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6]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늙은 대학생 김 씨, 세무서 주사 이 씨, 박 씨는 혼인집에 가기 위해 군하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중 한 여자를 만난다. 밤 10시께 술에 취한 채 마을에서 나온 그들은 버스를 함께 타고 온 여자가 들어간 서울집을 찾아 술을 더 마시기로 한다. 그러나 집을 잘못 든 김 씨는 여인숙에서 잠을 청하게 되고, 그곳에서 반장이라는 소년을 만난다.
소년이 침구를 안고 다시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을 편다. 일어설 때 보니 가슴에 훈장이 달려 있다. 그는 그를 가까이 불러서 그 훈장을 들여다본다. 둥근 바탕에 가로로 5학년 2반이라 씌어 있고 그것을 가로질러서 세로로 반장이라 씌어 있다. 조잡한 비닐 제품이다.
[A][“너 공부 잘하는구나.”
“예. 접때두 일등 했어요.”
아, 이건 뻔뻔스럽구나, 못생기고 남루한 옷을 입은 주제에.
“여기가 너희 집이니?”
“아녜요. 여긴 이모부 댁이에요. 저희 집은요, 월출리예요, 여기서 삼십 리나 들어가요.”]
가난한 대학생. 덜커덩거리는 밤의 전차. 피곤한 승객들. 목쉰 경적 소리. 종점에 닿으면 전차는 앞뒤 아가리를 벌리고 사람들을 뱉어 낸다.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초라한 길가 상점들의 희미한 불빛들이 그들을 건져 낸다. 그들은 고개들을 가슴에 묻고 조금씩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은밀히 하나씩 둘씩 골목들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가난한 대학생 앞에 대문이 나타난다. 그는 그 앞에 선다.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망설인다. 아, 이럴 때 쾅쾅 두드릴 수 있는 대문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는 주먹을 편다. 편 손바닥으로 대문을 어루만지듯 흔든다. 또 흔든다. 고무신짝 끄는 소리가 들려온다. 식모의 고무신짝은 겸손하게 소리를 낸다. 그는 안심한다. 안심이 배 속으로 쑥 가라앉는다.
“학굔 여기서 다니니?”
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심지를 줄인 남폿불이 눈앞에서 가물거리고 있을 뿐 소년은 보이지 않는다. 방바닥이 뜨뜻하다. 술이 점점 더 취해 오른다. 그는 옷을 입은 채 허리를 굽히고 손발을 이부자리 밑으로 쑤셔 넣는다. 넥타이를 풀어야지. 그러면서 그는 눈을 감는다.
[B][“일등을 했다구? 좋은 일이다. 열심히 공부해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미국, 영국, 불란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나랏돈이나 남의 돈으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돈 없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흔한 것이 장학금이다. 머리와 노력만 있으면 된다. 부지런히 공부해라, 부지런히. 자신을 가지고.”]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알아들을 수도 없다. 그는 입을 다물고 흥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자 그의 머릿속에는 몽롱한 가운데에 하나의 천재가 열등생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결국 이 열등생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고생해 온 셈이다. 차라리 천재이었을 때 삼십 리 산골짝으로 들어가서 땔나무꾼이 되었던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천재라고 하는 화려한 단어가 결국 촌놈들의 무식한 소견에서 나온 허사였음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못 된다. 그들은 천재가 가난과 끈질긴 싸움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열등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누구나가 다 템스 강에 불을 처지를 수야 없는 일이다. 허옇게 색이 바랜 짧은 바지를 입고 읍내까지 몇십 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중학생. 많은 동정과 약간의 찬탄. 이모 집이나 고모 집이 아니면 삼촌이나 사촌네 집을 전전하면서 고픈 배를 졸라매고 낡고 무거운 구식의 커다란 가죽 가방을 옆구리에다 끼고 다가오는 학기의 등록금을 골똘히 생각하며 밤늦게 도서관으로부터 돌아오는 핏기 없는 대학생. 그러다 보면 천재는 간 곳이 없고, 비굴하고 피곤하고 오만한 낙오자가 남는다. 그는 출세할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떠한 것도 주임 교수의 인정을 받는 일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외국에 가는 기회는 단 하나도 그의 시도를 받지 않고 지나치는 법이 없다. 따라서 그가 성공할 확률은 대단히 높다. 많은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만 적중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적중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적중하건 안 하건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데에 있다. 적중하건 안 하건 간에 그는 그가 처음 출발할 때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사뭇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아-, 되찾을 수 없는 것의 상실임이여!
그는 꿈틀인다. 눈을 감은 채 일어나 앉더니 외투와 저고리로부터 동시에 빠져나온다. 아까보다 편한 자세로 다시 눕는다. 그리고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내 코를 골기 시작한다.
-서정인, ‘강’
34.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② 장면의 전환을 통해 사건을 빠르게 전개하고 있다.
③ 등장인물의 내면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있다.
④ 사투리와 비속어를 사용하여 향토적인 느낌을 살리고 있다.
⑤ 작품 속 서술자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35. 윗글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닌 것은?
① ‘그’는 출세를 지향하는 세속적 삶을 혐오했다.
② ‘그’는 대학 시절 가난 때문에 친척 집 신세를 져야 했다.
③ ‘그’는 가난은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고 인식했다.
④ ‘그’는 유학을 가기 위해서 여러 번의 시도를 했지만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없었다.
