공이 충격받았음을 알 수 있어.
③ 당시에 사회적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
④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변화를 부정적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어.
⑤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와 부(富)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어.
도움자료
[2014 EBS 수능특강 B]
기본 문제 ❸ 01 ③ 02 ⑤
이기영, ‘고향’
해제 : 이 작품은 1920년대 중반 충청도의 한 농촌을 무대로 일제의 착취와 그에 따른 농촌의 황폐화, 몰락한 농민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 그리고 빈농과 노동자들의 투쟁하는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카프(KAPF) 농민 소설의 대표작으로 노동 쟁의, 소작 쟁의 등 경제 투쟁, 농민 운동을 강조한다. 식민지 통치로 더 가난 해진 농민 계층과 경제적으로 새롭게 부상한 계층의 갈등과 해소가 이 소설의 골격을 이루는데, 일본 유학생 김희준이 농민의 구심점이 된다. 유학생은 농민 소설이라면 단골로 등장하는 영웅적·이상적 존재인데, 김희준은 실패한 유학생으로 초라하게 등장해 점차 자기희생적 지도자로 변모한다. 그는 농민 의식을 변화 시키고 농민의 힘을 결집시켜 마침내 뜻을 이룬다.
주제 :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농민들의 의식 성장
전체 줄거리 : 1920년대 말 원터 마을, 동경 유학생이던 김희준이 학자금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소작인으로 농사를 짓는 한편, 농민 봉사, 계몽 활동을 통하여 농민 지도자로서 위치를 굳힌다. 그를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은 동네 마름인 안승학과 대결해 나간다. 풍년이 들었으나 소작료와 빚진 것을 제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이 거의 없다. 수재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농사를 망친다. 희준을 중심으로 소작인들은 안승학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줄 것을 요구하나, 안승학은 거절한다. 이때 공장에서도 갑숙을 지도자로 한 노동 쟁의가 벌어지며, 희준은 이를 돕는다. 갑숙은 소작인을 괴롭히는 아버지에 반대하여 희준과 힘을 합쳐 안승학의 양보를 얻는다. 희준과 갑숙은 동지로서의 사랑을 확인한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답 ③
이 문제는 작품의 서술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실마리[지문] 동리 개, 닭, 돼지, 송아지, 인성이 집 안팎식구, 업동이네, 김 선달네, 수동이네, 막동이네, 거의 온 동리 사람, 달음박질 제시된 부분 중 희준이가 동경에서 마을로 돌아오던 날의 광경을 보면, 매우 생동감 있는 표현이 드러나 있다. 동경 유학생이 돌아온다는 기대감에 동네 전체가 야단법석인 것을 사람과 동물들의 움직임을 묘사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경 유학을 갔던 희준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제시된 부분에 인물 간의 갈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② 제시된 부분에 장면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없다. 희준이 마을에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경쾌하고 빠른 느낌은 있으나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분위기가 긴박하지도 않다.
④ 서술자가 인물에 대해 직접 서술을 통해 평가한 부분은 드러나지 않는다.
⑤ 희준은 오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을 보고는 매우 놀란다. 그리고 옛 집터에 가 보고는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 집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상황이 바뀐 것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낯설어하고 아쉬워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연계
문학Ⅱ (2) 문학과 삶 (다) 문학과 문화
② 문학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심미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안목을 기른다.
02 작품의 내용 파악 답 ⑤
이 문제는 작품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했는지를 묻고 있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실마리[지문] 돈을 많이 벌었거나 무슨 월급 자리를 얻었거나 그런 것인데
마을 사람들은 희준이 동경에서 돌아오던 날, 희준의 모습에 기대를 품고 모두 구경을 나간다. 그러나 희준이 평범하고 누추한 차림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는 실망하고 조롱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부분에서 마을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희준의 조부가 생존해 계실 때는 사랑채에서 큰 객주 영업을 했다는 구절을 보면, 주인공의 집은 상인(商人) 집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② 마을의 급격한 변화 중 하나가 제사 공장이 세워진 것이다. 원시적인 공업의 형태로 실을 생산한 것은 제사 공장이 세워지기 이전에 있던 ‘잠업 전습소’에서이다.
③ 오 년 동안에 고향은 놀랄 만치 변하였다고 한 문장, 그 뒤의 변화 양상을 서술해 놓은 부분을 보면 사회적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④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변화를 부정적으로 여겼는지는 주어진 글에서 확인할 수 없다.
교육과정연계
문학Ⅱ (2) 문학과 삶 (나) 문학과 공동체
② 문학을 통하여 양성평등, 사회적 소수자, 생태, 미래 사회 등 공동체의 관심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