⑤ ‘그’는 가난한 천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36. (보기)를 참고하여 [A]와 [B]를 분석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 간의 대화는 정상적인 소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등장인물에게 듣는 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종 독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질문을 하는 이유도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들은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오직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대화 양상을 통해 작가는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① [A]에서 ‘그’가 소년에게 질문을 하는 이유는 소년에게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② [A]에서 ‘그’는 소년의 못생기고 남루한 외모를 보고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조하고 있다.
③ [B]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점으로 보아, ‘그’와 소년 사이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부재함을 알 수 있다.
④ [B]에서 ‘그’는 소년의 의견은 무시한 채 돈 걱정 없이 부지런히 공부만 하면 성공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다.
⑤ [B]에서 ‘그’가 소년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을 청자로 삼아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EBS수능완성국어영역 국어 B형
[수능완성 국어영역 국어 B형 실전편]
실전 모의고사 6회
현대 소설 34~36.
서정인, ‘강’
지문 이해하기
(해제) 이 작품은 현실에 좌절한 사람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줄거리 자체보다는 주제 의식에 비중을 두고 내용을 전개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이다. 뚜렷한 사건이 제시되지는 않지만, 현실로부터 소외된 인물들에 대한 담담한 묘사를 통해 인생의 허무와 비애를 드러낸다. 이 작품은 김 씨, 이 씨, 박 씨, 여자 등의 익명의 인물이 뚜렷한 사건 없이 혼인집에 동행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실로부터 소외된 인간을 의미하는데,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허무와 비애라는 주제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서정인의 대부분 작품들은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직한 무기력하고 쓸쓸한 모습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강’이라고 붙인 제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는 실제로 강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데, ‘강’이란 제목은 강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제)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갖는 허무와 비애
전체 줄거리
김 씨와 이 씨는 박 씨네 하숙생들이다. 셋은 버스를 타고 군하리의 혼인집으로 가고 있다. 박 씨는 군대 기피자였고, 지금은 초등학교 선생을 사직한 처지이다. 그의 곁에는 살찐 젊은 여자가 앉아 있다. 그녀는 술집 작부이다.
이들 셋과 여자는 같은 곳에서 하차한다. 밤늦게 혼인집을 다녀온 세 남자는 거나하게 취해 버린다. 박 씨와 이 씨는 낮에 만났던 작부의 술집으로 가고, 김 씨는 혼자 여인숙에 눕는다. 침구를 가지고 방에 들어온 여인숙 집 아이를 보내며 김 씨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다 잠이 든다.
술집에서 술판이 벌어진다. 술집 여자는 김 씨가 늙은 대학생이라는 말에 놀라고, 방을 나와 김 씨를 찾아 나선다. 밖에는 소리 없이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그걸 본 그녀는 김 씨의 새 신부가 된 자신을 상상으로 그려 본다. 여자는 김 씨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누나처럼 김 씨를 편히 누인 뒤 잠자는 김 씨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남폿불을 끈다.
34. 서술상 특징 파악
답: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③ 확인: 과거와 현재의 교차
이 작품에서‘그’는 반장이라는 소년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시골 천재였던 자신이 열등생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들을 떠올리며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현실과 과거를 교차하면서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등장인물 간의 대화
이 작품에서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 김 씨가 자신의 처지에 깊은
상실감을 느끼므로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② 확인: 장면의 전환
이 작품에서 김 씨가 소년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을 장면의 전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는 않다.
④ 확인: 사투리, 비속어
향토적인 느낌을 주는 사투리와 비속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⑤ 확인: 작품 속 서술자
작품 밖의 서술자가 등장인물의 심리까지 서술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35. 인물의 성격, 태도 파악
답: ①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① 확인: 출세를 지향하는 삶
‘그는 출세할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다.’를 통해 그가 출세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② 확인: 친척 집 신세
‘이모 집이나 고모 집이 아니면 삼촌이나 사촌네 집을 전전하면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③ 확인: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누구나가 다 템스 강에 불을 처지를 수야 없는 일이다.’나 ‘천재는 간 곳이 없고, 비굴하고 피곤하고 오만한 낙오자가 남는다.’라는 내용에서 가난한 천재였던 ‘그’가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한 이유에 가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난은 ‘그’에게 개인적인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셈이다.
④ 확인: 유학을 가기 위한 여러 번의 시도
‘외국에 가는 기회는 단 하나도 그의 시도를 받지 않고 지나치는 법이 없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⑤ 확인: 가난한 천재
‘문제는 적중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적중하건 안 하건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데에 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36.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답: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④ 확인: 작품 속 비정상적 대화 양상 분석
‘그’는 가난한 시골 천재로,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꿈을 이룰 수 없었다. [B]에서 ‘그’는 표면적으로는 소년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그’나 소년과 같은 가난한 천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음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담겨 있는 반어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B]에서 ‘그’는 부지런히 공부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년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으므로 소년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확인: 질문을 하는 이유
‘그’가 소년에게 질문을 하는 이유는 소년에게 관심이 있거나 궁금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와 소년 사이의 대화의 양상을 고려할 때, ‘그’는 소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위해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확인: 소년의 못생기고 남루한 외모
‘아, 이건 뻔뻔스럽구나, 못생기고 남루한 옷을 입은 주제에.’라는 부분에서 ‘그’가 가난한 소년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③ 확인: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부재함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를 통해 ‘그’에게 더 이상 듣는 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소년이 아닌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와 소년 사이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⑤ 확인: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음
소년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그’는 소년이 아니라 지난날의 자신을 청자로 삼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